348화
실컷 물싸움하고 나면 평온한 시간이 찾아온다.
물과 하나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다.
시하랑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녀 본다.
깊은 곳이다 싶으면 내게 안겨든다.
“형아. 저기.”
“저기 가고 싶어?”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빗겨나간다.
저 위에 올라가고 싶은지 눈을 빛낸다.
혹시나 넘어지면 어쩌나 싶어서 살며시 시하의 허리를 잡는다.
이런 바위 같은 곳은 올라가기 참 좋지만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까.
“형아. 시하 점프해.”
“형아 보는 데서만 해야 한다?”
“아라써.”
물에 그대로 점프!
풍덩.
구명조끼로 인해서 몸이 둥둥 뜬다.
무서움도 없는지 잘도 뛰는 것 같다. 나중에 수영선수만큼 다이빙을 잘할지도?
“형아. 재미써!”
“응. 재밌으면 됐다. 근데 이거 위험한 거니까 형아랑 꼭! 있을 때 해야 해. 주변에 다칠 만한 거 없나 확인하고.”
“시하 다 아라. 벌써 서이 번 드러써.”
“응. 까먹을까 봐 또 말해주는 거야.”
시하가 바위를 가리켰다.
또 다이빙하고 싶은가 보다.
높은 데서는 안 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형아. 물이 비켜져.”
“응? 아, 그러네.”
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데 저기 솟은 바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지 쭉쭉 나가고 있다.
아무래도 시하는 그게 신기한가 보다.
너무나 당연한 풍경과 사실에 감동이 오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저랬을까?
지금은 별 감흥이 없고 그저 풍경이 좋다는 느낌만 온다.
초록색 나무들이 둘러싸여 있고 회색과 검은빛 돌들이 안정감을 준다.
맑은 물이 스르륵 내려와 이 돌들의 색은 사실 무섭지 않고 오히려 나의 길을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형아 고기!”
“응? 어디?”
물 안을 보니까 작은 고기들이 몰려다니고 있었다.
“피피, 일피, 이피, 삼피, 사피 친구야. 친구.”
“그러네. 친구네. 잡아볼까?”
“아냐. 자브면 친구랑 떨어져서 안 대.”
“그래?”
물고기가 있는 건 신기하긴 하지만 잡지는 않을 건가 보다.
보통 다들 잡으러 다니는데 말이다.
친구들 헤어지게 하고 싶지 않나 보네?
그래도 눈은 고기에 향해 있다. 관찰은 하나 보다.
“시하가 오늘 밥 업써서 밥 못 져.”
“응. 밥 못 주지.”
“군데 형아. 물고기 여기서 밥 아무도 안 주눈데 누가 져?”
“아무도 안 주고 알아서 먹어.”
“???”
“으음. 곤충이라던가 씨앗이라던가 바위에 붙은 미생물이라던가 그런 걸 먹지.”
“곤충?! 개미 머거?”
“글쎄? 개미가 오면 먹지 않을까?”
한 번도 개미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물에 사는 곤충들을 먹지 않을까 싶긴 했다.
“미생물 모야?”
“으음. 아주아주 작은 생물이야. 돋보기로도 안 보여.”
“정말?”
“응. 돋보기로 보면 크게 보이지? 근데 안 보여. 좀 더 엄청나게 비싼 돋보기로 볼 수 있어.”
“바이에 부터 이써?”
“응. 볼래?”
시하가 눈을 크게 바위를 보지만 그게 보일 리가 없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모를까.
“사실 시하 몸에도 있어.”
“!!!”
시하가 자신의 몸을 두리번거렸다.
“형아. 시하 몸에 먹이 나와? 고기에게 먹이 주까?”
“푸흡. 아니. 줄 필요 없어. 아, 맞다. 근데 시하 몸으로 먹이 줄 수 있는 물고기도 있어.”
“정말?! 시하 안 맛있는데?”
아무래도 시하 몸을 통째로 먹는 물고기를 상상했나 보다.
시하 맛없어요. 먹지 마세요.
그 정도면 상어나 피라냐가 나와야겠지만 나는 그런 어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시하 피부에 떨어지는 각질만 먹어. 긁으면 나오는 때? 그거 먹어.”
“때?! 더러어.”
“그거 먹는 물고기가 닥터 피쉬야.”
“!!!”
시하가 뭔가 고민하더니 알았다는 듯이 물을 참방참방 튀긴다.
“시하 아라. 닥터는 의사 선생님이야. 의사 선생님. 피쉬는 물고기야.”
“오! 맞아.”
“닥터 피쉬. 물고기 의사 선생님이야? 형아. 물고기도 의사 선생님 이써써? 시하 몰라써. 닥터 피쉬 우리 집에도 키우자. 피피가 아프면 의사 선생님 이써야 해.”
“그렇지.”
“시하가 몸에 때 밀어서 주께. 구러면 닥터 피시 키울 수 이써.”
“으음. 으음.”
어마어마한 생각으로 나아가는구나.
이러다가 닥터 피시까지 키우게 생겼다.
“아! 승준이랑 하나가 물총 들고 있는데?”
“아?!”
“어서 우리도 물총 들고 놀자.”
“형아. 빨리!”
우리는 바위 근처에서 벗어나 쌍둥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승준 엄마와 아빠도 물총으로 무장 중이다.
오상환 교수가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승준과 하나를 공격한다.
승준이 왁왁, 하며 피하기 바쁘다.
하나는 엄마 뒤에 숨어서 살며시 아빠를 공격하고 있다.
초반에 애들과 놀아준 백동환은 그늘에서 쉬는 중이다.
“형님. 여기 물 넣어놨습니다.”
“쉬면서 물 넣고 있었던 거야?”
“다 세팅해 두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고 애들이 너무 저만 공격하는데요?”
“백동 형아가 그뉴기라서 그래.”
“시하야. 그거 너만 그래. 다들 괴물이라고 한다고. 아니, 차라리 괴물이라고 해!”
일단 고맙다고 말하며 물총을 들었다.
더 놀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 여기 텐트나 지키고 있겠단다.
하긴 한 사람은 여기 있어야지.
누가 뭘 가져가면 손도 못 쓰고 당할 수밖에 없다.
뭐, 백동환이 저리 지키고 있으면 근처라도 다가가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잡히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으니.
“전 여기서 여유롭게 노래나 듣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럼 쉬어. 난 더 놀아주고 올게. 아, 맞다!”
나는 모자를 꺼내서 시하에게 씌웠다.
“아?”
“후후후. 이제 이 모자가 다 젖으면 지는 거야.”
“!!!”
나도 모자를 썼다.
승준과 하나가 소리쳤다.
“시혁이 형아. 뭐 해? 빨리 와!”
“시혀기 오빠 빨리!”
“얘들아. 나는 시하랑 같이 모자 젖는 사람이 지는 게임을 할 거야.”
그 말에 승준과 하나도 모자 쓰는 거로 참여.
어차피 옷과 함께 나중에 말려야 한다.
“그럼 규칙을 말하겠습니다. 모자가 푹 다 젖으면 탈락. 그리고 물총의 물은 딱 세 번 채울 수 있어. 이 부분은 양심에 맡길게. 설마 네 번 채우는 사람은 없겠지?”
그렇게 시작된 물총 대결.
오히려 그냥 얼굴에 막 쏘는 것보다 아이들이 흥미진진한 얼굴을 보인다.
원래 이런 규칙이 있으면 더 좋아하는 법이다.
총 게임처럼 탄알이 제한되어 있고 생명력도 모자로 되어 있다.
“그럼 10초 줄게. 각자 떨어져 있는 거야.”
다들 물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다.
근데 시하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응? 시하야. 형아랑 떨어져야지.”
“시하가 형아 지켜주께!”
“???”
우린 팀이 아니라 적인데요? 이거 팀전 아닙니다.
뭐, 이런 서바이벌은 암묵적 동맹을 맺기도 하는 법이다.
근데 이건 너무 빠르잖아!
시작부터 장난질이냐고 들어도 할 말이 없다.
***
게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물총의 물은 딱 세 번 채울 수 있다는 제한이 눈치를 보게 만든다.
물론 쏘면서 공격을 할 때는 꽤 과감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건 진짜 총이 아니기 때문에 물을 채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때 빈틈이 크게 생기는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서로 비슷하게 쏘고 함께 충전하는 것.
“간다!”
승준이 저돌적으로 하나를 향해 전진한다.
뒷일은 나중에 나에게 맡기고 우선 공격부터 한다.
스트라이커를 좋아하는 승준다운 스타일이다.
“꺅! 오빠. 저리 가!”
하나가 도망치면서 틈틈이 물총을 쏜다.
승준이 요리조리 잘도 피한다. 발 빠르게 오지만 피하느라고 그 속도는 늦춰진다.
하나가 엄마 있는 쪽으로 간다.
“여기 오면 안 될 텐데?”
엄마가 하나를 저격한다.
하나는 당황하며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승준이 ‘우하하!’ 하며 계속 물총을 쏘다가 물이 다 떨어진다.
“오빠!”
“앗!”
승준이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다.
하나는 잘 걸렸다면서 모자를 향해 물총을 마구 쏘았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니 참으로 이 게임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아. 적이 오고 이써. 아찌야. 아찌.”
누가 부자지간이 아니랄까 봐 오상환 교수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
“너희들 치사하게 팀을 먹다니! 게임에서도 그러면 욕먹는다고!”
“시하야. 공격!”
“공격~!”
뻔뻔하게 팀 먹기로 했다. 시하는 형아랑 같이하고 싶어 하니까 어쩔 수 없다.
2 대 1은 상당히 불리하다. 왜냐면 양옆에서 공격하면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축구에서처럼 스트라이커를 2명 마크하면 엄청난 피지컬이 아닌 이상 공을 돌릴 수밖에 없다.
피슉-
물줄기가 모자를 향해 나아간다.
정밀도를 봤을 때 오상환 교수는 나를 견제하며 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뒤에 있는 시하는 뒤통수를 향해 물을 뿌린다.
생각했던 것보다 불리했던 걸 알았는지 오상환 교수는 도망을 친다.
“형아. 시하가 이겨써!”
“응. 뒤통수 킬러네.”
“모자 뒤에 마니 마자써!”
평온한 표정으로 물총을 쏘는 모습이 꽤 웃겼다.
어쩌면 시하는 사격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평정심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던데.
삐꾸삐꾸삐꾸.
시하가 열심히 물총에 펌프질한다.
“그럼 갈까?”
“형아. 누구에게 가?”
“으음. 일단 승준이 공격할까?”
“!!!”
그렇게 우리는 승준을 향해 걸어갔다.
하나와 격전을 하는 중이었는데 서로 물총의 물이 떨어졌는지 물을 채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변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며 빨리 통에 물이 채워지기 바라고 있다.
“시하야. 지금이야. 둘 다 공격이다!”
“공격!”
나는 승준을. 시하는 하나를.
둘에게 물을 쏘자 둘 다 화들짝 놀라서 물가에 첨벙거리며 피신을 갔다.
그때 하나 엄마가 엄호 사격을 하는지 나를 공격했다.
오상환 교수가 웃으며 말한다.
“이제 2 대 2다!”
이런. 역시 가족끼리 팀을 이루는가.
서로 물총을 쏘며 난전이 이어진다. 그 속에서 물줄기의 시원함을 느끼며 도망친다.
의외로 재미가 있다.
다들 어느 정도 모자에 물이 젖었다.
제일 먼저 탈락한 것은 승준 엄마였다. 하나를 보호하느라 승준에게 다 맞아버린 게 컸다.
텐트를 지키러 돌아오면서 새로운 인원이 보충되었다.
백동환.
“동환아. 왜 그 물총을 들고 왔어?”
“승준 어머니께서 뒤늦게 참여하는 핸디캡이라면서 이거 쓰라던데요.”
손바닥만 한 물총.
백동환이 들고 있어서 더더욱 작아 보인다.
저거면 3번 충천해도 몇 번 못 쏠 것이다.
“그 악어 물총이랑 너랑 안 어울리는 거 알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자가 아주 멀쩡하네?”
“예?”
나는 곧장 모자에다가 물총을 쏘았다.
시하도 그걸 보더니.
“형아. 시하도 도우께!”
넌 어찌 맨날 나만 돕냐. 우리도 사실 적인 거 잊지 않았겠지?
“형님. 너무하십니다!”
백동환이 모자를 한 번 맞고 도망쳤다.
하나랑 승준도 눈을 빛내며 참전했다. 이미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원래 강한 적이 나오면 힘을 합쳐서 싸우는 법이니.
“괴물이다! 공격해라!”
“공격!”
“그래. 얘들아. 공격하자.”
오상환 교수가 신이 나서 물총을 쏘았다.
백동환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반격을 한다고 물총을 찍찍 쏘았지만, 사거리가 작아서 조그마한 물줄기가 아래로 축 처질 뿐이다.
저걸로 모자를 젖게 하려면 오래 걸릴 것이다.
물총이 불쌍해 보이는 건 처음이네.
“형아. 시하가 마무리하께.”
“응. 그래.”
시하가 살금살금 어디로 간다.
응? 어디로 가는 거야?
그런 다음 오상환 교수님의 뒤로 돌아가 뒤통수에 물총을 쏜다.
그렇다.
오늘 이시하는 뒤통수 킬러였다.
“어엇!”
뒤통수가 시원하니 뭔가 싶어서 돌아보신다.
그대로 안면 명중.
앞통수 킬러까지 등극되었다.
“아니! 배신이라니!”
나도 옆에서 지원사격을 해서 오상환 교수의 모자는 푹 젖어버렸다.
오상환 교수 탈락.
원래 이런 게임은 하나로 뭉쳤다가 기회가 오면 배신하는 법이지.
영원한 아군은 없다.
“배신 아냐. 시하 형아 편이야.”
응. 영원한 아군이 있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