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그래도 계곡 가는 데 필요한 건 꼭 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백동환의 자신 있는 말.
준비물이 뭐가 필요하지? 잠깐 쉴 텐트 같은 거야 가져가면 되고. 갈아입을 옷도 가져가면 되고. 살 게 없는데?
“계곡 하면 수박이죠!”
“계곡물에 수박 담그면 별로 좋지 않다고 들은 거 같은데?”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당연히 아이스박스에 넣어둬야죠!”
“아…….”
“계곡물이라고 해봤자 얼음이 들어있는 아이스박스 앞에 어린 온도일 뿐입니다.”
“엄청나구만. 얼음 무겁잖아?”
“그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별로 무겁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이 근육 성우 녀석! 함부로 말하지 마라!
“나중에는 가볍게 들고 오는 게 계곡의 참맛이죠. 제가 들겠습니다!”
“수박에 그렇게 진심이구나?”
“당연하죠! 계곡 하면 수박! 수박 하면 계곡!”
시하가 맞장구쳤다.
“마자. 시하도 개곡에서 수박 머그니 마시써써.”
“계곡 간 적 없잖아.”
“아냐. 형아랑 미래에서 개곡 간 거 시하 다 바써.”
“아, 그 설정.”
미래에서 앨범이라도 봤니? 계곡 간 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그때 수박 맛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
“아무튼, 수박 사러 갑시다!”
“아! 그러고 보니 사러 갈 게 있긴 하네.”
“어떤 거 말입니까?”
“구명조끼.”
다들 계곡에 가보면 한 번씩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바로 바위에 이끼를 밟아서 넘어지는 경험.
이게 미끌거려서 조심해야 한다.
시하가 잘못하다가 크게 다치면 아플 테니까 넘어져도 몸이 붕붕 뜰 수 있는 안전한 구명조끼를 마련하자.
그리고 놀다 보면 푹 꺼지는 곳이 있기 때문에 튜브보다는 구명조끼가 훨씬 낫다.
“그리고 샌들.”
여름 하면 역시 샌들 아니겠나.
슬리퍼가 편하긴 하지만 물에 놀다가 벗겨져 둥둥 떠다니게 되면 그것 또한 귀찮다.
“역시 형님! 계곡에 가고 싶었군요!”
“그게 왜 그렇게 해석이 되냐?”
“진심으로 생각한 사람만이 계곡 갈 준비가 되어있는 법입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시하가 옆에서 맞장구쳐 준다.
“마자마자. 형아가 시하랑 개곡에서 놀고 시퍼서 다 생각해써. 시하 다 아라.”
“으응?”
“마찌? 시하 말이 마찌?”
“어. 맞지. 형아가 시하랑 놀 생각에 준비 철저히 하는 게 맞지.”
저 귀여운 얼굴에 아니라고 냅다 말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시하가 편하고 안전하게 놀았으면 해서 생각하게 된 거니까.
“그럼 준비물을 사러 가죠!”
백동환이 앞장선다.
시하가 도도도 달려가 제쳐버린다. 신발을 먼저 신고 문에 찰싹 붙었다.
그래. 간다. 가.
어차피 사야 할 것들이니 머릿속에 정리 좀 해보자.
“형아. 빨리.”
“어!”
그렇게 우리는 마트로 함께 가게 되었다.
대형마트는 옷가지도 팔고 신발도 팔아서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먼저 시하에게 어울리는 샌들을 사러 갔다.
여기 있는 곳은 메이커라서 가격이 좀 나갔지만 그래도 아이들 것이라서 그런지 많이 비싸지는 않았다.
예쁜 게 참 많았는데 그런 것들은 계곡에 신고 가기에 조금 아쉬운 디자인이었다.
“이거 예쁘네. 사야겠어.”
“형님. 근데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신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옆에 점원도 그렇다고 맞장구치긴 했다. 차라리 이런 건 어떠냐고.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따로 사면 되지.”
“???”
“신발은 하나보다 두 개지.”
“그런 것치고는 형님 신발은 두 개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 신발은 두 개면 충분하지.”
“으음. 일단 형님이 시하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건 알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나도 돈 아끼며 살 거든. 더 사주고 싶은데 없어서 못 사주는 중이야.”
“충분한 거 같은데요?”
“아니야. 부족해!”
“???”
뭐, 아이 발은 자꾸 크니까 오래 신을 수 없긴 했다.
그래도 예쁘니까 신겨 보고 싶잖아!
“시하야. 신발 신자.”
“형아랑 가튼 거.”
“그래. 어차피 형아도 하나 사려고 했어. 계곡에 신을 거는 이걸로 하자.”
평범하게 구멍 숭숭 뚫린 샌들.
아이들이 쉽게 신을 수 있는 찍찍이! 완벽하다.
그렇게 시하가 신어 보고.
“어때? 편해?”
“형아도 신어 바. 그럼 아라. 시하가 버서 주까?”
“아니. 그거 형아 발에 안 들어가.”
우리 말을 들었는지 직원분이 호호 웃으신다.
이거 어른용 있냐고 하니까 있다고 하신다.
역시 어른과 아이의 디자인은 똑같았다.
신어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늘 생각하는데 이렇게 잠깐 신어 보는 느낌하고 오래 걷는 느낌하고 다르다.
“그럼 이걸로 할게요. 시하도 마음에 들지?”
“형아랑 가타!”
그래. 형아랑 같으면 다 좋지?
다음은 구명조끼를 사러 움직였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여름 상품들이 한곳에 쫙 나열해 있다.
튜브, 물총, 수영복 등등.
역시 이런 점에서 계절마다 마트를 들리는 게 편하긴 하다.
구명조끼를 하나 사려는데 시하가 빤히 본다.
아, 내 것은 안 사냐고? 어쩔 수 없이 어른용 것도 사야 했다.
흑흑. 이거 아끼면 맛있는 한 끼 더 먹일 수 있는데.
“너는 안 사?”
“저는 집에 있습니다. 하하! 여기 맞는 것도 없겠지만.”
“그건 그래.”
“수박 사러 갑시다! 수박!”
“대체 수박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그렇게 백동환이 좋아하는 수박을 사러 왔다.
시하에게 뭔가 가르쳐주고 싶은지 수박을 가리키며 말한다.
“시하야. 그거 알아? 수박이 잘 익었는지 보려면 통통 두드려야 해. 좋은 소리가 나면 맛있는 수박이야.”
그런 고전적인 방법을…….
그걸로 구별할 줄 알았으면 이미 달인의 영역이 아닐까.
“백동 형아는 두드리면 안 대.”
“왜?”
“부서져.”
“살살 할 건데?”
“아냐. 살살 해도 부서져.”
“???”
백동환. 너란 놈은 대체. 시하에게 어마어마한 이미지구나.
인간이 아닌 괴물 아니냐.
“시하가 해보께. 똑똑. 문 열어 주세여. 마시써여?”
시하가 귀를 기울이다가 뭔가를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맛업대. 다른 수박에게 물어보께. 똑똑. 거기 잘 이써여?”
잘 있는지 왜 물어보는 걸까?
수박 안에 대체 누가 들어 있길래?
근데 두드리는 소리를 아무리 들어도 똑같다. 별 차이가 없다.
“형아. 이게 마시써. 시하가 물어바써. 마시떼.”
“그래? 어디 보자. 형아는 맛있는 수박을 구분할 줄 알아.”
“정말?”
“응. 배꼽을 보면 돼.”
“여기?”
시하가 옷을 들더니 자기 배꼽을 본다.
아니. 네 배에 있는 배꼽 말고. 수박에 있는 배꼽 말이야…….
일단 확인해 보니 배꼽이 작은 것이 맛있어 보였다. 이 정도면 색도 진한 것 같다.
“여기 배꼽을 보는 거야. 시하야.”
“아? 시하 배꼽 보고 아는 거 아냐?”
“응. 아니야.”
의외로 시하가 괜찮은 수박을 고른 것 같다.
뭔가 커다란 주먹이 스리슬쩍 들고 있는 수박을 향해 다가온다.
“백동 형아. 안 대!”
“크흠. 한 번은 해봐도 되잖아. 한 번은. 수박은 이렇게 두드려보는 맛이 있다고.”
“구럼 새끼손가락으로 해!”
“아니. 무슨.”
시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백동환은 새끼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 뒤로 몰래 두드리려고 각을 보는 것 같았지만 시하가 카트에 앉아 수박을 품에 안고 있어서 할 수 없었다.
집에 올 때도 봉지에 시선을 두고 있어서 백동환은 두드리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냥 두드려볼까?
통. 통.
“형님이 제일 나쁩니다.”
“???”
***
계곡에 왔다.
푸른 나무 사이를 걸으니 덥지만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초록색 풍경은 시원함을 준다.
승준과 하나도 좋은지 시하와 함께 재잘거린다.
옆에서 승준 엄마가 말한다.
“매번 어디를 같이 가네요.”
“그러게요.”
“근데 저는 이상하게 이런 게 좋네요. 애들이 서로 재밌게 놀면 부모들은 좀 편하니까요. 저희는 쌍둥이라 둘이 아주 잘 놀거든요.”
“시하는 동생이 없어서 그런지 저랑만 놀지만요.”
“우리 애들도 그래요. 집에서 엄마만 찾는다니까요.”
“애들이 다 그렇죠.”
오상환 교수가 헛기침하며 ‘아빠도 많이 찾아.’ 하고 반론을 펼친다.
승준 엄마가 팔짱을 끼며 ‘아빠 많이 찾는 사람 요기 있는데?’라고 말한다.
오상환 교수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건 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저리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니 승준과 하나가 거기서 많이 배울 것 같았다.
뭔가 좀 부러운 감정이 들었다.
“형아!”
“응?”
“시하도 형아 마니 차자.”
“응. 너무 많이 찾지.”
“조아?”
“응. 엄청 좋아!”
언제 와서 저 말을 들었나 싶다.
역시 시하는 다 아는 건가?! 어떻게 중요한 순간만 딱딱 듣지? 분명 승준이랑 하나랑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오! 여기다.”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그래도 놀 수 있는 공간은 있다.
물이 흐르는 곳은 많았지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포인트는 몇 군데 없는 법이다.
아래로 내려가 간단히 텐트를 친 후에 애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혔다.
“형아. 놀자!”
“응. 잠시만.”
대충 구명조끼를 입었다.
사실 안 입고 싶었는데 그러면 시하도 안 입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다.
“자! 모두 형아를 봐. 물에 들어가기 전에 주의사항이 있어. 꼭 지켜야 하는 거야.”
“모야?”
“어디 멀리 가면 안 되고 여기 근처에서 놀아야 해. 알았지?”
“왜?”
“혹시나 발이 안 닿아서 멀리 가버리면 위험하니까 그래. 그러면 문제. 위험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승준이 손을 들었다.
“열심히 수영해서 빠져나와!”
“승준아. 수영할 수 있어?”
“나 개헤엄 잘하는데!”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오빠는 맨날 개헤엄 잘한대. 사실 못하면서.”
“아니거든! 나 흰둥이만큼 잘하거든!”
“그렇게 위험할 때는 살려주세요! 하는 거야.”
하나 말이 맞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렇게 대답하려는 순간 시하가 말했다.
“119 불러. 119구조대!”
“어? 119구조대는 아마 너무 늦을 거야.”
긴급한 이런 상황에서 119구조대는 너무 늦다.
물론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까 떠내려갈 뿐이기는 한데…. 혹시 모르지 않는가.
“형아. 미리 부르까?”
“그건 좀.”
괜찮은 발상이기는 하지만 미리 부르는 건 조금 그렇다.
“하나가 정답!”
“아싸!”
“그리고 물 들어가기 전에 뭐 해야 하지?”
“준비운동!”
우리는 하나, 둘, 셋, 넷 소리를 내며 함께 준비운동을 한 다음 물에 들어갔다.
참방참방.
물이 다리를 시원하게 적신다.
“형아. 떠 이써!”
“그러네.”
시하가 물에 몸을 폭 담갔는데도 둥둥 뜬다.
구명조끼의 힘이다.
팔을 파닥파닥 흔드는데 뒤로 점점 밀려난다.
승준이 그런 시하에게 물을 뿌린다.
“받아라!”
“시언해!”
눈을 질끈 감는 이시하.
얼굴로 물을 받아버린다. 물장난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에 하나다.
“자! 대형 물이다!”
촤아악!
나는 세 아이에게 물을 뿌렸다.
다들 즐거운 소리를 지른다.
세 아이가 동시에 나에게 물을 뿌린다. 원래 한 사람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더 재밌는 법이다.
“형아. 시언해?”
“엄청 시원하네!”
나는 등을 돌려 대답한다.
“어푸어푸 하고 이써.”
그때 등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백동환의 등장이었다.
“형님! 저도 돕겠습니다!”
촤악!
거대한 물보라가 일며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아니. 넌 여기 낄 피지컬이 아니라고.
씨름이나 복싱을 해도 체급끼리 붙이는데 너는 과해도 너무 과해!
승준이 소리쳤다.
“괴물이다!”
“괴물이야!”
“백동 형아. 개물 아냐. 그뉴기야.”
시하야. 어찌 네가 더 심한 말을 하는 거 같아.
아무튼, 아이들은 저런 커다란 체급에 물 뿌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역시 큰 게 좋은 건가?
어쩌면 공격할 면적이 넓어서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