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6화 (346/500)

346화

항공우주산업에 체결류를 지급하기로 선정되었다.

특수 부품이라 미팅을 해야 하기에 사장님과 내가 가서 의견을 나누었다.

거기서 말하는 명확한 요구가 있었고 그걸 전해주는 건 사장님이었다.

나는 옆에서 그 말들을 하나, 하나 기록해 갔다.

미팅이 끝나고 여러 말이 오가는 건 나에게 맡기셨다.

이제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은근히 해야 할 게 많아서 과연 회사는 회사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제 대충 마무리가 되어서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책을 내는 것은 이미 진척이 많이 되었다.

오히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만큼 빨리 되는 수준이어서 금방 1권이 만들어졌다.

2권도 반 정도 해두었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삶에는 여유가 없다.

이것저것 시하랑 놀아주면 시간은 하염없이 빨리 흘렀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나고 7월이 왔다.

“으어어어.”

“형아. 에어컨. 에어컨.”

“응. 틀어야지.”

여름에는 역시 에어컨이 필수였다.

더위에 힘이 쭉쭉 빠지는데 그로 인해 글 쓰는 작업 속도도 느려졌다.

그것보다는 쓰기 귀찮았다. 그래도 먹고 살려면 후딱 쓰고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키보드를 잡는다.

“으허허헉.”

“형아. 시하도 열심히 하니까 형아도 열심히 해야 해.”

“응. 그래야지.”

시하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 타이밍이 일하기 좋다.

짜투리 시간의 활용이라는 거지.

쉬는 게 어디 있나. 젊을 때 열정을 불태워 일을 많이 하자.

물론 몸 관리는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사람이 일만 하면 지치기 마련이니 2권 정도는 이번 달에 완성하는 거로 여유롭게 목표를 잡자.

어? 이게 뭐가 여유로운 거냐고?

지금까지 달려온 것에 비하면 꽤 여유롭긴 하다.

이미 순간순간 바쁘게 생활하는 것에 관성이 붙어서 버틸 만하다.

시하랑 놀아주는 게 어떨 때는 힐링이 되거나 쉬는 시간이 되니 괜찮기도 하고.

“그런데 뭐 그리고 있어?”

“에어컨 그려. 페페가 에어컨으로 빙빙이 만드러.”

“응. 빙판 만든다고? 근데 차라리 냉장고로 얼음을 열심히 만들면 되지 않아?”

“냉장고로 만들면 얼음이 조그마해. 시하 입에도 쏙! 드러가.”

“그건 그렇지.”

얼마나 어마어마한 에어컨이길래 바다의 빙판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근데 그거 기계가 작동할 수 있나?

보통 기계가 아닐 것 같았다.

엄청나게 비싼 에어컨이겠지. 가정용으로 쓸 수가 없다.

그림이 궁금해서 슬쩍 확인해 보니까 벽걸이 에어컨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도 이글루 밖에 말이다.

페페는 밖에서 에어컨을 쐬고 있다.

뭐지? 더워서 안에 있는 우리와 반대였다.

이게 대비되니까 뭔가 좋다.

“형아. 글 다 써써?”

“응? 아니. 좀만 더 쓰면 오늘 할 거 끝이야? 뭐 하고 놀고 싶어?”

“물놀이.”

“물놀이라…….”

마당이라도 있으면 풀장을 만들어서 시하랑 같이 참방참방하면서 물총을 쏠 것 같다.

하지만 물놀이를 하려면 바다나 수영장 같은 곳을 가야 하는데. 음.

“그럼 이거 끝나고 물폭탄 만들까?”

“물폭탄?”

“응. 물폭탄. 풍선에 물 넣어서 갖고 노는 거야.”

어릴 때 나도 친구들이랑 가끔 하고 놀았다.

수도꼭지에 물풍선을 끼워 넣고 틀면 쭈욱 커지는데 그게 또 보는 맛이 있다.

그걸 던지면서 놀면 재밌다.

맞아도 시원해서 좋다.

“잠시만. 조금만 더 하면 되니까.”

글을 마무리하고 저장을 했다.

시하도 그림이 끝났는지 손을 탁탁 턴다.

시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는데 뜨거운 햇볕이 우리를 반긴다.

물풍선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 괴롭다.

시하도 지쳤는지 집에 오자마자 선풍기를 찾았다.

틱 하고 틀며 바람을 맞는다.

나는 더 시원해지게 에어컨을 틀었다.

그래도 나가기 전에 에어컨을 틀어놔서 그런지 집은 쾌적하고 좋아서 다행이다.

“더어.”

“오늘따라 더 더운 것 같네. 밖에서는 못 놀겠는데?”

“아냐. 시하 안 더어.”

“괜찮아. 물풍선은 집에서도 놀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

그러니 그렇게 굳이 안 덥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근데 물풍선 살 때 안 건데 요즘에는 물풍선 제조기도 함께 판다.

물풍선에 고무링이 있어서 굳이 묶지 않고 빼도 되는 게 신기했다.

물론 가만히 놔두면 센다고 한다. 묶는 것만큼 완벽한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물풍선 하면 묶는 맛도 하나의 놀이인데 말이다.

그렇게 묶고 있으면 물풍선을 맞게 되는 거지.

근데 이건 물만 채우면 바로바로 던질 수 있어서 그 시간 간격을 완벽히 줄여주는 아이템이다.

오랜만에 이런 걸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흥분했다.

나도 참.

“자, 시하야. 여기 물을 넣으면 한 번에 여러 개 물풍선이 만들어진대.”

“시하도 보고 이써.”

물을 넣었다.

빨대 같은 여러 개의 막대 다발이 물풍선에 물을 주며 부풀린다.

“형아. 물풍이가 커져!”

“응.”

물풍선은 물풍이라고 이름 지어줬니?

굉장히 이름 짓기 참 쉽구만. 나도 시하 작명법을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잘 봐. 이걸 그냥 떼면 물풍선이 돼.”

톡.

물풍선 끄트머리에 있는 곳의 고무링이 입구를 막는다.

시하 손에 쥐여 주니 촉감이 신기한가 보다.

꾸욱. 찔끔.

물풍선에서 물이 삐져나온다.

“오늘은 화장실에서 놀자.”

오늘 필드는 화장실과 그 앞바닥 부분.

물이 흘러도 닦으면 된다. 저기가 젖는 건 어쩔 수 없다.

“자. 물풍선은 말이야. 이렇게 던지면 터져!”

화장실 안으로 세게 던졌다.

촤악! 힘에 의해서 손쉽게 터져버린다.

시하도 나를 따라 했다.

“에잇!”

팅! 통! 통!

벽에 부딪히며 터지지 않고 땅에 통통 튀었다.

아무래도 힘이 부족한 것도 있고 화장실이 매끄러운 타일인 탓도 있었다.

“아?”

“다시 해볼래?”

“에잇!”

기합 소리 뭐야. 귀여워.

하지만 물풍선의 끈질긴 생명력은 터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안타깝도다.

“형아. 물풍이 안 터져.”

“그러네. 아! 이건 그냥 던지면 재미없지. 잠시만.”

“???”

나는 최근에 주문하고 포장을 받은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왔다.

뚜껑만 때고 유성 매직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쁜 불을 그릴 거야.”

“불?”

“응. 시하도 그릴래?”

“시하도 그릴래!”

불 모양을 그리고 화난 얼굴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선으로 팔다리를 그린 다음 작은 원으로 손발을 만들어준다.

시하가 내 그림을 보더니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불의 얼굴까지는 똑같이 그렸는데 몸은 복근이 있다.

엄청 강해 보였다.

“이건 백동 형아야.”

“푸흡.”

백동환아. 너는 불이 되어서도 복근이 있구나. 근데 물풍선 던질 캐릭터를 그리는데 잘도 백동환을 그리는구나?

“다 해따!”

“응. 다 했네. 이제 그릴 때가 없네.”

“이제 머해?”

“여기에 이쑤시개를 꼽을 거야.”

집에 있는 이쑤시개.

시하랑 같이 스티로폼에 뽁뽁 꼽았다.

이걸로 과녁이 완성되었다.

화장실 벽에 테이프로 고정하면 끝.

이제 이쑤시개 때문에 시하의 물풍선도 터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할 놀이는 119구조대야.”

“119?”

“응. 불 끄는 소방관.”

“!!!”

그냥 맞추기 놀이를 하면 재미없다.

언제나 스토리를 부여해 주며 더욱 집중력을 높여줘야 하지.

책을 쓰다 보니 이런 놀이까지 생각하게 되는구나.

“먼저 119에 전화로 신고가 옵니다. 따르릉. 따르릉. 시하야. 전화 왔어. 어서 받아.”

“시하가 바드께!”

내가 폰을 주자 귀에 댄다.

“여보세여. 시하에여.”

“예? 시하요? 119 아니에요?”

“마자여. 119에여. 시하는 소방간이에여.”

“아! 맞군요! 큰일 났어요! 여기 불이 났어요! 살려주세요!”

“지금 가께여.”

시하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시하에게 말했다.

“시하야. 장소를 들어야지.”

“아코! 실수. 실수.”

“다시 하자.”

“어디서 불 나써여?”

“엉덩이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지금 화장실에요!”

“큰일이야! 매운 거 머거서 엉덩이에 불 나써!”

“여기 불닭발 집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발에 불이 나써여?”

“아니. 그게 아니라 매운 닭발집이라구요. 닭발 파는 곳이요.”

“닥발 왜 팔지?”

“먹으라고 팔죠.”

“???”

시하가 의문인 눈으로 나를 봤다.

아니, 닭발을 왜 먹는지 의문 어린 눈으로 봐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 아라써여. 금방 가께여!”

“네!”

이러다가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다 타버리겠다.

나는 시하에게 말했다.

“시하 대장님! 119구조대 준비 다 됐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출발! 차로 가자!”

시하가 어디론가 도도도 달려간다.

너 어디 가니?

방으로 들어가 장난감 상자에 차를 꺼내온다.

동물로 변하는 차.

참으로 특이한 조합이구나. 뭐, 소방차라고 생각하자.

“형아도 타.”

“저는 형아가 아니라 소방관입니다. 대장님.”

“응. 형아 소방관. 어서 타.”

“???”

소방관이 되어도 형아라니. 심지어 계급은 동생이 더 높은 상황.

어마어마한 디테일이구만.

“삐용. 삐용.”

드디어 화장실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주 애타고 있을 것 같았다.

왜 빨리 안 오지? 금방 온다면서? 어째서? 제발 좀 빨리 와라.

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다 와써.”

“예! 대장님! 화재를 진압하겠습니다. 물 준비하겠습니다!”

“하재? 하장실인데?”

“음. 불을 끈다는 말이야. 화재 진압.”

“알게써. 하팅!”

아니. 너도 불 꺼야지. 응원만 하고 있으면 어떡해?

내가 준비된 물풍선을 시하 손에 쥐여 주었다.

“화재 진압! 시작!”

“시작!”

우리는 물풍선을 던졌다.

살살 던져도 이쑤시개의 날카로움이 물풍선을 터뜨린다.

펑!

시하도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인다.

“형아. 터져써!”

“대장님.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빨리해야 합니다.”

“아라써. 시하가 힘내께.”

물풍선이 팡팡 시원하게 터진다.

나도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아서 재밌었다.

이런 좋은 물풍선이 있다니 생각도 못 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은 날로 발전하는구나.

하긴 이런 불편한 점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해결하는 게 턱 나오니 살 수밖에 없지.

밖에 나가지 않아도 이렇게 재밌게 놀 수 있다.

“형아. 다 써써.”

“그러네. 벌써 다 썼네. 이제 화재가 끝났을까?”

“아냐. 여기 더 남았어.”

“그건 그렇지.”

어쩔 수 없군. 다시 채워 넣는 수밖에.

물풍선 리필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 끝내기에는 아쉽긴 하지.

그렇게 우리는 물풍선으로 재밌게 화재 진압을 하고 놀았다.

***

여름에는 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위는 사람에게 너무 해롭다. 그래도 꼭 나가야 한다면 이번 7월이 좋긴 하다고 생각한다.

피서!

전에는 바닷가로 가서 신나게 놀았다면 올해는 산에 가고 싶다.

당연히 여름 하면 계곡이 아니겠는가.

“여름 하면 캠핑이지 않습니까. 캬아!”

“???”

백동환이 와서 다시 캠핑 찬양론을 늘어놓고 있다.

어? 저기?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더운 여름에 어디서 자고 싶지는 않아. 그냥 당일치기로 가까운 데 가고 싶은걸?

그렇게 말하자 백동환이 고개를 젓는다.

왜? 뭐?

“호텔에서 자는 건 어떻습니까. 계곡에서 실컷 놀고 호텔에서 자고 나서 체크인하고 집으로 캬아!”

“그건 나쁘지 않네.”

“근처에 캠핑장도 있긴 합니다.”

“아직도 포기 못 했어?!”

지긋지긋한 캠핑은 사절이다!

챙기는 게 너무 많다. 그냥 옷가지나 물총 같은 것만 챙겨서 갔다가 오고 싶다.

“좋은 계곡이 있습니다. 하하. 꼭 캠핑하자는 건 아니고요. 간편 텐트 같은 건 제가 챙기겠습니다. 애들도 계곡에서 놀다가 쉬어야죠.”

“그 정도면 뭐. 아니. 너도 친구들이랑 계곡에서 놀면 되잖아.”

“이상하게 가자고 하면 또 캠핑이냐면서 피하던데요?”

“…….”

그때 시하가 말했다.

“형아. 승준이랑 하나도 가?”

“응?”

“물놀이!”

음. 계곡에서 물놀이는 애들이랑 같이 가면 더 재밌지.

좋은 점은 놀아주는 시간이 적어진다는 거다.

애들끼리 잘 놀고 잘 자고.

이게 은근 편하긴 하다.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백동환이 오면 더 쉴 시간이 많아지고.

“좋아. 올해 여름은 계곡이다!”

“형아. 구런데 개고기가 모야?”

개고기가 아니라 계곡이야. 발음 조심하자 시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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