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시하가 승준이 그린 보디 페인팅을 설명한다.
전에도 봤지만 여전히 강렬한 그림이다.
축구공이 2개가 있고 복근에 골대가 6개.
“골대에 축구공이 가고 이써여. 어느 곳에 너을까여. 알아마쳐 봅시다!”
어디 들어가는 게 아니라 6개 중에 선택해야 하나 보다.
설명하는 중간에 뜬금 노래가 나오는구나.
엄청난 능력이다. 애드리브를 넣을 뿐만 아니라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게 재치 있게 진행하고 있다.
우리 시하는 도슨트에 관해서 천재가 틀림없다.
나중에 강연 같은 것을 할 때도 엄청 재밌게 진행하겠지!
오랜만에 도환이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떠오른다. 왜? 뭐!
“여섯 번째에여. 군데 서이 번째가 조아서 서이 번째 하께여.”
“???”
걸리기는 여섯 번째인데 왜 세 번째 골대를 고르냐?
아무튼, 승준의 몸통 설명이 끝났다.
다음으로 쭉 넘어가니 팔다리가 나왔다.
시하 작품은 어디 있을까 싶어서 둘러보았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전시장 한가운데 있는 다리.
다른 작품들이 가벽에 쭉 붙어 있다면 가는 길 중간에 작품 하나가 있다.
마그마가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다리는 어딘가 섬뜩해 보인다.
대본에 있는 사진으로 봤지만 확실히 잘 그렸다.
“불 파박. 파박. 넘어가께여!”
“???”
아니, 그래도 가운데 있으면 잘 그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설명이 너무 대충 아니야?
다 타버릴 것 같은 다리는 아직도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 얼마 안 있으면 곧 수명을 다해 잿가루를 날리게 될 거라는 설명은 어디 갔어?
하긴 설명이 어렵긴 하지.
아무튼, 인상에 남는 작품이기는 하다.
뭐, 다 필요 없다. 우리 시하 작품 그래서 어디가 있는데?
끝자락에 오니 드디어 시하의 작품에 보인다.
제일 마지막.
“이거 시하 꺼에여. 시하가 만드러써여.”
“응. 그래.”
“페페에여. 형아 페페랑 동생 페페. 하늘 보고 이써여. 별이 반짝반짝 빛나여. 인사하고 이써여. 안녕. 안녕.”
“그렇구나.”
“여기 발은 하얀색인데 빙빙이에여. 빙빙이.”
“빙판이겠지.”
“빙판이에여.”
빙판 이름이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아니지. 단어 생각 안 나서 빙빙이라고 했던 거지?
거 빙 머시기 있었는데 뭐였더라? 그냥 빙빙이라고 하자.
이런 식으로 사고로 이어진 거 아닐까?
가끔 그냥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해서 헷갈린다.
“다 해따!”
“다른 곳도 재밌게 봐주세요. 해야지.”
“재미써!”
“시하가 재밌어하면 안 되고.”
“시하도 재미써야 다룬 사람도 재미써!”
“어? 그건 맞는 말 같긴 한데. 시하가 재밌다고 마무리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아냐. 재미써.”
마지막의 유머로 챙기는 건가?
재밌긴 재밌었다. 근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다음은 내가 해볼래!”
“아냐. 하나가 해볼래!”
이 도슨트 연습 루트를 두 번은 더 돌아야 한다는 것.
아니, 이런 낭패가! 이미 한 번 다 봐서 더는 안 보고 싶은데!
그래도 승준과 하나가 얼마나 설명을 잘하는지 궁금하긴 하다.
오히려 그 부분에 듣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이제 시하가 보는 사람 놀이하께.”
이게 언제부터 놀이였던가?
그렇게 승준의 차례가 되었다.
하나 그림을 보고.
“나비가 꽃을 보고 앉았는데 눈에 눈물이 나니까 너무 짜서 앉지는 않았어요!”
“아니거든! 가고 있는 거거든!”
아주 작위적인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자신의 작품을 말할 때는.
“골대가 6개니까 사커를 세 팀이서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훈련도 많이 해서 복근도 만들어줘요.”
그래. 질문을 하자. 이럴 때는 질문하는 거랬어. 시하 때는 너무 다양하게 설명해서 질문할 타이밍을 놓쳤다.
“질문 있는데요. 공은 왜 두 개인가요?”
“한쪽 경기장은 공 말고 다른 훈련하고 있어요. 뛰거나 그런 거요.”
“아, 그런 설정이었어?”
“설정 아니고 진짠데?”
그래. 훈련이 공 가지고만 하는 건 아니지. 암.
아무래도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공 두 개만 그렸나 보다.
그랬구나. 나는 왜 이제 알았지? 아니, 이거 지금 떠올린 것 같은데?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다.
한가운데 있는 다리 작품을 보고는 집에 들어갈 때 발 안 닦으면 바닥이 검은색으로 지저분해진다고 하고 넘어갔다.
뭔데 너희들. 이 다리에 무슨 원한 있는 거 아니지?
마지막으로 시하 작품.
“여기는 시혁이 형아랑 시하예요.”
“???”
아니. 펭귄이 나랑 시하로 바뀌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설명하면 다른 사람이 못 알아듣지 않을까?!
마지막치고는 너무 간단한 설명이었다.
아무래도 지친 기색이 있는 거 보니 힘드나 보다.
“이제 하나다!”
“우리 쉴까?”
“오빠! 하나 차례라고!”
“그러니까 쉬어야지.”
“이익!”
하나가 승준이의 뒤에서 돌아가 팔로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바로 조르기.
“켁! 항복. 항복.”
“들을 거야. 말 거야.”
“들을게. 들을게.”
그렇게 다시 하나의 설명을 듣게 되었다.
하나는 자신의 작품을 잘 설명했다.
“눈이 꽃처럼 너무 예뻐서 나비가 와써요.”
다음은 승준 작품.
“제 오빠가 그린 건데요. 축구 바보예요. 그래서 배에 복근으로 골대도 만들었는데 골 때리는 거 같아요.”
“야! 축구가 아니라 사커거든!”
승준아. 그게 중요한 거니?
근데 하나가 말에 라임이 좋네. 은우한테 배웠나? 아무래도 승준 작품은 웃음으로 가는 전략인가 보다.
다음은 시하 작품을 소개했는데 승준이 작품과 다르게 형아랑 동생이 다정하게 있다고 해주었다.
그걸로 끝.
결국, 우리는 한 번씩 연습을 해봤고 또 안 해봐도 된다는 아이들의 말을 얻었다.
아니, 이거 진짜 또 안 해봐도 돼?
“형아. 이제 시하 도슨트 해써. 구러니까 과자 머글 시간이야.”
시하야. 너 도슨트 한 게 아니라 연습한 거야. 그리고 과자는 대체 왜?
“시하가 수고해써. 구래서 선물 져야 해.”
“아, 그렇구나.”
뒤에서 듣던 하나랑 승준도 그렇다고 맞장구쳤다.
너희들 한마음 한뜻이구나.
카페 과자는 뭔가 돈 아깝단 말이야!
물론 시하에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아! 근데 뭔가 아까운 느낌이야!
“그럼 디저트로 먹을까? 케이크로.”
이왕 사는 거 과자 말고 케이크로 하자.
치즈 케이크 좋잖아. 초코케이크랑.
“마시께따!”
“아싸! 시혁이 형아 멋있어!”
“시혀기 오빠 멋져!”
너희들 아까부터 마음이 너무 맞네!
우리는 그렇게 수고했다고 조각 케이크를 먹으러 갔다.
***
드디어 보디 페인팅 전시가 시작되었다.
보통 기한 3개월로 정해두고 전시실을 하나씩 바꾼다.
로테이션으로 프로그램을 돌리기에도 좋고 분기마다 아이들이 보러 오기도 좋다.
미술관의 기획은 여유 있으면서 그렇다고 쉬지 않게끔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아빠. 빨리요.”
도하는 오늘 자신의 작품을 보러 왔다.
잿가루 날릴 것 같은 자신의 다리가 과연 어디에 전시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 그날 그 산타클로스를 그린 아이의 작품을 보러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작품이 어디에 전시되어 있는지.
“우리 아들이 또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었는지 궁금한걸?”
“이번에도 당연히 대단해요.”
“내 아들이라서 그렇지.”
“아, 빨리요. 빨리.”
“그래. 가자.”
다른 전시실은 제쳐두고 곧바로 보디 페인팅이 전시된 곳으로 갔다.
앞에 한 아이가 보인다.
직원이 혹시 도슨트의 설명을 듣겠냐고 물어본다.
도하는 고개를 저었다.
저 프로그램은 도하에게도 제안이 왔는데 거절했다.
그런 걸 하는 시간에 하나라도 더 그리고 싶었으니까. 실력을 더 쌓고 싶었다. 좀 더 잘하고 싶었다.
“아빠는 궁금해서 한번 듣고 싶은걸?”
“그러면 내 작품 어딨는지 빨리 못 보잖아요.”
“그것도 그러네.”
전시실을 들어가며 다른 작품들은 대충 훑으며 지나갔다.
그중 꽤 볼만한 아이디어들도 있었지만 자세히 볼 필요는 못 느꼈다.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빨리 가?”
“아이, 참. 빨리요. 빨리.”
드디어 자신의 작품이 보였다.
일렬로 늘어선 작품 중 마치 특별하다는 듯이 동떨어져 있는 곳.
한가운데.
“오! 도하야. 저기 봐. 멋지게 장식되어 있는데?”
“그러네요.”
어떤 미술관에 가보면 양옆에 그림이 걸러져 있다.
그리고 한가운데 가벽이 세워져 있어서 큰 그림이 하나만 걸리기도 한다.
바뀌지 않는 대표적인 그림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주제가 인상파라면 그 인상파를 대표하는 유명한 작가 그림을 걸어놓는다.
양옆에 있는 그림들은 바뀌기도 한다.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대여하기도 해서 그렇다.
“역시! 내가 이겼어!”
“응? 누구랑 붙었니?”
도하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쪽 아이는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도하는 그때부터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난생처음 들었던 순간이었으니까.
“근데 그 애 꺼는 어딨지?”
“응? 아까부터 누구 꺼 찾는 거야?”
“크리스마스 때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그림 있잖아요. 잠시 좀 머물렀던.”
“아, 그 오두막집 안에서 편지 썼던 그림?”
“이번에 보디 페인팅 때도 그렸다고 해서요.”
“그럼 저기 아니니?”
아빠가 손을 가리킨 곳에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있다.
마지막에 있는 곳.
사람들 몸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저기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천히 걸어갔다.
사람들이 초등학생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똘똘한 도슨트가 말하는지 발음도 정확하며 힘주어 말하고 있다.
아직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은 형제인 펭귄이 하늘을 보는 모습입니다. 보디 페인팅의 대표적인 모습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만약 여기 뒤에 여백인 곳을 채워 넣고 다리를 놓았으면 아마 이게 다리인지 그림인지 몰랐을 겁니다.”
보디 페인팅의 대표적인 모습.
“이게 사람의 몸이었어?! 하고 놀라는 게 본래 보디 페인팅의 예술이 아닐까 합니다. 자세히 보면 사람 맞네! 이런 느낌도 들고요. 알고 보면 어쩔 수 없이 윤곽이 드러날 수밖에 없거든요.”
자기 생각도 확실히 말하는 도슨트.
원래 각자 도슨트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이나 포인트가 있다.
여기 있는 작품을 말하기 때문에 주제를 헤치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도슨트를 하는 아이는 잘하고 있다.
‘이긴 거 맞나?’
아이의 말이 도하에게 충격을 준다.
어쩌면 자신은 본질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그걸 또 부정하는 것에서 색다른 게 피어오른다.
그렇기에 도하의 작품을 가운데로 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제 설명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전시에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무리 멘트를 하자 사람들이 잠시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뭔가 따뜻한 그림이네.”
“저기 형인 펭귄이 잘려서 오히려 더 좋은 거 같아. 이상하게도. 뒤의 그림이 상상되기도 하고. 아! 아래 동생 펭귄이 이미 그려져 있어서 그런 건가?”
“오! 맞네! 저게 없었으면 좀 상상하기 힘들었을지도?”
“크기만 키운 거니까.”
여백은 상상하게 만든다.
연출의 일종이고 시하는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다.
노린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다리라는 도화지에 펭귄을 다 못 담았을 뿐이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도하의 눈앞에 작품이 나타난다.
“음.”
확실히 도슨트의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작품이 파격이었다면 여전히 저 아이의 작품은 정석적이다.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색감의 능력은 재능의 영역이었으니까.
“실력 안 죽었네.”
“그러게 여전히 잘 그리네.”
아빠도 거기에 동의를 표했다.
두 부자는 다른 작품을 본 것과 다르게 한참을 거기에 서 있다가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