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시하를 데리러 가는 길.
도착하자마자 ‘형아!’ 하고 안기더니 손을 보여준다.
뭔가 참 손에 많이 그려져 있다.
보디 페인팅은 일관성이라도 있지 여기 몸에 그려진 것은 너무나도 자유분방하다.
해석도 안 될 것 같다.
일단 알겠다며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차로 간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 건지 여기저기 그림을 설명한다.
“이거는 펭긴이야. 윤동이 스티커 바꺼져써. 윤동이 착해.”
“윤동이 진짜 착하네.”
“이거는 봉선이 물이래.”
“봉선화 물이겠지. 봉선이 하니까 무슨 사람 이름 같네.”
저렇게 이름처럼 말하는 게 웃겼다.
그리고 오른손을 보여줬는데 중지에 물방울이 그려져 있다.
“서이 손가락. 물이야.”
“어허. 접지 마. 접지 마. 큰일 나.”
“아?”
“그건 아주 나쁜 말이라서 세 번째 손가락 빼고 접으면 안 돼.”
“왜?”
“어른들도 그걸 보면 엄청 화내거든. 싸움이 일어날지도 몰라.”
“!!!”
왜 하필 서이 번째 손가락은 중지인 걸까.
하마터면 시하가 욕을 할 뻔했잖아. 그것도 나한테.
살며시 접힌 다른 손가락들이 펴졌다.
충격이 가셨는지 시하가 이어 말했다.
“이거 물 능력이야. 시하가 물 써서 불 꺼.”
“또 새로운 능력에 눈을 떴네.”
“샘이 손가락 열 개 능력 쓸 수 있대.”
“선생님은 엄청나네.”
“시하도 열 개 능력.”
“시하도 엄청나네. 대단해!”
“시하가 친구들 능력 그려져써.”
아무래도 보디 페인팅 때처럼 그림을 그려줬나 보다.
열심히 듣고 있으니 이 자유분방한 그림들이 다 하나씩 사연이 있고 소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 알고 보니 그런 엄청난 사실들이 들어 있구나. 다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구나.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저게 뭐야? 하겠지만 시하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저걸 보며 시하가 그리는 걸 상상할 수 있다.
친구들이 시하 손에 그려주는 것도 말이다.
“집에 가자!”
“형아. 오늘 머 머거?”
“배고파?”
“시하 배고파.”
“오늘 저녁은 찜닭 어때? 오케이? 치즈 팍팍 뿌린 거로 시켜먹자.”
“찜닥?”
“응. 찜닭.”
“이 닥 시하가 찜공해써. 찜공. 구래서 찜닥이야?”
“푸흡.”
아 찜공 닭의 줄임말이 찜닭인 줄 알다니.
시하의 생각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찜공 너무 귀엽잖아.
저 말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
“삶은 닭이라는 소리야. 닭을 물에 넣고 끓였다고 생각하면 돼.”
“찜공 아냐?”
“푸흡. 아니야.”
나는 미리 찜닭을 주문했다.
집에 도착해도 오지 않을 걸 알지만 미리미리 시켜놓으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모차렐라 치즈가 듬뿍 담긴 찜닭을 생각하니 군침이 돈다.
“다 왔네.”
“찜닥 이써?”
“아직 안 도착했어.”
우리는 집에 들어갔다.
밥이 오기 전에 손과 발부터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띵-동-
문을 열자 봉지에 잘 싸인 음식이 도착했다.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서 기대된다는 얼굴을 한다.
“짜잔! 찜닭 순한 맛! 거기에 치즈!”
“마시께따!”
“자, 봐봐. 이렇게 찜닭을 들어 올리면! 치즈가 쭈욱!”
“!!!”
시하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형아. 후후. 부러야 해. 뜨거. 뜨거.”
“응. 후후, 불어서 먹어야지. 시하 잘 아네.”
“시하 4살이라서 다 아라.”
4살이라는 건 대체 얼마나 지식이 들어 있는 걸까.
서이 살 할 때는 잘 몰랐는데 4살 되니 다 알게 된다.
이건 뭐 시하의 손에 있는 것처럼 능력자 각성이랑 다를 바가 없다.
“형아. 아~”
“어? 형아 주는 거야?”
“맛난 건 형아 먼저 머거야 해.”
“!!!”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감동이었다.
이걸 거절할 순 없지. 입을 벌리며 그대로 받아먹었다.
얌.
치즈의 풍미가 입안을 감싸며 닭 살점의 식감이 뒤따라온다.
시하가 먹여줘서 더 맛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밥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음. 맛있어!”
“정말?”
“응. 시하도 어서 먹어봐.”
“형아가 후후 해져야 해.”
“!!!”
그래. 네가 후후 해줘서 먹여준 건 다 이런 빌드업을 위한 거였구나.
뭐, 해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후후. 자 아~”
“아~”
오물오물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무래도 너무 맛있는 모양이다.
“여기 납작 당면도 먹어봐. 쫀득쫀득해.”
내가 입에 넣어주자 이번에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면을 더 먹어보고 싶은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예이. 제가 따라야죠.
접시에 면을 건져서 올려줬다.
“이거 모야?”
“당면이야.”
“당당해져써 면이야.”
“???”
대체 뭐가 당당한데?
나 좀 맛있다! 면 중에서 나보다 맛있다고 자신 있으면 앞으로 나와!
이렇게 소리치는 당면인가?
저기 시하야. 당면은 줄임말 아니야…….
별것을 다 줄이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줄임말인 줄 아는 건가?
“콜라도 줄까?”
이렇게 물어보는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혹시 콜라도 무슨 줄임말인지 말해 주는 거 아니야?
“형아도 다 알겠어. 콜라가 무슨 말인지 말하려고 했지?”
“아? 형아. 콜라눈 콜라야.”
“어? 그렇지.”
콜라는 왜 그냥 콜라인데! 생각 안 나서 그런 거지?!
아니야. 질문을 이해 못 했을 수도 있어!
“시하야. 콜라는 왜 콜라게?”
“형아 몰라?”
“형아는 알지. 알아서 물어보는 거야.”
“시하는 다 아라.”
“그래. 시하는 다 알지.”
“형아. 따 져.”
“응.”
내가 콜라를 열어주자 시하가 잡았다.
빈 컵에 따르려는 모습이다.
“형아. 바바.”
“응. 보고 있어.”
“이케 따라. 바바. 콜콜콜 하지?”
콜라가 컵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콜콜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 ‘라’는?
“이거 마시면. 라라라~ 해.”
거짓말하지 마! 뒤엣것은 방금 생각해낸 거지?!
누가 봐도 생각 안 나서 그런 게 티가 나는데!
“갑자기 만든 거지? 라라라가 왜 나와?”
“아냐.”
“응?”
“둘이서 먹다 주거도 모룰 마시야.”
“그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아니지.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노래 이짜나. 둘이서~ 라라라~”
“!!!”
네가 에스지워너비의 라라라를 어떻게 알아?
형아 학생 때 친구들의 애창곡 중 하나였는데.
노래방 가면 꼭 부른다고.
다른 건 몰라도 이 노래를 알고 있다는 게 너무 놀랐다.
“그 노래 시하 태어나기 전에 나왔던 건데? 그것도 한참?”
“샘이 불러써. 시하 다 아라.”
유다희 선생님. 저랑 같은 세대인 게 티가 나시네요.
어찌 되었든 콜라의 ‘라’는 ‘라라라~’였던 것이다.
뭔가… 은근… 맞는 말 같아!
***
밥 다 먹고 시하와 앉아서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미술관에서 문자가 왔다.
혹시 전시하는데 도슨트 경험에 관심 있으면 신청을 달라는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메일을 보내놨다고 되어 있다.
“도슨트?”
“도순투 모야?”
“아, 그게. 미술관에 가면 안내하고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거든. 이 그림은 1786년도에 어느 화가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 당시 못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화가는 그러한 풍경을 그린 겁니다. 뭐, 이런 식으로 도슨트가 설명해줘.”
메일을 보니까 혹시 도슨트 체험을 해볼 생각이 있냐는 것이었다.
대본도 따로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꼭 대본대로 안 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대단하네.’
이게 아이들의 체험학습이라는 걸까.
미술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무조건 도슨트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관람객이 원할 때 한 번 한다고 하니 이것 역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내 생각에는 이런 것도 시하가 해봤으면 좋겠지만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역시 물어보는 게 좋겠지?
“시하야. 미술관에서 도슨트 해볼지 물어보는데? 승준이랑 하나랑 만든 보디 페인팅 있잖아. 다른 아이들 것도 다 설명하는 거야.”
“!!!”
시하가 고민하더니 ‘해볼래! 시하 해볼래!’라고 한다.
“그럼 신청할게.”
“형아도 가치?!”
“어? 하하하. 뭐 형아도 같이하지.”
“!!!”
여기 적혀 있기로는 부모님이 동반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당연히 어린 친구들은 부모님이 같이해야지.
초등학생 고학년쯤이면 어디 내놔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뭐 어린이들이 만든 작품들이라 그렇게 깊은 감상까지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도슨트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다고 하니 문제없겠지.
막 좋은 설명 같은 기대는 안 할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진짜 설명 잘하는 애도 있겠지?
요즘 워낙 똑똑한 아이들이 많으니까.
“형아. 승준이랑 하나도 해?”
“어? 그건 모르겠는데. 승준 어머니가 아시지 않을까?”
“따루룽 하까?”
“응. 그럴까?”
승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근데 타이밍이 좋은지 받는 것은 승준이었다.
「여보세요. 승준이에요. 엄마는 지금 화장실에 있어요. 그래서 못 받아요.」
“승준아. 시혁이 형아야.”
「어? 시혁이 형아!」
「하나도 시혀기 오빠랑 통화할 거야!」
「으악! 저리 가!」
전화 통화만 했는데도 투덕거림이 상상된다.
하나가 몸을 붙이고 승준이 이리저리 도망치겠지.
“승준아. 승준아.”
「응. 시혁이 형아.」
“미술관에서 도슨트 할 거라는 연락이 왔는데 알고 있어?”
「몰라!」
승준 어머니가 화장실에 있기에 나는 간략하게 알려줬다.
“엄마랑 이야기해서 어떻게 할 건지 알려줄래?”
「응! 근데 시하는 도슨트 해?」
대답은 시하가 했다.
“시하 도순투 해! 시하 설명해!”
「그럼 나도 할래! 오하나! 너도 할 거야?」
「하나도 할래!」
「하나도 할 거래!」
전화기 너머로 다 들려서 알고 있었지만 승준은 친절하게 한 번 더 말해 줬다.
소리 크기로 봤을 때 같이 대고 있는 거 같은데…….
“아라써. 구러면 미술간에 있눈 문에서 보자.”
「그래. 그러고 나서 카페에 가서 과자랑 초코 주스 사 먹자.」
“시하도 초코 조아.”
「하나는 딸기 주스!」
“시하도 딸기 주스 조아.”
너희 뭐 하니?
일단 엄마한테 말은 하고 가기로 정해야지. 알아서 결정하고 약속부터 잡아?
그리고 문 앞에 만나서 카페부터 직행하다니. 돈은 누가 내고? 내가 내면 되는 거야?
심지어 비싼 과자까지 사려고 한다.
그게 참 웃기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자기 돼지저금통에서 만 원 가지고 모이자. 그거면 실컷 먹을 수 있어.」
“마자!”
돼지저금통에 모아둔 만 원을 쓰나 보다.
근데 너희들 잊었나 본데 놀러 가는 게 아니라 도슨트 하러 가는 거야.
뭐, 그거 한 번 하고 끝나는 거라서 대부분 노는 거겠지만.
「진짜 재밌겠다!」
「하나도 기대대!」
“시하도. 구럼 내일 어린이집에서 가치 작전 세우자.”
「알았어! 내일 봐!」
「시하야 안녕~! 시혀기 오빠도 안녕!」
“바이바이.”
“응. 그래. 엄마한테 꼭 말하고.”
작전이라는 건 대체 뭘까?
너희 이미 서로 이야기해서 약속 다 잡지 않았어? 계획하고 다 짠 거 같은데? 이 이상의 작전이 필요하긴 한 거야?
애들끼리 전화 통화하는 게 왜 이렇게 귀엽고 웃긴지 모르겠다.
근데 진짜 승준이 엄마에게 잘 말했겠지?
혹시 모르니까 문자를 보내놓자.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형아. 군데 언제 해?”
“어? 보자. 전시 기간에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되어 있네. 다만 올 때 미리 말은 해달라고 하네.”
“전시 언제야?”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전시래. 이번 주 도슨트 연습하면 되겠다. 연습하는 것도 체험할 거니까 이번 주말에 오라고 하는데?”
“정말?”
“응. 진짜 도슨트 연습까지 해주려고 하네. 대박이다.”
이거 나중에 전시 기획하는 큐레이터도 경험할 수 있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그런 프로그램도 진행한 게 있었다.
여긴 참 재밌게 하네?
“형아. 시하 그린 거.”
“어? 시하 그린 거?”
“시하 그린 거 서이 번째 이쑤면 조케따!”
“어, 그래.”
원래 마지막에 있는 게 좋은 거 아닌가?
아니면 한가운데 홀로 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