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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화 (341/500)

341화

매니큐어 제품 자체는 어린이용으로 나오기 때문에 아이들 피부에는 문제가 없다.

혼자 바르기도 쉽다.

하지만 뭔가 그림을 그리려는 건 어른들도 쉽지 않다.

특히 아이들은 손톱이 작아서 섬세한 손놀림을 보여야 했다.

“혹시 하다가 힘들면 여기 네일 스티커도 있으니 붙이세요.”

종류도 다양했다.

공룡, 동물, 과일, 슈퍼 히어로, 공주 등등.

혹시나 애들의 관심이 식지 않게 재밌게 준비했다.

다행히 이야기 덕분에 흥미가 생긴 남자아이들도 신나게 구경한다.

승준이 말한다.

“시하야. 나랑 매니큐어 바르자. 나 손톱에 불꽃 그려줘.”

승준은 영리하게 시하를 차지하면 원하는 능력을 손톱에 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분명 시하는 그림 잘 그리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승준과 같은 생각을 하나도 했는지.

“시하야. 오빠 말고 하나랑 같이해.”

“야. 오하나. 너는 연주랑 하면 되잖아.”

“하지만 시하가 더 잘 그리는걸. 연주랑 시하랑 셋이 같이하면 되지.”

“나는 왜 빼는데!”

“오빠는 또 이상한 거 그릴 거잖아.”

“아니야. 똥 그릴 거거든.”

“거 봐 이상한 거 그려줄 거잖아! 싫어!”

연주도 동의하는지 뒤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예쁜 거로 손톱을 칠하고 싶지 이상한 똥 방귀는 사양하고 싶었다.

시하는 둘 사이를 번갈아 보다가 고민에 빠졌다.

“승준아. 시하 손 해줘.”

“아하하! 거 봐! 시하는 날 선택했어.”

“힝.”

“아냐. 시하가 하나한테도 해주께.”

하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시하는 두 사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군데 시하가 마니 모태. 한 개만 해주께.”

“앗! 나 능력 아홉 개 하려고 했는데 하나 때문에.”

이미 새끼는 봉선화 물이 들었으므로 능력은 9개를 그릴 수 있었다.

시하도 그런 능력을 전부 생각해서 그릴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매니큐어 붓으로 얼마나 적응할지 문제였다.

어찌 되었든 처음 사용하는 거니까.

“저기 시하야. 나도.”

연주도 슬쩍 끼어들었다.

시하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뭔가 예쁜 그림을 그려줬으면 좋겠다.

“아라써. 시하가 다 해주께!”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자신 있게 손님을 받아버리는 이시하.

배포만큼은 큰 남자다.

선생님이 말했다.

“자. 그럼 다들 해볼까요?”

결국은 시하팸과 종수팸이 옹기종기 모여 앉게 되었다.

일단 연주와 하나는 마음에 드는 색으로 서로의 손톱에 칠해주기 시작했다.

시하가 해줄 그림 딱 하나만 남기고 말이다.

“연주야. 두 개 남겨야겠다. 맞지?”

“왜?”

“하나는 네일 스티커 붙이고 싶어서.”

“아, 맞다. 그것도 있었지. 근데 그거는 여기 봉선화 물들인 왼쪽 손에 하자.”

“아, 그러면 되겠다.”

둘이 그러고 있는 동안 시하는 심각한 얼굴로 승준의 손톱을 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뭔가 감정하는 사람처럼 찬찬히 본다.

“어때? 불 만들 수 있겠어?”

“안 보여.”

“헉. 큰일 났다.”

“아? 시하가 눈 감고 이써서 안 보여써.”

“실눈 뜬 게 아니었어?!”

“크게 안 대. 작게 해야 해.”

시하가 먼저 주황색 매니큐어를 잡았다.

“어? 왜 주황색이야?”

“안에 주황색하고 바께 레드 해.”

“아하!”

주황색으로 손톱 끝에 원을 그린다.

그다음 빨간색으로 화르륵 불꽃 형태를 그려준다.

처음 써보는 거라 살며시 삐끗했지만, 공간을 잘 활용해 색칠하며 실수를 덮었다.

검은색을 써서 주황색 원에 점을 두 개 찍어서 눈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불이 귀여워졌다.

“어?! 불에 눈이 있어?!”

“기여어. 파이파이야.”

“어? 파이파이가 뭐야? 이름이야?”

“이름이야. 파이어~”

“아…. 그래서 파이파이.”

승준은 뭔가 눈은 안 그렸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지만 자꾸 보니까 귀여워서 마음에 들었다.

“파이파이 나와라. 하면 파이파이 나와.”

“어? 불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캐릭터가 나온다고?”

“나와. 나와.”

의외로 뭔가 만화처럼 몬스터를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설정이 더해져서 좀 더 좋아졌다.

멋있는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오빠. 하나도 보여줘.”

“어? 그래. 귀엽지?”

“우와! 귀여워!”

연주도 하나의 손톱에 바르는 걸 그만두고 시하의 캐릭터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는지 눈을 반짝인다.

“시하야. 하나도 예쁜 거 그려져야 해.”

“나도 그려줘야 해.”

“시하가 그려주께. 돈은 카드로 내야 해~”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네일아트 공짜가 아니었니?!

의외로 생활력이 강하구나. 이시하. 설마 돈을 받다니.

“하하하. 시하야. 나는 베스트 프랜드니까 공짜지?”

“아냐.”

“어? 아니구나.”

“싸게 해주께. 베수투 푸랜두니까.”

“아싸! 역시!”

아주 승준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하나랑 연주가 서로 해주고 있을 동안 시하도 승준에게 손톱 그림을 받기로 했다.

“뭐 그려줄까? 말만 해!”

“물 그려져. 물.”

“아, 물?”

선생님의 이야기처럼 시하는 물의 능력이 마음에 들었다.

불을 끌 수 있는 물의 능력!

“알았어. 열심히 해볼게.”

파란색으로 물방울 모양을 만든다.

선생님이 스케치북 그린 것이랑 똑같이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 미안.”

“왜?”

“으음. 너무 못 그렸는데.”

“갠차나. 갠차나. 승준이가 물이라고 그려져써. 물 마자.”

“시하야…….”

승준이 시하의 말에 감동했다.

푸른색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고 손톱에 넓게 칠해져서 물방울이라고 하기 그랬지만 시하는 만족했다.

그런대로 물방울이라고 우길 만하기도 했다.

“아! 시하가 이거 더 괜찮게 그릴 수 있지 않아?”

“아냐. 시하 왼손 못 써.”

“아. 이거 오른손에 그렸지.”

“갠차나. 갠차나.”

그때 선생님이 다가왔다.

“선생님이 지워줄까? 다시 해볼래?”

“!!!”

“수성이라서 마르면 스티커처럼 떼져.”

선생님이 시하의 손을 후후 불어서 매니큐어를 떼어냈다.

샤이너로 슥삭슥삭 손톱도 다시 관리해 주었다.

“짜잔! 다시 해봐. 다시 할 수 있다고 해서 또 실패하면 안 된다?”

“네! 시하야. 이번에 진짜 작게 한다?”

“아아.”

이미 아이들 손톱이 작아서 무언가 그리기는 꽤 힘들었다.

하지만 승준은 부들부들 손을 떨면서 열심히 하려고 했다.

선생님이 조언을 해주었다.

“원을 만들고 그 위에 삼각형을 칠하면 되지 않을까?”

“오! 쉽다!”

그림처럼 바로 선으로 물방울 모양을 하려고 하니까 어려운 것이다.

원과 삼각형을 합치면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시하도 만족했다.

“승준아. 고마어!”

“응! 이번에 잘돼서 다행이다.”

선생님은 시하가 참 예뻤다.

별일 아닌데도 맨날 ‘고마어~’ 하는 말이 입에 붙었으니까.

“시하야. 하나도 해줘! 하나도!”

“아라써. 시하가 해주께. 머 그려주까?”

“우웅. 하나도 기여운 몬스터.”

“규리규리 해주께!”

“!!!”

시하가 주황색을 가지고 둥글게 그렸다.

그 위에 검은색으로 눈을 그리고 위에는 초록색으로 꽁다리를 콕 찍었다.

“규리규리.”

“어?! 귤이다!”

귤은 규리규리라는 이름을 붙였니?

“아직 다 안 해써. 빨대 이써야 해.”

“응?”

“빨대.”

시하가 흰색을 사용해 얇은 빨대를 귤에 콕 꼽았다.

“이제 규리규리 나오면 빨대로 마시면 대. 마시써.”

“우와!”

“자꾸자꾸 나와.”

“매일매일 귤 주스 마실 수 있네?”

“마자.”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감탄했다. 아니, 저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야? 엄청난데? 생각지도 못한 활용법이다.

근데 생각해 보니 규리규리는 좀 불쌍하네.

소환되면 맨날 빨리는 거 아니야?

뱀파이어 생각도 나네.

“시하야. 나도.”

“연주는 얼음 써. 얼음.”

“응? 얼음 그릴 거야?”

“아냐. 눈사람.”

시하는 눈사람 얼굴만 그리고 위에는 산타 모자를 씌웠다.

귀여운 눈사람 정령이 탄생했다.

“눈사람 이름 있어? 혹시 누니누니?”

“아냐.”

“어? 아니야?”

“빙빙이. 빙수의 빙빙이야.”

아, 얼음은 역시 빙수지.

그래도 이름이 귀엽네. ‘팥팥이’가 아닌 게 어디야.

“빙빙이도 귀엽네. 고마워.”

“시하도 고마어~”

“???”

시하는 고마워의 대답에는 항상 고맙다고 한다.

시혁 씨가 저리 가르쳐줬나?

그런 의문을 가질 때쯤에 종수가 찾아왔다.

이미 손은 실패의 흔적이 가득했다.

“야. 이시하. 나도 해줘.”

소문을 듣고 손님들이 찾아오는 법이다.

시하의 네일아트 숍은 성황이 되었다.

하지만.

“시하 이제 힘드러서 안 해. 문 다다써.”

“너. 너. 내가 말하니까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

“맞잖아! 그렇잖아!”

“아냐.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 시간이 다 대써.”

“아직 너희 형아 오려면 한참 멀었잖아.”

시하가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착순이야. 선착순! 서이만 해져.”

오늘 선생님께 배운 걸 써먹는 이시하였다.

그 와중에 ‘서이’는 꼭 챙겨서 종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또 서이냐!”

***

어린이 미술관.

회의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예쓰쌤과 다수의 직원이 앉아 있었다.

오늘은 보디 페인팅에 전시할 순서에 대해 회의를 한다.

“전에 크리스마스 때처럼 초등과 유아로 나뉘어서 할까요? 유아 먼저 보여주고 초등학생들 작품 보여주고.”

그 의견에 예쓰쌤이 반대를 표했다.

“그건 좀 그렇지 않아요? 잘한 것과 못한 것에 유아, 초등이 어딨어요.”

“확실히 잘 그리는 거는 초등부이기는 합니다만.”

“잘 그리는 거로는 솔직히 해온 나이가 있으니까요. 없다고 해도 유아보다는 성장했으니 충분히 손에 감각이 더 세밀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저도 알아요.”

예쓰쌤은 쿨하게 그 부분은 인정했다.

아직 둘 다 재능이 피어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꽃 피울지는 아주 나중에 가서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발상 면에서는 유아도 초등부에 지지 않아요. 안 그래요?”

또 다른 보디 페인팅을 맡았던 스마일쌤이 말했다.

“그거에 대해 동의합니다. 전시는 어떻게 꾸밀 생각인가요? 그것부터 정하죠.”

“좋아요. 저도 찬성이에요.”

“제 생각에는 건물 구조를 봤을 때 입구에는 퀄리티가 낮은 순으로 배열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렇게 따지면 초등과 유아로 나누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그것도 그렇게 되네요. 그럼 발상력이 제일 좋은 건 뒤로 빼도록 하죠.”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중 부위별로 전시를 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었다.

인간을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머리, 그다음 몸통, 팔, 다리 순으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 중에서도 발상이 뛰어난 것을 각 파트로 나눠서 뒤에 놓자고 했다.

관장이 정리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거로 하고. 그럼 결국 마지막 출구 쪽에서 보이는 게 다리라는 말인데. 괜찮은 작품 있습니까.”

“네! 있어요!”

“저도요!”

예쓰쌤과 스마일쌤이 서로 눈이 마주쳤다.

사실 자신들의 제자도 아니고 밀어줄 이유는 없지만, 그녀들은 여기서 일하며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기왕이면 자기 프로그램에 보았던 아이가 마지막을 장식했으면 하는 거다.

관장이 씨익 웃는다.

“두 사람 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나 보네요. 그럼 다들 한번 구경해서 투표로 정합시다. 서로 싸우지들 마시고.”

“저희가 언제 싸웠다고 그래요.”

“맞아요. 괜히 싸움 붙이지 마세요.”

관장이 ‘허허허’ 웃으며 모른 척했다.

은근 짓궂은 면이 있으신 분이다.

다들 일어나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먼저 머리 대표부터.

몸통과 팔을 지나서 다리까지 오게 되었다.

“오. 이거 참. 어렵네요.”

관장이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보디 페인팅이라고 불릴 만한 작품들이었다.

숯처럼 타버린 다리.

개성이 있으면서 확실히 예술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큰 펭귄이 잘린 다리.

여백이 충분히 상상되게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발상이다.

“자, 다들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시겠죠. 다들 부담가지지 마시고 편하게 합시다. 편하게.”

관장이 이렇게 말했지만 다들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한다.

마지막에 보이는 작품이라는 건 그만큼 중요했다.

어찌 보면 한 전시관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것.

하나의 결을 나타낼 수도 있는 것.

그렇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비록 아이들의 작품이라고 할지언정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는 것이기에 모두가 대충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리 미술관 전시를 경험시키는 것도 있으니까.

“자. 개표해 볼까요?”

관장이 투표 결과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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