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시하페페의 채널에 영상이 올라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시작부터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무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펭귄 형제.
[안녕하세요. 시하페페입니다.]
[오늘 그림의 제목은 ‘다리’입니다.]
[재밌게 감상해 주세요.]
성질이 급한 사람은 완성된 그림을 보며 묻는다.
-오늘은 그림 그리는 과정 안 나옴?
하지만 그 말을 무색하게 그림이 점점 지워진다.
아니, 지워지는 게 아니라 그림 그려지기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른바 찍은 영상이 역순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되감긴다.
별무리는 지워지고 까만 밤하늘은 흰 바탕이 되어 버린다.
일정 부분만 남은 체.
페페의 몸뚱어리도 점점 사라져 흰 바탕만 보인다.
그 순간 시청자들은 깨달았다.
-와! 아니! 다른 그림이었네?
-아니 ㅋㅋㅋ 다리네???
-마네킹 다리잖아?!
-뭔데. 이게 뭔데??
-와씨. 사진이었네. 저 다리 모양.
그리고 장면이 바뀐다.
뒤부터는 페페 인형탈의 뒷모습만 나와서 다리를 칠한다.
[보디 페인팅]
자막이 나오고 점점 완성되어 가는 중 페페의 그림이 보인다.
빨리 감기를 하듯이 빠르게 채워지며 완성이 된다.
카메라는 오롯이 작품만 담고 있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으로 박제된다.
그다음부터는 아까 역순으로 보여주었던 그림의 과정을 다시 정상적인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형과 동생인 페페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완성된 그림이 나오고 영상은 끝이 났다.
댓글 역시 감탄하기 바빴다.
-외쳐! 시하페페!!
-와 진짜 역순으로 진행되기 전까지 다리가 있었는지 눈치 못 챘음.
-아무래도 사진이니까.
-아니 근데 프로그램으로 쓴 거랑 색감이 다를 건데 왜 눈치 못 챔?
-너도 눈치 못 챘잖아.
-요즘 프로그램 잘 나와서 비슷하게 할 수 있음. 저기 색 찍어서 칠하면 됨. 영상에서도 나오잖음?
-와 근데 시하페페 작가 보디 페인팅도 할 줄 앎?
-ㅋㅋㅋㅋ아니 보디페인팅인데 페페 그리는 거 왜 이리 웃기냐ㅋㅋㅋㅋ
보디 페인팅인데도 페페를 그리는 시하 작가의 고집에 다들 웃음을 보였다.
실사화 같은 펭귄을 그릴 수 있음에도 캐릭터를 그려놓았다.
-제목이 ‘다리’라고 하길래 뭔가 했네. 다리는 없고 페페만 있어서 당황ㅋㅋㅋ
-나도ㅋㅋㅋ
그때 늘 그렇듯이 해석가가 등장했다.
장문의 글을 안고서.
[진짜 영상 하나 기가 막히게 뽑게 되는 시하페페 작가.
이제는 그림을 넘어서 영상미가 뭔지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제목의 ‘다리’는 참으로 중의적 표현이다.
형제인 펭귄 둘이 이어져 있는 인연.
하늘 위에 있는 은하수.
실제로 마네킹의 다리.
작가의 유머와 따뜻한 의도가 아우러진 작품이다.
특히 은하수에 있는 분홍색과 푸른색은 편견일 수 있으나 남녀를 나타내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 형제만 있는 것을 보아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늘의 은하수를 건너는 부모님의 영혼을 배웅하는 걸지도.
언제나 시하페페의 그림은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을 품게 한다.]
-해석가 선생님 ㅎㄷㄷ
-믿고 따릅니다!!!
-외쳐! 시하페페!!
여전히 영상에서는 해석가에게 보내는 답글 개수가 제일 많았다.
***
어린이집에서 시하는 승준과 하나랑 미술관에 있던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초능력 놀이가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는가.
이미 시하는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시하랑 형아가 이케이케 해써.”
“오오오!”
“진짜?”
“시하가 진짜 형아를 차자써. 형아가 진짜여써.”
문양이 지워져 능력을 잃어버렸던 것까지 쌍둥이들이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거기에 함께하지 못한 연주는 그저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어쩐지 소외감도 느끼고 있었다.
하나가 연주의 손을 잡았다.
“우리 몸에 그림 그려써. 하나는 지팡이 쓰는 마법사고 시하는 거미줄 그려져 있어서 꼼짝 못 하게 해. 오빠는 전기 써.”
“아, 응.”
“다음에 연주도 같이 그림 그리자. 하나가 연주한테 그려줄게.”
“고마워.”
선생님이 가만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더니 다가왔다.
마침 오늘 할 놀이가 정해졌다.
언제나 모든 놀이가 준비되어 있지만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오늘은 그 타이밍이다.
“여러분! 몸에 그림을 그렸다구요?!”
다 들었으면서 마치 처음 들었다는 듯이 과장된 몸짓을 한다.
이건 종수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런 그림 덕분에 초능력이 생겼다구요?!”
그때 종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그럴 리가 있냐는 듯이 말이다. 어찌 보면 동심이 부족할 수 있지만, 은근히 지식이 2프로 모자라기에 그 부분만 잘 노리면 설득이 쉽다.
“에이. 쌤. 초능력이 어딨어요.”
그 말에 승준이 반발했다.
“아니야. 있거든! 초능력으로 적을 물리치거든.”
“그건 만화에서만 나오는 거잖아. 실제로 없어.”
“네가 없는 거 봤어?”
“없는 걸 어떻게 봐? 바보야?”
“바보는 너잖아.”
“아니거든. 너보다 똑똑하거든.”
짝. 짝.
선생님이 손뼉을 치며 초능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A4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세웠다.
그리고 손으로 양쪽 뺨을 슥슥 훑은 다음 콧기름까지 더해서 허공에 손짓을 딱 휘두른다.
툭.
A4용지가 그대로 쓰러진다.
“짜잔. 바람을 만드는 초능력이랍니다.”
“에에에이~”
하지만 요즘 애들은 이런 것에 속지 않는다.
그래도 자기들도 해보겠다고 A4용지를 세워서 바람을 만든다.
어찌 되었든 흥미를 돌리는 데는 성공했다.
“실제로 초능력같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 많아요.”
“에이.”
“진짜라니까요. 자, 예를 들면 화장!”
“???”
선생님이 못생긴 사람이 순식간에 예뻐지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앞의 사람과 화장한 뒤의 사람이 어떻게 같으냐는 말이다.
“사기야!”
“뭐 선생님도 이건 과장인 거 같다고 생각하지만.”
편집에 손을 댔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찌 되었든 성형이라고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는 것은 맞긴 했다.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이 손이나 팔을 그리고 손톱을 예쁘게 꾸밀 수 있는 걸 준비했어요.”
선생님이 준비물을 꺼냈다.
봉선화 꽃, 껌, 타투 스티커, 매니큐어.
어찌 보면 여자애들이 좋아할 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이런 걸 하면 꽤 재밌다.
특히 타투 스티커 같은 건 남자애들이 좋아할 게 분명했다.
“엄마, 아빠가 어릴 때 봉선화 물을 들였다고 해요. 우리 다 함께 체험해 볼까요?”
“네!”
“먼저 꽃잎과 잎사귀를 떼서 여기 넣어 찍어줍시다.”
선생님이 꽃잎을 떼려고 하자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서 손목을 탁 잡았다.
“샘. 안 대.”
“어? 으응?”
“꽃 나더야 해. 떼면 아야 해.”
“아하. 그렇구나. 하지만 괜찮아. 꽃은 이제 새롭게 태어날 거니까.”
“아?”
“시하 손가락이랑 합체해서 새로운 집으로 들어가는 거야.”
“정말?”
“응.”
선생님이 꽃잎과 잎사귀를 떼서 열심히 찍었다.
시하는 뭔가 이상했지만 그런가 싶어서 지켜보았다.
다들 새끼손가락에 하나씩 안착시켜서 비닐로 감쌌다.
이걸로 물들 때까지 안 떨어질 것이다.
다들 손에 있는 게 신기한지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자, 그러면 물들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해요. 그때까지 새로운 거 해볼까요?”
오늘은 옛날 느낌의 놀이에서 천천히 현대로 넘어갈 생각이다.
선생님은 껌을 꺼냈다.
그냥 껌이 아니라 스티커 껌이다.
“선생님은 어릴 때 이런 껌을 사서 놀았어요. 아마 엄마, 아빠 중에 사 드신 분이 있을 거예요.”
껌 봉지를 떼서 손목에 붙였다.
손으로 사사삭 열심히 긁었다.
“이렇게 골고루 긁어야 예쁘게 여기 그림이 붙는답니다?”
어느 정도 되자 스티커를 스윽 땠다.
예쁜 토끼가 팔에 붙어있다.
시하는 그걸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마술!”
분명 종이에 붙어있던 스티커 캐릭터가 선생님의 몸에 옮겨간 게 너무 신기했다.
아이들도 너도나도 해보고 싶어서 선생님께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냥 주면 재미가 없는 법.
“여러분 하고 싶어요?”
“네!”
“하지만 껌에 있는 스티커는 4개뿐이에요. 다 할 수는 없어요.”
물론 타투 스티커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괜찮다.
하지만 이건 갬성의 문제다.
껌 봉지에 있는 스티커를 떼서 손에 긁는 거.
얼마나 추억인가.
물론 아이들에게 추억이 아니라 새로 접하는 거지만.
승준이 말했다.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할까?”
의외로 은우에게서 다른 의견이 나왔다.
“푸하하. 눈치게임 하자. 가위바위보는 재미없다고. 푸하하.”
그렇게 다들 눈치게임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이 룰을 설명해준다. 순서대로 숫자를 말하며 앉는다. 둘이 동시에 이야기하면 탈락이다.
“그럼 시작할게요. 시이~작!”
시하가 제일 먼저 앉으며 말했다.
“서이!”
“야. 이시하. 일! 이라고 해야지.”
“종수야. 시하가 먼저 서이 해써. 서이 시하 꺼야.”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아까 선생님이 설명했잖아!”
“아?”
“일부터 시작해야 하잖아.”
“왜?”
“어?”
“서이부터 하면 안 대?”
“안 되거든. 너 탈락이야.”
종수가 굳이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아서 의기양양해졌다.
소리칠 필요가 없었다.
“연숩이야. 연숩. 이제 시하가 잘하께.”
“야. 누구 마음대로!”
“언래 처음에눈 연숩이라고 형아가 그래써.”
“으윽.”
이시하. 서이를 좋아하는 남자.
그리고 형아에게 배운 걸 써먹는 남자였다.
“다른 애들도 허락해야지.”
“난 상관없는데.”
“하나도.”
“그럼 나도.”
“어? 연주도 괜찮다니까 나도 괜찮은 거 같아. 종, 종수야.”
“아, 몰라! 빨리하자. 푸하하.”
“연습.”
종수가 아이들에게 배신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이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시하를 떨어뜨릴 기회인데! 애들이 왜 이래!
그리고 재휘 너마저…….
“좋아. 다시 시작하자. 간다.”
“시하는 서이 할 거야. 서이. 시하가 서이 한다 해써.”
“서이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그렇게 소리치던 종수가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이건 심리전이다.
저렇게 말하면 아무도 ‘서이’를 못 외치게 하려는 고도의 수작이다.
“이시하. 치사하다!”
“아?”
“아니지. 너 눈치게임 좀 하네?”
드디어 이시하가 눈치게임을 제대로 하려고 한다.
눈치게임은 서로 눈치를 채서 숫자를 쟁취하는 싸움.
여기서 이시하가 먼저 1도 아니고 3을 하겠다고 외친다.
이거야말로 고도의 수법이다.
“후우! 그럼 나도 삼! 외칠 거야. 시하 네가 피해. 알았어?!”
오히려 그 심리를 이용하는 것.
종수는 이렇게 시하를 헷갈리게 했다.
원래 눈치게임이라는 건 시작하기 전부터 싸움이다.
종수는 이번에 시하에게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시이~작!”
하나가 먼저 일! 하고 외친다.
그다음 은우가 이! 하고 앉았다.
종수의 생각으로 이제 시하는 갈팡질팡할 게 분명했다.
곧바로 3을 외치면 된다.
“삼!”
“서이!”
“!!!”
둘이 동시에 앉아버렸다.
시하는 고민조차 안 하고 ‘서이’를 외쳤다.
어이가 없어서 시하를 보았다.
“너, 너. 왜! 내가 한다고 했는데. 무슨 바로.”
“아? 시하가 서이 한다고 해짜나. 시하는 서이 해.”
“내가 한다고 했으니까 탈락할지도 모르잖아. 너 바보야!”
“시하는 서이 하고 시퍼.”
“?!?!”
시하는 이기든 지든 서이를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종수는 그 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왜 서이를 했나? 아니면 진짜 내가 안 할 줄 알고 해버린 건가?
그런 생각에 휩싸일 때쯤에 선생님이 말했다.
“종수랑 시하. 탈락!”
“시하 탈락해써. 승준. 하팅!”
종수가 뭔가를 깨달았다.
“너, 너! 이시하! 너, 일부러 나 탈락시키려고 서이 한 거지?!”
“아? 시하 서이 하고 시퍼서 서이 했눈데?”
“거짓말하지 마!”
종수는 생각했다.
아무튼, 저 말은 거짓말이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