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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화 (333/500)

333화

실제로 해적이라고 하면 나쁜 놈이다.

피터 팬만 봐도 후크 선장이 악역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만화나 영화가 나오면서 해적은 꼭 나쁘기만은 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지금 해적 놀이는 조금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 같다.

승준이 말했다.

“시하는 선장이야.”

“선장?”

“배에서 대장이라는 거지.”

“시하 아라. 후쿠 선장.”

“그건 손에 갈고리가 있잖아. 그런 능력은 별로야. 나는 번개를 발사하는 능력!”

“번개?!”

아무래도 능력자 해적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시하도 눈치챘는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능력을 선택할지 궁금하다.

“시하는 얼음이야. 얼음.”

“오!”

“바다를 얼려서 페페가 씽씽 다니게 할래.”

페페는 갑자기 어디서 생긴 거지?

그런데 능력을 고르는 것이 역시 시하답다.

넌 형아랑 페페밖에 모르지?

“정말 좋은 능력이야. 얼음 능력은 엄청 세!”

“하나는 검 두 개 들래. 검사야. 검사.”

“헐! 너는 맨날 검 두 개 들어.”

“하나가 제일 세.”

아이들이 나를 보았다.

나? 나도 능력을 말해야 한다고?

아니, 그냥 평범한 사람 하면 안 되니? 그래. 총이다. 총을 쏘는 평범한 사람 역을 하자.

그렇게 말하니 반대에 부딪혔다.

시하는 형아가 레드 형아라서 그런 거 안 된다고 한다. 그게 대체 무슨 논리야?!

승준은 평범한 사람은 하나가 했으니 나는 능력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래도 축구처럼 생각하는 포지션이라도 있나 보다.

하나는 내가 멋있는 거 골라야 한다고 한다.

아니. 총 멋있잖아. 어? 휘리릭 건카타를 하며 화려하게 총 쏘고. 어? 멋있잖아.

“으음. 그러면.”

으윽. 부끄러워. 승준 엄마가 이쪽을 보고 있어!

여기서 중2병처럼 큭큭큭 내 능력은 말이지 바로….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거잖아?!

이 나이 돼서 이런 놀이를 할 줄 누가 알았겠나.

“나, 나는. 방어막을 만들 수 있어.”

“방어막?”

“응. 이걸로 너희들을 지켜줄 거야.”

나름 이 정도면 너무 유치하지 않고 괜찮지 않아?

그리고 애들이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하는 거에 만족스러웠는지 허락도 떨어졌다.

“그럼 이제 배를 타야 해. 시하야. 빨리 여기 앉아.”

“시하 가께.”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여기가 배가 되는 건가. 앞에 티비도 있는데 최신식 배인가 보다.

“출발한다.”

“하나가 운전하께.”

“출발!”

아이들이 신났다.

나도 여기서 세뇌를 해야 하는 거지? 응. 여기는 배다. 배다.

근데 배에 이런 의자도 갖춰져 있는 거겠지?

“위로 솟아오른다!!”

대체 왜?!

“뒤로 솟아오른다!!”

바다에 엄청난 파도가 이는지 앞뒤로 엄청 솟아오른다.

생각만 해 보면 이건 배가 아니라 놀이기구 바이킹 아니야?

“하늘로! 바다로! 하늘로! 바다로!”

이 정도면 배가 아니라 비행기가 아닐까?

뭔가 계속 날고 있어?!

“형아. 적이 나타나써.”

“어디?”

“해적이야.”

“우리도 해적이지 않아?”

“우리는 착한 해적이고 저기는 나쁜 해적이야.”

“아, 그렇구나.”

“구래서 혼내져야 해.”

저 해적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우리에게 혼냄을 당해야 한다고?

내용 스킵이 엄청나구만.

언급은 안 했는데 혼내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지?

“형아. 폭탄 날아와!”

“걱정 마. 내, 내가 방어막 만들게!”

나는 팔을 뻗으며 방어막을 만드는 시늉을 했다.

뭐야. 이거. 너무 부끄러워!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시하가 얼음 보내주께! 얼음 방어막이야. 형아랑 가치야!”

이 와중에 형아랑 같이 각을 본다고?!

내가 생각했을 때 얼음 방어막이면 깨지기 쉬울 것 같은데 능력과 능력이 합쳐지니 단단해진 모양이다.

“시하야. 대단해! 더 단단해졌어.”

“시하가 다 생각해써.”

“폭탄을 막았다! 이제 내가 전기를 쏠게!”

승준이 리모컨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띡. 티비가 꺼진다.

“파지지직! 적의 배가 전기를 맞았어!”

연출 한번 엄청나네!

티비 끄는 것으로 그러한 연출을 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옆을 보니 승준 엄마가 익숙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이 전기 능력 이미 한 번 했었구만. 어쩐지 베테랑 같았어!

“하나가 공격할게! 에잇!”

하나가 어느새 가지고 온 검으로 열심히 허공을 그었다.

옆에서 승준이 중개를 한다.

“크으! 배가 갈라졌어!”

대체 하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거야.

평범한 사람이라며?! 검사라며?! 근데 기술만 보면 능력자 같은데?!

무협으로 치면 검기를 날리는 거라고.

아니지. 배가 갈라질 정도니까 검강을 날린 수준인데?

이 정도면 살아남은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한 명이 살아있어!”

승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고 있자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다.

저건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다. 적이 저기 있다.

“불을 내뿜으며 여기로 오고 있어. 헉! 불 쓰는 능력자야!”

“안 대! 불이야!”

“하나가 검 쓸게!”

하나가 열심히 검을 썼지만 적은 피한 모양이었다.

나와 시하가 만든 얼음 보호막 위에 쭈그려 앉은 적이 있다고 한다.

시하가 말한다.

“안 대. 불로 얼음 보호막이 업써져!”

나만 안 보이는 거야?

다들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는데?!

“콰광! 으악! 배 위에 올라왔어. 이렇게 말해. 너희들이 우리를 공격했냐!”

이거 하다 보니까 뭔가 흥미진진한데?

갑자기 적이 엄청 멋있어지는 것 같다. 역시 그냥 당하지는 않는 건가.

근데 공격받을 때 대체 뭐 하고 배가 부서지고 나서야 오는지 모르겠지만.

불 능력이라서 방어할 수단은 없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이 배를 태워 주겠다!”

승준아. 근데 너 언제 악역이 되었어?

“안 대. 시하가 막을 거야!”

“하나도 배 지켜.”

너희는 승준이 악역이 되었는데 아무렇지 않니? 이거 그냥 진행해 버리는 거야?

승준이 땅에 주먹을 꽂았다.

“간다. 불! 화르륵. 배가 타고 있다.”

“안 대! 시하가 막아! 얼음이야!”

시하도 땅에 두 손을 댔다.

아마도 얼어붙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승준이 히죽 웃는다.

“얼음으로 내 불을 막을 수 없어. 하하하!”

시하가 나를 본다. 아니, 시하뿐만 아니라 하나도 승준도.

나 왜? 나 뭐? 나 그거 해야 해?

눈치로 봤을 때 시하 대신 내가 막아야 하는 것 같은데.

으음. 아까 얼음 방어막은 깨지지 않았나?

근데 이거 해야 하는 거지?

“그냥 방어막으로는 깨지지 않지! 형아가 배를 지켜줄게. 너희들은 싸워.”

승준 엄마의 시선이 느껴진다.

제발 저 좀 보지 말아주세요. 흑흑.

“형아. 시하가 싸우께.”

“하나도!”

“나도 싸울 거야.”

승준아. 다시 우리 팀 전기 승준으로 돌아왔니?

“나는 시혁이 형아랑 같이 전기 방어막을 만들 거야. 그래서 둘이 싸워줘야 해.”

아무래도 얼음 방어막이 안 되니 전기 방어막으로 배를 보호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승준이 악역으로 돌아온다.

천잰데? 이러면 자기 역할은 나오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그건 그렇고 나는 방어막 능력 선택하길 잘했다.

별로 힘들지는 않네. 대신 정신이 좀 힘든 것 같다. 너무 부끄러워서.

“크흑. 너희들. 이렇게 배를 보호하다니. 거기 보호막 능력자를 쓰러뜨려야겠어.”

“안 대. 시하가 형아 지켜.”

“하나도 시혀기 오빠 지켜.”

2 대 1의 분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밸런스도 은근히 맞다. 불에 약한 얼음 능력자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하나가 커버해 준다.

아니. 어떻게 이런 밸런스가 맞춰진 거지? 신기하네.

“간다! 불주먹!”

“가라 페페!”

“하나가 페페 타고 갈게!”

여기서 페페가 나온다고?!

심지어 하나가 빙판을 달리는 페페의 등에 탄 모양이다.

쌍검으로 팔을 교차한다.

그리고 활짝 벌려서 긋는다. 주먹과 검이 맞부딪친다.

오빠랑 꽤 많이 해봤는지는 주먹과 검이 서로 밀어내기를 반복한다.

“으윽! 아아악!”

“으윽. 아아악!”

시하는 양손을 뻗어서 능력을 쓰고 있는지 따라서 아아악 하고 있다.

“형아도 아아악 해야지.”

“어. 아아악!”

부끄러워! 왜 기합을 입으로 소리 내야 하는 거야?! 그건 만화로도 충분하잖아.

다 같이 아아악 소리를 내며 힘을 준다.

만화에서 보면 그런 게 있다.

서로 소리를 지르는 데 마지막 힘을 확 하고 더 줄 때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

그걸 하나랑 시하가 한다.

“이야아아아아!”

“으악!”

승준이 그대로 쓰러진다.

하나랑 시하가 이겼다며 좋아한다.

근데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마지막에 승준이 일어서는 것을 보며.

“죽어라! 불꽃!”

“!!!”

“!!!”

나는 두 아이를 위해 보호막을 만들었다.

“위험해! 쾅! 으윽!”

“형아!”

“시혀기 오빠.”

승준은 마지막 힘을 짜냈는지 그대로 쓰러졌다.

진짜 끝난 건가?

“아직 내 부하가 남아있다. 너희들 각오해. 깨꼬닥.”

시하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쓰러진 나를 흔들었다.

“형아. 형아.”

어, 그래. 이대로면 남은 부하들도 상대해야겠지. 나도 이쯤에서 퇴장해 줘야겠다.

명대사를 남겨야지.

“시하야.”

“형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깨꼬닥.”

나는 죽은 척을 했다.

시하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친다.

“형아가 주거써! 안 대!”

아니! 적에게 알리지 말라니까!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다 알잖아?!

아쉽게도 잔당 소탕은 없이 해적 놀이는 이렇게 끝이 났다.

아니. 마무리는 해야지. 마무리는!

“재밌었다!”

“시하도 재미써!”

“하나도!”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대사.

“이제 모하고 노까?”

좀 봐주라. 정말.

***

이렇게 쌍둥이들과 놀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승준 엄마는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오늘 애들하고 너무 잘 놀아주셔서 맛있는 밥 먹이고 싶어서 그래요.”

“하하하.”

“하여간 애들은 시혁 씨만 오면 엄마는 놀이에 안 끼워준다니까요. 나도 연기 잘할 수 있는데.”

“하하…….”

아무래도 날 보는 시선은 감탄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시선은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니, 승준 엄마가 없어도 부끄러웠겠지만.

“시혁 씨 닭볶음탕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잘됐다. 제가 닭볶음탕 했거든요. 오늘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릴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아니요. 그냥 나중에 애들이랑 같이 수저만 놓아주세요.”

“네.”

그렇게 요리할 동안 기다리고 있자 오상환 교수님도 오시고 큰 상도 꺼내게 되었다.

수저도 놓고 반찬도 놓고 저녁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오상환 교수가 물었다.

“일은 잘되고 있나?”

“아, 네. 독점 판매권도 따냈고 무궁호에 들어갈 체결류도 지원 넣은 상태예요.”

“다행이네. 물론 그게 계약까지 이어져야 하겠지만 그것도 되겠지?”

“전 확실히 될 것 같은데요. BUMAX 사가 애초에 인공위성에 특수부품을 납품한 이력도 있어서. 어디 기술력으로는 꿀리지 않으니까요.”

“거기 들어갈 부품을 다 납품할 수 있는 업체였으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지.”

“듣기로는 그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비리로 의심받는다나.”

하나의 업체에게 모든 부품을 받는 건 어렵다.

한 세, 네 개면 몰라도.

그래서 체결류 하나만 꽉 잡고 계신 것이다.

뭘 만들든 볼트와 너트는 꼭 필요하니까.

심지어 독점 판매권.

이것이 얼마나 수익으로 돌아올지는 모른다.

그래도 신생업체의 숨통을 트일 정도인 것은 분명하다.

“좋네. 다행이다. 진짜 내가 한수 걱정을 꽤 했는데. 갑자기 그만두고 말이야.”

“하하.”

승준 엄마가 닭볶음탕을 들고 오며 말했다.

“이제 밥 먹을 건데 무슨 일 얘기예요. 딴 얘기해요. 딴 얘기.”

“하하하. 오! 맛있겠는데?”

시하도 맛있어 보이는지 눈을 빛냈다.

달걀말이도 있고 미역국도 있고 여러 반찬에 참 먹을 게 많았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닭다리를 하나 잡고 살을 발라서 시하의 입에 넣어주었다.

맛있는지 오물오물 잘 먹는다.

“마시써!”

너무 잘 먹어서 기분이 좋다.

“으음. 티비나 볼까?”

딱히 할 말이 없으신 오상환 교수님.

저에 대해서 별로 궁금하지 않으신가 보군요.

하긴 일 얘기 말고는 무슨 주제로 말해야 할지 모르긴 했다.

“아! 혹시 보디 페인팅을 어린이 미술관에서 하는데 관심 있으시면 승준이랑 하나도 신청해보세요.”

결국, 하는 이야기는 애들 이야기로 돌아갈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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