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0화 (330/500)

330화

뮤지컬은 대학교에 있는 소극장에서 진행한다.

정식으로 표를 팔아서 하는 건 아니고 학생들이 연습을 위해 대여해둔 것이다.

봉사 활동을 하러 와서 친해진 학생 중 한 명이 구경 오라고 하는 김에 아이들까지 같이 가는 것이다.

이른바 1차 리허설.

관객이 있는 것이 뮤지컬을 하는 학생들에게도 연습하기 딱 좋다.

아는 얼굴이 있으면 긴장이 별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 얼굴이라면?

아니면 대선배님이 앞에서 보고 있다면?

정말로 긴장되는 것이다.

“오늘 관객은 아이들이야. 4살 아이들.”

“근데 우리 뮤지컬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는 다 못하겠지만 적어도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데.”

“그건 그래.”

동아리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긴다.

“교수님 자녀분도 어린이집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그랬지. 연주라고 했던가?”

“응. 응. 연기에 재능있다고 하던데 궁금하네.”

“그냥 팔불출 아니야?”

“그럴지도?”

뮤지컬 동아리의 회장이 짝 하고 손뼉을 친다.

“자자. 이제 잡담 끝. 곧 올 테니까 준비하자.”

“다른 친구들도 오지?”

“응. 시간 되면 온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조금씩 채워졌다.

그래도 빈자리는 많았다.

그중에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더니 어린이집 아이들도 도착했다.

승준이 말했다.

“와. 시하야. 여기 우리 와봤잖아.”

“아아. 춤 쳐써.”

아이돌 춤을 연습했을 때와 공연했을 때도 여기 소극장을 썼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와서 선생님이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연극도 바써. 재미써.”

“오. 시하 연극도 봤어? 어땠어?”

“형아 머시써!”

“???”

시하는 연극 때 형아가 엄청난 스토리를 보여줘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을 목격했다.

물론 시하의 눈에는 연기도 굉장히 잘한 거로 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대체 시하의 말이 뭔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연주만이 동의하고 있었다.

“형아가 일어나서 파바박! 해써. 여자 역할도 파바박! 남자 역할도 파바박 해써. 그래서 머리 톡톡 두드려써. 여기 이써여. 책 여기 이써여. 해써.”

“???”

엄청난 압축적인 설명!

물론 아이들은 뭐가 뭔지 몰랐다.

하나 옆에 있던 연주가 ‘그랬지. 엄청났어.’ 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맞장구쳐 준다.

“자, 여러분 자리에 앉을까요?”

“나 여기!”

승준이 빠른 걸음으로 제일 앞자리를 툭툭 두드린다.

멀리서 말고 앞에서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가득했다.

“승준아. 가치 가.”

시하는 그저 친구 따라 옆에 앉고 싶을 뿐이다.

연주와 하나도 시하팀에 속해 있어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갔다.

“종수야. 우리는 어떡해?”

“음.”

재휘가 묻자 종수는 고민했다.

앞자리에 앉는 것은 뭔가 따라 하는 것 같아 싫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고 싶다.

“좋아! 우리는 세 칸 더 뒤에 앉자. 가운데로.”

“왜? 나는 연주 뒤에 앉고 싶은데.”

“크흑.”

여기서 재휘가 아주 흑심이 가득한 주장을 했다.

종수는 친한 친구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 애들 뒷자리로 가자. 머리가 아래에 보여서 좋네!”

“응!”

그렇게 앉고 싶은 자리를 차지하고 5분 정도 지날 때쯤에 천장에 있는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아. 아. 지금부터 뮤지컬 1차 리허설을 시작하겠습니다. 리허설이지만 실전처럼 할 생각이니 관객분들은 실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럼 뮤지컬 ‘빨래’를 시작하겠습니다.]

폰에 관한 주의사항 같은 건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언제나 다들 그 주의사항을 지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돌발상황.

오로지 리허설 때에 경험해 둬야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온 건 더 좋았다.

갑자기 울거나 소리치며 방해를 하거나 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말려서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면 정말 큰 문제다.

그렇기에 주의사항을 말해 주는 건 실전과 다른 것이다.

오히려 뮤지컬 동아리 회장은 돌발상황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달칵.

불이 꺼졌다가 켜진다.

“차 수리 좀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남자가 스패너를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옷은 기름때가 묻었는지 여기저기 검게 묻어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옆에 꽃집 아가씨가 등장한다.

화사한 웃음을 머금으며 꽃향기를 맡는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향기가 좋아요. 그 향기에 취한 것만 같아요.”

“향기가 좋아요. 내 맘이 그대에게 향했죠.”

그가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멈춰 있다.

“언제나. 나와 다르게 좋은 냄새가 나요.”

“검은 기름 냄새와 다른 그녀가 있죠.”

“긴 생머리. 환한 미소. 모두 예쁜 그 사람.”

“허락해 줘요. 내가 말을 걸어도 될까요?”

그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감정을 끌어올린다.

“허락해 줘요. 데이트 신청해도 될까요.”

“허락해 줘요. 그대와 나는 어울린다고.”

“허락한다면. 나도 그녀와 같은 향을 낼 수 있을 텐데.”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살며시 그의 옷자락을 잡는다.

노래가 아닌 대사를 말한다.

“주혁 씨.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요?”

다른 뚱뚱한 조연들 셋이 나와서 소리친다.

“여기 맛집입니다! 킹준현도 왔어요!”

그 대사에 관객석에서 빵 터진다.

아이들도 맛집 예능에 나오는 킹준현을 아는지 웃음꽃을 피웠다.

시하만이 뭐가 뭔지 모르지만 함께 웃는다.

조연들이 말한다.

“한 입만~! 한 입만~! 크게 먹읍시다!”

그와 그녀가 가게에 들어가는 모습이 나오고 곧바로 나온다.

시간이 스킵된 것이다.

“저기 카페의 디저트가 맛있대요.”

“정말요?”

“제가 다 알아봤다구요.”

그녀가 그를 끌고 가다가 아까 시간이 멈췄던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그 모습 그대로.

남자는 여자의 손을 놓으며 한 발자국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노래한다.

“보이네요. 이런 평범한 데이트가.”

그렇다.

대사 나온 부분은 그저 그의 상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연출이었다.

“후회돼요. 그날 말 걸었으면.”

“두근거려. 심장 터질 것만 같아서.”

“말하지 못한 내 목소리. 들었으면.”

그때 남자 배우에게 위기가 왔다.

“시하는 다 드러써! 갠차나! 갠차나!”

남자 배우는 두 눈을 감으며 입술 씹었다.

미간을 좁히며 심각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순수한 외침에 웃어버릴 것만 같아서.

***

가끔 아이들의 말에 이런 얘기를 한다.

애가 뭘 알고 저런 말을 하나. 사실을 하나도 모를 텐데?

이렇게 말하며 헛웃음을 짓는다.

여기 있는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순수하게 걱정하는 모습이 괜히 웃긴 것이다.

근데 이 아이가 뮤지컬에 대해서 뭘 알고 저리 말하나? 저리 위로를 건네나? 아, 좀 웃기는데.

“맞아. 갠차나! 힘내라!”

“하나도 응언하께!”

시하의 말에 쌍둥이들도 위로를 건넨다.

뮤지컬이 연기인 건 알고 있지만 어느새 푹 빠지며 재밌게 본다.

아침 드라마에 악역을 욕하는 어머니들같이.

하지만 배우들은 그 상냥한 위로가 너무나 웃기다.

정말 별거 아닌데 말이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쉿. 쉿.”

선생님이 그나마 아이들을 말린다.

다행히 배우는 웃음을 참는 기간이 길지 않다.

제1막이 끝나가기에.

“샘. 이제 끝나써여?”

“응? 아니. 이제 2막이 시작해. 봐.”

불이 켜진다.

이번에는 꽃집 여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마냥 예쁘고 아름다운 꽃향기만 나올 것 같은 그녀지만 그녀의 미소 뒤에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또 돈을 보내 달라고? 엄마. 내가 돈이 어딨어. 나도 힘들어. 힘들다고. 나는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안 돼? 그냥 엄마가 자취방에 와서 이것저것 반찬 챙겨주고 가고 그런 거는 없어? 난 자식도 아니야?”

심각한 상황에 관객 모두가 침묵한다.

이 대사로 사람들이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상상한다.

“시하가 용돈 주까여. 대지저굼통에 이써여.”

작은 목소리지만 배우의 귓가에 꽂힌다.

크흡. 슬픈 생각. 슬픈 생각. 화난 상황 생각. 동생과 아빠만 챙기는 엄마 생각.

“됐어. 끊어!”

그녀가 폰을 끄고 전화를 주머니에 넣는다.

“하아.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해? 왜 엄마는 아빠를 못 버려서 이러냐고. 그걸 왜 나한테 떠넘기냐고!”

밖에서 빨래를 널던 할머니가 다가온다.

빨래 몽둥이를 든 채로.

“많이 힘들겠어. 근데 말이야.”

다시 노래가 시작된다.

“힘들다고 해서 피하면 계속 때는 쌓여.”

“이 몽둥이로 후드려 패야 빠지지.”

같이 빨래하던 조연 셋이 일어나서 주먹으로 자기 관자놀이를 치는 연기를 하며.

“헬렐레. 헬렐레.”

그 뒤로 빨래에 비유하며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아이들이 위로한 것처럼 아주머니들이 위로하는 것이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며 남자 주인공도 위로를 받고 용기를 내 그녀에게 고백한다.

“나 비록 때 많은 남자지만. 용기없고 자신 없는 남자지만.”

“그래도 행운이야. 당신을 만나서. 용기가 생겼어.”

“우리 함께 부딪쳐서. 서로가 상쾌해 볼까요.”

서로 행복하게 사는 노래가 나오고 마을 사람들도 함께 부르며 뮤지컬이 끝난다.

아이들에 의해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잘 극복했다.

제1차 리허설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아이들도 재밌었는지 열심히 박수를 보냈다.

오늘 빨래한 것도 생각이 나고, 공감도 갔으며, 사실 좀 모르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신나게 노래하며 웃긴 포인트들이 있어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아?”

시하는 자신의 손을 꼼지락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

어린이집에 백동환이 시하를 데리러 왔다.

“시하야. 나 왔어.”

“백동 형아. 와써?”

“응. 잘 놀았어?”

“시하 잘 노라써. 백동 형아. 집에 물고기 밥 잘 져써?”

“응. 당연하지. 시하가 꼭 챙기라고 했잖아. 오늘 아침에도 주고 왔는걸.”

“다행이다.”

시하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즐기는 중에도 물고기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집에 갈까?”

“형아는 언제 와?”

“아마 지금 비행기에 있지 않을까?”

“정말?”

“응. 정말이지.”

시하는 백동환의 큰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작은 시하와 큰 백동환.

그 몸 차이가 더더욱 시하가 작은 아이로 보이게 한다.

“백동형아 빨래하면 힘드러? 몸이 커서 옷도 커.”

“어? 그냥 평범한데?”

“아냐. 백동 형아는 힘드러.”

“그걸 왜 네가 정하고 있어? 내가 안 힘들다던데.”

“커서!”

시하의 생각에는 백동환이 가지고 있는 이불과 옷가지들이 다 커서 빨래할 게 많아 보였다.

“시하가 오늘 빨래 배어써. 시하가 빨래 해주까?”

“오! 어떻게 세탁기 돌리는 법을 배웠어?”

“아냐. 물에 너어서 발로 참방참방해.”

“그런 고전적인 빨래를…….”

“구래서 물도 뿌려서 시언해~! 하고 이써.”

“그럼 나중에 시하가 집에서 내 등 좀 밟아줄래?”

백동환은 시하의 무게가 딱 마사지하기에 좋아 보였다.

시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동 형아. 몸은 손으로 씨써야 해. 백동형아. 이불 대써?!”

“아니. 빨래에서 생각을 넘어갈 줄래?”

“백동 형아는 무거어서 시하가 못 널어. 줄도 끊어져.”

무거워서 못 널어주는 것도 맞고 줄도 끊어진다는 것도 가능성이 있어서 뭐라 반박을 못 했다.

“아니지! 날 빨래해 달라는 게 아니라 마사지해 달라는 거야.”

“시하가 어깨 주물러 주까?”

“어?”

시하는 마사지라고는 어깨 주무르기밖에 모른다.

대신 의자 마사지 기계가 있다는 건 찜질방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래. 어깨라도 주물러 줘라.”

백동환은 그냥 시하의 말을 받아주는 게 대화의 방법이라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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