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어린이집 아이들은 아침을 맞이했다.
시하는 눈을 떴다.
“아?”
자신의 배 위에 왜 페페 얼굴이 떡하니 올려져 있는지 의문이었다.
분명 구석에 가서 페페 얼굴에 쏙 들어가 자고 있었는데 여기로 옮겨진 것이 이상했다.
“꿈?”
페페 머릿속에 잤던 건 꿈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으로 인형탈을 들었다.
쑤욱.
가볍게 들리며 몸을 일으켰다.
“시하야. 일어났어?”
눈을 비비며 승준이 인사를 건넸다.
시하도 ‘승준아 잘 자써?’ 하며 페페의 얼굴을 들이민다.
“우왁!”
갑자기 페페의 얼굴에 맞은 승준은 데굴데굴 굴러서 하나와 연주 위를 지나간다.
“으엑.”
“으악!”
졸지에 기상 알람이 되어버린 승준.
하나는 잠을 방해받아서인지 일어나자마자 화를 냈다.
“오빠. 뭐 하는 거야. 아침부터. 엄마한테 다 말해.”
“나는 일찍 일어나게 깨운 거라 안 혼나지롱. 그리고 여기 엄마 없거든.”
“아…….”
하나가 그제야 여기가 어린이집이라는 걸 깨닫는다.
평소에 오빠의 장난으로 가끔 깨버려서 그런지 집인 줄 알았다.
“오빠. 집이 아니니까 더 이러면 안 되지! 연주도 오빠한테 맞았잖아.”
“어? 연주야. 미안해.”
연주는 부스스 일어나서 승준을 보았다.
무감정한 눈빛으로 베개를 쥐고 그대로 던졌다.
퍽.
반사신경 좋은 승준은 그대로 팔을 들어 막았다.
연주가 슬며시 ‘칫’ 소리를 냈고 승준이 다시 팔을 내렸다.
그런 소란 때문인지 아이들이 슬며시 눈을 떴다.
“승준아.”
“응?”
시하가 그러면 안 된다는 듯이 절레절레 저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푸어푸해야지.”
선생님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시하를 보았다.
아무래도 뒹굴거리는 행동에 대한 말이 아니라 기상하면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말을 한다고?
이게 그 타이밍 맞아? 아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맞아. 세수해야지!”
승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가 씻으러 출발하자 쌍둥이들과 연주도 뒤를 따랐다.
자연스럽게 그 일은 끝나버렸다.
어쩌면 어푸어푸가 정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케 어푸어푸해야 해. 어푸어푸. 어푸어푸.”
“이렇게? 어푸어푸. 어푸어푸.”
아이들 넷이서 한 번씩 세수한다.
근데 어푸어푸 소리는 왜 내면서 씻는지 모르겠다.
상의가 살며시 축축 젖으며 시하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을 본다.
“샘. 시하 다 씨서써.”
“응. 시하야. 물 칠만 하면 어떡해.”
“아?”
상남자 이시하. 클렌징폼 같은 건 모르는 남자. 뭐, 그런 걸까?
파자마 파티는 아침에 씻는 것도 일이다.
***
아침 식사를 끝내고 오전 일과를 진행한다.
아무래도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오전에 챙기지 않아도 되니 생각보다 여유로운 일과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애들이 생각이 나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은 이 오전 일과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홀로서기를 체험하고 있는 아이들이랑 뭘 하면 좋을까 싶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정한 것이 물놀이.
정확히는 함께 이불빨래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이제 이불을 빨래할 때가 되었어요. 빨래하는 데 여러분의 힘이 필요해요!”
선생님이 창문 밖에 있는 커다란 대야 세 개를 보여주었다.
8명이 줄줄이 창밖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야에는 물이 있었고 세제를 넣었는지 작은 거품이 일었다.
“자. 우리 재밌는 빨래를 해봐요. 여기 베개 커버는 지퍼를 열어서 빨래 망에 넣어주세요.”
“네!”
아이들이 선생님 말을 잘 듣고서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불을 넣고 고무장화를 신는다. 그리고 발로 푹푹 밟아준다.
아이들도 선생님을 따라 고무장화를 신고 들어가 밟았다.
“샘. 이러면 이불 깨끄테져여?”
“응. 아마도?”
“아?”
평소라면 그냥 이불은 세탁기에 넣어서 돌린다.
이렇게 발로 빨래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애들의 이불이 8개나 되는데 원장님과 힘들게 밟을 필요는 없었다.
아이들의 이불이 그렇게 부피가 큰 편이 아니기도 했고.
“앗! 시하야. 거품이 많이 나온다! 깨끗해지고 있어!”
“깨끄테!”
푹. 푹. 푹.
아이들이 그래도 물이라서 그런지 신나게 밟았다.
선생님이 빙긋 웃었다.
다 노리고 있던 일이다. 아침부터 이런 노동을 하면 아이들의 체력을 많이 빼앗을 수 있다.
그리고 점심도 맛나게 먹는다. 잠도 잘 잔다. 아주 완벽한 계획이다.
“깨끄테져라! 깨끄테져라!”
아이들이 신나게 깨끗해지라고 노래를 부른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멜로디인지 모르겠지만 쫑알쫑알 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승준이 눈을 빛냈다.
나, 오승준. 정상적인 노래를 거부하는 남자.
개사에 목숨을 거는 남자.
“이불 빨래 빨리해요!”
“빨대 꼽고 빨래해요!”
빨대를 왜 꼽고 빨래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정말 신났다는 건 알 수 있다.
근데 아이들이 승준의 가사를 따라 부른다.
“이불 빨래. 빨리해요!”
“빨대 꼽고. 빨래해요!”
승준이 노동요를 만들었다.
열심히 발을 푹푹 밟는다.
“이불들도 때 밀어요.”
“때 나오면 더러워요!”
“우리 모두 때 나와요.”
“때 나오면 더러워요!”
뭔가… 뭔가가 탄생하고 있었다.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열심히 노래한다.
시하가 다음을 이어서 불렀다.
“형아 손이 때 밀어요.”
“형아 발도 때 밀어요.”
대체 형아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빨래에 관한 것보다는 목욕탕 느낌이 물씬 풍기게 되었다.
은우가 그다음의 바통을 받았다.
순식간에 프리스타일 랩으로 바뀐다.
“행니마도 빨래해서 헹구게 됐지.”
“생쥐들도 흰쥐 돼서 세탁을 했지.”
“우리들은 black! black! 빨래하면 white! white!”
“앞에 있는 block! block! 뛰어넘어 fight! fight!”
다음은 연주가 노래를 했다.
“빨래~ 빨래~ Let’s 빨래~!”
“빨래~ 빨래~ Let’s 빨래~!”
그러다가 아이들이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꽥꽥 불러댔다.
불협화음이 섞인다.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멜로디들이 섞여 소음을 만들어대지만, 그 속에 있는 음표들은 통통 튀어서 즐거움을 그린다.
누군가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가,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노래보다 재미난 소리가 된다.
귀로 듣는 게 아니다. 입을 노래하는 게 아니다.
그저 마음으로 들으며 마음으로 노래한다.
어쩌면 본질적인 면에 맞닿아 있는 건 아이들이 아닐까.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살며시 해본다.
“이제 헹굴게요!”
대망의 시간이 찾아왔다.
물을 버리고 새 물로 열심히 헹군다.
여기서도 밟아야 한다.
몇 번을 그렇게 하고 있자 거품이 보이지 않고 깨끗한 물만 남았다.
승준이 장난기가 생겼는지 옆 대야에 있는 종수에게 물을 튀긴다.
팟!
“악! 야!”
“아하하! 바보다. 바보.”
“너! 진짜!”
종수도 반격하는 척하면서 시하에게 물을 뿌린다.
장난기는 전염병처럼 옮는다.
촤악!
“아? 비 내린다! 우산 가져야 와야 해. 우산.”
“내가 뿌린 거거든! 비가 아니고 공격이야.”
“종수 비도 뿌려? 대다내!”
“아니! 너도 반격해야지.”
“시하는 비 몬 만드러.”
“그럼 계속 맞아라!”
촤악. 촤악.
종수가 계속 시하에게 물을 뿌렸다.
시하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며 그 물길을 즐겼다. 너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으윽.”
종수는 뭔가 의문이 들었다.
왜지? 뭔가 내가 시하를 도와주고 있는 느낌인데? 시하 좋아하게 해주고 있는 느낌인데?!
“종수야. 시하 뒤돌게. 비 만드러져.”
시하가 뒤를 돌아서 물을 맞았다.
종수는 그제야 이건 잘못됐다고 확신했다.
내가 대체 왜 시하의 말대로 하고 있는 거지?
마치 하인이 주인에게 봉사하듯이 열심히 명령에 따르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사실상 공격하는 거지만 시하는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랐기 때문에 이상한 상황이 나왔다.
“시언해~!”
“야 이시하! 너도 싸워야지.”
“시하 어제 베개 싸움해서 오늘 쉬는 날이야.”
“이익.”
종수는 오늘도 뭔가 당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왜 나만 손해 본 것 같지? 이럴 줄 알았으면 승준이에게 뿌릴 걸 그랬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 종수는 승준에게 뿌렸다.
촤악.
“오. 종수. 너는 나중에 상대할게.”
“뭐?!”
승준은 한참 동안 하나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촤악. 촤악.
“악! 오빠! 진짜!”
하나도 질 수 없었는지 반격을 시작했다.
촤악. 촤악.
서로 물을 뿌리고 있는 아름다운 광경.
재휘랑 연주도 하나와 승준처럼 서로에게 뿌렸지만 둘은 조금 달랐다.
“재휘야. 받아라!”
“으악~ 연주야. 너무 차가워~”
뭔가 꽁냥꽁냥한 커플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시하만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팔을 벌리며 종수를 찾았다.
“종수야. 다 해써?”
“야! 내가 몸 헹궈주는 사람이야!”
“구럼 시하가 뿌려주까?”
뒤를 돌던 시하가 물을 뿌렸다.
촤악.
종수의 얼굴에 곧바로 맞혔다. 푹 젖어서 머리카락이 이마에 착 붙는다.
“종수야. 어푸어푸해야 해.”
“이시하…. 너어…. 받아라!”
“아?”
촤악. 지금이라면 시하와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 물을 뿌린다.
하지만 이시하는 평화주의자.
팔을 벌리며 그대로 물을 맞는다.
“시언해!”
“야! 너도 뿌리라고!”
그런 물놀이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윤동은 묵묵히 자기 일만 한다.
이불을 헹구고만 있는 것이다.
푹. 푹.
“윤동아. 너도 여기 누워봐.”
은우는 아주 자유분방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목욕탕에 있는 것처럼 머리를 하늘에 젖힌 채 몸을 푸욱 담그고 있었다.
이미 파자마는 젖어있다.
“옷 다 젖어.”
“푸하하. 옷 다 젖는대!”
“???”
“어차피 입을 옷 있잖아. 파자마는 말리면 돼. 그러니 날 말리지 마. 푸하하! 말리지 말래. 푸하하! 그럼 젖어있어! 난 스웻. 난 스웩!”
“…….”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보냈다.
역시 이렇게 물놀이가 될 줄 알았다.
그래서 파자마도 갈아입히지 않았다.
오늘은 이불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옷도 이 푸른 하늘에 말려야 할 것 같았다.
***
펄럭펄럭.
이불이 빨랫줄에 널려서 바람을 맞고 있다.
베갯잇도 함께 널어놓아서 무사히 빨래가 끝났음을 알리고 있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그대로 뻗었다.
즐거운 오전을 보내서 잠이 솔솔 잘 오나 보다.
하지만 저런 낮잠도 30분이 끝이다.
아이들의 회복력은 어마무시하니까.
그래도 선생님은 오후에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첫 번째도 안전. 두 번째도 안전. 알고 계시죠.”
“그럼요. 원장 선생님은 걱정이 많다니까요.”
“아이들을 여러 명 끌고 나가면 눈을 못 떼니 그렇죠.”
“대학교 안에서 돌아다닐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둘이서 8명이니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해요.”
“알겠다니까요.”
오늘 아이들과 즐겁게 빨래를 한 이유가 있다.
경험이란 것이 그렇다.
삶의 풍부하게 하고, 때로는 공감을 일으키며, 어쩌면 무언가의 비유에 감탄하게 된다.
“슬슬 애들이 일어날 시간이네.”
부스스 일어나는 아이들.
이불은 다 빨았지만 밑에 깔 수 있는 예비 요 몇 개 위에 잠을 잤다.
여름이 다가오는지라 굳이 이불을 덮을 필요가 없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오늘 날씨가 좋기도 했고.
“여러분 다들 일어났어요?”
“네!”
“그럼 오늘 마지막 일과입니다. 여러분도 재밌게 볼 수 있는 거예요.”
“???”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승준이 물었다.
“뭐예요?”
“바로 뮤지컬이죠! 노래하고 연기하는 뮤지컬! 연극과 다른 거예요. 제목이 뭔지 아세요?”
“몰라요!”
“바로 ‘빨래’랍니다.”
“!!!”
시하가 벌떡 일어섰다.
“시하 빨대 잘해!”
시하야. 빨대가 아니라 빨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