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부대찌개의 재료를 선택하는 건 단순한 게임이지만 그렇기에 아이들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른바 우정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것을 골라야 하니까.
시하는 과하게 다 선택하고 있다.
원장님은 거기에 곤란함을 겪는다.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시하가 너무 귀여웠기에.
이른바 협상도 하는 타입이다.
다른 아이들은 협상할 줄 몰랐다.
하지만 시하는 형아에게 본 것이 있기에 이것까지 할 줄 아는 느낌이었다.
“음. 곤란하네. 얼마 있니?”
“비밀이에여. 비밀.”
“오호.”
가진 패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냥 비밀 놀이를 하고 싶은 것뿐일지도 모른다.
원장님이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그럼 다는 안 돼도 5개를 2만 원에 해줄게. 어때?”
“또 오께여. 싸게 해 주세여.”
“장사는 오늘로 마지막이란다.”
“!!!”
장사가 마지막이면 또 올 수 없다.
시하의 수는 막혀 버렸다.
어쩔 수 없는지 이제는 물러나기로 했다.
“아라써여. 5개 하께여.”
“좋은 선택이야. 그럼 재료를 고르렴.”
“언장샘. 이거 비밀이에여.”
“응.”
“안 고른 거 모에여.”
원장님은 헛웃음을 지었다.
시하야. 아무리 그래도 날로 먹으려는 거 아니니?
“그건 알려줄 수 없겠는걸?”
“아냐. 언장샘. 시하 배부룬 거 조아해. 구래서 알려주세여.”
“어?”
그렇게 말하면 알려줄 수밖에 없잖니.
원장님은 아이들이 고르지 않은 5개를 대신 선택해 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승준은 배를 쭈욱 내밀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저기. 승준아? 네가 왜 그런 표정이야?
아무래도 친구인 시하가 자랑스러운 모양.
하여간 둘이 참 웃긴 아이들이다.
“자, 그럼 됐지?”
“고마어여~ 또 오께여.”
“오늘 장사 마지막이라니까.”
“아냐. 언장샘 보러 또 오눈 건데여?”
“어머!”
원장님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시하야. 그런 멘트는 대체 어디서 배웠니?
어린이집에서도 가르쳐 준 적이 없던 것 같은데? 형아에게 배웠니?
그렇게 시하는 원장님을 감동하게 한 뒤에 의기양양하게 밖으로 나왔다.
옆에 있던 승준도 힘찬 걸음이다.
“오빠. 뭐 골라써?”
“알고 싶어?”
“응. 앗! 선생님. 이제 말해줘도 돼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승준이 말했다.
“그래도 다는 안 말해줘. 몇 개 샀는지 알려줄게. 우리는 5개 샀어. 그래서 이제 돈이 별로 없어.”
“우와! 오빠 5개나 샀어?”
“시하가 5개 사서 같이 맛있게 먹고 싶대.”
“시하 멋있다!”
시하가 배를 쭈욱 내밀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우리 형아 머시써!”
“???”
뜬금없이 등장하는 시하의 형아 자랑.
아마 이런 기술은 형아의 멋짐을 보고 따라 했다고 말하는 것이라.
그때 원장님이 재료를 들고 나왔다.
부대찌개에 넣을 것이 아주 충분해 보였다.
“자, 무슨 재료가 들어가는지 볼까요?”
“네!”
“먼저 햄이 들어갑니다.”
“와!”
그냥 요리를 만들고 기다리는 건 지루하지만 이렇게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보는 것도 재미다.
시간을 알뜰살뜰하게 잘 쓰는 유다희 선생님이다.
정말 별거 아닌데 이런 게임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어이쿠! 햄을 또 선택한 친구들이 있네요. 또 햄입니다.”
“우와!”
또 햄이 들어갔지만 아이들은 좋아했다.
햄은 언제나 옳으니까.
“다음은 버섯! 몸에 좋고 건강에 좋은 채소네요!”
“에이.”
역시 채소는 인기가 없었다.
윤동의 얼굴이 아주 미세하게 아래로 내려간다. 아무래도 실망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안 골랐을 것 같은 걸 생각해서 고른 건데 반응이 별로다.
“시하 버섯 조아해!”
“오, 그래?”
팟!
윤동의 얼굴이 살며시 펴지며 고개도 원위치가 된다.
살며시 시하에게 다가가더니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아?”
시하는 그런 윤동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윤동 옆에 있던 은우는 ‘행님아 비싼 버섯!’이라는 의미 불명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음은 고기!”
“헤헤헤헤!”
하나가 자기가 골랐다는 티를 냈다.
아이들도 다 눈치챘다.
“하나가 골랐어?”
“오빠. 하나가 고기 골랐어. 다들 안 골랐지?”
“헐. 완전 대단해!”
그리고 시하팀이 골랐던 나머지 재료들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어느 정도 익었을 때쯤 라면 사리를 멋들어지게 든다.
“마지막으로 라면!!!”
“우와!”
사실상 아이들이 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재료들이었다.
요리가 완성되자 그릇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밥하고 부대찌개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이다.
“자,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요.”
“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후후 불어서 잘도 먹는다.
흰쌀밥 위에 햄과 다진 고기가 얹어져 있다.
한입 크게 먹고 국물도 떠서 후루룩 먹는다.
우물우물.
시하의 볼이 빵빵하다 못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선생님은 잘 먹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희쌤도 어서 먹어요.”
“네!”
아이들이 먹을 때 같이 먹어줘야 한다.
안 그럼 시간이 없다.
***
저녁 먹고 조용히 영화관람 시간이 이어졌다.
그나마 선생님은 이런 시간에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아이들을 본다.
애니메이션이 재밌는지 침 삼키는 것도 잊은 채 적막한 공기가 흐른다.
재밌는 장면이 나오면 함께 까르륵 웃는다.
원장님은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을 보고 있다가 유다희 선생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거 끝나면 뭐가 남았죠?”
“촛불 켜서 사랑해~ 하고 말하는 시간이 있죠.”
“음음. 그거하고 자면 되겠네요?”
“그렇죠.”
커피가 다 떨어지고 물기가 말라서 설거지할 때쯤에 영화가 끝났다.
아이들이 재밌었는지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다시 재밌었던 점을 공유하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다.
“여러분. 재밌었나요?”
“네!”
“그럼 이제 사랑의 촛불 시간이 왔어요!”
“???”
“그게 뭔지 궁금하죠? 먼저 이걸 봐주세요. 짜잔.”
예쁜 LED 촛불을 꺼냈다.
실제 촛불은 아이들이 다칠 수 있기에 사용하지 않는다.
“우와. 예쁘다!”
“진짜 예쁘다!”
천장의 불이 꺼져 있어서 더욱 밝게 빛나고 있다.
오늘은 이걸 들고 노래도 들으면서 소중한 사람을 칭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서 잠을 잘 때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말이다.
“오늘은 친구들을 칭찬하는 시간을 가지겠어요. 칭찬은 사는 데 굉장히 중요하답니다.”
“네!”
“그럼 먼저 다 같이 둘러 앉아볼까요?”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하나씩 초를 받았다.
원을 그리는 빛은 사진 찍기도 참 좋았다.
찰칵.
원장 선생님은 부모님들께 보낼 사진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함께 있어 주진 못할지라도 그 추억을 이야기하고 들어줄 수 있기에 사진을 남기는 건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중요했다.
“누가 먼저 칭찬할래요?”
“저요!”
승준이 제일 먼저 나왔다.
시하를 보았다.
“시하는 그림도 잘 그리고 머시써.”
“마찌. 마찌. 시하는 형아 동생이니까.”
선생님은 칭찬한 사람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며 안으라고 했다.
승준이 시하가 끌어안으며 ‘사랑해’라고 외쳤다.
다음은 하나.
“연주가 너무 예뻐. 마음도 착해.”
“고마워. 사랑해.”
“사랑해.”
아이들은 각자 팀원들을 말하며 칭찬하기 시작했다.
시하도 승준이를 칭찬했다.
“승준이는 사커도 잘해. 야구도 잘해. 농구도 잘해. 또. 또.”
아는 운동 총출동이다.
승준은 그걸로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시하의 칭찬은 승준이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종수는 똑똑해. 또. 또. 우웅. 또. 또. 우웅. 또. 또. 우웅.”
“야. 이시하! 승준이는 그렇게 많이 말했는데 왜 나는 더 생각이 안 나!”
“아냐. 이써바. 시하가 생각해 보께!”
“됐거든! 이제 안 들을 거거든.”
“종수는. 똑똑해.”
“아까 말한 거잖아.”
“우웅. 떡떡해?”
“야! 그만하라고!”
“사랑해~”
아무 생각이 안 나는지 덥석 안고 사랑해를 외친다.
종수는 뭔가 찝찝하다는 표정이었다.
분명 칭찬받았는데 왜 기분이 막 좋지 않은 걸까? 왜 맨날 당한 느낌일까?
그런 의문이 마음속에 남았다.
“자, 여러분. 많이 생각 안 난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다음에는 그 친구의 장점을 많이 발견해서 더 칭찬해 주자고요.”
사람은 단점을 잘 찾는다.
하지만 장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어떻게 보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는 성격적인 면도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쉽게 단점을 찾는 사람보다 자그마한 장점을 말해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그럼 이제 선생님의 사랑해 시간입니다. 자아~! 선생님 품에!”
유다희 선생님은 아이들을 하나씩 끌어안으며 사랑해! 라고 속삭여 주었다.
원장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따뜻한 선생님의 품이 좋았다.
‘사랑해’라는 말도 좋았다.
촛불이 주황색이라 더욱 따뜻한 분위기가 더해졌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간직한 채 잠이 들면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재밌는 놀이는 여기까지. 다들 잘 준비를 할까요?”
“네!”
아이들은 이부자리를 폈다.
어느새 시간은 밤이 되었으니 자야 했다.
“다들 이제 깨끗이 씻고 잡시다!”
아이들이 다 같이 치카치카 양치도 하고 어푸어푸 세수도 했다.
파자마를 입고 누워서 잘 준비를 하는데 선생님의 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어? 시혁 씨네?”
“아?”
저 멀리서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있던 시하가 벌떡 일어났다.
옆에 있던 쌍둥이도 마찬가지다.
도도도 달려와서 선생님의 다리에 찰싹 붙었다.
“샘. 형아에여? 형아?”
“어? 응. 그러네. 잠시만.”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선생님. 저 이시혁입니다.」
“네. 알고 있어요. 잘 도착하셨나요?”
「물론이죠. 거기는 밤인가요? 여긴 오후인데.」
“네. 이제 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스웨덴과 한국의 시차는 7시간.
시혁이 있는 곳은 해가 쨍쨍했다.
“형아. 형아.”
시하가 열심히 불렀다.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시하에게 전화를 건네주었다.
“형아.”
「와. 시하야. 이제 잘 시간이야?」
“웅. 시하 이제 코오 자.”
「이야. 대단하네. 시하 형아 없이 자고.」
“여기 친구들이랑 가치 자. 구래서 재미써.”
「다행이다.」
“군데 시하 형아 보고 시퍼.”
시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감정을 추슬렀다.
「형아도 시하 보고 싶어. 일 빨리 끝나고 갈게. 알았지?」
“형아.”
「응?」
“시하 잠자고 이쓰께. 내일 와.”
「응. 노력할게. 근데 내일 시하가 잠자고 있을 때 도착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야 한다?」
“아라써. 시하가 백동 형아 잘 돌볼게.”
「푸흡.」
백동환이 졸지에 시하에게 돌봐지게 생겼다.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건지 시혁은 궁금했다.
“형아. 사랑해.”
「응. 형아도. 빨리하고 갈 테니까 코오 자고 있어.」
“아라써. 빨리 와.”
통화가 종료되었다.
선생님이 보기에 생각보다 시하는 의젓했다.
떨어져 있어서 불안할 텐데도 말이다.
아마 옆에 친구들이 있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앗! 나도 시혁이 형아랑 말하고 싶었는데.”
“하나도 시혀기 오빠랑 말하고 싶었는데.”
“여러분. 이제 잘 시간이에요. 모두 누워주세요.”
선생님이 손뼉을 쳤지만 아이들은 잘 마음이 없었다.
이부자리를 펴는 것과 씻는 건 말을 잘 들었지만 그런 자세도 여기까지다.
아이들은 아직 몸에 기운이 넘친다.
“하하하. 더 놀래!”
승준이 사커 베개를 퍽하고 찼다.
그대로 일어나 있는 종수의 얼굴에 맞았다.
“악!”
“아하하하.”
“야. 오승준!”
종수가 열 받아서 승준에게 그대로 베개를 던졌다.
하지만 승준은 앉아서 피했다.
퍽!
뒤이어 소리가 났다.
하나가 맞은 것이다.
“종수 너!”
베개 싸움의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시하는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신나!”
다른 아이들도 오늘 밤은 외로워하지 않고 잘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선생님은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이 사태를 관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얘들아. 벌써 밤이라구!
아무래도 파자마 파티는 선생님보다 애들이 더 잘 아는 양상이었다.
***
그 시각, 스웨덴에 시혁.
VUMAX랑 미팅 전.
“윽. 빨리 일 처리하고 가봐야겠어요! 제일 빠른 비행기가 몇 시죠?”
“왜? 왜 그래?”
“시하가 저 보고 싶다고 하잖아요. 분명 울먹이며 밤을 보내고 있을 거예요. 아, 어떡해. 내가 너무 외롭게 했어!”
“겨우 하룻밤 가지고 너무 심한 거 아닐까?”
“사장님. 하루든 이틀이든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애틋한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다. 역시! 우리 회사 에이스 직원! 계약만 끝나면 모든 건 나에게 맡겨라! 너의 몫까지 즐겨주지!”
박한수가 가슴을 탕탕 쳤다.
시혁은 왠지 그 모습이 얄미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웨덴을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시하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혁은 몰랐다.
지금 시하가 얼마나 즐거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