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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화 (323/500)

323화

어찌 되었건 종수는 시하와의 시합이 끝나지 않았다.

손에 있는 패는 두 개.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했다. 카드를 등 뒤로 돌려서 샥샥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들어서 두 장을 보였다.

“자, 뽑아.”

“우웅.”

시하는 고민하다가 오른쪽을 집으려고 했다. 마음이 바뀌었는지 다시 왼쪽.

다시 오른쪽. 다시 왼쪽.

종수의 표정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아, 빨리 뽑아!”

“어느 것을 뽑을까여. 알아마쳐 봅시다!”

“진짜!”

“딩! 동! 댕! 동!”

“이제 뽑네.”

“어느 것을.”

“야!”

구간 반복이 된 후에야 오른쪽이 당첨되었다.

시하는 그 반대로 왼쪽을 쏙 뽑았다.

“이겨따!”

종수는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 노래를 많이 불렀으면서! 오른쪽이 걸렸으면서! 어째서 왼쪽으로 노선을 바꾼 걸까.

놀림당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지다니. 내가 지다니…. 야! 한 판 더 해!”

“아라써.”

그때 승준이 말했다.

“근데 한 번 끝나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선생님이 좋은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쳤다.

“그럼 누군가 먼저 손에 카드가 없어지면 게임 끝나는 거로 할게요. 손에 도둑 쥐고 있는 사람이 꼴등.”

그렇게 다시 선생님이 카드를 섞고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하지만 다들 한 번씩 경험해봤을 것이다.

먼저 도둑 잡기를 한 판 하고 나면 아무리 섞어도 같은 숫자가 잘 나온다는 것을.

벌써 아이들 손에 든 패는 많이 줄어 있었다.

“그럼 아까 도둑이었던 종수부터 할까요?”

“네!”

시하가 그런 종수에게 말했다.

“종수. 시하 꺼 뽀바. 시하 조커 업써.”

“너무 티 나는데. 조커 들고 있지?”

“아냐. 업써. 시하가 이번에 종수 꼴찌 안 하게 해주께.”

“나 그런 거에 안 속거든.”

종수는 아까 오른쪽에서 왼쪽 선택으로 바꾼 이시하를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표정이 괜찮아 보이는 하나를 선택했다. 두 장의 카드 중에 하나의 카드를 뽑았다.

나온 것은 조커.

종수는 속으로 낭패감을 맛보았다. 열심히 티를 안 내려고 표정을 수습했다.

하지만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한들 상대가 포커페이스를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하나가 배시시 웃었다.

“히히히!”

“앗! 하나야. 너 왜 웃어? 조커 가지고 있었구나? 오빠 말이 맞지?”

“헤헤헤! 비밀이야!”

비밀은 무슨! 이미 얼굴에 나 조커 없어졌다고 다 쓰여있다.

시하가 종수에게 했던 제안을 똑같이 했다.

“하나야. 시하 꺼 뽑을래?”

“응! 뽑을래! 뽑을래!”

하나가 시하의 카드를 뽑자 똑같은 카드가 나왔다.

그 순간 게임 종료.

하나는 도둑이 되지 않았고 꼴찌는 종수가 되었다.

“야 이시하!”

“아?”

종수의 외침에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원망을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시하가 판을 짠 것같이 느껴졌기에.

***

파자마 파티는 이제 시작이었다.

아직 낮이지만 다들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준 뒤에 오늘 준비한 놀이를 꺼냈다.

“오늘은 여러분이 도둑 잡기를 했죠?”

“네!”

계획에 없었던 게임이었지만 이것 역시 이용하기로 한다.

“그래서 이겼던 사람들에게 돈을 줄 거예요. 오늘은 이걸로 점심하고 간식, 그리고 저녁을 사 먹어야 해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장난감 돈을 쥐여 주었다.

먼저 이긴 사람부터 차등 지급되었다.

승준이 돈을 보더니.

“이거 부루마불 돈이잖아요!”

“흠흠. 여기에서는 가치 있는 돈이란다.”

“난 진짜 돈이 좋은데!”

“그렇게 말해도 진짜 돈 안 줄 거예요.”

“들켰다!”

시하는 수중의 돈을 보았다. 2천 원.

왜 이렇게 적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둑 잡기에서 종수와 제일 마지막에 남아서 꼴찌 앞이다.

도둑만 아니었을 뿐이지.

돈이 적은 건 종수가 더 했다.

“천 원뿐이라니.”

“자, 여러분. 돈이 너무 적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여러 게임이 있으니 그걸로 돈을 벌면 돼요!”

“네!”

“그럼 두 명씩 팀을 만들어주세요.”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시하, 승준], [하나, 연주], [종수, 재휘], [은우, 윤동].

둘이서 잘 노는 애들이 팀이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게임이 밝혀졌다.

쿠션 뺏기 게임.

의자 뺏기 게임의 어레인지다. 의자는 애들이 다칠 가능성이 크니까 쿠션으로 바꿨다.

“노래가 나오면 춤추다가 쿠션 위에 엉덩이로 앉는 거예요. 못 앉은 사람은 탈락!”

“!!!”

“한 명만 1등 해도 그 팀은 1등이에요. 아셨죠?”

“네!”

“그리고 춤을 잘 추면 플러스 점수도 있어서 돈을 드릴 거예요.”

윤동이 눈을 빛냈다.

춤이라면 자신만만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윤동의 춤 실력을 따라올 수 있는 친구들은 없었다.

“자, 그럼 여기 쿠션은 5개만 놓고 노래를 틀게요.”

둠칫. 둠둠칫.

신나는 노래에 아이들이 리듬을 탄다. 언제나 춤추는 건 좋은 놀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게 있다. 게임이 가미되었다는 것.

다들 춤추면서 힐끗힐끗 쿠션을 바라본다.

오로지 윤동만이 진지하게 춤을 즐기고 있었다.

“오~ 윤동이 치고 나갑니다.”

선생님은 분위기를 띄운다.

윤동이 혼자만의 다른 세상에서 팝핀을 추며 팔을 꺾는다.

시하는 뒤에서 윤동을 따라 근육을 튕겼다.

덜덜덜.

하지만 튕기지 못하고 핸드폰이 진동이 울린 듯이 떨기 바빴다.

“오! 시하는 털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춤은 포장하기 나름이었다.

종수도 춤에 관심 보이는 시하를 보자 질 수 없는지 열심히 엉덩이를 흔들었다.

뒤에서 그걸 지켜보던 승준도 몸풀기를 했다.

“승준아. 그건 체조 아니니?”

“하나, 둘, 셋, 넷. 아닌데요? 체조 춤인데요?”

“체조 맞잖아.”

“아니에요. 춤이에요.”

하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는 맨날 이상한 춤만 춰.”

“너는 맨날 아이돌 춤 따라 하잖아.”

“그게 왜! 다들 한다고!”

“재미없어. 재미없어.”

하나가 입을 삐죽 내밀며 춤을 췄다.

선생님은 때가 되어서 삑- 하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아이들이 우당탕 쿠션에 앉았다.

오로지 윤동만이 그런 거 상관없고 춤에 빠져 있다.

처음부터 다른 세상에 있던 아이였다.

“푸하하. 윤동아. 왜 계속 춤추고 있어. 푸하하.”

쿠션을 하나 차지한 은우가 웃긴다며 배를 잡았다.

나머지 쿠션은 하나, 재휘, 종수, 승준이 차지했다.

“안자따!”

“아악. 이시하!”

시하는 뒤늦게 종수의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었다.

“아? 종수 왜 여기써? 시하가 안즈려 했눈데?”

“내가 먼저 앉았으니까. 넌 왜 뒤돌아서 앉으려는데!”

다들 빠르게 먼저 쿠션을 차지하고 앉았지만 시하는 정직하게 제자리에서 돌아앉으려고 했다.

그래서 생긴 불상사로 종수의 얼굴에 안착해버렸다.

“이케 하는 거 아냐?”

“아니거든! 빨리 차지해야지.”

“엉덩이로 쿠션에 안자. 마짜나.”

“어? 그건 맞는데…….”

“시하가 느져써.”

“어? 그것도 맞긴 한데!”

뭔가 또 시하의 페이스에 말려버린 종수였다.

아무튼, 선생님이 판결을 내린다.

“네! 5명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윤동아. 그만 춰도 돼. 윤동에게 춤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여기 돈.”

“감사합니다.”

시하가 도도도 달려온다.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윤동이 더 잘 춰서 어쩔 수 없어. 시하는 다음 기회를 노리자.”

“아냐.”

“응?”

“샘 잘해써여. 시하가 용돈 주께여.”

2천 원을 소지하고 있던 시하가 천 원을 건네준다.

선생님은 공손히 받았다.

“고마워. 근데 이거 선생님에게 주면 시하는 밥 못 사 먹는데?”

“시하 돈 마나여. 통장에 이써. 그거로 사여.”

“아니. 현실 돈은 반칙이지.”

“아?”

시하야. 현실 돈 가져오기 있냐!

이걸 허용해 주면 예능에 있던 사람들이 반발할 거라구!

암묵적인 룰이란 말이야.

“구럼 시하가 빌려주께여. 두 개로 가파여.”

“응?”

뭐지? 이자가 무슨. 사채업자도 그렇게 안 해!

선생님은 두 눈 뜨고 사기를 당해 버렸다.

“아니야. 안 빌려줘도 돼.”

“아라써여.”

시하가 다시 돈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뭐지? 이것도 사기당한 것 같은데?

선생님은 갑자기 종수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크흠. 그럼 쿠션 게임 다시 시작할게요. 이번에는 3개예요!”

그렇게 게임이 다시 시작되고 우승은 승준이 거머쥐었다.

운동신경이라면 승준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아싸! 시하야. 1등이야!”

“승준. 잘해써!”

“우리 돈 많아졌어.”

1등 만 원, 2등 9천 원.

순서대로 천 원씩 낮아졌다.

사실상 막 그렇게 차이가 안 난다고 봐야 했다.

이건 그저 게임일 뿐이니까.

“그럼 두 번째 게임은 바로 노래방입니다!”

“와!”

“노래 점수가 제일 높은 팀이 1등이에요.”

선생님은 준비한 노래방 기계를 켰다.

티비에 노래방 영상이 나온다. 물론 아이들이 한글을 잘 읽을 수 없겠지만 점수는 나오니 상관없다.

“다들 부르고 싶은 노래 있으면 선생님께 말해 주세요. 예약해 줄게요.”

하나가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이거야말로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나는 어떤 노래?”

“시간을 달려서!”

“오! 선생님도 그 노래 알아.”

노래가 나오며 마이크를 쥐었다.

연주도 아는 노래인지 같이 부르려고 옆에 섰다.

원래 노래방 마이크는 두 개가 국룰이다.

“시간을 달려서~”

“미래로 갈 수만 있다면~”

“거친 세상 속에.”

“로또 잡아 줄게!”

아주 세속적인 가사지만 멜로디만큼은 상큼한 걸그룹 노래다.

연주는 얌전히 부르는 편이고 하나는 열창을 하는 편이다.

이렇게 한 팀이 끝났다.

“와우! 98점! 아이돌 해도 되겠어요!”

“헤헤헤!”

“흠흠.”

다음은 종수와 재휘.

둘은 가요를 잘 몰라서 동요를 불렀다.

종수는 성격대로 뭔가 뽐내고 싶었는지 허세를 가득 담아 불렀고, 재휘는 떠듬거리며 열심히 불렀다.

“와우! 88점! 가수를 해도 되겠어요!”

“아! 88점이 무슨 가수를 해요.”

“종수야. 아쉽다. 그치?”

노래방 기계는 대체로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기는 하다.

다음은 은우와 윤동.

윤동이 춤에 진지했다면 은우는 랩에 진지했다.

“은우는 랩 부를 거야?”

“네! 열쇠고리요!”

“아, 그거 선생님도 알아.”

은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랩을 한다.

“너와 나의 열쇠고리! 너와 내가 걷는 거리!”

“에-이-에-이-!”

“너와 나의 열쇠고리! 너와 내가 걷는 거리!”

“에-이-에-이-!”

“푸핫. 윤동이 자꾸 이상한 소리 내!”

“코러스 넣어주는 건데?”

“푸하하. 코러스래. 푸하하. 앗! 랩 해야지. 욕심은 끝이 없고 이정표를 달았고.”

“고오오. 고오오.”

“길 따라… 푸하하.”

“요. 요.”

윤동이 옆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이상하게 코러스를 넣어주는 바람에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다.

뭔가 언밸런스한 팀이었다.

종수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저 팀은 제칠 수 있을 것 같다.

“94점! 가수가 될 실력이래요!”

하지만 언제나 노래방 점수는 기대를 배신한다.

종수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뭔데! 대체 왜 저게 90점이 넘는데!”

뭔가가 참 잘못되었다.

저 노래방 기계가 고장이 난 게 틀림없다.

옆에서 저런 이상한 코러스를 했는데 점수가 높다니?

“다음은 시하야.”

종수의 목이 끼기긱 돌아갔다.

눈은 시하가 아닌 승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이상하게 부르는 승준이 있는데 점수가 높을까 봐 걱정되었다.

“시하야. 뭐 부를래?”

“아? 모하까?”

“섬집아기 하자.”

“아라써!”

선곡은 섬집아기.

먼저 시하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형아가 섬 그늘에. 별 따러 가면!”

승준이 노래를 받는다.

“시하는 혼자 남아~ 똥을 싸다가~”

선생님은 머리를 짚었다.

시하가 혼자 남아서 똥 싼 얘기는 왜 하는 거니?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시하가 다음 가사를 부른다.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면 노래~”

자장면이 왜 나오는가?

승준이 자신 있게 부른다.

“젓가락 후루루룩. 마시씁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똥 싸다가 자장면 노래를 들으면서 젓가락으로 후루룩 먹었다는 거야?

가사가 왜 이래?

화면에 점수가 나온다.

[100점!]

[가수왕 탄생!]

종수도 이해 안 되는 표정이었지만 선생님 역시도 똑같은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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