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1화 (321/500)

321화

각자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종이 그릇에 소복이 담겨 있는 아이스크림을 보며 시하가 눈을 빛냈다.

앙증맞은 숟가락을 쥐고 퍼먹는다.

“닐라닐라 바닐라 맛있어?”

“마시써.”

“풉.”

알리사가 옆에서 웃음을 보냈다.

나도 한 입 먹었다. 초콜릿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퍼진다.

“형아. 코코코 초코야?”

“푸흡.”

닐라닐라 바닐라에 이어 코코코 초코라고 묻니?

주문할 때 뭐 들었니?

“이건 그냥 초콜릿이야. 초콜릿 아이스크림.”

“왜?”

“시하 것도 그냥 바닐라잖아.”

“아냐. 닐라닐라 바닐라야. 이건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형아 꺼는 코코코 초코.”

코코코 할 때 손가락으로 자기 코를 세 번 두드린다.

뭐지? 뭔데 귀여운데?

초코의 코는 얼굴에 있는 그 코를 이야기했던가?

“형아. 시하도 머거도 대?”

“응. 시하도 먹어.”

나는 한 스푼 떠서 시하의 입에 넣어줬다.

맛있는지 내 초코를 숟가락으로 침범한다.

“맛있나 보네.”

“마시써.”

“형아도 시하 꺼 먹어도 돼?”

“시하가 주께.”

굉장히 많이 퍼서 내 입에 넣어준다.

그냥 평범한 한 입이면 되는데…….

“음. 맛있다.”

“형아. 시하가 더 주까?”

“아니. 괜찮아.”

“마니 머거서 키 커야지.”

“그건 형아가 하고 싶은 말인데?”

네가 그 말을 왜 하냐. 하여간 웃기다니까.

근데 시하의 키는 컸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안 컸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작았다가 때 되면 폭풍 성장하는 거지.

작으면 귀엽잖아!

“둘이 보기 좋아요.”

“하하하. 알리사는 동생이나 언니 없어요?”

“전 혼자예요.”

“아,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파자마 파티 재밌겠네요.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잠자면 재밌죠.”

“그러게요.”

친구들이랑 같이 자 본 건 수련회나 수학여행밖에 없다.

하긴 그때는 그것만으로 엄청 신났었지.

장기자랑도 하고, 고등학교 때는 술도 몰래 가져와서 마시고, 선생님들은 알면서 눈감아주고.

커서 다 마실 수 있는 걸 그때는 왜 그렇게 가져와서 마시고 싶은지.

어른에 대한 동경보다는 비밀스럽게 하는 일탈이 즐거움을 줬던 것 같다.

“그럼 시혁 씨는 시하 없이 밤을 보내겠네요?”

알리사의 말에 상념이 확 깼다.

그러고 보니 일 때문에 나도 어디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 그날 저는 스웨덴으로 출발할 거라.”

“스웨덴이요? 갑자기?”

“갑자기 그렇게 됐네요. 오상환 교수님이 소개해준 회사가 있는데 거기서 일하거든요. 그래서 계약 부분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아, 맞다. 알리사가 전에 해줬던 말도 도움이 됐어요. 고마워요.”

“뭘요. 근데 제가 뭐라고 했죠?”

“그냥 미국 가서 이리저리 고생한 일요.”

“아! 그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고 부딪쳐야만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의외로 미팅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질 수도 있는 법이다.

아무것도 안 하면 그저 제로일 뿐.

확률을 높이기 위해 스웨덴으로 떠난다.

***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스웨덴으로 떠났다.

장시간 비행기에 있으니 몸이 찌뿌둥했고, 파자마 파티 잘하라고 말해준 마지막 기억이 떠오른다.

내 손을 꼬옥 잡았다가 겨우 떼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금방 오겠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며칠 안 봐도 이런 기분을 못 느꼈는데 이제 둘만 있으니까 며칠 안 보는 게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시하뿐만 아니라 나도 의존증이라는 게 생겼다는 말이다.

“이제 도착하네.”

“그러게요.”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비행기가 땅에 내려오고 밖으로 나와서 낯선 땅을 밟는 순간 시하가 보고 싶어졌다.

정말 멀리 왔구나. 시하는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진짜 힘들게 왔으니까 잘하자.

이런 생각을 하며 호텔에 짐을 두고 식사를 했다.

박한수랑 음식을 먹으며 다시 한번 미팅 때 말해야 할 것을 재점검했다.

“동생을 두고 온 게 걱정이야?”

“티 났어요?”

“하하하! 그건 아닌데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나 박한수는 사원 한 명, 한 명의 안색도 살피는 좋은 사장이지!”

“직원이 저 포함해서 두 명뿐이잖아요.”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도록!”

그래도 계약 가기 전에 아는 사람이 회사로 들어와 주었다.

실무에 익숙한지 금방 적응했고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약 진짜 잘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둘이 있으면 무적이지! 가진 패도 꽤 쓸 만하니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아, 네.”

“역시! 여유가 넘쳐.”

“???”

저 대답에서 어떻게 여유를 알 수 있는지 상당히 의문이었다.

하지만 저런 행동에 뭔가 안심이 된다.

“밥심으로 힘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밀로 힘낼 수밖에!”

“푸흡.”

간단히 식사하고 나서 미팅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VUMAX 본사.

공장과 함께 있는지 커다란 건물 몇 채가 보였다.

여느 공장단지가 있는 것처럼 꽤 삭막한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주변은 뭔가 시골스러운 정취가 있어서 좋긴 했다.

안으로 들어가 곧장 팀장과 개발자를 만났다.

팀장은 뭔가 딱 회사원같이 보였고, 개발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덩치가 꽤 있는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군요.」

「고생은요. 앞으로의 좋은 인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수고도 아니죠.」

「하하.」

이미 미팅을 잡을 때부터 거래는 시작되었고 인사 역시도 그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미팅하겠다는 건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는 게 아니라 너희 말을 한번 들어나 볼게, 라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비굴하지 않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살며시 상대를 띄우며 겸손을 보인다.

「이분이 박한수 사장님입니다. 저는 통역사이자 직원인 이시혁이고요.」

「아, 이분이. 특수 채결류를 사고 싶다는. 아 참. 이러지 마시고 자리에 앉으시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싶다.

우리에게 독점권을 준다면 앞으로 만들 저궤도 실용위성 발사용 로켓인 '무궁호' 발사체에 들어갈 체결류와 동체에 들어갈 제품을 납품할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

최대한 요점에 맞게 논지를 흐리지 않도록 진행했다.

「흐음.」

팀장이 살며시 고민한다. 옆에 있던 개발자는 얼굴 가득한 수염을 쓸었다.

대체 왜 온 거지?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할 뿐.

「굳이 여러분과 계약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저희 제품이 뛰어나서 납품을 넣을 카드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분들을 통해서라도 할 수 있을 듯한데요.」

맞는 말이다.

굳이 우리 같은 신생업체를 통해서 계약할 필요가 있나 싶을 것이다.

박한수가 자신 있게 말하고 나는 그것을 통역한다.

아까 인사를 할 때도 영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나로 인해 좀 더 매끄럽게 들리도록 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업체랑 이리저리 미팅하는 것보다 저희랑 하는 게 더 이득이죠.」

「어떤 게 말입니까?」

「먼저 시간입니다. 한국에서 VUMAX 사랑 계약할 생각이 있는 업체가 많지 않을뿐더러 여러분이 미팅으로 이리저리 재볼 동안 이미 회사가 정해질 수도 있습니다.」

「흐음. 확실히 그렇군요. 그럼 그냥 대형 회사랑 계약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 부족하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카르텔이죠. 사실 어떤 업체든 납품하는 물건이 썩 큰 폭으로 뛰어나지 않는 이상 적어도 아는 사람에게 플러스 점수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허.」

「원래 사람 일이 그렇습니다. 귀사도 세계를 상대로 일하는 데 로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인공위성에 들어갈 부품을 제공하는 것.

이건 기존 양산품들과 다르기에 특수하게 전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건 대량생산 제품이 아니다.

그러니 이미 인공위성에 부품 제공 경험이 있다는 건 기술 경쟁력뿐만 아니라 이미 갖추어진 인맥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무공호 개발은 아직 기사로도 뜨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정보를 얻고 자신 있게 독점 판매권을 달라고 했는지?」

「과연.」

당연히 이건 블러핑.

대외비이기는 하나 그냥 인맥만 있으면 알 수 있는 정보.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그런 한국 사정을 잘 모를뿐더러 말은 하기 나름이기에 상상토록 만든다.

착각은 언제나 그들의 실수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며시 웃는다.

「근데 카르텔이라는 건 꽤 복잡해서 한쪽으로 기대지는 않죠.」

역시 만만치 않다.

이게 총만 안 빼 들었지 서로 파악하고 쏘는 전쟁이다.

옆에 있던 개발자도 말한다.

「근데 가만히 듣고 있는데 기술력이 다 고만고만하다는 소리는 납득을 못 하겠군.」

심히 불쾌하다는 듯이 눈을 찌푸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개발자를 쳐다보았다.

‘걸렸다.’

의도한 부분이었다.

이 사람들이 신생업체에 신중할 거라는 예상도 했다.

이번 거래의 공략 포인트는 저 개발자다.

이건 박한수도 모르는 일이다.

이리 지지부진하게 끌게 될 가능성을 조금만 남겨두고 있었으니까.

“사장님.”

“응?”

“제가 여기서 좀 더 패를 꺼내도 되겠습니까. 동의 없이 준비하기는 했는데요.”

“뭔데?”

“거래하는 판에 하나 더 얹어볼 생각입니다.”

“오케이. 알았어. 그렇게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개발자를 보았다.

「한국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있죠. 혹시 아십니까?」

「뭐?」

갑작스러운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꽤 당황한 것 같았다.

「먼저 만들어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로 퍼졌죠.」

「그건 몰랐군.」

「예. 몰랐을 겁니다. 모르니까 거기서 거기 거나 없는 일이 돼버리는 거죠. 고만고만하다가 아닙니다. 그냥 모릅니다. VUMAX인지 VUMIX인지 아무도 모른다고요. 한국이 그렇습니다. 아니, 한국뿐만 아니죠. 모르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아마 당신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죠. 아, 우리 제품을 알리고 싶다.」

순식간에 독어로 바꿨다.

「아, 이 제품이 모국인 독일에서 유명해지고 싶다. 아닙니까?」

「독어?」

개발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인터뷰에서 봤다. 이 사람의 꿈이 독일에 제품을 잘 알려졌으면 한다고.

그만큼 자부심이 크다. 그리고 유명해지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다.

개발자가 어렵게 입을 뗀다.

「확실히 맞는 말이지.」

「저희도 여러분의 생각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습니다. 신생업체나 유명업체나 어차피 저리 먼 곳에서 오는 거면 그냥 아는 업체의 부품 계약을 하면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요.」

「으음.」

「유명한 곳이 몇 되지 않습니까. 저희도 압니다. 그러니 알리자는 겁니다. 이왕이면 저희도. 물론 귀사만큼 유명해지지는 않겠지만요.」

사실상 사람들이 거의 모른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매일 계약할 때마다 어디에 참여했다고 말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신생회사에 크나큰 이력이다.

이력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회사에도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영어로 말을 바꾼 나는 결정적인 쐐기를 박아넣었다.

「원하신다면 독일 쪽과 바운더리를 넓힐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뭐?」

「제가 멜츠와 꽤 인연이 깊어서.」

그러면서 패드에 있는 사진과 같이 일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계약을 성사시켜 줘서 감사하다는 이메일까지.

「제게 빚이 있거든요.」

이미 멜츠와도 이야기를 끝냈다.

성사되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확답. 이것만 해도 엄청난 것이다. 나머지는 VUMAX의 영업 실력에 달린 거지.

나는 슬며시 운을 띄웠다.

「멜츠 자동차 회사에 부품 납품은 아직 안 하시던데.」

슬며시 다른 메일을 보여준다.

최근에 나눈 이야기.

손가락으로 책상 위에 있는 패드를 톡톡 두드렸다.

「아직도 저희를 재보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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