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9화 (319/500)

319화

각자의 유에포는 개성 있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먼저 승준이 소개를 했다.

“나는 빨간 문어 유에포야!”

종이 접시에 붙여진 종이컵이 붉게 칠해져 있다.

눈과 입이 그려져 있었는데 정말 문어 캐릭터 같았다.

그런데 저렇게 보니 유에포보다는 문어를 쪄서 접시 위에 올린 것 같았다.

“그냥 문어를 접시 위에 올린 거 아니야?”

종수가 선생님의 생각을 대변했다.

아앗! 차마 입으로 말 못 한 건데.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승준이 발끈했다.

“아니거든. 여기 문어 그림을 그려 넣은 거거든. 이거 유에포거든.”

“나는 그냥 본 대로 말한 것뿐인걸. 다리도 8개로 잘랐네.”

“넌 이게 8개로 보여?”

“보이는데?”

“8개 맞아.”

“???”

“사커화도 무려 8개나 신을 수 있지! 최강의 유에포라고 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쯧쯧.”

승준이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며 자리로 들어갔다.

종수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쳐다봤지만 눈을 마주칠 일은 없었다.

“다음은 내가 할래!”

하나가 일어서서 자신의 유에포를 보여 주었다.

핑크핑크한 느낌과 별 모양 스티커를 붙여서 굉장히 반짝거렸다.

다만 종이컵에 바둑판식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 위에 있는 유에포는 아주 큰 마이크야. 우주 전체에 노래를 들려줄 수 이써.”

“역시 또 노래야?”

“그거뿐만 아니야. 아파트 아저씨처럼 집에 이야기해줄 수 이써. 오늘은 종이 쓰레기 버리는 날입니다. 버려주세요!”

“어어?!”

행성에 공지하는 유에포인가 보다.

스케일이 거대하다. 저렇게 커다란 마이크라니.

“다음은 제가 할게요.”

연주가 일어나서 유에포를 보여준다.

생각보다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둥근 창문도 있고 접시 위에 하트 모양 스티커 두 개가 붙어 있다.

“여기 둥근 렌즈로 영상이 나와요.”

“창문이 아니라?”

“응. 창문이 아니고 렌즈야. 전 세계에서 하늘을 보며 영화를 감상하는 거야.”

유에포는 정말 평범한데 안에 들어있는 설정은 굉장했다.

하늘 위로 보는 영화라니.

아이들의 상상력은 굉장히 광활했다.

다음은 재휘.

“여기 접시는 쇠라서 회색이야.”

겉보기에는 평범하게 생겼다.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만들던데 뭔가 엄청난 건 줄 알았다.

“이제 이게 돌아가서 우주를 조금 잘라버려.”

위잉. 위잉. 재휘가 칼날이 돌아가는 소리를 내었다.

평범한 외견이 의외로 톱처럼 단순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베는 건 나무 대신 우주였지만.

“우주 가지고 옷을 만드는 거야.”

어마어마한 상상력 다음에 은우가 나왔다.

반은 빨간색, 나머지 반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거기서 멈춰. 가만히 멈춰. 하지만 도망쳐!”

오랜만에 랩을 하는 은우였다.

“쫓아가 달려. 속도가 딸려. 엔진이 구려!”

신나게 바운스를 춘다.

“잡아야 해. yo 녀석 멈추면 봐줘.”

“아직 늦지 않았어!”

“엄마한테 빌어. 도, 망 소용없어.”

“역시 이미 늦었어.”

그다음 나오는 훅.

“널 비추는 레드 라이트! 워우. 워우.”

“니 얼굴 블루 라이트! 워우. 워우.”

“널 비추는 레드 라이트! 워우. 워우.”

“니 얼굴 블루 라이트! 워우. 워우.”

은우가 손에 있던 유에포를 흔든다.

랩이 끝났는지 이게 뭔지 설명을 한다.

“푸하하. 이거 경찰 유에포야. 푸하하!”

왜 갑자기 웃음이 터졌는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가사는 범인을 쫓아가는 경찰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들어봤을 만한 대사. 그렇다고 어렵지 않은 가사.

아무리 생각해도 은우는 천재인 것 같다.

물론 래퍼들이 듣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도 만들었어요.”

이번에는 윤동이 만든 것을 들고 나왔다.

뭔가 엄청 알록달록했는데 이게 뭔지 예측도 되지 않았다.

역시 그림 쪽에는 만만치 않은 윤동이다.

저게 대체 뭐지? 그냥 다양한 색들을 지저분하게 배열한 것뿐인가?

“음. 무대 조명이야.”

“응?”

“무대에서 여러 색깔 조명 나오잖아. 그거.”

아, 그러니까 그 유에포가 무대 조명을 대신에 여러 색을 두다다다 내뿜는다는 거지?

뭐 값싸게 말하면 노래방 미러볼 같은 거지?

색들이 너무 기괴하게 섞여서 뭐라고 하지 못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가는데 귓가가 빨갰다.

좋다는 거겠지?

“이제 시하야!”

시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다. 황금 막내 이시하의 차례였다.

“시하는 토끼 만드러써!”

정말 종이컵에 토끼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깊게 파낸 네모난 입. 그 위에 동그란 눈.

종이컵의 잘린 부분은 토끼의 귀가 되어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여기 토끼 입에 떡 넣어서 배달 가.”

아무래도 떡 만드는 토끼는 지구로 배달 가는 모양이다.

이 유에포를 타고.

근데 입구가 진짜 작은 떡 하나는 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위험할 때 귀를 써야 해.”

“???”

시하가 귀를 접었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토끼의 눈을 덮는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건 검은 안대였다.

“해적 대써!”

“!!!”

“우와! 진짜다!”

잠깐! 시하야. 갑자기 토끼 유에포가 해적 유에포로 됐는데?!

진짜 안전한 배달 맞지?

그냥 지키려고 해적선인 척하는 거지?

“레이저도 싸.”

배달하며 레이저도 쏘는 해적 토끼.

뭔가 말랑말랑한 동화에서 블록버스터 영화가 된 느낌이다. 다크 히어로 같은 건가.

그때 승준이 물었다.

“그럼 시하야. 한쪽 귀는 뭐 그려져 있어?”

“이거?”

“응.”

“이거 새로운 눈이야.”

시하가 한쪽 귀로 토끼의 한눈을 덮었다.

노란색으로 그려진 황금색 눈.

“이 눈 대면 얼마나 센지 다 아라.”

그거 전투력 측정기니?

아무튼, 다들 어마어마한 유에포들을 만들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이제는 일에 익숙해졌다.

회의도 열심히 참석했다. 사실 거창하게 회의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다.

일도 없기도 했고, 오늘도 잘해 보자며 응원하기도 했다.

거래처가 늘면서 점점 일이 많아졌다.

여느 소기업처럼 맡은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 불만이 없었다.

2주간 거의 돌아다니다시피 해서 일한 기분이 안 들었으니까.

그냥 정말 월급루팡이 된 기분이었다.

완전 실습 기간인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의미 없는 간단한 회의가 될 줄 알았다.

이제는 수첩을 늘 끼고 다니면서 자리에 앉았다.

박한수가 말했다.

“자. 오늘은 제대로 회의를 해볼까?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이야.”

“오오오!”

“사실상 내가 거의 설명하는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잘 들어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한수가 제대로 노리고 있는 것은 항공우주산업에 필요한 재화 용품.

지금까지 거래했던 물품도 역시 포함되어 있지만 특별한 점이 없어서 경쟁력은 꽤 부족했다.

하지만 뭔가 특별한 키를 가진 모양.

“내 인맥 중에 로켓 개발자가 있어. 물론 다른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친한 사람은 그 한 명이야.”

“그래서 자신만만했던 겁니까?”

“그런 것도 있지. 아무튼, 우리가 노리는 건 여기 재화 용품을 납품하는 것에 선정되는 것이야.”

나는 갑자기 두근거렸다.

꽤 재밌는 이야기이지 않나. 과연 혼자 이렇게 차린 회사를 어떻게 꾸려갈지 기대가 되었다.

“저궤도 실용위성 발사 로켓을 개발하려고 준비 중이야. 이름은 무궁호. 아직 계획 단계고 우리는 거기에 맞는 재화 용품, 정확히 체결류(볼트와 너트)를 납품한다.”

“저희는 아직 수입을 못 하지 않았나요?”

“이제부터 할 거야. 겨우 연락이 닿았거든.”

“연락이요?”

“VUMAX사의 체결류를 가져올 거야. 한국 독점 판매권으로.”

“???”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한수는 살며시 웃으며 설명했다.

볼트와 너트.

아무거나 쓰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부품이라는 것이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어떤 것에 견디느냐 어떤 재료가 들어갔냐 인치는 또 어떤가.

다 다르다. 그리고 이런 것에도 특허가 있어서 다른 기업들이 함부로 못 만든다.

“VUMAX는 인공위성 쪽 특수 부품도 만든 적이 있지.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판매한 적이 없어서 몰라. 여기 부품이 진짜 최고거든.”

그래서 한국 독점 판매권을 계약하려고 하는 건가?

설사 안 된다고 해도 거래처에 들이밀 때 써먹을 곳이 많을 것 같았다.

“나라는 어디죠?”

“스웨덴.”

“영어 잘하겠네요.”

“오호.”

스웨덴은 영어 교육이 체계적이라서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저런 부품을 생산하는 곳이라면 기본적으로 영어는 한다.

괜히 공용어가 아니다.

“역시 이시혁! 나 박한수가 뽑은 최고의 인재!”

“빨리 다른 사람도 좀 뽑아주세요.”

“나가려고 하는 거지! 안 돼! 나 박한수는 그걸 허락하지 않아!”

“지금 사표 내도 될까요?”

“미안해! 일주일 내로 아는 사람이 여기 오기로 했으니까 참아줘!”

“독점권 따내는 게 문제네요. 거기서 줄까요?”

음. 한국의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점에서 그냥 줄 수도 있다.

박한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 내가 가진 걸로 승부할 거야. 거기도 혹하기는 하겠지. 팔면 팔수록 좋은 거니까. 심지어 한국에서는 내가 최초로 접촉하는데 더 좋게 보지 않겠어?”

“그래도 너무 작은 회사인데요.”

“그 점이 오히려 좋지 않겠어. 물론 단점도 있지만.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낼까? 알려줄 건 다 알려준 거 같은데?”

“언제 가는데요?”

“다음 주 목요일에 출발해서 금요일에 미팅하려고. 토요일에는 좀 쉬다가 비행기 타서 일요일에 한국에 도착하겠지?”

“비행기 시간 때문에 타이트한 것 같으면서도 일수로 보면 그렇지 않네요.”

“뭐,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시하는 어떡하지?

승준 어머니께 잠깐 맡기면 되나? 아니면 데려가야 하나? 데려가면 또 혼자 있어서 심심할 텐데?

여러 방안을 생각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좀 더 회의하죠. 좀 더 유리하게 입장을 끌어야겠어요.”

“오오오. 역시!”

“역시는 무슨 역시예요. 먼저 사람부터 봅시다. 어떤 사람이랑 이야기해요?”

“아, 대표는 아니고 항공특수부품 쪽 개발자랑 팀장하고 만나는 모양이야.”

“개발자랑 팀장은 모국이 어떻게 되는데요?”

“응?”

“스웨덴이면 독일하고 가깝잖아요. 제가 독어를 할 줄 아니까 거기에 더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어서 물어보는 거예요.”

“아, 굳이 영어로 대화 안 해도 되는?”

“아니요. 영어로 해야죠. 대신 독일어도 할 줄 알면 더 친근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냥 조금 플러스 느낌으로.”

“으음. 확실히. 와. 난 그런 생각 못 했는데.”

“계약 이야기만 오갈 수 있지만 잠깐이라도 잡담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좀 어필하는 거죠.”

“크흐. 역시! 역시! 내가 선택한!!”

나는 살며시 귀를 막았다.

아, 귀가 왱왱거려서 시끄러운 거 같아.

근데 듣고 보니 나도 조사 좀 해야 할 것 같다. 여러 가지로 말이다.

프로젝트의 계획은 물론 박한수가 말한 대로면 가능성이 있긴 하다.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쐐기가 될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말이지. 확실한 걸 좋아하거든.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무언가를 말이다.

역사의 목격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나 역시도 역사의 이름 한 줄 새겨지는 영웅이 되는 것도 좋다.

“오! 대박! 여기 개발자 이력도 있네? 독일인인데?”

“팀장은요?”

“미국에서 대학 나온 스웨덴인.”

“흐음. 개발자를 잘 노리면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아마 여기 협상에 따라오는 건 호기심도 있고 그럴 테니까.”

“그렇지?”

“아마 거기서 바로 결론 내리지 않고 협의를 할 테지만 그건 뭐.”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거지.”

“일단 시뮬레이션 좀 돌려보죠. 혹시 조심해야 할 말이나 제스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말해 줄게요.”

“뭐야? 그런 것도 알아?”

나는 머리를 툭툭 쳤다.

“좋은 지식이 다 들어 있어서.”

“크흐. 내가 사람 하나 잘 뽑았단 말이지!”

“전 소개받아서 왔는데요?”

“내가 사람 하나 소개 잘 받았단 말이지!”

말 바꾸기가 무슨 우디르급이네.

뭐, 혹시 모르니까 나도 개인적으로 준비 좀 해볼까?

일하면서 좀 정이 들었는지 박한수 사장님이 잘됐으면 좋겠다.

뭐, 나한테 성과급도 챙겨준다고 해서 그런 것도 있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