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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화 (318/500)

318화

스승의 날.

시하와 함께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손에 꼬옥 쥔 두 개의 편지 선물은 아마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할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선생님이 먼저 반겨주었다.

“안녕. 시하야.”

“샘. 안녕하세여! 이거 시하 선물이에여. 샘의 날 추카 선물.”

“응? 샘의 날? 아! 스승의 날? 어이쿠. 고마워. 편지네? 시하가 썼어?”

“시하가 손으로 다 써써여.”

“우와. 벌써 한글로 편지 쓸 줄 안다고? 대단하네.”

“시하 다 아라.”

선생님은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다른 어머니들도 도착했는지 자그마한 선물을 건네 주신다.

쿠키, 양갱, 흑임자떡 등등.

다들 무언가 하나씩 준비한 모양이다.

근데 왜 다들 먹을 거지?

“어머. 선물 준비하지 마시라고 저희가 공지를 드렸는데.”

“이거 선물 아닌데요? 아이들도 같이 먹으라고 간식 산 거예요.”

물론 상자 크기를 봤을 때는 비싸 보이지 않는다.

“엄마들이 준비한 거니 받아주세요.”

“아. 진짜 안 되는데. 작년에도 공지했잖아요.”

“작년에도 원장선생님이 그러지 말라고 하시며 받아주셨잖아요. 뭐 어때요. 우리 애들도 먹을 건데.”

“그건 그런데…….”

뒤에서 원장님이 받으라고 말한다.

아이들 간식으로 놔둘 거라고.

그 와중에 시하는 이미 원장 선생님에게 편지 전달을 끝냈다.

승준 엄마도 도착했는데 나를 힐끗 보더니 팔을 잡고 끌고 나왔다.

“선물은 엄마들이 돈 조금 모아서 샀어요. 제가 시혁 씨한테도 말해야 했는데.”

“말했으면 저도 보탰을 텐데.”

“다들 2만 원 선에서 사는 선물이라 얼마 안 돼요.”

“그래도요.”

“어차피 선물 편지에 시혁 씨 이름도 포함되어 있어요. 누구누구들이 선생님과 아이들께. 이렇게요.”

“네?”

“그냥 이런 건 엄마들이 잘 챙기니까 시혁 씨는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섭섭해하지도 말고.”

아무래도 그 부분이 걱정되셨나 보다.

근데 나는 돈도 보태지 않는데 이름을 넣어도 되나 싶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내야 할 거 같은데요?”

“괜찮다니까. 나중에 말하려고 한 것도 괜히 할 일 많고 바쁜데 괜히 이런 것까지 신경 쓸까 봐 그랬죠. 이봐. 지금도 막 신경 쓰잖아. 애 혼자 키우는데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도 된다니까.”

“으음. 감사합니다.”

들어보니 대충 이런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선물을 보내지 말라고 공지를 받았지만 그래도 정말 안 주는 건 조금 그렇지 않냐는 의견이 나왔겠지.

사실 국공립이 아닌 어린이집은 김영란법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원장 선생님은 안 받겠다 하신 거다.

하지만 정서상 견딜 수 없었던 거겠지.

작은 성의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날은 꼭 챙겨 왔던 어른들이니까.

“요즘 많이 바쁘죠? 그이한테 소개받아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별로 안 바빠요.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만 빼면.”

“그래도 중요한 시기니까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미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깜빡했어. 오늘 얼굴 보니까 아차 싶더라니까.”

“쌍둥이 돌보시느라 바쁘신 거 다 아는데요. 하핳.”

나는 배려를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그래도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만 원이라도 보태겠다고 했다.

선물 3개의 가격을 보니까 종합 7만 원 정도 되어 보였다.

각각 만 원꼴로 선물한 거겠지.

응? 내가 끼면 만 원이 아니라 8천 얼마를 보내야 하니까 귀찮아서 안 끼워준 거 아닐까?

뭔가 저런 이유도 없진 않을 것 같은데?

“형아. 가?”

“응? 아, 시하야.”

시하가 문에 나와서 빼꼼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인사도 안 했다.

“형아 이제 갈게.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잘 놀고 있어.”

“형아. 시하 언래 잘 노라. 군데 형아. 빨리 와.”

“응. 일 끝나면 바로 올게.”

“바이바이.”

“응. 바이바이.”

시하와 헤어지며 일하러 출발했다.

***

정신없이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맞이하고 선생님은 이제야 편지를 뜯어보았다.

일단 옆에 시혁 씨가 주석을 달아주어서 웃음이 나왔다.

역시 아직은 편지 쓸 수 있는 한글 실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아는 단어를 쓴 것을 보며 시하가 성장했음을 느낀다.

그 밑에는 하트 꽃다발이 그려져 있다.

“시하야. 하트 꽃다발 그림 너무 예쁘다. 정말 고마워.”

“샘. 꽃 조아해. 시하 다 바써.”

“응? 그래? 쌤이 꽃 좋아하는 거 다 봤구나?”

“문도 삼춘도 조아해써.”

“으응?”

선생님이 웃는 상태로 살짝 굳어버렸다.

순식간에 시하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재조립되어 의미가 전달된다.

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봤지?

분명 아이들의 낮잠 시간에 잠깐 볼 수 있냐고 문자가 와서 원장 선생님께 말하고 나갔다.

꽃을 받은 뒤에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이집에 꽃을 가지고 들어가기에는 부끄러워서 차에 넣어뒀다.

“그때 시하 잠자고 있지 않았니?”

“자고 이써써. 군데 하나가 깨어써.”

“으응?”

선생님은 심각함을 느낀다.

하나가 깨웠다는 건 알고 있는 사람이 둘 이상 아니야?

그때 승준이 시하와 어깨동무를 했다.

“나도 봤는데! 하나랑 연주도 다 같이 창문에 올라가서 봤어.”

선생님은 끼리릭 고개를 돌리며 창문을 보았다.

아이들이 올라가서 밖을 구경할 수 있게 발판도 마련되어 있다.

그래. 저기에 4명이 우르르 올라가서 구경했다는 거구나? 그랬구나.

뭔가 심히 부끄러웠다.

“구래서 시하 꽃 그려써.”

“정말? 시하 기억력도 좋네.”

“샘. 시하가 뽀뽀도 그려주까?”

“으아아악!”

선생님은 얼굴을 감쌌다.

그때 왜 하필 문도환은 지나가다가 꽃을 보며 내가 생각나서 충동적으로 사 와서 줬을까.

거기까지는 괜찮지만 왜 하필 어린이집 앞에서 받고 아이들에게 그런 장면까지 보여줬을까.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승준이 말했다.

“엄마도 아빠랑 매일 뽀뽀해. 다녀오세요! 뽀뽀.”

“하나도 아라. 다녀오셨어요! 뽀뽀!”

“엄마가 요리하고 있을 때 뽀뽀!”

“하나도 아빠한테 다녀오세요. 뽀뽀해!”

뽀뽀 얘기는 인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니? 선생님이 너무 부끄러워서 그래!

뭔가 별일 아니라고 신경 써주는 느낌이야! 그게 더 부끄러워!

물론 아이들이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겠지만.

“아, 맞다! 스승의 날 노래 불러야 하는데!”

승준이 이제 기억났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선생님은 불길함을 느꼈다.

또, 또 이상한 개사하는 건 아니겠지?

“다들 일어서서 노래 부르자!”

“시하가 언장샘 불러오께!”

시하야. 원장 선생님은 여기 이 방에 계시는데?

물론 시하는 그런 거 상관없이 원장 선생님의 손을 잡고 유다희 선생님의 옆에 앉혔다.

하나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대체 어느 틈에 준비한 건지.

아이들이 속속 모였다.

다들 모이라고 안 했지만 알아서 마음이 통했다.

“시이~작!”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시하가 신이 나는지 큰 소리로 자신 있게 불렀다.

“우려서 볼수록! 노파만 지네!”

시하야. 우러러 아니니? 우리긴 뭘 우리니?

사골국도 아니고 말이야.

보면 볼수록, 이라는 느낌이면 은근 말이 맞긴 한 거 같은데?

승준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응. 승준아. 그거 아니야. 뭐 할지 모르겠는데 그거 아니야. 시하는 그냥 말이 잘못 나온 거뿐이야.

“발라버려! 발라버어려! 가르쳐 주신!”

대체 뭘 발라버리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줬다고?!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갑자기 가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아아~ 고마어여! 스승의 싸랑~”

시하야. ‘사’를 그렇게 강하게 ‘싸’로 발음해야겠니?

“아아아~ 보다 빨리!”

왜 갑자기 빨라지니?

“스승이 우네~”

우네가 아니라 은혜. 시하야. 발음 조심하자.

옆에 있는 원장 선생님은 엉망이 된 노래 가사에 웃으셨다.

눈물도 찔끔 나왔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다 나오네.”

“진짜 가사대로 스승이 우네가 되네요.”

아이들은 이제 스승의 날 노래가 다 끝났다고 흩어졌다.

아주 공과 사가 확실해 보였다.

이렇게 매정하게 할 일 딱 하고 가다니.

바쁜 현대인을 보는 것 같다.

“이제 뭐 하고 놀까?”

“우웅.”

직장에서 오전 회의를 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어린이집에서 회의를 들어갔다.

주제는 늘 똑같다.

오늘 뭐 하고 놀지?

흔히 하는 것들은 의미 없고 그렇다고 너무 특별한 걸 하자니 생각나는 게 없다.

“저기 얘들아. 스승의 날은 끝났니?”

“이제 그거 끝났어요. 노래도 끝났고.”

“하나도 마이크 집어넣었어.”

“시하도 노래 다 불러써.”

“끝났는데요?”

넷이서 잘도 이야기한다.

선생님은 뭔가 아쉬움이 가득하다. 제대로 한 곡만 더 듣고 싶어!

원장 선생님이 어깨를 잡는다.

“다희쌤. 이거 나중에 편집해서 부모님들 보여주면 웃길 것 같아요.”

“앗! 언제 찍으셨어요?”

“애들 부를 때 폰 세팅했어요.”

“제가 해야 했는데.”

“누가 하면 또 어때요?”

그렇게 이야기하던 중에 시하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의견을 주장했다.

“시하 달에 가서 토끼 보고 시퍼.”

“응? 달? 그럼 달에 가는 놀이 할까?”

“하나도 아라. 우주선 타고 가는 거야.”

“로켓 타고 가는 거 아니야?”

우주선이든 로켓이든 다 맞는 말이었다.

그때 종수가 나섰다.

“달에 토끼가 어딨냐. 달에 아무도 안 살 거든.”

“아냐. 토끼가 떡 한다고 해써.”

“그거 다 거짓말이거든! 토끼 없어.”

“종수 가바써?”

“어? 안 가봤지만 알아. 달에 토끼 없고 아무도 안 산다고 했다고.”

“아냐. 토끼 떡 파라. 토끼 숨어서 안 들켜써. 그래서 아무도 몰라.”

종수는 절레절레 저으며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맞다. 그러니 사하가 졌다. 이것만은 이길 수 있다.

“난 책에서 봤어. 실제로 안 산대. 하하하! 시하야. 안 됐네! 토끼가 없어서.”

시하가 승준을 보았다.

“구럼 떡이랑 토끼 달에 보내 주까? 우주선 타고 보내 주까?”

“오! 그러면 되겠다.”

“토끼 자라서 떡 만들 수 이써.”

종수가 눈썹을 찡그렸다.

“야. 이시하! 나 무시해?”

“아? 종수가 안 산다 해서 토끼랑 떡 보내져. 안 무시해써.”

“어?”

종수의 의견이 회의에 수렴되었다.

그러니 무시가 아니다. 나름대로 논리가 맞았기에 종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건 맞는데 뭔가 무시당한 느낌이었는데? 왜지?!

“우주선 필요해. 우주선. 근데 우주선 모야?”

“너 우주선도 모르고 그렇게 말한 거였어?!”

“시하 우주선 한 번도 안 바써. 종수 바써?”

“직접 보지는 않긴 했는데…….”

그때 승준이 나섰다.

“난 유에포 슛 봤지. 푸하하! 공이 엄청 휘어져!”

“야. 오승준. 유에포슛이랑 유에포는 다르거든!”

“아니야. 유에포도 그렇게 움직이겠지. 왜 유에포슛이라고 하겠어.”

“어?”

이번에도 의외의 반격에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논점이 어긋나 있었다.

“자. 자. 여러분. 그럼 이건 어때요? 모두 함께 우주선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마침 오늘 떡도 있고 만들 재료들도 있네요. 다들 해볼까요?”

“네에!”

흑임자떡을 애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선생님은 싱크대 서랍에 있는 재료를 꺼냈다.

종이컵과 종이 접시.

이것만 있으면 우주선 하나 뚝딱이다.

“종이컵을 이렇게 문어발처럼 잘라서 펼쳐요. 그리고 접시 위에 붙이면 짜잔. 우주선이 되었죠? 여러분 마음대로 꾸밀 수도 있어요.”

실제 우주선이나 로켓의 재료들은 복잡하게 들어가겠지만 여기는 두 개면 된다.

“다들 해볼까요?”

“네!”

아이들이 선생님처럼 종이컵으로 문어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하도 처음에 따라 하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조금 다르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발 두 개 정도를 깊숙이 잘라서 떼버렸다.

그리고 펜을 가지고 열심히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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