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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화 (306/500)

306화

어쩌다 보니 과거에서 온 시하라는 게임에 백동환도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3살 시하가 미래에서 왔다는 설정입니까?”

“4살이야.”

백동환이 뭔가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야. 나는 지금 방송국에서 최고의 성우가 되었어!”

“백동 형아. 또 거짓말 해써?”

“아니야! 진짜야!”

시하가 백동환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작작 좀 했어야지. 어떻게 된 게 시하가 설정도 못 받아들일 정도잖아.

“크흠. 정말이라구.”

“정말?”

“당연하지!”

시하가 눈길을 거두었다.

“형아는 모야?”

“으음. 나? 시하랑 열심히 살고 있지. 그리고 레드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어.”

“!!!”

“세계에 수많은 레드가 생길 거야.”

“대다내!”

짝짝.

손뼉을 치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나를 빤히 보았다.

뭐지? 뭔가 궁금한 게 생겼나?

“시하는? 시하는 어디 학가야?”

“아! 그거 말하다가 말았었지? 시하는 매력학과라고 있어. 크크큭.”

“매렁학가?”

“매렁이 아니라 매력. 시하가 너무 멋있어서 거기로 들어갔어.”

“!!!”

“멋쟁이들만 가는 곳이지. 새로 생겼어!”

옆에서 백동환이 슬쩍 손을 들었다.

“형님. 저도 거기 들어가려고 재수 새롭게 준비 중입니다.”

“미안하지만 넌 서류에서 탈락이야.”

“왜요!”

“너무 비대해서…. 수능으로 통과되는 곳이 아니야!”

“제 통뼈랑 근육은 아주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목소리도 좋습니다. 저 성우라구요.”

“나이가 많아서…….”

“나이 제한까지?! 거, 너무 까다롭지 않습니까.”

“통뼈도 안 된대.”

“그냥 안 된다고 하십쇼! 금지사항에 저만 포함되지 않습니까!”

백동환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시하가 다가가서 손으로 토닥토닥해 줬다.

“백동 형아. 힘내. 하팅!”

“고맙다. 역시 시하밖에 없어.”

“백동 형아 안 몬생겨써.”

“못생겨서 못 들어가는 거 아니야! 그런 말 없었잖아!”

그래서 시하가 안 못생겼다고 하잖아.

하여간 백동환 녀석. 순수하게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백동 형아. 바보도 아냐. 시하가 아라.”

“아니. 바보 아닌 거 당연한 건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마치…….”

“갠차나. 갠차나.”

뭔가 백동환이 침울하게 변했다.

당연한 걸 그냥 말하는데 공격력이 엄청나구만.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 공격력이 더 나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형아. 이제 시하 가께.”

“어? 벌써 가?”

“시하도 형아랑 있고 시퍼. 군데 시하가 업써서 형아 걱정해~”

아무래도 나랑 있고 싶은데 과거의 내가 걱정할까 봐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역시 시하는 엄청 착해!

“그냥 형아랑 같이 살래?”

“아냐. 시하 가야 해. 여기 시하는 형아랑 가치 있눈데. 저기 형아는 시하가 업쑤면 아파.”

“그래. 그래. 그럼 형아 곁에 잘 지켜줘. 알았지?”

“시하 잘해.”

시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배를 쭈욱 내밀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튀어나온 배를 간질였다.

“간지러!”

시하가 뒷걸음질 친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온다.

“형아. 바이바이.”

“그래. 바이바이.”

이불이 덮은 곳으로 기어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나온다.

“형아. 시하 와써!”

“응? 시하야. 어디 갔다 온 거야?”

“형아 만나고 와써.”

“응? 형아는 여기 계속 있었는데?”

“미래 형아 만나고 와써. 재미께 이야기해써. 시하 매렁학가 갔대!”

“어? 그랬구나.”

“군데 백동 형아. 왜 여기 이써?”

백동환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난 여기 있으면 안 돼?”

“안 대. 시하 4살 때 여기 업써!”

아무래도 과거에는 백동환이 집에 오지 않은 설정인가 보다.

설정 잘 좀 지켜라. 백동환.

“진짜 너무하네!”

아무튼, 미래 놀이는 이걸로 끝난 모양이다.

그런데 잊어먹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동환아. 어쩐 일이야?”

“이제야 물어보시는 겁니까?! 너무 늦었잖습니까.”

“아니. 정신없이 놀아주다 보니까 잊었지.”

“사실 저도 까먹고 있었습니다.”

뭐야. 자기도 여기 온 용건을 까먹고 있었으면서.

“아! 이거 주려고요.”

“응?”

백동환이 가방에서 두툼한 무언가를 꺼냈다.

확인해 보니 사진이었다.

“이거 인화해 왔어요. 캠핑 때 찍은걸요.”

“이것도 갬성이야?”

“하하. 그냥 이렇게 남기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는 천천히 사진들을 넘겨 보았다.

단톡방에 올려둔 모든 사진이 인화되어 있었다.

“벚꽃들하고 하늘도 다 찍혀 있네.”

“크으. 예술이죠? 풍경이 너무 좋아서 인화를 안 할 수 없었어요.”

“이거 다 우리 주는 거야?”

“형님 주려고 따로 인화했습니다.”

“아, 너희 집에 인화기가 있었지. 참.”

뭔가 덩치 큰 이미지와 안 맞게 갬성적인 걸 정말 좋아하는 백동환이었다.

“그럼 이거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네?”

“예? 아, 뭐. 그렇죠. 그런데 뭐 하시려고요?”

“아, 이거?”

손에 쥔 사진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낙서하려고.”

“예?”

백동환은 갬성이 박살 난 표정을 지었다.

***

주변에 있는 건 굉장히 좋은 놀이 도구가 된다.

이불과 의자만 해도 아지트가 되며, 빨래집게 역시 아이들의 좋은 장난감이 된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떨까?

낙서라는 게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사진에 낙서하는 건 과연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애초에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작업하는 것도 낙서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이러한 낙서 역시 재밌는 놀이이자 창의력을 발전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시하야. 사진 나왔어.”

“사진?”

시하가 나랑 같이 앉아서 사진을 보았다.

저 구석에서 백동환이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에는 애써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형이 준비한 볼펜!”

“???”

“어이쿠. 시하의 얼굴이 보이네요. 안경을 그려줘야겠어.”

나는 시하의 얼굴에 둥근 안경을 그렸다.

그것만으로 좀 심심하니 위에 중절모를 추가했다.

“!!!”

시하는 그걸 보고 눈이 반짝거렸다.

아이들은 낙서를 참을 수 없지. 다들 엄마 몰래 벽지에 낙서 한번 해봤을 거다.

아니면 교과서에 낙서하거나.

다들 그런 거 아니겠나.

“형아. 시하도! 시하도!”

“그래. 여기 볼펜.”

시하는 볼펜을 잡으며 나처럼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백동환은 그걸 보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그러고 있지 말고 같이 낙서해.”

“제, 제 사진을…….”

“왜 네 사진이야? 나 주려고 했다며?”

“아니. 그래도.”

“이거 꽤 재밌다?”

“…….”

백동환이 슬쩍 오더니 볼펜 하나를 잡았다.

“네가 볼펜 잡으니까 몽당연필 느낌이야.”

“과장이 심하십니다.”

“???”

진심인데? 과장하나 안 보탰다구.

시하도 그렇게 생각할걸?

“형아. 이거 바바.”

“응? 어디 보자. 별 모양 안경이니?”

“아냐. 반짝반짝이야.”

내 눈은 별이 되어 있었다.

시하의 손도 별이 아주 많았다.

대낮에 별들이 참으로 반짝이는구나.

“진짜 잘 그렸네.”

“시하 안경도 쓰고 모자도 쓰고 반짝이도 이써.”

“그렇네.”

“형아는 반짝이 있고 손에 검도 이써.”

“그렇네. 응? 검?”

어느새 시하는 내 손에 검을 그렸다.

아, 낙서하면 검을 빼먹을 수 없지.

“후후후. 형님. 저는 주변에 기를 추가했습니다. 초사이어인입니다.”

“고맙다.”

어느새 즐기고 있는 백동환.

근데 주변에 기가 흐르는 걸 표현하는 것도 낙서의 기본이지.

시하는 그걸 보고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번개를 추가로 그렸다.

“형아. 시하가 더 갱장해. 바바. 형아 번개 나오고 이써.”

“그렇네.”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야!

한 사진에 낙서했는데 완전 엉망이었다.

원래 낙서라는 게 그런 거지만…….

“시하가 백동 형아도 머시께 해주께!”

“그럼 나는 시하를 멋있게 해줄게.”

“시하 이미 다 그려써.”

“괜찮아. 아직 추가할 수 있어.”

백동환은 내가 그린 중절모 위에 꽃을 하나 피웠다.

멋있는 것보다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졌다.

“안 머시써.”

“흠흠.”

“시하는 머시께 해주께!”

시하가 사진을 가져가더니 백동환의 팔을 구름처럼 둥글게 추가하기 시작했다.

다 그린 것을 보니 근육이 추가된 느낌이다.

팔 근육만 말이다.

“다 대따!”

“안 멋있잖아! 괴물이잖아!”

“개불은 머시써.”

“개불이 아니라 괴물이겠지. 전혀 다른 발음이잖아. 시하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아?”

시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근데 시하가 개불을 모르는 건 확실하다.

언급도 안 한 단어거든.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시하야. 발음 조심하자.

근데 저렇게 들으니 백동환 팔이 개불 같기도 하고…….

진짜 개불로 그린 거 아니지?

“근데 사진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이 한 개 가지고 그리는 거야?”

“하다 보니까 그렇죠?”

“형아랑 가치!”

뭐 서로 하고 싶은 말은 알겠다.

그래도 따로따로 낙서해 보자고.

“우리 낙서한 거 나중에 전시할까? 재밌을 거 같은데.”

“이걸요?”

“시하는 조아!”

백동환은 떨떠름한 얼굴이고 시하는 좋다고 주먹 쥔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괜찮다. 시하만 좋아하면 된다.

원래 백동환의 의견은 묵살하는 거지.

“그럼 각자 재밌게 꾸며보기. 시~작!”

우리는 펜을 들고 재빠르게 꾸미기 시작했다.

나는 시하의 사진을 쏙쏙 가져와 안경을 그렸다.

이상하게 안경을 그리고 싶단 말이지.

시하는 하늘이 같이 찍혀있는 사진을 주로 가져갔는데 비밀이라는 듯이 다른 쪽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백동환도 이제는 재밌게 낙서를 했다.

이렇게 어릴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건 오랜만이다.

물론 나는 교과서에 가끔 낙서하는 파이기는 했지만.

“동환이 너는 어릴 때 낙서를 어디다 했어?”

“형님은요?”

“나는 교과서.”

“저는 창문에 많이 했습니다. 호호 불어서 입김으로.”

“칠판에도 많이 하지 않아?”

“가끔 그랬던 적도 있죠. 저는 키가 커서 애들을 놀리기 위해 저 위에 낙서했습니다.”

“그래도 칠판지우개 쓰면 다 닿지 않아?”

“초등학생 때 일입니다. 그때는 애들이 작잖아요.”

“넌 어릴 때부터 컸구나?”

“늘 제일 큰 편이었습니다.”

얼마나 컸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쪼꼬미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거인. 너무 무섭잖아. 하나도 안 귀여워!

“저 초등학생 때는 진짜 귀엽단 소리 많이 들었는데.”

“거짓말하지 마!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진짠데요?”

억울한 표정.

오늘따라 너무 자주 나온다. 불쌍한 녀석.

“음. 알겠어. 믿어줄게.”

“이게 믿어줄 정도의 이야기였습니까!”

아니. 지금 네 모습 보면 초등학생 때 귀여웠다는 거 상상이 안 되잖아.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슥삭슥삭.

어느새 우리는 조용히 낙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침묵이 불편하지 않다.

“다 해따!”

“오. 시하야. 다 했어?”

“아아.”

시하가 세 장의 사진을 들고 왔다.

펼쳐보니 단번에 태마가 잡혔다.

사람에게 그림을 넣지 않고 오히려 하늘에 있는 구름에 그림을 그렸다.

첫 번째 사진은 등에 물을 뿜는 고래.

두 번째 사진은 구름 위에 올라탄 닭.

세 번째 사진은 페페.

“와. 구름을 이렇게 그렸어?”

“기여어!”

선을 몇 번 그어서 동물들을 그렸다.

솔직히 한 번쯤은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그림 아닐까.

저 구름은 어느 걸 닮았네.

저 구름은 뭔가 코끼리를 닮았네.

나 역시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사진을 찍어서 그림을 그릴 생각은 못 했다.

머릿속에나 그렸지.

“시하는 진짜 천재야. 천재.”

시하가 그린 이거 픽시브에 올려도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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