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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화 (304/500)

304화

사우나에서 실컷 더위를 만끽했다.

밖으로 나오자 아이들이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형아. 시언해.”

“땀도 많이 흘렸으니까 이제 진짜 시원한 데로 가볼까?”

“어디?”

“바로 아이스방이라는 곳이야.”

아이스방!

오래 있으면 춥지만 잠깐 있는 건 나쁘지 않은 그곳.

시하랑 손잡고 가는데 이글루가 보였다.

실제 눈이 아니라 모형이지만 나름 아이스방 느낌이 팍팍 났다.

“시하야. 이게 눈으로 만든 집인 이글루야.”

“아?”

시하가 이글루를 만지다가 똑똑 두드렸다.

“눈 아냐.”

“응. 원래 눈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는 그냥 모양만 똑같이 만든 거야. 안에 들어가 볼까?”

승준이 눈을 빛내며 ‘내가 먼저!’라고 말하며 안으로 쏙 들어갔다.

하나와 시하도 따라 들어갔는데 엄청 시원한 곳이라서 아이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형아 눈 이써!”

아이스방이라서 그런지 벽에 실제 딱딱한 눈이 있었다.

아이들이 시원해서 신이 나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구경했다.

충분히 시간을 가진 뒤에야.

“이제 나갈까? 춥지?”

“형아. 추우니까 시하랑 부터 있어야 해~!”

“응? 나가면 되는데?”

“아냐.”

시하가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내 위에 털썩 앉았다.

승준과 하나가 그 모습을 보더니 양옆으로 와서 나를 끌어안았다.

“시혁이 형아. 따뜻해진다!”

“시혀기 오빠. 따뜻해?”

“어. 엄청 따뜻해졌네.”

근데 얘들아. 그냥 나가면 되는데 꼭 여기서 남극체험을 해야겠니?

그리고 저기 앉아있는 교수님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계신걸? 하나야. 이제 떨어지자.

“후후후. 여보. 저 좀 추워요.”

“어? 어?”

“어깨가 추운데 누가 좀 감싸줬으면 좋겠네~”

“흠흠.”

옆에 있던 백동환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형님. 춥습니다.”

거대한 곰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시하를 보았다.

“이제 진짜 나가자.”

“아냐!”

“밖에 아직 안 해본 엄청난 게 있더라.”

“!!!”

궁금한지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이게 한 코스 돌 때마다 가족 단위로 우르르 움직이니 대인파가 이동하는 느낌이다.

“여기는 마사지 기계가 있는 곳이야.”

“마사지?”

“응. 저기 의자에 눕거나 발만 마사지 받거나.”

“!!!”

교수님은 이미 승준 엄마랑 같이 의자에 누워서 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다.

옆에 따라간 하나도 누워 있다.

시하랑 나도 같이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옆에 누웠다.

일렬로 이렇게 많은 마사지 기계가 있다니.

“으윽.”

딱딱한 기계가 움직이는 게 등으로 느껴졌다.

“시원하다.”

“아아. 시언하다~”

시하도 옆에서 날 따라 시원하다고 한다.

“시하는 아직 시원할 나이가 아닌데?”

“아냐. 시언해.”

그렇게 한동안 꿀렁거림을 느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이 솔솔 온다.

“드르렁~”

“응?”

“형아. 아찌 자.”

“그러네.”

한쪽에 있던 손님이 잠에 빠져 계셨다.

저렇게 안마를 받으면서 잘 수 있다니. 엄청나신 분이다.

시하는 그게 신기한지 내게 속삭이며 말했다.

“형아. 진짜 자?”

“그럴걸?”

“숨 시는지 코에 화긴해 보까?”

“그건 좀.”

“시하 아라. 이케 손가락으로 대면 대.”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물론 손가락으로 숨 쉬는지 확인이 되긴 한데…….

저런 말을 하니 시하가 완전 갓난아기 때가 생각이 난다.

아무 움직임 없이 자고만 있어서 살아있는지 궁금해 코에 검지를 갖다 대어 보았다.

“흠흠. 이제 몸도 개운하게 풀렸으니 가장 중요한 일이 있어.”

“모야?”

“바로 맛난 음식 먹는 거야.”

“!!!”

***

찜질방 하면 역시 식혜와 삶은 달걀을 먹어야 했다.

안에 식당도 따로 있는 것 같지만 일단 이것부터 먹고 싶었다.

우리는 떠들썩한 곳에 빙 둘러앉아서 식혜를 쪼옥 마셨다.

“형아. 마시써!”

“맛있지? 그리고 달걀도 같이 먹는 거야.”

“아아!”

달걀을 쥐려고 하는데 오상환 교수가 제지했다.

“잠깐!”

“네?”

“그냥 먹으면 재미가 없지!”

“아닌데요. 재밌는데요?”

“아니야! 시하도 기대할 거야. 바로 게임을 말이야!”

옆에 있던 백동환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여기까지 와서 게임을 해야 한다고? 대체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어떤 게임이죠?”

“사실 여기에 삶은 달걀뿐만 아니라 날달걀도 있지.”

“헐…….”

삶은 달걀을 샀을 뿐만 아니라 날달걀 역시도 샀나 보다.

바구니가 심상치 않다.

“형아. 날달걀이 모야?”

“아. 그냥 계란후라이할 때 물처럼 나오는 거 있지? 그게 날달걀이야. 삶은 달걀은 까서 먹는 거고. 그건 알지?”

“시하 아라!”

전에 삶은 달걀을 먹었으니 알겠지.

아무튼, 삶은 달걀도 그냥 못 먹겠구만.

“날달걀을 고르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저기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오기.”

“으엑! 완전 벌칙이잖아요…….”

가끔 노래 대회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계단처럼 한 칸 오를 수 있는 높이의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들도 꽤 있는데 저기 위에는 안 올라가는 게 신기하기는 했다.

그렇게 큰 무대는 아니기도 했고.

“그럼 시작한다!”

아이들도 흥미진진해졌다.

저 많은 달걀 중에 날달걀은 딱 하나.

먼저 고르는 사람이 유리할 수도 있다. 그나마 확률적으로 말이다.

“누가 먼저 할래요?”

“나! 나!”

승준이 먼저 덥석 하나를 뽑더니 그대로 머리에 톡, 하고 때렸다.

“아파!”

달걀 깨는 소리보다 머리 깨지는 소리가 났는데? 삶은 달걀이 아니라 돌 아니야?

“승준아. 안 깨졌는데?”

“어? 왜 안 깨지지? 다시 한번.”

머리에 다시 콩 하고 때리니 그제야 깨졌다.

“됐다!”

“다음은 하나가 할래~”

하나도 하나 쥐고 성공.

그다음부터 순식간이었다.

승준 엄마도 손쉽게 빠져나왔다. 백동환도 마찬가지.

이제 남은 사람은 교수님, 나, 시하.

달걀은 5개.

“교수님 날달걀 몇 개죠?”

“2개만 넣었는데.”

“으엑.”

60퍼센트의 확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형아. 시하도 하께.”

“응.”

덥석 하나 잡더니 그대로 머리에 콩, 하고 내리찍는다.

“아야!”

아무래도 시하도 성공인가 보다.

역시 금손의 이시하. 날달걀을 고를 수 있는 확률인데도 그걸 피해간다.

“형아. 아코야.”

“응. 바닥에 깰까?”

“아냐. 머리에 깨.”

탁 하는 소리가 났지만, 달걀은 깨지지 않았다.

“형아 머리에 깨볼래.”

“아?”

“힘껏 해봐.”

“아아.”

탁! 어라? 아프긴 하네.

“형아 갠차나?”

“깨졌어?”

“아니.”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떨어뜨리는 거로 삶은 달걀을 까주었다.

시하는 야금야금 베어 물면서 식혜를 쪼옥 빨았다.

눈이 커진다.

“형아. 마시써!”

“푸흡. 형아가 같이 먹으면 맛있다고 했지?”

맛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남은 달걀은 앞으로 4개. 50퍼센트의 확률.

“교수님부터 하실래요?”

“허허허. 먼저 해.”

“아니죠. 장유유서라고 어른부터.”

“허허허. 요즘 누가 그걸 따지나.”

어쩔 수 없이 가위바위보로 정했는데 나 먼저 뽑을 수밖에 없었다.

달걀을 잡았다. 느낌이 싸했다.

그래. 날달걀을 잡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안에 액체가 울렁울렁거리는 게 느껴졌으니까.

어쩔 수 없이 머리에 툭 하고 터뜨렸다.

“형아!”

시하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흰자가 양머리에 주룩주룩 흘러내렸으니까.

수건에 터뜨려서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은 걸렸다고 좋아했다.

“푸하하. 시혀기 형아 당첨이다!”

“시혀기 오빠 노래 불러?!”

“어머.”

“으하하. 형님. 기대하겠습니다.”

“앗싸! 이 정도 확률이면 괜찮지!”

교수님은 신이 나서 하나를 골랐다.

하지만 표정이 안 좋아하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수님. 당첨이죠? 어서 머리에 깨세요.”

교수님은 똥손이었다.

***

사람들이 무대에 설 일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만 나는 연극 오디션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때보다 상황이 더 쪽팔렸다.

갑자기 쉬고 있는데 누군가 무대 위에 서서 노래 부르고 있는 거잖아.

“이거 민폐 아닙니까?”

“여기 이렇게 떠들썩한데?”

“그건 그렇죠.”

오상환 교수의 말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럴 때 같이 벌칙 받는 입장에서 동의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어쩔 수 없어. 게임에서 져서 벌칙을 받는 거니까. 벌칙은 물릴 수 없지.”

게임에 진심인 것처럼 벌칙까지 게임의 연장선인가 보다.

제길. 왜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십니까!

교수님. 요즘 스트레스가 극심하세요?!

“형아. 하팅!”

“그래.”

“아빠 화이팅!”

“아빠 잘해!”

“고맙다.”

나는 교수님에게 장유유서 드립을 먹였지만 역시 아까와 같이 그런 거 없다면서 되돌아왔다.

순서는 전통적인 게임 가위바위보로 결정되었다.

졌다. 내가 제일 먼저 무대 위에 올라야 했다.

저벅저벅.

무대 위에 올라가니 다른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게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 신성한 공간으로 취급받고 있었으니까 말이지.

아, 갑자기 얼굴 들기가 너무 민망하네.

그래! 여기가 통역해 주는 장소라고 생각하자. 많은 사람 앞에서 강연을 해줘야 한다.

게임 대회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적지 않나.

“후으읍.”

노래는 1절만 부르고 내려오면 다들 잊어줄 거다.

전주와 간주도 없으니 대략 1분이면 충분하겠지.

그보다 적을 수도 있다.

“형아. 시하 개구리 노래 듣고 시퍼!”

“어? 어, 그래.”

선곡이 나왔다.

아니! 여기 무대에서 동요 부르는 건 너무하잖아!

근데 의외로 빨리 끝나서 좋을지도?

빨리하고 끝내자!

“우물 안에~! 개구리 한 마리!”

시하가 요구에 응해서 기뻤는지 무대 위로 퐁당 올라오면서 다음 소절을 부른다.

“퐁당퐁당 점프한다!”

“뒷다리가 쭈욱! 혓바닥이 쭈욱!”

“팔짝팔짝! 우물 나왔네!”

다들 노랫소리에 쳐다본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우물우물. 개구리가!”

그런데 여기 찜질방의 장점은 애들이 많다는 것.

가족 단위로 와서 그런 거 같았다.

부모들은 손뼉을 치며 네 박자를 맞춰주었고 아이들은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부끄러움이 덜해진다.

역시 한국은 어릴 때부터 떼창 문화가 발달해있지!

“뒷다리가 쭈욱! 혓바닥이 쭈욱!”

“팔짝팔짝 우물 나왔네!”

끝났다.

막상 해 보니까 다들 떼창으로 부르고 좋아해 줘서 덜 쪽팔렸다.

시하가 위로 나와서 같이 불러줘서 살았다.

“시하야. 고마워.”

“형아. 노래 재미써.”

“푸흡. 그래.”

나는 무래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 봤자 그냥 계단 하나 내려온 것에 불과하지만.

근데 위에 있는 교수님의 얼굴이 긴장이 가득했다.

아, 내가 이 뒤에 노래해야 해?

왜 먼저 안 했지?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데?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크흠.”

다음은 교수님이 나왔다.

어? 어? 나보다 더 쪽팔릴 것 같은데? 뭐 부르시려나?

교수님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진짜 이러지 맙시다…….

나는 왜 듣는 쪽이 벌칙을 받는 건지 모를 기분이 되어버렸다.

***

캠핑 셋째 날은 대충 아침을 먹은 다음에 다시 정리했다.

굉장히 즐겁고 좋았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날이 되어 보니 역시 이렇게까지 세팅을 하는 캠핑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귀찮은 건 좀 그래.

“형님! 캠핑의 갬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정리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아, 그래?”

나는 아니었다.

“형아. 즐거어.”

“시하는 치우는 게 즐거워?”

“아냐. 형아랑 가치해서 재미써.”

“아, 그래?”

아무튼, 시하가 재밌어하면 됐지.

그래도 식재료랑 이것저것 다 먹었기 때문에 짐은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짐이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자,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승준네와 인사한 다음 차를 타고 집을 향했다.

나는 집에 도착한 후에 짐만 정리하고 시하의 그림을 편집했다.

이번 녹화는 내가 그림을 합치고 쪼개서 퍼즐처럼 맞추는 작업을 해야 했다.

자막도 넣고 완성해서 그대로 너튜브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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