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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화 (301/500)

301화

그렇게 웃겼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했다.

즐거워서 나도 모르게 많이 먹다 보니 배가 너무 불렀다.

그래도 커피 마실 여유 공간은 있었다.

“좋다.”

“조타!”

시하도 의자에 앉아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렇게 여유롭게 있지만 사실 할 일은 남았다.

앞에 있는 그릇들을 설거지해야 했으니까.

오상환 교수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편의시설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을 테니까 지금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설거지할 사람을 정할까?”

게임 엄청 좋아하시네.

아재 개그로 텐션이 한 번 죽은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

옆에서 듣던 시하는 게임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게임!”

“시하도 게임 하고 싶어?”

“시하 찌를 잡자 잘해. 재미써!”

아니. 너 게임 못했어…….

다시 한번 쥐를 잡자 게임을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그 기대를 크게 빗겨나갔다.

“미안하지만 같은 게임은 안 하는 게 룰이지.”

“아찌. 찌 안 자바여?”

“당연하지. 다른 게임 할 거야.”

쿠궁!

시하의 머리에 그런 자막이 떠오른 것 같다.

기껏 익숙해진 게임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

“교수님. 어떤 게임이죠?”

“이어말하기 게임. 앞에 두 글자를 말하면 뒤에 두 글자를 말해서 단어를 완성시키면 오케이.”

“아하. 그 게임. 근데 시하랑 아이들은 어렵지 않을까요?”

“괜찮아. 쉽고 평소에 쓰는 말을 낼 테니까.”

그럼 뭐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시범이 있겠습니다.

“그럼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여주지. 자, 맞춰봐. 쟁반!”

“짜장.”

“스핑!”

“크스.”

아이들도 이게 무슨 놀이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시하도 ‘아라써. 시하 아라써.’를 연발했다.

이미 쥐를 잡자는 시하의 머릿속에 떠나고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내요?”

“당연히 내가 준비했으니.”

“응?”

“물론 나도 게임에 참가할 거야. 한 명의 탈락자가 나온다면.”

하긴 문제 내는 사람이 꼭 필요하니까 여기서 한 명이 탈락을 해줘야 한다.

애들이 탈락하면 어쩔 수 없지만.

“형아. 시하 잘해.”

“아직 하지도 않았어.”

이시하. 게임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남자.

하지만 실력은 그 자신감에 반비례하는 것 같다.

괜찮다. 운에 맡기는 게임은 잘하는 편이니까!

“그럼 시작한다!”

생각보다 아이들에 맞춰서 쉬운 단어를 내셨다.

선글라스, 크레파스.

쌍둥이들에게 이런 단어 주는 건 좋은데 시하에게 어려운 거 주는 거 아니겠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겠다.

근데 저 손가락 봉은 언제 준비한 거야?

백동환의 짐에는 뭐가 많네.

“간다. 시하야.”

“아아.”

“술래!”

셋을 세기 시작한다.

나도 아는 단어다. 술래잡기. 애들도 자주 하는 게임이라서 아주 쉽다.

이거라면 못 맞출 리가 없다!

“형아!”

“땡!”

술래 형아가 뭐야. 술래가 형아라는 거야?

하지만 이대로 땡일 수는 없다.

“잠깐 타임!”

“아니. 시혁아. 뭔데?”

“술래가 형아다. 말 되지 않습니까.”

“이건 억지다. 진짜 억지다.”

“교수님! 금수도 은혜를 안다고 하던데 아재 개그를 받아준 시하에게 어떻게 그런…….”

그때 시하가 때마침 일어나서 허리에 둥글게 손을 얹었다.

“네 이년!”

“크흑.”

교수님의 침음성.

다들 시하의 반복에 빵 터져 웃었다.

이 기가 막힌 타이밍 뭐냐고.

시하야 게임을 잘해야지! 웃기길 잘하면 되니?

아니, 이런 게임은 웃긴 게 나와 줘야 하긴 하는데 말이야.

“아, 안 돼. 땡. 땡이야.”

“그럼 아이들에게 어려우니까 기회 2번 주세요.”

“알았어. 뭐, 그 정도면.”

“아니다. 세 번 주세요.”

“알았다.”

그렇게 기어이 아이들에게 기회 세 번을 주게 되었다.

백동환이 손을 들었다.

“혹시 문제 제가 내봐도 됩니까?”

“응? 아, 그래. 여기 프린터에 단어 적혀 있거든. 참고해.”

“하하. 제가 잘 참고하겠습니다.”

프린트가 오간다.

이렇게 보면 교수님은 어지간히 이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손가락 봉을 백동환이 드는데 너무 작아 보였다.

“백동 형아. 봉 작아져써.”

“마술이야.”

“!!!”

그냥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것뿐이다.

그렇게 우리 시하에게 기회가 2번 남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 게임은 오래 갈 것 같다.

“시하야. 다음에는 당황하지 말고 제대로 말하는 거야. 알았지?”

“시하 잘해. 실수야. 실수.”

진짜 잘하는 거 맞지?!

친구들이 흔히 하는 게임 부심이 슬쩍 지나가는 것 같지만 아무튼 형아는 믿을게!

원래 게임 부심 부리다가 털리는 게 정석이기는 하지만!

“형님부터 갑니다.”

“그래. 해 봐.”

“시하!”

“…귀여워?”

“땡! 정답은 시하페페입니다. 귀여워는 다섯 글자 아닙니까.”

“크흠.”

아, 시하페페가 문제였어?

그래도 시하 귀여워는 맞는 말이니까 반은 맞춘 거 아니야?

이렇게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시하는 옆에서.

“형아. 페페야. 시하페페! 시하 알고 이써써!”

“응. 그래.”

자기 알고 있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이거 진짜 게임 잘 못하는 사람이 하는 행동 패턴 아니야?!

뭐 귀여우니까 된 거 아니겠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또다시 설거지 담당이 되었다.

사실 저녁 준비할 때 별로 한 게 없긴 했다.

“그럼 다시 승준이부터. 승부!”

“차기!”

“하나야. 호루!”

“라기!”

“자, 교수님. 사자성어! 오매!”

“어? 사자성어? 오매… 기떡?”

“땡!”

정답은 오매불망. 아무래도 종이에 없는 사자성어에 당황했나 보다.

백동환 제법이다. 출제지에 없는 단어를 내다니.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 참. 문제는 이제 내가 내야지.”

탈락한 내가 내는 게 맞는데 자연스럽게 백동환에게 넘겨버렸다.

교수님이 잘되었다는 듯이 덥석 물었다.

“그래! 이건 취소야. 취소!”

“그건 아니고요. 교수님. 이미 당첨되셨어요.”

“크흑.”

이제 한 명만 더 뽑으면 된다.

다음 차례는 다시 시하였다. 아주 의욕이 넘치나 보다.

두 손을 주먹으로 쥐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럼 시하야. 한다?”

“형아. 해.”

“바이!”

“바이! 바이바이야! 시하가 마니 해!”

“…어? 정, 정답!”

그때 옆에 있던 오상환 교수가 잠깐! 하며 내 어깨를 잡았다.

“답은 바이올린일 텐데?”

“바이바이도 맞잖아요!”

“단어가 아니잖아. 단어가!”

“아, 몰라. 맞다고요.”

“방금 몰라라고 했지?! 편파판정도 이런 편파판정이 없어!”

아, 왜! 내 동생 편 좀 들어주겠다는데!

그런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다시 게임을 재개했는데 결국 시하가 설거지에 당첨되었다.

우리 형제는 설거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

밤에 보는 벚꽃은 또 다른 운치를 준다.

길바닥에 설치된 조명에 벚나무는 아래위로 투톤으로 꽃잎이 물들어진다.

위는 어둡고 아래는 밝은.

“형아. 예뻐.”

“응. 예쁘지?”

설거지하고 이렇게 어두운 밤하늘에 우뚝 서 있는 벚나무를 보니 또 다른 힐링이 찾아온다.

의자에 몸을 뉘는데 노곤하니 잠이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우웅.”

시하가 주먹으로 눈을 비빈다.

졸린 게 분명하다. 옆에 있는 쌍둥이들도 눈이 풀려있다.

하지만 뭔가 더 놀고 싶어서 깨어있으려는 고집이 보이기도 한다.

“시하야. 이제 자자.”

“형아는?”

“형아는 아직 안 잘 건데?”

밤에 야식을 먹으며 술 마실 예정이다.

백동환이 그렇게 전해줬는데 나는 또 먹어? 하면서 의문을 건네긴 했다.

“시하도 안 잘래. 시하도 놀래.”

“푸흡. 그럼 우리 잘 수 있는 캠핑카로 가 볼래? 거기 안이 궁금하지 않아? 침대도 있대.”

“정말?”

“응.”

우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손을 잡고 렌트한 캠핑카로 이동했다.

백동환과 우리 형제는 오늘과 내일을 여기서 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도 보였고, 티비도 보였다.

싱크대와 화장실, 샤워실도 있었다.

과연 이게 차인지 모텔인지 모르겠다.

“차가 고정되어 있는 건가?”

말이 캠핑카지 이 자리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것 같다.

시하는 침대를 보더니 탁탁 두들겼다.

“형아. 침대.”

“올려줄까?”

“올라가. 올라가.”

시하가 침대 위로 올라갔다.

푹신푹신한지 꾹꾹 누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시하를 안고 뒹굴었다.

“재미써.”

“푸하하.”

그렇게 놀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쌍둥이들이 들어왔다.

“시하야. 나도 놀자!”

“하나도. 하나도.”

앞에 신발을 벗고 들어왔는데 곧장 침대 위로 올라왔다.

“앗. 잠시만!”

침대가 그렇게 크지 않다.

위로 네 명이나 들어오니 꽉 차다 못해 끼었다.

“으악!”

“푸하하. 시혁이 형아. 내 밑에 있다!”

“시혀기 오빠. 왜 구겨져 있어?”

너희들 때문이잖아?!

“형아. 퍼즐이야. 퍼즐.”

그거 이때 쓰는 표현이었던가?

전혀 딱 맞지 않는 퍼즐인데? 그거 있잖아. 안 맞는데 억지로 끼워 넣는 거.

“일단 나 좀 내려가면 안 될까?”

“안 대!”

“시혁이 형아 여기 있어야 해.”

“마자.”

대체 왜?! 여기서 뭐 어떻게 놀자고?!

나는 누워서 옴짝달싹도 못 한 체 그대로 있었는데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음을 끊이질 않았다.

“시혁 씨. 괜찮아요?”

“아, 네.”

승준 엄마가 캠핑카에 들어와서 살았다.

곤란하다는 듯 우리를 쳐다봤다.

하긴 쌍둥이들이 스스로 여기 찾아와서 문을 열 리가 없지.

“얘들아. 시혁이 형아 놔줘야지. 그렇게 하면 너무 불편하잖아.”

“네!”

말 잘 듣는 쌍둥이들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형아.”

“시하야. 이제 놔 줄래?”

“시하는 형아랑 가치야.”

코알라처럼 나를 안고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그냥 술 마시지 말고 이대로 잘까?

“형아. 시하 잘래.”

“응. 역시 피곤하지?”

“아아.”

승준과 하나도 하품을 한다.

구경할 거 다 했으니까 이제 참을 수 없는 거다.

“시하야. 나도 같이 자자.”

“하나도.”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하나와 승준을 침대 위로 올렸다.

“형아는 여기 있을 테니까 셋이 자.”

시하가 눈을 감았다.

셋도 마찬가지다. 침대 위에서 셋이 자고 있으니 귀여웠다.

승준 엄마와 둘이서 아이들이 잘 때까지 지켜보다가 나왔다.

“으윽! 피곤하네요.”

“오늘 애들이랑 놀아줘서 고마워요.”

“뭘요. 저도 좋아서 하는 건데요.”

“그래서 야식은 저희가 다 준비했어요. 여기 캠핑카 앞에서 마셔요.”

“오!”

캠핑카 앞에는 나무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원래 이곳을 렌트하면 따라오는 옵션이었다.

커다란 천막도 처져 있었는데 입구가 뻥 하고 뚫려있다.

언제 술을 가져왔는지 이미 세팅은 다 되어 있었고, 남은 김치찌개랑 꼬지도 저 멀리서 들고 오고 있었다.

“형님! 다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잘했어.”

“설거지 적게 할 수 있게 버릴 수 있는 것만 들고 왔죠. 저기 있는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끝입니다.”

“그러네.”

김치찌개야 아침에 또 먹을 수 있는 양이니 설거지가 필요치 않았다.

“자, 그럼 건배!”

“건배!”

쨍.

잔을 부딪치니 이제야 뭔가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과 노는 것도 꽤 괜찮지만 이렇게 어른들과 어울리는 것도 또 다른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크으. 형님 좋지 않습니까.”

“뭐, 나쁘지 않네.”

“또 다른 곳으로 캠핑 가고 싶지 않습니까?”

“난 충분한 거 같은데?”

그 말에 승준 엄마가 동감한다는 듯이 웃었다.

오상환 교수는 크흠 헛기침을 하며.

“뭐, 가끔 이렇게 캠핑 가는 것도 좋은 거 같아. 다음에 아이들이랑 여기 캠핑카에서 편하게 즐기는 것도 좋겠어.”

백동환이 그 말을 받았다.

“교수님. 바다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낚시랑 같이. 크으.”

“오오. 해봤나?”

“당연하죠.”

오상환이 반짝반짝 눈을 빛냈지만, 옆에 있는 승준 엄마를 힐끗 보며 정신을 차렸다.

“뭐, 기회가 된다면. 하하하.”

“하하하. 기회야 제가. 크흠.”

“하하하.”

오상환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무래도 둘이서 캠핑 가는 건 무리겠지. 옆에 승준 어머니가 계시니까.

“시하에게 참 좋은 거 같아. 이렇게 예쁜 색감도 보여주고 말이야. 특히 아지트 같은 텐트 참 마음에 들어 한 거 같은데.”

“형님은 참.”

“응? 왜?”

“아닙니다.”

나는 술잔을 들이키고 김치찌개를 입에 넣었다.

후르륵.

크으. 이거지.

“밤에 꽃놀이하는 것도 뭔가 각별한 거 같아. 여기 걷기도 좋고.”

“역시 갬성을 이제야…….”

“그건 아니고.”

“흠흠. 형님. 근데 연극은 어떻게 됐습니까? 영상 스토리 좀 썼다고 안 했습니까?”

“아, 그거? 아마 오늘인가 내일인가 연극 홍보 영상 올라온다던데?”

“연극 동아리 해오름 맞죠?”

“응.”

“아! 올라왔네!”

“어? 그래? 어디 어디?”

백동환이 모두가 볼 수 있게 폰을 세웠다.

그리고 영상이 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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