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결국, 설거지는 나랑 시하 그리고 승준이 당첨되었다.
슈퍼패스가 통하긴 했는데 시하가 또 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그릇을 모아서 편의시설로 들고 갔다.
“시하하고 승준이는 여기 옆 싱크대에 헹궈줘. 깨끗이 해야 한다?”
“아아.”
둘이서 의자 위로 올라가 고무장갑을 끼고 대기했다.
백동환이 어린이용 고무장갑을 준비한 덕분에 애들도 무사히(?) 설거지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이 준비성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짐이 많았구나!
“거품 빨리 묻힐게.”
“형아. 시하가 마니 도아주께!”
“시혁이 형아. 나도. 나도! 설거지 잘해!”
“둘 다 해본 적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지?”
둘은 쌍둥이가 아닌데 동시에 ‘아니!’ 하고 외쳤다.
너희들…. 해보지도 않고 자신만만했었냐!
웃긴 짬뽕 같으니라고.
“자. 간다.”
달그락. 달그락. 뽀득. 뽀득.
하나둘씩 전해주며 물을 틀어주었다.
쏴아아.
아이들 둘이 나란히 서서 헹구기 시작했다.
근데 물 하나에 둘이 붙어있어도 잘하려나?
보니까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잘도 헹구고 있었다.
뽀득뽀득.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나가 도도도 달려왔다.
“시혀기 오빠!”
“응? 하나야. 왜?”
“도와주러 와써.”
“설거지를?”
“아니! 다들 심심할까 봐 노래 들려주러!”
그에 찬성하는지 시하랑 승준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시하도! 시하도!”
“나도! 나도!”
“그럼 오빠랑 시하도 같이 부르자.”
그렇게 시작된 노래. 아니 노동요.
“퐁당퐁당 접시 던지자.”
멜로디는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라는 동요였다.
접시를 왜 던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하가 받아서 불렀다.
“형아 몰래 접시 던지자.”
그러니까 접시를 왜 던지냐고! 심지어 누나가 아니라 형아로 바뀌었어!
“거품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헹구고 있는!”
시하가 신나서 다음을 이어 불렀다.
“우리 형아 손등을! 설거지해 주라.”
대체 내 손등을 왜?!
사실 개사에는 원래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법이다.
말이 되는 안 되든 말이다.
아이들은 설거지하면서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옆에서 들으니 설거지가 즐겁게 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뭐든 즐겁게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이 노래는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체 내 손등은 몇 번이나 설거지 당하는 거지?
***
설거지를 끝내고 오니 본격적으로 꽃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승준 엄마가 우리 오는 시간에 맞춰서 커피를 끓이셨다.
물론 아이들은 핫초코를 마셨다.
“으음. 좋다.”
“형아. 조아.”
둘이서 의자에 앉아서 나무에 있는 벚꽃을 보았다.
이렇게 쉬는 게 힐링이지. 캠핑도 나쁘지 않을지도?
지금까지 일만 해서 이렇게 쉬는 게 더 달콤한 것 같았다.
아니. 이렇게 일하는 듯이 준비해서 지치게 만든 다음 의자에 쉬게 만들어 즐기게 하는 걸까?
나 캠핑 갬성의 메커니즘을 알 것 같아!
그걸 백동환에게 말하자.
“형님!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준비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지 않습니까.”
“일이 아니라?”
“아직 갬성이 부족하십니다!”
그놈의 갬성이 대체 뭔데? 나도 좀 알자!
아무래도 모든 과정을 즐기는 경지가 캠핑 갬성인 모양이다.
뭐야. 그게. 무서워…….
무공의 경지도 아니고 말이야.
“형아. 시하는 재미써써.”
아무래도 시하는 캠핑의 갬성이 있나 보다.
“그럼 나중에 시하 혼자 캠핑 오겠네?”
“아냐. 시하 재미업써. 형아랑 가치야 재미써.”
알고 보니 캠핑 갬성이 아니라 형아 갬성이었나 보다.
모든 걸 형아랑 함께하면 재밌는 경지라니…….
시하가 말하니 귀엽네?
역시 누가 말하는지가 중요하구나. 이렇게 또 한 번 깨닫는다.
“어? 꽃잎 떨어진다.”
“예뻐!”
바람이 불면서 꽃잎 한두 개가 떨어지는 것 같다.
나는 그걸 보며 괜히 시하를 놀리고 싶어졌다.
“시하야.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정말?!”
“응.”
“어떠케 이러져? 꼿니피 시하에게 말해져? 소언 세 개 들어준다고?”
“아니. 소원 세 개까지는 아니고.”
소원 세 개는 너무 많지 않을까?
“모야. 한 개만 들어져?”
“어? 응.”
“꼿니피 레드 아니네.”
레드면 소원 세 개 들어주니?
어?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 아닌데? 난 시하가 꽃잎 잡으러 떠날 줄 알았다.
근데 아무래도 실망한 것 같다.
“형아. 여기 이써. 시하가 꼿니피 마니 잡바서 소언 들어주께.”
알고 보니 흥미진진한 것 같다.
양으로 승부 보려고 하다니 제법이다.
“앗! 나도! 나도!”
“하나도! 하나도!”
의자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쌍둥이들도 나섰다.
그렇게 아이들이 나무 아래로 모여서 꽃잎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후르륵.
나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지켜보았다.
뭐 이것도 하나의 재미지.
“형님. 꽃잎 잡는 것도 캠핑의 갬…….”
“조용히 해라.”
“옙!”
다시 한번 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떨어지는데 시하는 손을 뻗어서 잡으려고 했다.
“안 대!”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꽃잎.
시하는 두리번거리다가 떨어진 꽃잎을 주웠다.
“잡아따!”
“시하야. 줍는 거 다 봤어.”
“아코! 들켜써!”
설마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니지?
승준이 콧김을 후욱후욱 뿜었다.
“아 진짜! 너무 안 잡힌다!”
“하나도 놓쳐써.”
“근데 하나야. 이렇게 어려우니까 진짜 소원 들어주는 걸 거야.”
“!!!”
승준의 말에 하나와 시하가 정말 그런가 싶어서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이 놀이는 계속될 것 같았다.
뭐, 하다가 지치면 돌아오겠지.
“근데 아직 꽃잎 떨어질 때는 아니지?”
“뭐, 많이는 안 떨어질 것 같긴 한데요.”
“날씨도 좋고 말이야.”
“응? 어디 가시게요?”
“꽃잎 떨어뜨려 주러.”
이왕 이렇게 된 거 모두 한 번 잡으면 재밌지 않을까.
나는 백동환이 가져온 작은 소쿠리를 잡았다.
이건 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꽃잎을 넣기 참 좋았다.
열심히 주변의 꽃잎을 줍고 있는데 시하가 불쑥 찾아왔다.
“형아. 모해?”
“형아가 꽃잎 주워서 떨어뜨려 줄게. 그거 잡아.”
“시하도 도울래!”
“나도!”
“하나도!”
그렇게 넷이서 꽃잎을 열심히 주운 결과.
소쿠리에 한가득 담겨있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 머리에 높이 소쿠리를 들었다. 바람은 없다. 그대로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살랑살랑 떨어질 것 같다.
“자. 준비됐지?”
“아아. 시하 자바!”
“나도 많이 잡아서 소원 많이 빌 거야.”
“하나는 노래 더 잘 부르게 해달라 할 거야.”
“진짜. 간다. 다들 준비! 시이~작!”
꽃잎이 가득 떨어졌다.
아이들이 손을 뻗으며 열심히 잡으려고 했다.
시하도 마찬가지.
하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꽃잎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앗 잡았다!”
먼저 승준이 잡아챘다.
하나도 얼굴에 붙어서 쉽게 잡았다.
시하만 다 놓쳐서 허망한 얼굴이었다.
“형아. 시하 못 자바써.”
“푸흡. 괜찮아. 괜찮아. 시하는 이미 잡았는걸.”
“아?”
실망한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더 보고 싶지만.
“여기 있네?”
나는 시하의 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서 손에 얹어주었다.
시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하 머리가 잡아써?”
“응. 시하 머리카락이 휙휙 움직여서 잡았지.”
“시하 머리 대다내!”
시하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쓰담쓰담.
마치 잘했다는 듯이 칭찬하는 것 같았다.
물론 셀프로 하고 있는 거지만.
“이제 소원 말해야지.”
“아아. 소언?!”
“응.”
이번 연도에 소원을 아주 많이 비는 것 같지만 뭐 괜찮겠지.
“꼿니피 떨어지지 말고 친구들이랑 가치 이써여. 잘 노라여.”
“응? 무슨 말이야?”
“꼿니피 친구들이랑 떨어져써. 다시 또 보게 소언 빌어져써.”
“!!!”
“시하는 친구 일곱 명인데 꼬니피 다섯이야. 근데 떨어져써.”
벚꽃을 보면 알겠지만 꽃잎 다섯 개가 붙어있다.
시하는 그걸 친구들이라고 본 것이다.
너무 예쁜 소원이라 정말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다시 만날 거야.”
“정말?”
시하의 말을 들은 승준과 하나가 자신의 꽃잎을 시하에게 주었다.
“시하야. 새 친구야. 두 개야. 두 개.”
“하나도 두 개야. 새 친구!”
“새 친구랑 함께야?”
시하 손에 꽃잎이 5개가 모였다.
“그러면 이 애들은 새 친구로 합쳐줄까?”
“합쳐?”
“응. 풀 같은 거로 붙이는 거지. 동환야. 풀 있어?”
백동환이 믿고 맡기라는 듯이 가슴을 두들겼다.
있다는 거지?
“형님. 풀은 없는데 코팅지는 있어요.”
“대체 코팅지는 왜 있는 거야? 없는 게 뭐야?”
“하핳! 갬성이죠! 갬성! 단풍잎을 코팅에 넣으면! 크으”
“그놈의 갬성. 아무튼, 그거 하나 줘봐.”
코팅지에 벚꽃 다섯 개를 붙였다.
그리고 가위로 오려서 시하에게 주었다.
“친구 만나써!”
“시혁이 형아. 나도 갖고 싶은데!”
“하나도!”
애들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다시 꽃잎을 주어서 하나씩 만들어준 다음에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저거 진짜 별거 아닌데 이렇게 좋아하다니.
근데 벚꽃 보는 것보다 어째 만드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참여할 수 있는 놀이 같아서 그런가?
“형아. 새 친구들 다 만나써.”
“그러네.”
“이제 안 떨어져.”
“그래서 좋아?”
“안 떨어져서 조아.”
어쩌면 시하가 누군가와 떨어진다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랑 계속 함께 놀고 함께 있어하고 싶은가 보다.
친구들도 마음대로 초대하는 건 어쩌면 시하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랑 떨어져 있어서 그런 걸까?’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모야?”
“그냥 귀여워서.”
“아냐. 시하 머시써. 형아 머시쑤니까.”
“그래. 멋있다.”
너무 과한 생각이겠지?
벚꽃을 봐서 괜히 감상적이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
꽃구경은 이제 된 거 같으니 아이들은 다른 재미를 찾았다.
캠핑이든 놀이든 어느 곳을 가나 모험이라는 동심이 있나 보다.
흥미진진한 눈을 한 채 텐트 안으로 진격하려고 한다.
사실 텐트라기보다는 천막 같지만.
하지만 거대한 몸집을 가진 적에게 가로막힌다.
“잠깐! 텐트에 아직 들어갈 수 없어.”
“백동 형아. 왜?”
“안에 아직 세팅이 안 끝났거든.”
아직도 안 끝났어?!
나는 경악한 표정을 담아 백동환에게 보냈다.
“사실 안에 식탁이랑 의자를 넣고 싶었는데. 으음. 오늘은 거기까지 하면 일이 많겠죠?”
“지금도 충분히 많았던 거 같은데?”
“그래서 그냥 돗자리나 깔려고요. 애들 신발 벗고 놀기 좋잖아요. 애들아. 잠시만!”
백동환이 손수 돗자리를 들고 온다.
근데 돗자리라고 하기에는 뭔가 두세 개 더 많은데? 작은 돗자리들인가? 짐이 왜 이렇게 많아?
내 눈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동환은 돗자리를 깔았다.
아이들은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놀기 전의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다.
“하하! 다 됐다! 들어와도 돼.”
“아싸! 나 먼저!”
“아니야. 하나 먼저!”
“형아. 가치!”
시하야. 넌 왜 나를 찾니? 어서 그냥 들어가라구! 형아는 여유롭게 앉아서 꽃구경하고 싶어.
하지만 그 여유는 승준 엄마와 승준 아빠가 즐기고 있었다.
나도 즐기긴 했지만 더 의자에 푹 쉬고 싶은 마음이 있다.
“형아. 빨리! 대다내!”
뭔가 신기한 게 있나 보다. 물론 시하는 대단하지 않아도 대단하다고 하긴 하는데…….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텐트 안을 보니.
“어? 침낭?”
“하하하. 형님. 제가 침낭을 들고 왔습니다.”
“텐트 안에서 안 잘 거잖아?”
“하하!”
“웃지만 말고. 그런데 이것도 있었나?”
“당연하죠!”
백동환의 캠핑카에는 대체 없는 게 뭐야?
약간 뭐라고 할까? 백동환의 캠핑은 그런 느낌인 것 같다.
등산하기 전에 장비 같은 거 풀 세팅으로 준비하는 사람.
정작 등산은 그렇게 안 하면서 캠핑은 풀 세팅이다. 여기서 안 잘 건데 텐트와 침낭이 다 있다. 왜 가지고 온 거지? 아니, 원래 있었나?
“형아. 빨리 드러와!”
“어? 어. 그래.”
침낭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쌍둥이들이 둘이서 들어가 있었고, 하나는 시하가 빨리 들어오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시하야. 거기 한 사람만 들어가는 거야.
“형아. 빨리.”
“애들이 안 좋아할 수 없는 구성인데?”
옆에서 백동환이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애들이 놀거리를 풍족하게 하다니…….
언젠가 죽여버릴 거야…….
“빨리! 빨리!”
“네. 갑니다.”
한 침낭 안에 시하와 볼을 붙이며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