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6화 (296/500)

296화

크루아상이 완성되었다.

드디어 시하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초코를 묻히는 거. 어려운 건 아니고 그냥 초코 퐁듀에 푹 하고 찍으면 끝이다.

“형아. 초코 무더써.”

“응. 그렇게 하면 돼. 재밌지?”

“재미써. 승준, 하나가 마시께 머거.”

승준과 하나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생각했는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선물은 받는 사람도 좋아하지만 주는 사람 역시 그만큼 기쁨을 느낀다.

물론 이 선물이 다음에 보답받아야 해! 하나 줬으면 너도 하나 줘야 해! 하고 이익적인 모습으로 변한다면 그 기쁨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때로는 물질적인 교류가 아니라 기뻐하는 모습에서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하는 법이다.

“형님. 정말 맛있습니다.”

“넌 정말 먹고 있냐.”

“하핫! 제가 여기서 맛보기 담당이 아닙니까! 저 그래서 불려왔잖아요.”

“아닌데? 오븐 배달자로 불려왔는데?”

“진짜 오븐만 배달하라고 불렀다고요?!”

“응.”

“너무하십니다.”

그러면서 백동환은 크루아상을 입에 넣었다.

초코가 듬뿍 찍혀있는데 괜찮냐.

전혀 실망한 표정이 아닌걸?

“그래서 진짜 맛있어?”

“당연하죠!”

“어차피 컵케이크 보내준 보답을 너한테 하려고 했으니까 실컷 먹어. 아, 그렇다고 정말 실컷 먹지는 말고.”

“다 먹을 겁니다!”

“근돼.”

“저 근육 돼지 아닙니다! 통뼈라서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요!”

언제나 하는 주장이었다.

시하는 백동환을 빤히 바라보더니.

“백동 형아. 대지야? 코 빠져?”

“시하야. 그건 돼지 저금통만 코가 빠지는 거야.”

“!!!”

진짜 돼지도 코가 탈부착 되는 거로 안 건 아니겠지?

반응을 보니 그렇게 생각한 게 틀림없다.

“백동 형아. 정말 대지 코 안 때져?”

“응. 때지면 징그럽지 않아?”

“미사일 안 나와?”

“미사일까지 상상했었어?! 대체 그런 돼지는 어느 나라 병기야?!”

한국이 아닐까? 삼겹살을 좋아하니.

물론 그런 쓸데없는 병기가 나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린이집은 시하가 다 줘야 해. 알았지?”

“시하가 다 주께. 하나, 둘, 셋, 넷, 다섯.”

“형님! 시하가 셋이라고 말했어요!”

서이가 아니라 셋이라고 말한다고 백동환이 호들갑 떨었다.

시하 셋이라고 말할 줄 알아. 서이가 익숙해져 버려서 자꾸 발음하는 거지.

‘아아’ 역시도 말버릇 같은 거로 되어 버려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많이 줄긴 했지만.

“형아! 열 개 마자! 초코 열 개 대써.”

“그러네.”

선생님과 원장님까지 합치면 총 10개가 맞다.

나 역시도 딴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오븐을 열심히 돌리고 있다.

그런데 진짜 빵집도 아니고 이렇게 많이 만드네.

“이제 포장할까? 백동. 너도 도와라. 좀.”

“마자! 백동 형아 먹고만 이써!”

“아 저도 초코 찍는 거 도와줬지 않습니까.”

그래. 도와주긴 했지. 근데 그 초코 찍은 빵이 다 어디에 있더라? 네 배 속에 있던 거 같은데?

내가 굳이 이런 말을 안 하고 그저 바라만 보자 슬며시 포장 봉투를 꺼냈다.

“제가 다 할까요?”

하여간 미워할 수 없는 놈이다.

시하 마음에 캠핑의 불을 지핀 건 용서할 수 없지만 말이다.

***

오랜만에 시하의 펭귄 가방이 빵빵해졌다.

순식간에 홀쭉해질 예정이다.

“샘. 이거.”

“응? 시하야. 이거 뭐야?”

“하이투데이 선물!”

“와. 정말 맛있어 보이네.”

“마시써! 언장샘도 선물!”

원장님은 시하의 선물을 받고 고맙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혁이 만들었다는 걸 눈치챘지만 굳이 그걸 말하지 않았다.

그렇기보다는 시하가 제일 먼저 말했다.

“이 빵 형아가 만드러써여. 대단해여.”

실컷 자랑했다.

“시하가 초코 무쳐써여. 형아랑 시하랑 가치해써여.”

“응. 응. 언제나 둘이 같이하네.”

“형아랑 가치하면 재미써여. 세투야. 세투.”

“응. 응. 세트 메뉴네.”

시하는 먼저 선생님들에게 준 다음에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한다.

뒤에서 이미 빵을 본 쌍둥이는 눈을 빛내며 차례를 기다렸다.

“승준!”

“와아! 시하에게 화이트데이 선물 받았다! 이것 봐. 초코와 빵 색깔 부분이 사커공이지!”

“아?”

초코 부분을 굳이 검은색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빵 부분은 하얗지도 않은 갈색이었다.

“사커공 아닌데?”

“시하가 잘 모르네. 여기 빵을 뜯으면 하얀색이 나온다구.”

“!!!”

그건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물론 승준의 주장은 억지가 다분했지만.

하나도 크루아상을 받아서 좋아하고 있었다.

“뭔가 소라같이 생겨써. 그치 시하야?”

“붕대야. 붕대. 붕대 감고 이써.”

“응? 진짜 붕대 감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연주는 빵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상기된 표정을 본 재휘가 자기 것도 줄까? 라고 물어보자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응. 연주가 먹으면 난 좋아.”

“아, 아니야. 같이 앉아서 먹자.”

빵을 사랑하는 연주는 유혹에 넘어갈 뻔했지만 그래도 재휘가 못 먹는 건 안쓰러웠다.

재휘는 별거 아닌 일에 감동하고 있었다.

“연주 착해.”

“???”

시하는 종수에게도 빵을 주었다.

“어? 고마워.”

“종수 마니 머거. 키 커.”

“야! 지금도 너보다 크거든!”

“형아가 공부할 때 초코 머그면 조태.”

“아, 진짜? 앗! 너 내 말 안 듣고 있지!”

“군데 마니 머그면 이 아야 하니까 조그만 머거.”

“내 말 좀 들으라고! 네 말만 하지 말고.”

“시하 바빠. 다른 친구 져야 해. 바이바이.”

“야! 이시하!”

여전히 종수는 시하의 페이스에 말려버렸다.

시하는 빵을 줘서 뿌듯한 감정만 있을 뿐이다.

다음은 은우였다.

“은우! 이거 선물이야.”

“와! 이거 나 뭔지 알아. 크루아상이라고 하지?”

“초코 빵이야.”

시하는 크루아상이 뭔지 몰랐다.

은우는 시하의 말에 어? 크루아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의문을 지우고 뭐 아무렴 어때? 하는 마음을 가졌다.

“푸하하. 초코 빵도 맞지. 크루아상이든 초코 빵이든 맛만 좋으면 됐지 뭐. 고마워.”

“아아. 고마어~”

“푸하하. 고맙대. 푸하하.”

마지막으로 윤동에게 크루아상을 주었다.

“윤동.”

“응. 고마워.”

“마니 머거.”

“아껴 먹을게.”

“왜? 아끼면 똥 댄대. 똥!”

“어차피 먹으면 똥 되니까 그냥 아껴먹지 뭐.”

“!!!”

쿨한 윤동의 대답에 그런 엄청난 사실이! 하면서 시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어차피 똥으로 되는데 아껴서 똥 되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엄청난 진리를 알았다.

“아껴 머거도 대.”

“???”

시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름대로 결론을 내었다.

아껴 먹는 것도 괜찮은 거구나. 하고 말이다.

선생님이 손뼉을 짝 치며 집중을 시켰다.

“여러분. 조금 이르지만, 간식 먹을까요? 시하가 빵을 가져왔으니 선생님이 우유 한 컵씩 줄게요.”

“네!”

시하는 뭔가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선물하러 10개만 들고 왔다는 걸 말이다. 자신의 빵이 없었다.

가방을 바라봐도 안은 텅텅…….

“아?”

비어있지 않았다.

딱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한 개 더 마나?”

11개. 시하의 가방에는 크루아상이 하나 더 있었다.

선생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 형아가 말했는데 시하 몫도 넣어뒀대.”

“!!!”

“형아. 엄청 센스 있지?”

“형아. 대다내.”

시하는 정말 깜짝 놀랐다.

형아가 이렇게 준비해줄 줄 정말 몰랐으니까.

아침에도 10개 맞냐고 묻고 확인까지 받았다.

그때 시혁은 가방 안을 확인하고 시하 몫으로 하나 더 넣은 것이다.

나눠줄 때 아이들이 다들 먹고 있을 텐데 시하만 못 먹으면 좀 그러니 미리 챙겨주었다.

선생님은 이 예쁜 형제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시하도 이런 센스는 형아에게 배우는 거예요. 알았죠?”

“시하 배어써. 원 플러스 원이야. 시하 아라. 다 아라.”

“어?”

원 플러스 원이 여기서 나온다고?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샘이 가르쳐 져써.”

“어? 그렇지. 샘이 가르쳐주긴 했지.”

“형아도 편이점에서 배어써. 분명해.”

“이야기가 그렇게 되니?”

“분명해!”

결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났지만, 아무튼 아이들은 맛있게 우유랑 빵을 먹었다.

선생님과 원장님도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머. 맛있다.”

“진짜네요. 근데 맛이 밀은 아닌 거 같은데?”

“원장님은 그것도 아세요?”

“제가 케이크도 만들잖아요. 그래서 알죠. 초코 부분을 먼저 먹었으면 몰랐겠네요. 쌀빵인 거 같은데 대단하네.”

선생님들 대화에 시하와 아이들이 먹으면서 의문을 가졌다.

승준이 물었다.

“시하야. 쌀빵이 대단한 거야?”

“몰라. 시하 쌀밥은 머거.”

“하나도 쌀밥 먹는데?”

“내가 알기로 빵은 밀로 만든대.”

연주의 대답에 아이들이 쌀로 만든 건 대단한 거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종수는 지식을 자랑하려고 폐에 숨을 넣었다가 연주의 지식에 다시 바람을 뺐다.

“나도 알고 있었다고.”

“종수는 다 알지.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재휘야…….”

종수는 감동해서 우유를 꿀꺽 마셨다.

“크으.”

“근데 연주도 대단하지 않아?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좋아. 옷도 잘 입고. 엄청 완벽해.”

“재휘야…….”

종수는 감동이 사라져서 다시 우유를 마셨다.

“크으…….”

결국, 재휘에게는 푹 빠져버린 연주가 제일 대단했다.

뭔가 친구를 뺏긴 느낌이 들었다.

여자 친구가 생긴 동성 친구가 연애한다고 안 놀아주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종수는 그런 감정이 생기고 있었다.

승준이 말했다.

“시하는 좋겠다. 시혁이 형아가 맨날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주고.”

“승준은?”

“우리 엄마는 맨날 똑같은 것만 한다고. 물론 맛있지만.”

“시하도 형아가 달걀 마니 써. 마시써.”

“달걀은 맛있지. 근데 맨날 시혀기 형아는 뭔가 요리 많이 하는 거 같은데.”

“마자. 형아. 요리 마니해. 마시는 거 마니 머거.”

시하는 말하다가 보니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시하 마시는 거 머그러 갈 거야. 마니 머그러 갈 거야. 그게 캠핑이래.”

“캠핑?!”

“꼿구경 가. 의자에 누어서 마시는 거 머거.”

“그게 캠핑이구나. 재밌겠다. 나도 가고 싶다! 나도 가면 안 돼?”

“와도 대.”

“아싸!”

옆에서 ‘하나도, 하나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시하는 오라고 손짓했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어이. 얘들아. 부모님과 시혁 씨 허락은 맡고 같이 가든가 말든가 해야지.

하여간 저 셋은 꿈에 부풀어 있다.

***

나는 다 만든 빵을 서수현에게 주었다.

“이거 화이트데이 선물.”

“헐. 빵이네요?”

“응. 쌀로 만든 크루아상이야.”

“대박. 오빠 요리도 잘했어요?”

“내가 요리를 시작한 지 15년 정도 됐지.”

“초등학생 때부터 아니에요? 내가 속을 것 같아요!”

“진짠데?”

정확히는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아빠를 도와서 조금씩 손대기 시작했을 뿐이다.

엄마가 없으니 나라도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척척하면서 아줌마들이랑 인사도 하고, 친해지면서 요리도 조금씩 묻기 시작했다.

계기는 아버지의 생신일에 만들 미역국부터.

기특했는지 이것저것 알려주신 이웃분들에게 감사했다.

처음에는 조금 실패하기도 했었다.

“근데 가방에 빵이 많던데 밸런타인데이 때 그렇게 많이 받았어요?”

“아, 이거? 파랑몰에 가져다주려고. 알리사가 전에 김치볶음밥을 줬거든.”

“예? 초콜릿이 아니라?”

“응. 뭐라더라? 단짠단짠이라고 했나? 매운 걸 먹고 단 거 먹어야 한다고 했나?”

“그렇다고 김치볶음밥을?”

“한 세 판째 만든 거라고 하던데? 너무 많이 만들었다고.”

“그렇게 먹고도 살이 안 찌다니…….”

서수현은 뭔가 분하다는 듯이 부들부들 떨었다.

아마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운동도 열심히 하지 않을까?

“흠. 아무튼, 그래. 어? 알리사 지나간다.”

“어? 진짜네.”

같은 학교라서 그런지 이렇게 마주칠 때가 있다.

교양을 들으러 오기도 하니까 말이다.

“알리사!”

“앗! 수현이랑 시혁 씨네요?”

“이거 빵이에요. 오늘 화이트데이잖아요.”

“화이트데이…. 아! 한국이랑 일본에만 있는 그거요?”

“네.”

“근데 한국은 14일마다 뭔가 있다던데.”

“하하하. 그렇게까지 챙기지는 않아요.”

있기는 있지만 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건 진짜 선 넘은 상술 같은 느낌이라서.

“고마워요. 근데 시혁 씨.”

“네?”

“이거 하나는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

“전 질보다 양이에요. 아셨죠?”

엄지는 왜 세우는지 모르겠다.

대답이 참 알리사답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하핳. 농담이에요. 알죠?”

알리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상하게 농담같이 안 들린단 말이지. 그도 그럴 게 진짜 많이 먹긴 하잖아.

옆에서 서수현이 물었다.

“근데 알리사. 하루에 얼마나 먹어?”

“평범한데요? 하루 두 끼만 먹어요.”

양은 두 끼가 아닐 텐데?

아무튼, 알리사도 나름 조절하는 거겠지? 그렇겠지?

“아! 이거 파랑몰 사람들에게 가져다줘요.”

“이거 제가 다 먹으면 안 돼요?”

“…….”

“농담인 거 알죠?”

아닌 거 같은데…….

알리사 얼굴만 봐서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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