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티비에서 음악 방송을 하고 있다.
옛날에 했던 걸 다시 방송한다.
아무래도 내일이 화이트데이라서 그런지 달콤한 노래를 많이 틀어주었다.
이걸 왜 보고 있냐고 하면 아주 귀여운 인형이 나와서이다.
-마시멜로! 마시멜로! 구우니까 너무 좋아~
마시멜로 캐릭터가 가수와 함께 춤을 춘다.
와 저게 몇 년도 노래지? 진짜 추억이네.
-마시멜로! 마시멜로! 구우니까 너무 달아~
“형아!!! 마시멜로 모야? 춤쳐!”
“마시멜로라고 먹는 건데 달콤한 사탕류라고 할까? 솜사탕 같은 거야.”
“정말?! 마시써?”
“응. 불에 구우면 더 맛있지.”
“시하 먹고 시퍼.”
시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차피 마트도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때 마시멜로를 사면 된다.
오늘은 밸런타인데이 때 받은 보답을 빵으로 할 생각이다.
사탕을 전해줄까 싶었지만 사실 나는 사탕을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기본적으로 다들 좋아할 만한 걸 주기로 했다.
“그럼 나가자. 오늘은 빵을 만들 거거든.”
“빵?”
“응. 쌀로 만든 빵을 만들 거야. 시하도 열심히 도와야 해. 알았지?”
“아아. 시하 잘해!”
“안 해 봤잖아?”
“아냐. 시하 잘해.”
“???”
하긴 시하는 뭐든 잘하는 형아의 동생이니까 당연히 잘하겠지.
아무래도 이런 논리인 게 분명하다.
그래서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런 대답이 나오면 왠지 부끄러울 것 같아서.
“그럼 마트로 고고!”
“고고!”
시하가 주먹 쥔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그런 시하의 주먹에 손을 얹고 자연스럽게 끌고 갔다.
“아?”
“이러라고 주먹을 하늘에 휘두른 거 아니야?”
“마자! 시하 아라써.”
“푸흡.”
우리는 마트에 가서 카트로 드리프트도 즐기고 빵 만들 쌀가루도 사고 마시멜로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장 보고 온 것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다.
뭐지? 대체 왜?
“형아. 마시멜로 먹고 시퍼!”
“응? 아! 잠시만.”
나는 마시멜로 한 봉지를 꺼내서 시하의 입에 넣어줬다.
물론 내 입에도.
폭신한 식감과 달콤함이 입안에 퍼진다.
많이 먹지 않는 음식인데 시하는 마음에 들었나 보다.
“마시멜로~! 마시멜로~! 구우니까 너무 조아~”
“구우면 맛있지.”
“형아. 구어. 구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앞으로 어디다 쓸지 모를 나무 꼬챙이를 사 왔다.
한 개만 팔면 좋을 텐데 참 쉽지 않았다.
쓸데없이 오늘 개인 화로도 하나 샀다. 나중에 치즈 퐁듀를 반드시 해 먹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시하야. 여기 위험하니까 물러나 있어. 불붙인다.”
“아라써.”
시하가 저 멀리 벽에 딱 붙었다.
그렇게까지 멀리 안 가도 되는데?
“형아 없을 때 불은 가지고 놀면 안 돼. 알았지? 아야 해.”
“불 아야 하면 클나. 클나. 119 아찌가 와서 이노옴! 해!”
“푸흡. 이노옴! 한다고? 들어봤어?”
“시하 차캐서 안 들어바써.”
“어이구. 시하 착해서 안 들어봤구나.”
나는 고체 연료에 불을 붙였다.
상 위에서 작은 불이 생겼다.
시하는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아. 핑쿠 젤리가 불대써.”
“이건 고체 연료라고 불이 붙는 거야. 이건 먹는 거 아니니까 조심해야 해.”
나는 혹시나 해서 빨리 위험한 건 다 치웠다.
마시멜로에 나무 꼬챙이를 꼽아서 작은 불에 구웠다.
“짜잔. 이렇게 돌돌돌 구워서 먹는 거야. 시하도 해 볼래?”
“아아.”
시하가 마시멜로를 구웠다.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후 불어서 입에 넣었다.
“!!!”
“맛있지?”
“이거 왜 마시써?”
“푸흡. 아니. 그걸 물어보면 맛있는 걸 구워서 더 맛있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더 마시써. 신기해! 왜 더 마시찌?”
그렇게 신기해하는 시하는 마시멜로를 4개는 더 구워 먹고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너무 다니까 많이 먹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형아. 불 안 꺼?”
“응? 아! 조금만 짜서 나중에 금방 꺼질 거야. 이제 화로는 딴 데 놔두자.”
“아아.”
대충 정리를 한 다음에 빵 만들 준비를 했다.
쌀로 만든 크루아상.
밀이 아니라 쌀을 선택한 이유는 혹시 서수현이나 알리사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까 봐.
그래도 밀보다는 쌀이 더 낫다고 어딘가에서 들은 적 있다.
특히 식단이었나? 아무튼.
사실 알리사는 다이어트랑 거리가 멀긴 하지만 저번에 김치볶음밥을 받았으니 나도 쌀로 보답하면 되겠지.
버터도 밀보다 덜 들어간다고 하니…….
“형아는 반죽을 할 테니까 시하는 전화로 백동을 불러와 주라.”
“아라써!”
“할 줄 알지?”
“시하 아라.”
집에 오븐이 하나 있지만, 많이 만들려고 하다 보니 하나가 더 필요했다.
미니 오븐을 백동환에게 빌리기로 했다.
원래 냉큼 달려오는 녀석인데 오늘따라 느리다.
시하가 내 폰으로 백동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그동안 반죽을 시작했다.
「예! 형님!」
“백동 형아!”
「오! 시하야. 형아는?」
“형아 반죽 대써.”
시하야. 형아가 반죽이 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아하. 반죽하시는구나. 혹시 날 기다리니? 하하하!」
“마자. 오분 가꼬 오래써.”
「후후후. 사실 예상을 했지. 그럼 시하가 문제를 맞히면 바로 오븐 갖고 내려올게.」
“모야?”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돈은?」
아무래도 넌센스 퀴즈를 내려나 보다. 언제 적 개그야. 과연 이시하는 맞출 수 있을까?
“할무니!”
「어? 어떻게 알았어?!」
“할무니 제일 비싸.”
아마도 할‘머니’가 정답인 모양인데 시하가 말하는 건 5만 권 신사임당이라서 우연히 맞춘 모양이다.
백동환도 그걸 깨달았는지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당황했다.
이렇게 빨리 맞출 줄 몰랐겠지.
우연히 맞췄다고 보기보다는 문제와 답이 안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백동 형아. 빨리 와. 시하 비밀번호 문제 내께.”
「아, 잠시만! 내가 그거 안 맞추려고 문제 낸 건데!」
“빨리! 빨리!”
아무래도 시하가 문제를 못 맞히면 문을 정상적으로 열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긴 맨날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하니 곤란하기도 하겠지.
뚝.
시하는 전화를 끊었다.
아마 백동환은 오늘도 문제를 맞혀야 할 것이다.
“형아. 백동 형아 온대!”
“응. 스피커폰이라 형아도 들었어.”
“형아. 대다내!”
“???”
너 그냥 내가 뭘 하든 대단하다고 하고 싶은 거지? 그런 거지?
띵-동-
벨이 울렸다.
시하는 핫! 하며 신나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누구세여?”
“백동 형아다.”
“백동 형아인지 어케 아라여?”
“목소리 들으면 알지 않아?”
“늑대일지도 몰라여. 백동 형아도 다른 목소리 잘 내여.”
아무래도 해님과 달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늑대를 말하나 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그거.
“오븐 주러 왔는데 열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백동 형아 마자여?”
“응. 맞아.”
“구럼 비행기 탈 때 신발 버서여? 안 버서여?”
“안 벗지.”
“아냐. 백동 형아 벗는 대써.”
“미안해! 그거 거짓말이었어! 시하 너 뒤끝 엄청 길구나!”
“아냐. 벗어야 해여.”
“시하꼬라지라니…….”
나는 시하꼬라지라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아, 진짜 웃기네. 시하꼬라지 뭐냐고.
“다음 문제 내여~”
“열어줘. 제발.”
“케이티엑수 탈 때 신발 버서여? 안 버서여?”
“벗는다!”
“아냐. 안 버서여. 백동 형아 아니에여?”
“내가 잘못했다. 진짜! 대체 그때가 언제야!”
기차는 12월 31일이었지 아마. 벌써 2개월도 더 지난 이야기다.
업보가 깊구나. 백동환.
“마지막 문제에여. 잘못해써여. 안 잘못해써여.”
“잘못했다.”
“형아. 백동 형아 와써. 열어져.”
“결국, 네가 안 열어주는 거냐고.”
나는 문을 열어 주었다.
미니 오븐치고는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어서 놀랐다.
“아니 미니라며?”
“제 몸에 비해서 미니 맞지 않습니까?”
네가 들고 있으면 뭐든 미니가 되긴 하는데…….
***
반죽 발효 후 3절 접기. 그걸 네 번 반복해야 한다.
빵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나는 발효하는 걸 기다리고 있는 동안 상자를 열어서 오븐을 보았다.
확실히 미니가 맞았다.
“여러 잡다한 게 들어있네.”
“잡다한 거라뇨!”
“장난감 오븐은 왜 들어있는 거야?”
“아는 사람이 장난감 버릴 건데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고 하길래 잽싸게 하나 챙겼죠.”
“오븐 같은 거 갖고 노나?”
하나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이다.
물론 시하도 갖고 놀 수 있는 거긴 하지만 막 자주 갖고 놀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고마워. 시하야. 백동 형아가 오븐 장난감 가지고 왔네.”
“이거 가짜야. 빵 못 구어.”
“그건 그렇지.”
진짜 오븐을 갖고 놀면 큰일 나지 않겠니?
백동환은 실망했다는 얼굴을 했다.
“제가 힘들게 얻어왔는데! 시하를 위해서!”
“백동 형아. 고마어. 시하가 이거 비밀기지로 하께.”
“빵 만드는 게 아니라 비밀기지로?”
“마자. 이거 비밀기지야. 삐약이가 여기에 숨어.”
시하가 다마고치를 오븐에 넣었다.
이제 삐약이는 병아리가 아니라 닭이 되었다.
다 컸다는 거다.
열심히 밥 주고 똥 치워준 보람이 있다.
“삐약이 다 커써.”
“닭 되었다는 거지?”
“이름이 삐약이야.”
“여기 오븐을 비밀기지로 삼으면 치킨 되는 거 아니야? 구워져서.”
“!!!”
내가 상상만 하고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다.
시하는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냐는 눈으로 백동환을 보았다.
아무래도 충격받은 모습이다.
“백동 형아 나빠.”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게 둘이 투덕거리고 있을 때 내가 물었다.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와. 저 보내시려고요?”
“아니. 뭐. 아직 반복 작업을 해야 해서.”
“지금 쉬는 타임이잖아요. 저 여기서 자고 갈래요.”
“그냥 가라. 제발.”
“너무하시네.”
“너 여기서 자면 좁아서 우리 못 자.”
“저 그 정도로 크지 않습니다만?”
시하는 내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동환은 억울한 표정이다.
네가 누우면 자리가 좁아 보일 정도로 많이 차지하는 거 맞잖아…….
비유하자면 가구를 들여놓지 않은 집이랑 가구를 들여놓은 집의 크기가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수준이다.
“시하랑 좀 놀아줘. 빵 만드는 건 시하가 도와주는 게 어려워서 심심하거든.”
“형아. 시하도 빵 안 만드러?”
“으음. 나중에 빵 다 구워지면 시하가 초코 묻혀줄래?”
“아아!”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도 줄 거기 때문에 크루아상 반쪽에는 초코를 묻힐 생각이다.
이게 또 초코를 묻히면 맛있거든. 달콤하기도 하고.
근데 이게 발효하는 데 엄청 오래 걸리기 때문에 참으로 곤란하다.
“백동 형아. 모하고 노까?”
“흐음. 글쎄?”
“마시멜로 노래 아라?”
“오! 그 노래 알지.”
“아까 형아랑 마시멜로 불러써. 마시멜로 구어서 머거써.”
“이야. 진짜 맛있었겠네.”
“엄청 마시써. 백동 형아도 머거 바써?”
“응. 먹어봤지. 이거 캠핑 갔을 때 구워 먹으면 진짜 또 죽여주는데.”
“캠핑 모야?”
“응? 아! 시하 캠핑 몰라? 캠핑은 말이지 이렇게 큰 차를 타고서 캠핑용품 싣고 좋은 곳 보면서 맛있는 것만 엄청 먹는 거야.”
“정말?!”
“후후후. 엄청 재밌다고. 이른바 여행이지. 여행.”
“!!!”
그런 엄청나게 좋은 여행이 있다는 사실에 시하는 놀란 것 같다.
“시하도 나중에 형아랑 나랑 캠핑 갈래? 이제 벚꽃도 피고 그럴 텐데 캠핑 가면 캬아!”
백동환 너 캠핑족이었어? 어쩐지 산에서 나물도 캐고 다니더라니.
근데 이상하게 너랑 안 어울리는데…. 크흠.
“꼬치랑 구경.”
“발음 조심하자 시하야. 꽃이야. 꽃.”
“꼿.”
“아무튼, 형아랑 저기 꽃핀 나무 아래서 누울 수 있는 의자 딱 펴고 구경한다고 생각해봐. 입에 마시멜로 먹으면서. 엄청 재밌겠지?”
시하는 뭔가를 상상했는지 눈을 반짝였다.
“캠핑 재미써!”
시하야. 너 아직 안 갔어.
“으하하. 사실 내가 캠핑을 위해 차를 샀거든. 중고지만. 하핫!”
네가 작년에 번 돈이 다 그쪽으로 갔겠구나…….
“시하도 가고 시퍼!”
“그래? 그럼 나중에 벚꽃 쫙 폈을 때 캠핑가자!”
“야! 시하에게 이상한 바람 불어넣지 마!”
“아! 형님! 캠핑은 갬성입니다!”
갬성은 개뿔. 시하야. 너 속은 거야. 준비하고 밥 만들고 하면 일거리가 많단 말이야.
아, 물론 시하는 즐기기만 하면 되겠지만.
“형아. 캠핑 가. 캠핑.”
백동환. 언젠가 죽여 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