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어린이집에서 시하는 어제 있었던 걸 자랑했다.
빨래집게로 비행기를 만들고 티김을 티김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형아와 함께 비행기로 놀아서 정말 재밌었다는 것.
쌍둥이와 연주는 흥미진진하게 시하의 말을 들어주었다.
“와! 시하야. 진짜 재밌겠다. 나도 빨래집게로 논 적 있는데! 귀에 꽂아서 귀걸이를 만들었어. 코에도 집게로 콱, 해서 코걸이도. 푸하하.”
옆에 있는 하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승준의 엉뚱한 장난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오빠는 그 아픈 걸 왜 재밌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재밌다고 깔깔 웃었거든!”
“엄마가 일부러 웃어준 게 분명해. 진짜 재미없거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승준 엄마는 하는 행동이 엉뚱해서 웃어준 것뿐이다.
그걸 모르는 승준은 자신이 웃기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시하는 그런 승준의 귀를 콕 잡았다.
“집게야. 집게.”
“아악! 물렸다!”
“이제 승준 귀는 말려야 해.”
“???”
“빨래대써.”
“나 널려 있는 거야?”
“아아.”
승준은 빨래처럼 걸린 몸짓을 했다.
마치 옷걸이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하나는 귀를 잡았는데 팔은 왜 저렇게 벌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승준. 다 말라따!”
“오오!”
승준이 볼을 입안으로 넣어서 아주 말랐다는 표현을 했다.
목을 부여잡으며.
“목말라~”
“물 주까?”
“너무 말랐어. 털썩.”
“위험해! 병언 가야 해. 병언.”
하나가 눈을 빛냈다.
병원에 있는 멋진 간호사 언니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가 간호사야. 환자분 여기로 오세요!”
하나가 연주를 보았다.
“연주 선생님. 여기 환자가 왔어요.”
“나?”
“녜! 의사 선생님이잖아요.”
연주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턱을 치켜들었다.
요즘 연기에 부쩍 관심이 커졌다.
바이올린도 좋지만, 배우들의 오디션을 보면서 흥미가 바뀌었다.
“어서 수술실로 가자!”
“네!”
“아아!”
시하도 따라나서려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때 연주가 막았다.
“아! 시하는 수술실로 들어갈 수 없어요.”
“왜?”
“의사랑 간호사만 들어갈 수 있어요.”
“시하도 갈래.”
“수술 끝나면 만나세요.”
연주는 허공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늉을 했다.
똑바로 누워있는 승준을 보았다.
“수술 시작합니다.”
“네!”
“하나야. 메스.”
“메스?”
“칼 같은 거야. 티비로 본 적 있어.”
그때 승준이 말했다.
“메시?”
“메스야. 환자분. 말하면 안 돼요. 잠드세요.”
“응.”
마취도 안 하는 수술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디테일까지는 아이들이 몰랐다.
연주는 승준의 배를 가르는 시늉을 했다.
“땀 닦아줘.”
“응!”
하나가 소매로 연주의 이마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큰일 났어. 기계에서 삐, 삐 소리가 나!”
“헉!”
둘이서 아주 긴급한 상황을 맞이했다.
승준이 화들짝 놀랐다.
“빨리 제대로 치료해.”
“넌 자고 있다니까!”
수술실이 아주 엉망이다.
그저 빨래집게로 귀가 집혔을 뿐인데 수술까지 가는 상황.
누가 보면 왜 일을 키워?! 하고 있을 것이다.
“휴! 다 했다!”
“오빠가 살았다.”
시하가 승준 옆에 앉았다.
“승준. 이제 다 나아써?”
“응. 볼이 정상으로 돌아왔어.”
“다행이다.”
중간부터 보고 있던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볼이 문제였는데 대체 왜 배를 갈라서 수술 한 거야?
***
선생님은 오늘 한 가지 놀이를 준비했다.
“여러분. 오늘은 집에 있는 거로 노는 놀이입니다. 마침 빨래집게가 나왔네요. 그거 가지고 노는 것도 재밌죠.”
“오늘 모 해여? 빨래집게?”
“아니요.”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은 버리는 쓰레기도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다.
“자! 여러분.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지 않나요?”
“???”
너무 뜬금없는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졌다.
왜냐면 맛있으므로.
“시하 초코 머글래. 초코 아이수쿠림!”
“나아는! 바닐라!”
“하나는 딸기!”
“저도 딸기요.”
자연스럽게 주문을 받던 선생님이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미안하지만 아이스크림 종류는 하나밖에 없어요. 초코랍니다.”
“와아!”
시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다른 아이들도 초코도 나쁘지 않은지 불만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냥 줄 수는 없어요. 정말 잘 만든 사람에게 줄 거예요.”
선생님의 손에서 아이스크림 막대가 많이 들어있는 봉지가 나왔다.
“제가 다 먹어서 모아둔 거예요. 물론 깨끗하게 씻었고요.”
거짓말이었다.
그냥 막대만 따로 파는 걸 사둔 것뿐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저렇게 많이 먹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샘. 병언 가. 병언. 배 아야 해. 아이수쿠림 마니 머그면 배 아야 한대써.”
“후후후. 시하야.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면 이 정도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안 아프지요.”
“정말?! 샘 대다내.”
“뻥이었어. 한 번에 먹은 게 아니라 지금까지 먹은 걸 모아둔 거야.”
“샘. 마니 머거써.”
“그렇네. 자, 그럼 이걸로 오늘은 재밌는 걸 만들 거예요.”
선생님은 테이프를 가지고 아이스크림 막대 6개를 펼쳐서 붙였다.
하나의 판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그림을 그려서 퍼즐을 만들 거예요. 제일 잘한 4명에게 아이스크림을 줄 거예요.”
그때 종수가 말했다.
“거짓말! 다 줄 거면서!”
“칫.”
원래 그랬다.
열심히 하라고 경쟁을 부추기면서 다 보고 전부 잘했어요! 하면서 상품을 준다.
아이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이미 다 눈치챘다.
“후후후. 4명만 줄 거예요.”
“모두 다 줄 걸 이제 알거든요. 하하하.”
“자신만만하구나. 종수야.”
“선생님은 이제 제 손바닥 안이에요.”
그때 시하가 불쑥 나타나서 종수의 손목을 쥐었다.
“샘. 여기 들어가? 대다내!”
“야. 샘이 여기 들어간단 말이 아니야.”
“종수가 들어가?”
“아니야! 그 뜻이 아니라고.”
“종수 거짓말해써?”
“선생님의 생각을 다 안다는 표현이라고.”
“군데 왜 손바닥이야?”
“어?”
그거까지 모르는 종수는 눈을 굴렸다.
“아, 몰라! 놔!”
“종수가 몰라?!”
시하가 놀랐다는 얼굴을 했다.
종수는 뭔가 또 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너도 모르는 게 있어? 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나, 나중에 다 알게 되는 거거든.”
“아라써. 알면 알려져.”
“어. 어? 내가 왜 알려주냐! 내가 무슨 백과사전인 줄 알아!”
“아? 종수 백과사전이어써?”
“아니이이이!”
선생님은 헛기침하며 진정시켰다.
짠수 아니, 종수가 답답해하는 건 이제 일상이었다.
“자자. 이번에는 정말 4명만 줄 거예요. 자 냉장고로 가봐요.”
선생님은 흰 봉지를 꺼냈다.
안에는 초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여기 4개만 있죠?”
“어?”
아이들은 정말 4명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수는 오히려 불타올랐다.
“좋아! 이시하 승부다!”
“하팅!”
“네가 왜 날 응원하냐고!”
“아?”
여전히 시하는 승부에 관심이 없었다.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번 놀이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이렇게 붙인 아이스크림 막대 위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떨어뜨리면 퍼즐이 된다.
한마디로 아이스크림 막대로 장난감을 스스로 만드는 거였다.
8개의 그림이 그려질 테니 퍼즐도 8개였다.
아이들이 나중에 서로 바꿔서 맞춰보는 시간도 가질 것이다.
“다들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보면 안 돼요. 그러면 퍼즐이 재미없어지겠죠?”
“네!”
아이들이 테이프로 고정된 6개의 아이스크림 막대를 받았다.
다들 앉아서 뭘 그릴지 골똘히 고민했다.
시하는 생각해둔 게 있는지 슥슥슥 손을 재빨리 움직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다들 완성을 해서 테이프를 제거하고 막대를 마구 섞었다.
“자. 자기 퍼즐을 맞춰보라고 주고 싶은 사람과 교환하세요.”
그 말에 승준이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바꾸자.”
“잠깐!”
종수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시하와의 승부를 포기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하야. 나랑 바꿔. 승부야. 승부.”
시하는 곤란하다는 듯이 두 사람을 보았다.
과연 누구와 바꾸는 게 좋을지 고민이 들었다.
승준은 가장 친한 친구였고 종수는 가끔 자기와 승부해 주는 친구였다.
먼저 바꾸자고 제안한 건 승준이었지만 종수는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승부하자고 말했다.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어려웠다.
“우웅.”
“시하야. 나랑 바꾸자니까.”
“야. 오승준. 넌 빠져.”
둘이 서로 노려보고 있는 걸 멍하니 보는데 손에서 퍼즐이 빠져나갔다.
윤동이 시하의 퍼즐을 뺏은 것이다.
“어? 윤동이 너는 뭐야!”
“야. 윤동. 그거 좋은 말로 할 때 넘겨라!”
종수는 뭔가 만화에 나오는 적의 대사를 했지만, 윤동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저 시하에게 자신의 퍼즐을 손에 쥐여 주며 떠나갔다.
두 사람은 그걸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사이에 은우는 방황하는 재휘랑 퍼즐을 바꾸었다.
하나와 연주도 짝을 이뤘다.
남은 것은 본의 아니게 승준과 종수였다.
“종수. 네 꺼 줘봐. 내가 시하 대신 상대해 줄게.”
“야. 어차피 넌 축구공이면서.”
“축구공 아니고 사커공이야.”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축구공 맞잖아!”
“아니거든.”
그렇게 둘은 교환을 마쳤다.
먼저 승준.
그림이 그려진 부분을 맞추어 본다. 6개의 피스에 얼핏 보이는 그림의 파편들이 뭔지 몰랐다.
대충 맞추어 보니 나오는 건 컴퓨터랑 키보드였다.
“야. 야. 컴퓨터 그렸네.”
“어. 맞아. 넌 축구공 아니네?”
종수는 의외라는 듯이 승준을 보았다.
그려진 건 오늘 시하랑 이야기한 빨래집게였다.
그것도 3개.
뭔가 싶었는데 이걸 그리고 있었던 게 황당했다.
“내가 더 빨리 말했어.”
“빨리 말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맞추는 게 중요하거든! 내가 이겼어.”
“아닌데. 정답! 하고 말 안 했으니까 빨리 말하는 게 이긴 거지.”
“아니거든.”
참고로 잘 만든 사람이 이기는 거지 빨리 맞춘 사람이 이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둘은 또 다른 승부를 보고 있었기에 선생님은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다음은 하나와 연주.
“연주도 딸기 그려써?”
“응. 하나도 딸기네?”
“응! 우리 통했다!”
하나가 연주의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아무래도 둘은 딸기 아이스크림에 미련이 많이 남은 것 같았다.
다음은 은우와 재휘.
“푸하하. 티셔츠다. 티셔츠. 푸하하.”
“티셔츠 못 그렸어? 왜 그렇게 웃어?”
“아니. 그냥 재밌어서 웃었어. 여기 메이커 나도 아는데. 나이…….”
“아앗!”
“왜 당황하고 그래. 푸하하!”
“은우는 왜 똥을 그렸어?”
“내가 제일 잘 그리는 거라서!”
선생님은 나땡키가 나와서 못 말하게 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아무래도 다 맞춘 퍼즐이 똥이라서 재휘가 당황했나 보다.
고개를 돌려 시하와 윤동을 보았다.
시하는 아직도 아리송한 표정으로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뭔가 잘 안 되나 보다.
“아? 이상해. 모지?”
이리저리 맞춰 봐도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도 저 그림의 정답이 뭔지 모르겠다.
윤동을 보자 시하의 퍼즐은 이미 다 맞추어 있었다.
나오는 것은 역시 시하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페페.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에 빨래집게가 집혀 있다.
뭔가 엽기적이었다.
“윤동. 그림 어려어.”
“응? 잘 모르겠어?”
“아아.”
“이거는 여기 와야 해. 그리고 이건 이거.”
윤동이 시하의 그림을 완성해 주었다.
“아?”
“왜 그래?”
“이상해.”
완성된 그림도 이상했다. 선생님도 시하랑 같은 마음이었다.
정체 모를 그림이 있었으니까.
찌그러진 타원에 이상한 털 같은 게 듬뿍듬뿍 나 있었다.
눈인지 입인지 모를 반원도 그려져 있다.
저게 대체 뭐지? 외계인인가?
“이게 모야?”
“응? 시하 이거 몰라?”
“아아. 몰라.”
“공벌레야.”
“?”
윤동이 반원을 가리키면서 빛이 비친 부분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저게 공벌레라고? 정말? 윤동이 정말 못 그리는구나.
시하가 말했다.
“진따다! 공벌레다!”
시하야. 발음 조심하자.
“그치? 맞지?”
“아아!”
윤동이 시하의 반응에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생각했다.
너 누구니? 펙폭시하 어디 갔어?
“샘.”
“응?”
“누가 4등이에여?”
“아! 잘 그림 상위 작품을 발표하겠어요! 등수는 비밀입니다.”
선생님은 하나씩 호명했다.
시하, 종수, 재휘, 은우. 상위 4명!
부상으로 초코 아이스크림을 주었다.
하나는 힝 하면서 입을 샐쭉 내밀었고 연주도 티는 안 냈지만 아이스크림을 못 먹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승준이 말했다.
“역시 사커공을 그렸어야 했어.”
그건 아니야. 승준아.
윤동은 턱을 잡고 고민하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이렇게 잘 그렸는데?”
정말 잘 그렸다고 생각하니? 그 외계인… 이 아니라 공벌레가?
아, 뭐 초현실주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이게 맞나?
아쉽게도 선생님은 실사화 주의였다.
“흠흠. 남은 네 사람에게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주겠습니다!”
“와아-”
하나가 만세를 했다.
종수가 눈을 부릅떴다.
“역시 다 줄 줄 알았어!”
“후후후. 종수야. 선생님은 거짓말 안 했어. 4명만 준다고 했잖아. 초코 아이스크림을 말이야.”
“???”
“딸기 아이스크림을 안 준다고는 안 했지!”
“!!!”
종수가 한 방 먹었다는 듯이 입을 헤 벌렸다.
아직 멀었단다. 종수야. 어른의 말에는 늘 트릭이 숨어져 있는 법이거든.
“샘. 시하 다 아라써.”
시하가 한 손을 허리에 얹고 배를 쭈욱 내밀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말이다.
“거짓말…….”
“아냐. 시하 샘 미더써. 아이수쿠림 다 머글 줄 아라써. 샘 착해. 착해.”
“크흑.”
선생님은 감동했다.
그리고 시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진따야.”
시하야. 발음 조심하자. ‘진짜야.’라고 말한 거지?
미묘한 발음에 감동은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