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시하가 입 모양으로 뭔가 뻐끔뻐끔 말한다.
뭐지? 왜 안 들리지?
심지어 희미하게 기억되기도 해서 유추가 전혀 안 된다.
“뭐라고?”
“모가?”
“다시 한번 말해줄래?”
“모가?”
“반짝이가 뭐냐니까?”
“모가?”
시하가 눈을 껌뻑거렸다.
뭐지? 내 질문도 닿지 않는 건가? 혹시 다른 말도 안 들리나?
“반짝이 손에 있어?”
“손에 반짝!”
이거는 들리나 본데…. 유추할 수 있는 건 반짝이를 물어보지 말라는 어떤 작용인가 싶기도 하다.
능력이 발휘되면서 생기는 반짝거림 같은데 이게 왜 시하의 눈에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능력을 받았는데 왜 안 보이는 걸까?
혹시 시하처럼 어린아이여야 보이는 걸까?
“형아. 모 하고 노까?”
시하가 해맑게 물어보는 모습에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우리에게 안 좋은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러한 능력을 받았지만 활용해야 하는 건 오롯이 자신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완벽하지도 않다.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것도 있었으며 이미 많이 바뀌어 버린 곳도 있었으니까.
시하 역시도 부족한 부분과 활용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으음. 오늘은 말이지. 진짜 뭐 하고 놀지?”
“시하랑 가치 생각해 보까?”
“푸흡. 그래.”
시하는 내 앞에 앉아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꼭 이렇게 앉아야 하니?
매일 붙어 있으니까 뭐 하고 놀아줘야 하는지 고민이 든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오늘은 뭐 먹지? 이런 고민 말이다.
애들은 오늘은 뭐 하고 놀지? 하고 고민으로 바뀐 거뿐이다.
이렇게 보면 어른은 어릴 때랑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숨바꼭질할까?”
“아냐. 오늘은 딴 거 할래. 새로운 거!”
“새로운 게 뭐 있을까…….”
멍하게 앉아 있으니 천으로 미래를 본 이야기가 생각났다.
물론 시하가 그린 그림으로 떠올린 거지만.
천이라고 하니 빨래를 걷어서 개야 한다는 알고리즘으로 변환했다.
너튜브 알고리즘도 이렇게 뜬금없지는 않을 텐데.
아무튼, 이런 건 미룰 수가 없지. 한없이 미루다 보면 나중에 귀찮아진다.
입을 옷도 없어질 거고.
“좋은 생각이 났어.”
“모?”
“빨래한 옷을 예쁘게 접는 거야!”
“아냐.”
“이거 같이해 주면 진짜 재밌는 놀이를 알려줄게. 진짜진짜 비장의 놀이인데 시하에게만 알려줄게.”
“정말?!”
“응!”
시하가 도도도 달려가서 빨래 건조대를 잡았다.
나 역시도 옷을 걷어서 바닥에 산처럼 쌓았다.
“시하는 양말을 이렇게 겹쳐서 해줘. 형아는 상의랑 바지 접을게.”
“시하 잘해.”
시하는 같은 양말을 맞췄다.
탁탁 펴서 위로 쌓는다.
“시하 꺼, 형아 꺼. 구분해서 놓아야 한다?”
“왜? 형아도 시하 꺼 신어.”
“형아가 시하 양말 신으면 늘어날걸? 그래도 괜찮아?”
“갠차나. 갠차나.”
“아니야. 늘어나도 형아 발을 다 감쌀 수 없어.”
“갠차나. 갠차나.”
내가 안 괜찮다니까? 네가 괜찮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연히 너야 괜찮겠지. 네가 불편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 우리는 빨래를 개었다.
“다 해따!”
“와. 빠르네!”
“형아. 아직이야?”
“응. 형아는 팬티도 접고 할 일이 많네. 그럼 시하는 수건 접어줄래?”
“수건?! 어떠케?”
“쉬워. 자. 봐봐.”
“아아.”
“이렇게 반 접고. 또 반 접고. 다음은 3등분으로 접어.”
“시하 알게써! 쉬어!”
“쉽지?”
시하가 작은 손으로 열심히 수건을 접는다.
이렇게 같이 빨래를 개고 있으니 옛날 생각난다.
아버지랑 한자리에 앉아서 티비를 보며 옷을 개었지.
처음에는 아버지 일하고 있을 때 혼자 다 갰다가 혼 아닌 혼이 났다.
못 개서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건 같이하자고. 혼자 하지 말라고. 왜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뺏고 그러냐고. 같이하고 싶다고.
‘난 그저 아빠에게 쓸모 있고 싶었지.’
사실 아버지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릴 때는 그랬다.
눈치 보고 아버지에게 필요함을 어필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었다. 어렸으니까.
“형아?”
“응?”
“수건 마니 남아써.”
“응. 그러네. 형아는 다 했는데?”
“1 대 1이야!”
“푸흡. 그래? 이런 승부는 종수에게 배운 거야?”
“종수 맨날 승부해.”
나도 어릴 때 혼자 잘한다고 어필하는 것보다 어린이집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하며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시하는 나랑 닮은 환경인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의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이게 타고난 기질의 차이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 형아도 수건 개는 거 도와줘야겠는데?”
“시하가 허락해 주께.”
“푸흡.”
허락이 왜 필요하냐. 하여간 웃기다니까.
“그래. 고마워.”
“아아. 고마어~”
고마워에는 고마워로 답한다. 시하는 그렇다.
우리는 열심히 개고 순서대로 옷장에 넣었다.
수건도 화장실에 다 넣고 나서야 일 하나 끝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진짜 할 일은 없겠지.
“그럼 정말 재밌는 놀이를 알려줄게.”
“궁금해!”
나는 빨래건조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빨래집게를 다 뺐다.
“이걸로 장난감을 만들 수 있어.”
“!!!”
개인적인 생각으로 다들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게 빨래집게가 생긴 게 좀 멋있잖아?
눈도 삼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멋있고 입도 지그재그로 되어 있어서 강력하게 꽉 물고.
굉장히 공룡의 얼굴같이 생겼다고.
나만 그런가?
아무튼, 이거로 마음대로 갖고 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크아앙. 각오해라. 하면서 장난감 로봇을 앙 무는 거지.
그리고 뭔가 레고 같은 합체 활용도 가능하다.
“잘 봐. 이렇게 집게 있는 곳을 앙 물어서 합체하는 거야.”
“합체?!”
그래. 아이라면 합체라는 설렘은 못 참지.
여자아이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아이는 잘 안다.
합체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렇게 집게 부분을 물고 물어서 가운데는 철 부분을 물게 하면. 짜잔! 멋진 비행기가 탄생했어요.”
“!!!”
시하의 눈이 그 어떤 때보다 반짝였다.
나는 뿌듯한 느낌인 한편 괜히 부끄러운 감정도 올라왔다.
누가 봤으면 괜히 자괴감이 들었을 같기도 했다.
아니. 다들 이런 거 한번 해보잖아.
“형아. 대다내! 대다내!”
“후후후. 시하도 가지고 놀아볼래?”
“아아! 비행기! 머시써!”
기존 비행기랑 다른 모양이지만 이 정도면 특별하고 멋있지.
내가 그 맘 알지.
시하는 비행기를 들고 슈웅! 소리를 내면서 손으로 날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 보니 재밌나 보다.
“피피야. 비행기 와써여. 조심해여.”
어항의 둥근 부분을 지난다.
곡선 비행이 아주 예술이다.
“신발 벗고 타는 거 아니에여. 백동 거짓말해써여.”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어지간한 충격이었나 보다.
백동 다시 한번 시하에게 사과해라.
비행기가 우리 방까지 갔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여행 끝나써여. 캐리어 내리세여.”
“푸흡.”
“형아. 엄청나.”
“그렇지? 시하도 뭔가 만들어볼래?”
“이거. 이거. 물고기 가타.”
“생긴 게 그런 느낌이긴 하지. 왕 집게도 있어.”
커다란 둥근 집게. 작은 빨래집게랑 다르게 생겼다.
“형아. 고래야. 고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시하 지베 고래 키어써!”
그렇네. 이미 우리 집에 고래도 키우고 있었네. 너의 상상은 어디까지 뻗어가는 거니? 이미 여긴 수족관 있는 집이니?
“빨래집게는 많아서 다양하게 가지고 놀 수 있어.”
“만타!”
사실 이렇게 많을 필요는 없지만 내 어릴 때가 생각나서 좀 사뒀다.
언젠가 시하가 가지고 놀지 않을까 싶어서.
이게 장난감이 몇 개 있는지는 상관이 없다. 빨래집게는 분명히 가지고 놀게 하는 마력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크앙! 크앙!”
빨래집게가 내 손가락을 물었다.
시하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이야. 형아가 위험해!”
그 위험 네가 만든 거 아니니?
“도와줘야 해! 출발! 슈웅!”
내가 만들어준 비행기가 떴다.
오는 사이에 내가 좀 더 당했다는 설정인지 비행기를 내려놓고 남은 손가락에 집게를 물렸다.
“큰일이야! 형아가 마니 다쳐써!”
그거 네가 다치게 한 거잖아?
“간다! 피흉! 피흉!”
비행기에서 뭔가 총알이라도 나왔나 보다.
내 손에 있는 빨래집게를 빼냈다.
“형아. 갠차나?”
“응. 무사해.”
“아냐. 병언 가야 해. 병언.”
“아니야. 괜찮다니까?”
시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나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모양이다.
“병언에 출발! 도착해따!”
“나 진짜 괜찮은데.”
“안대! 수술해야 해. 형아!”
빨래집게에 물렸을 뿐인데 수술까지 가야 하니?!
“시하가 고쳐주께.”
심지어 병원으로 데려다주고 시하가 집도하나 보다.
대체 직업이 몇 개야?
지금 나온 것만 해도 파일럿, 의사. 두 개다.
이게 양립할 수 있는 직업인가?
“주사 꼬옥. 다 나아따!”
수술이라면서 주사만 놓는다. 뭐, 실제로 수술을 어떻게 하는지 보지는 못했으니까.
그런 건 19세 관람가인가? 아니, 12세?
잘 모르겠다.
“형아. 다 나아써.”
“그래. 고마워. 시하 덕분에 살았네.”
“휴. 형아 시하 업어쑤면 어떠케.”
시하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라고 말하는 거겠지?
“진짜 시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치? 아프로 시하랑 마니 노라줘야 해?”
“???”
빌드업 엄청나네!
이 이야기의 결론이 그거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쓴 이야기보다 더 엄청난 반전인 거 같은데?
“이제 끝났어?”
“아냐. 형아 비행기 만드러서 싸어야 해.”
“누구랑?”
“적이야. 적.”
시하는 열심히 빨래집게로 비행기를 한 대 더 만들었다.
내가 만들어준 거랑 똑같은 거로 말이다.
함께 슈우웅! 소리를 내며 비행기를 움직였다.
아니, 잠깐만. 이거 입으로 같이 소리 내니까 너무 부끄럽잖아!
아무도 보지 않지만 부끄러워!
“형아. 아직도 아파? 병언 가까? 얼굴 빨개. 열나. 열나.”
그거 너랑 놀아주느라 그런 거야. 신경 쓰지 마…. 모른 척해줘!
“형아. 적이야. 티김 적! 대장이야. 부하는 일피, 이피, 피피야.”
결국, 물고기와 새우가 적이 되는 경지까지 왔구나.
시하가 즐거운지 해맑게 말했다.
“형아. 피흉, 피흉 해. 미사일 발사야!”
“미사일은 뭔지 알아? 어디서 배운 거야.”
“만화에서 바써.”
“아, 그래? 알겠어. 미사일 날아갑니다!”
“아냐. 피흉, 피흉.”
“…….”
“빨리. 빨리.”
“…피, 피, 피흉, 피…흉.”
차라리 아까 날 구하지 말지 그랬어!
“티김이 티김 대따!”
결국, 새우는 튀김이 되어버렸나 보다.
뭐야…. 죽는 것보다 잔인해…. 새우가 불쌍하잖아.
원래 이름대로 산다고 하는데 이건 숙명이었나 보다.
“형아. 재미따!”
“그래. 시하가 재밌으면 됐지.”
근데 다음에는 형아 병원에 좀 입원시켜 줄래?
수술하고 바로 전투원으로 가는 건 너무 사람을 거칠게 굴리는 거잖아?
물론 시하는 ‘형아랑 가치!’가 패시브이기 때문에 그런 의견은 기각할 게 분명했다.
***
시하는 일찍 눈이 떠졌다.
형아는 조용히 자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눈을 비비며 상체만 일으킨다.
“형아?”
빛 한 점 없어서 형아가 검은 형체로 보였다.
조금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형아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잘 보이지 않는 어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때 시하의 손에서 분홍색 빛무리가 나타났다.
시하의 엉덩이와 발 주위를 둥글게 맴돌았다.
위로 치솟더니 아래로 내려간다.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듯이.
“아? 고마어여.”
시하는 분홍색 빛무리를 어루만졌다.
손에 닿는 느낌은 없었다.
“조은 생각 나써. 시하 그릴래. 고마어~”
빛무리는 시하의 손을 휘감았다.
“군데 시하 자고 나서 그릴래.”
시하는 베개를 형아의 품에 밀어 넣고 머리를 댔다. 눈을 감았다.
아직은 잠이 더 필요했다.
“코오.”
시하의 숨소리가 고르게 분포될 때까지 분홍색 빛무리는 시하가 안심할 수 있게 곁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