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4화 (284/500)

284화

배가 고파진 우리는 분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여기도 추억을 담았는지 도시락을 팔았다.

떡볶이에 오뎅, 그리고 추억의 도시락.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져 있었는데 아이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지켜보았다.

“형아. 마나!”

“응. 맛있게 먹자. 자, 다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잘 먹겠습니다! 라고 크게 소리치며 음식을 먹었다.

시하는 먼저 포크로 떡볶이를 콕 하고 찍더니 입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시하는 매운 것도 잘 먹었지.

오물오물.

“형아. 마시써!”

“시하야. 이 도시락 더 맛있게 먹는 방법 알려줄까?”

“어떠케?”

“잘 봐.”

나는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열심히 흔들었다. 잘 섞이도록 격렬히. 안에 재료들이 만나서 굴러다니는 손맛이 느껴진다.

달칵달칵.

“자. 이렇게 펼치면!”

“신기해!”

“그치? 다 섞였다!”

“형아. 시하도! 시하도!”

시하가 이미 섞인 도시락통을 흔들었다.

이미 비빔밥이 되어버렸는데 의미가 있는 행동이니? 그리고 의자 위에 일어서서 그렇게 해야겠니?

위아래로 흔들면서 엉덩이로 바운스를 춘다.

옆으로 흔들면 허리가 좌우로 돌아간다.

저게 바로 도시락과 물아일체를 이룬 경지인가.

“앗! 나도!”

“하나도! 하나도!”

다들 신발 벗고 도시락을 흔들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강인 아이돌 댄스파티다.

여기 카메라 없지? 갑작스러운 예능에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근데 다들 언제까지 흔들지는 모르겠다. 얘들아. 오늘 안에 먹을 수 있는 거 맞지?

“다 해따!”

시하가 도시락을 열었다. 아까는 약간 어설프게 섞였다면 이제는 제대로다.

“나도! 나도!”

“하나도 다 해써! 엄청 마시게따.”

다들 잘 섞었다.

다른 아이들도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했는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추억의 도시락은 나눠 먹으려고 3개밖에 시키지 않았다.

사람 수대로 시키면 누가 다 먹을 것인가.

아쉬움은 잠시 뒤로하고 맛있게 먹자.

“다음에 선생님이 추억의 도시락을 준비해줄 거야. 그때로 미루자. 자, 다들 먹자.”

“응!”

유다희 선생님은 처음 들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원장님은 그냥 웃으셨다.

아무튼, 다들 도시락을 향해 숟가락을 뻗었다.

역시 분식집이라도 밥심이 최고지.

“형아. 마시써. 마니 머거.”

“그래. 시하도.”

시하가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푹 떠서 내 입으로 가져다주었다.

나는 웃으며 그걸 한 입 먹었다.

“음. 맛있다.”

“오뎅도.”

“푸흡. 형아 챙기지 말고 시하도 열심히 먹어.”

“아? 이거 시하 머글 거야.”

“아, 그래?”

난 또 오뎅 들고 그런 대사를 하길래 나 주는 줄 알았지! 왜 말을 착각하게 해!

본의 아니게 은근 밀당하는 시하였다.

***

밥도 다 먹고 추억의 장소도 충분히 즐겼다.

이제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만 남았다.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 달집태우기.

아이들과 다시 민속촌을 방문하자 이미 준비는 다 끝난 상태였다.

생솔가지와 나뭇더미를 쌓아 올렸고, 짚으로 만든 인형이 어떤 글자가 적힌 종이에 묶여 있다.

“형아. 트리야?”

“트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건 달집이라고 해.”

“달집? 안에 달 이써?”

“아니. 달은 없고 저길 태우면 나쁜 귀신이나 안 좋은 기운들을 없애는 거야.”

“왜 달집이야?”

“달이 보라고. 보름달아 힘을 줘! 하는 거지. 아! 보름달은 망월이라고 한대.”

“망울이?”

“망월.”

“망울이야. 망울이야. 보룸달 이룸이야.”

뭐, 잘못 발음하기는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망울이, 망울이 하고 불렀다고 하니까.

“와! 불태운다.”

“아아!”

화르륵.

순식간에 불이 붙으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지금은 보름달이 뜨지 않은 오후이지만 그래도 하늘에는 여전히 달은 존재하기에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살짝 해가 떨어지고 있긴 한데 밤에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형아. 따뚜테!”

“좋은 기운이 전해지는 건지도 몰라.”

“망울이가 전해져써?”

“당연하지.”

“형아. 망울이 저기 이써.”

나는 시하가 가리킨 하늘을 보았다.

살짝 달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벌써 다 타네.”

“빨리 타.”

“기름을 부어서 그런가 봐.”

순식간에 타올랐다가 꺼지는 달집을 보며 살며시 기도했다.

시하가 올해도 건강하기를. 아프지 말기를. 모든 나쁜 운들이 불타서 떨어져 나가기를.

만약 힘이 모자란다면 나는 견딜 수 있으니 시하만이라도 풍요가 찾아오기를.

“형아. 모해?”

“시하가 잘되길 소원 빌어.”

“시하도 소언!”

시하가 두 손 꼬옥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형아 아푸지 말고. 또. 또. 맨날 잘 일어나고. 또 또. 밥 잘 먹고.”

크흑. 시하가 나를 이렇게 걱정해 주다니. 감동이었다.

“그래서 형아랑 가치 맨날맨날 놀게 해주세여.”

그래. 앞의 소원은 이 마지막 말을 위해 쌓은 빌드업이지?

결국, 나랑 같이 매일 놀고 싶은 거였냐?

아주 이유가 명확하다. 기승전결이 아주 완벽해!

“이제 갈까?”

“아아.”

길을 걷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민속촌에는 마지막을 장식하듯이 등불이 길가에 켜진다.

영롱한 불빛이 시하의 망막에 맺힌다.

내 손을 잡은 시하가 가만히 걸음을 멈춘다.

“시하야?”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형아.”

“응?”

“시하 그림 그리고 시퍼.”

오늘 하루 많은 걸 봤으니 그리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한가?

왠지 모르게 궁금증이 든다.

“그래. 이제 빨리 집에 가자.”

“아아.”

다시 걸음을 옮긴다. 등불이 비추는 길을 걷는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희미한 생각이 떠올랐을 때 거기를 향해 가는 걸지도 모른다는.

“오늘은 뭐 그릴 거야?”

시하는 가방에 달린 단소를 가리킨다.

“이거랑 달집이랑 천이랑 전부!”

“엄청 많이 그려야 할 것 같은데?”

“페페가 옛날옛날에 가. 가서 마니 바.”

“오호. 그거 재밌겠는데?”

“아아.”

우리는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탈 때는 아이들이 피곤한지 오는 도중에 곯아떨어졌다.

쌍둥이는 서로 머리를 맞대며 잔다.

종수는 팔짱을 끼고 눈 감고, 재휘는 그런 종수의 어깨에 기댄다.

은우는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윤동은 창밖의 풍경을 본다.

‘피곤하지 않은 걸까?’

연주는 내 옆에서 기대었고 시하는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내 무릎 위에서 잠이 들었다.

버스의 운전기사는 불을 꺼주었다.

조용히 움직이는 버스 속에서 아이들이 새근새근 자는 숨소리만이 가득 찼다.

짧은 단잠을 자고 나면 부스스, 몽롱한 채로 일어나 엄마에게 안길 것이다.

“여러분 일어나세요! 도착했어요.”

아이들이 힘겹게 눈을 떴다.

시하도 살짝 떴다가 내 품에 쏘옥 안긴다.

“시하야. 일어나야지.”

“시하 몽실이 대써. 형아가 둥둥 떠서 가져가.”

“뭔 소리야.”

나는 어쩔 수 없이 안전벨트를 풀고 시하를 안아 올렸다.

자연스럽게 목을 끌어안는다.

“친구들에게 인사도 안 하고 갈 거야?”

“아?”

그 말에 눈을 뜨며 친구들을 보았다.

다들 비몽사몽 한 눈들이다.

“모두 바이바이. 샘도 바이바이.”

다들 하품을 하거나 눈을 비비면서 손을 흔든다.

이미 어머니들도 와 계셔서 바로바로 데리고 갈 것 같았다.

“형아. 시하 자.”

“그림 그리고 싶다며?”

“자고 나서.”

하여간. 자유로운 스케줄표에 웃음이 나온다.

***

서수현에게 너튜브 1천 명을 모으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채널 구독을 하고 계속 지켜봐 온 입장으로 확실히 처음 시작할 때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하페페는 조금 시작점이 달랐다.

픽시브의 업로드를 1년 동안 한 덕분일까?

영상이 하나밖에 없었지만, 구독자가 500명쯤 되었다.

애걔? 겨우? 뭐 이런 반응이 올지 모르지만,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거다.

실제로 막 시작한 사람들의 구독자가 10명 안팎이라는 걸 볼 때 확실히 다른 시작점이다.

연예인들이 너튜브를 파기 시작하면 남다른 숫자의 구독자가 모이는 것과 같다.

천 명은 껌이라는 거지.

“사실 오늘 너에게 부탁할 게 있는데. 일단 이것 좀 마시고.”

나는 쟁반을 내려놓으며 커피를 주었다.

서수현이 받으면서 빨대를 꼽고 쪽 하고 빨았다.

“무슨 부탁이요?”

“이번에도 시하 영상을 올릴 생각이거든.”

시하가 집에서 그림을 많이 그려두었다.

나는 그걸 잘 정리한 다음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생각이다.

영상도 다 편집되어 있으니 이제 필요한 건 노래뿐이다.

“설마설마 저에게 음악을 달라는 거 아니죠? 이 커피로?”

“윈윈 전략이라고 하지.”

“인기 너튜버의 버스를 타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어디? 어디?”

나는 손바닥을 펼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 인기 너튜버는 보이지 않았다.

한 구독자 100만 명 정도 되어야 인기 너튜버 아닌가?

“여기! 여기!”

“우물 안 개구리밖에 보이지 않는데?”

“음악 받으러 온 사람 맞아요?”

“다시 보니 잠룡이네. 곧 용알에서 깨어나 우물을 나올 것 같아.”

“말은 무슨.”

서수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니. 근데 전 사실 이렇게 부탁하지 않아도 줄 생각이었거든요.”

“그럼 줘.”

“이 오빠가 진짜! 말 좀 끊지 말고요. 아니. 음악을 그냥 까나? 뭔가 말 좀 해줘야 거기에 맞는 분위기 있는 걸 주지요.”

“아, 그렇지.”

나는 폰을 꺼내서 미리 저장된 그림을 보여주었다. PNG 파일로 받아둔 것이다.

“이건데.”

“으음. 이런 느낌의 그림.”

“민속촌에 가서 본 걸 그린 거거든.”

“펭귄도?”

“실제로 펭귄탈이 있었으니까 안 봤다고 할 수 없으려나?”

“뭐, 시하는 페페를 정말 좋아하니까요. 어차피 모든 그림이 펭귄이잖아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그래요. 99퍼센트가 펭귄.”

이건 반박을 못 하겠다.

“근데 이렇게 그림만 봤을 때는 뭘 넣을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떤 느낌인지. 오빠. 글도 넣으실 거죠? 저번 영상처럼.”

“응. 어떤 느낌이냐면 이상화 시인 있지?”

“아, 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런 느낌으로.”

서수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내 폰에 있는 그림 순서들을 천천히 넘겨보았다.

그러더니 입을 살짝 벌렸다.

“오빤 진짜 crazy한 것 같아요.”

“무슨 뜻이야? 욕이야?”

“당연히 칭찬이죠! 와! 이 그림에서 어떻게 그런 스토리가 나오냐고. 나 이제 이해했잖아. 글 적은 거 있죠? 그거 좀 봐요. 대충 예상은 가는데.”

“자, 여기.”

나는 폰에서 자막으로 써놓은 글귀를 보여줬다.

서수현은 어이없는 얼굴로 폰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뭐? 뭐? 대체 왜 그러는데?

“시하도 창의적이고 발상이 좋은 거 같은데 오빠도 진짜 어지간한 것 같아요. 이 그림으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대? 아니. 이거 말고 그림 더 있죠?”

“응. 그림 중 딱 저것만 고른 거야. 영상도 거기에 맞춰서 편집할 거고.”

“나중에 사람들이 둘이 만든 합작이라는 거 알면 뭐라고 생각할까?”

“안 밝힐 생각이니까 절대 모를걸?”

서수현이 커피를 한 모금 하더니 침묵했다.

잠시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말만 했다는 걸 알았는지 커피를 쪼옥 마셨다.

“오빠. 이거 말이에요.”

“응?”

“차라리 설명하지 말고 노래로 하는 게 어떨까요?”

“노래?”

“네! 우리 이거 가사로 써서 영상에 입혀요. 완전 대박이겠다.”

“?”

뭔가 일이 커지는 거 같은데…….

“내가 부르는 건 아니지?”

“당연히 제가 부르죠. 오빠 버전도 만들까요? 팍 하고 떠오르는 게 있는데.”

“아니. 내가 노래는 무슨.”

“왜요? 혹시 알아요? 이게 인기 있을지.”

서수현이 어떤 멜로디를 떠올렸는지 녹음을 켜서 흥얼거렸다.

아무튼, 나야 노래를 만들어 준다니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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