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시하와 나는 자리에 앉았다.
다른 아이들은 달고나를 베어먹으며 내가 하는 걸 기다렸다.
준비된 바늘을 쥐고 열심히 긁었다.
“형아. 힘내. 힘내.”
“응.”
물고기 모양은 정말 오랜만이다.
바늘을 이용해서 열심히 긁었다. 먼저 노리는 건 꼬리의 뒷부분.
일자로 열심히 그으면서 떼어냈다.
톡.
부서진 건 입에 쏙 넣었다.
“으음. 맛있다.”
“형아! 꼬리!”
“이렇게 깔끔하게 떼지는 거지.”
“형아 대다내!”
아직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칭찬이 후하다. 이러다 물고기 얼굴이나 꼬리가 똑 하고 부러지면 어떡하지?
“열심히 할게. 형아도 오랜만이라.”
혹시 모를 빌드업을 쌓는다.
그그극. 그그극.
어릴 때 달고나 할아버지가 우유를 들고 오면 바꿔주기도 하고 그랬다.
생각해 보니 우유가 더 비싼데 말이다.
물론 나는 친구들이 바꾸는 걸 보기만 했고 실제로 하는 건 돈을 내었다.
우유 비용을 아버지가 내는 걸 어린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비록 초1이었지만 나는 그랬다. 가끔 용돈으로 한 번씩만 했다.
100원에 맛난 거 먹고 싸게 즐길 수 있는 놀이였으니까.
“다 했다!”
깔끔하게 물고기 모양이 나왔다.
“형아. 시하 줘!”
“응. 그래. 여기.”
소중한 건지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
아이들도 우와우와 하면서 감탄을 뱉었다.
“시혁이 형아 진짜 잘한다!”
“하나도 이거 하고 시퍼.”
나는 피식 웃었다.
아쉽게도 나이 제한이 있어서 아이들은 이걸 할 수 없었다.
적어도 8살부터 하라고 적혀 있다.
“초등학교 들어간 사람부터 할 수 있대. 좀 더 커서 다시 오자.”
“시하는 형아가 해져. 시하는 볼래.”
어이쿠. 회장님은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사원인 제가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갈까?”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달고나 부스를 빠져나왔다.
아직 볼거리는 많았다.
그때 하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시혀기 오빠! 저기! 저기! 하나 저기 갈래!”
고개를 돌려보니 간판에 아이돌 의상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말하는 걸 하나가 들었나 보다.
아, 저거면 하나가 못 참지.
근데 아마 지금 아이돌 의상과 다를 텐데?
아무튼, 우리는 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와!”
옛날 아이돌이 입었던 옷들이 있었다.
하나는 신기한지 여기저기 구경했다.
SES, 핑클 등등 사진이 여기저기 붙여져 있었다.
4살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찾아보니 별로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하나야. 입을 수 있는 옷이 이거밖에 없다던데?”
“힝.”
“그래도 이거 예쁘지 않아? 귀엽고.”
“우웅. 귀여워.”
“그럼 이거 입어보자.”
대여라서 조금 비싼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것도 추억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원장님이 계산하신다.
“어? 원장님?”
“과자랑 다르게 이런 건 너무 비싸니까요. 저희 어린이집이 부담해야죠.”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요. 자. 여러분. 옷 입어요. 옛날에 멋진 아이돌이 입던 옷이에요.”
유다희 선생님이 콧김을 뿜었다.
“이건 HOT라는 그룹이 캔디라는 곡을 부를 때 입은 옷이야!”
선생님. 진정하세요.
“엄마, 아빠가 보면 웃으면서 좋아할걸?!”
“선생님도 팬이었어요?”
“그건 아닌데요.”
“텐션이 좋길래 팬인 줄 알았어요.”
“노래랑 옷은 좋아하긴 했어요. 귀엽잖아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가 입으면 정말 귀엽겠다.
옷을 받아서 아이들을 갈아입혔다. 오랜만에 강인 아이돌 출동이다.
선배님들 패션을 해서 무대를 빛내주렴.
“형아!”
“시하야. 멜빵 바지 진짜 잘 어울린다.”
이상하게 멜빵 바지에 꽂힌 것 같다.
아무래도 나중에 멜빵 바지를 꼭 사줘야겠다.
“여기 장갑.”
“아아!”
그렇게 귀여운 패션이 완성되었다.
아이들도 똑같은 패션이라서 그런지 진짜 팀처럼 보인다.
대여 30분에 5천 원…. 비싸긴 비싸네.
대충 1시간이면 충분히 여길 즐기지 않을까 싶다.
“하나야. 아이돌 대써?”
“응. 시하야. 어때? 하나 모자도 써써.”
“예뻐. 예뻐.”
“헤헤헤.”
옆에 있던 승준이 말했다.
“못생겼다.”
“오빠가 더 못생겼거든!”
“하하! 난 아이돌 안 될 거니까 괜찮아!”
“이씨!”
“그래도 오빠가 못생겼지만 팬클럽 회장 돼줄게. 고맙지?”
“필요 없거든! 시혀기 오빠랑 시하가 응원해줄 거거든!”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아이돌 대면 시하가 싸인해 주께.”
“응?”
시하 네가 왜 싸인해 주냐. 하나가 싸인해 줘야지.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웃기긴 할 것 같았다.
일반인의 싸인을 받은 아이돌.
“그럼 나갈까?”
우리는 대여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으로 간 곳은 [추억의 오락실]이라는 곳이었다.
근데 애들이 할 만한 게 있을까?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이번에는 승준이 많이 흥분했다.
“시혀기 형아! 저기 농구! 농구!”
“농구공 던져서 많이 넣으면 점수를 높게 얻는 게임이야.”
“나 할래! 할래!”
“그래. 그래. 읏차!”
나는 승준을 들어서 게임기 위에 올렸다.
아직 아이들 키면 농구공을 잡고 넣을 수 없을 테니까.
근데 이래도 되나?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시하야. 같이하자!”
“아라써!”
나는 시하도 위로 올렸다.
동전을 넣자 농구공이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시작!”
먼저 승준이 농구공을 잡는다. 포즈가 그럴듯했다.
역시 공이라면 다 좋아하는 체육돌 오승준 맞다.
휘익.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에 골인했다.
“아싸! 시하야. 너 해봐.”
“아라써!”
시하가 농구공을 잡고 휙 던졌다.
골대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
역시 아직 이런 큰 공은 익숙지 않은 거겠지.
“너어따!”
아니야. 넣지 않았어. 근처에도 안 갔어.
“근데 얘들아. 빨리 안 넣으면 점수 많이 못 얻는다?”
둘이서 허겁지겁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같이 맞아서 튕기기도 하고 공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것도 다 추억이 되겠지.
나는 폰을 들어서 두 아이의 뒷모습을 찍었다.
찰칵.
***
“형아. 저거 모야?”
시하가 가리킨 것을 보았다.
빨간 공중전화부스.
“저거는 공중전화라는 건데…….”
“아? 시하 배어써. 전화 둥둥 떠 이써.”
“아니. 그렇지는 않고…. 설마 둥둥 떠 있겠니? 가서 보면 알아. 들어가 볼래?”
우리는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갔다.
아이들도 다 들어오는 바람에 안 그래도 좋은 공간이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만원 전철도 아니고 말이야.
“얘들아. 이렇게 다 들어오는 거 아니야.”
“형아. 시하 전화할래. 안아져.”
“지금 전화가 문제야?!”
어쩔 수 없이 시하를 안았다.
그래도 공간은 좁았다.
“여기 수화기를 잡고 동전을 넣는 거야. 그러면 전화를 할 수 있어.”
“정말?”
“응.”
시하가 열심히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신호음이 가지 않았다.
“형아. 안 대.”
“이거는 모형이라서 진짜로 되는 건 아니야.”
“전화도 안 떠 이써.”
시하가 뭔가 실망한 눈치였다.
원래 상상과 현실은 괴리가 벌어지는 법이지. 어쩔 수 없다.
철컥.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았다.
아이들도 다 한 번씩 해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애들을 안아줘야 했다.
시하는 투명한 창에 붙어서 ‘형아가 가쳐써!’ 하면서 두드리고 놀았다.
실망감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나 보다.
빠르기도 하지.
“형아. 저기 사람 마나.”
“응? 그러네?”
“방구방구 문방구야.”
“거기 문방구는 다른 곳이고 저기는 [추억의 문방구]라고 하네.”
문방구 앞으로 가자 사람이 많은 이유를 알았다.
한 남성이 종이 뽑기를 팔고 있었다.
한 번 뽑는 데 2,000원.
5등부터 1등까지 있고 꽝은 없었다.
[5등 상품 : 2천 원 먹거리.
4등 상품 : 3천 원 먹거리.
3등 상품 : 본드 풍선 + 2천 원 먹거리.
2등 상품 : 펀치 아이스크림 + 2천 원 먹거리.
1등 상품 : 다마고치 + 2천 원 먹거리.]
한 번 하면 손해는 없는 게임이었다.
“안녕하세요! 문방구 아저씨예요! 거기 꼬마 친구들도 뽑기 한번 해보는 게 어때?”
“뽑기여?”
시하가 관심을 보였다.
다른 아이들도 눈을 빛냈다.
“그래그래. 저 옆에 아저씨 보이지? 여기 주르륵 10개를 뽑았거든? 다 5등이 걸렸어! 그럼 뭐다?”
“아?”
“이제 1등부터 4등까지 나올 확률이 높다는 거시여! 아따. 나라면 뽑는당께!”
그때 종수가 나섰다.
“야. 오승준! 이시하! 우리 내기할래?”
“모야?”
“종수야. 지금 운을 시험하는 거야?”
종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일 높은 거 나오는 사람이 오늘 하루 부하 하기. 어때?”
“형아도 가치?”
시하야. 형아를 부하로 만들고 싶니?
승준은 좋다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도 어쩌다 휩쓸려버렸고.
그렇게 모두가 참여하게 되었다. 제일 높은 사람만이 승리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럼 형아부터 시작할게.”
“형아. 하팅!”
“고맙다.”
툭. 나는 종이를 떼서 문방구 아저씨에게 주었다.
“어디 보자! 5등!”
이렇게 많이 떼여 있는데 5등밖에 안 돼? 사실 5등만 다수 포진되어 있는 거 아니야?
“형아. 대다내!”
“시하야. 5등이 꼴등이야.”
“아?”
정말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일단 내가 뭐만 하면 칭찬부터 날리고 보는 거 아니지? 거의 무조건 반사 수준인데?
다음은 승준이 뽑았다.
“4등!”
“와아! 내가 시혀기 형아 이겨따!”
“형아. 시하가 이겨주께. 기다려!”
시하야. 형아는 괜찮아…….
다음은 하나가 뽑았다.
“4등!”
“하나도 오빠랑 같네?”
역시 쌍둥이들인가?
연주는 5등을 뽑고 입을 삐죽였고 재휘 역시 5등을 뽑으며 연주랑 같다고 수줍게 이야기했다.
너희 여기서 뭐 하니?
드디어 종수 차례가 왔다.
“나는 이거!”
“와우! 2등이네!”
“정말요!”
“그럼! 여기 펀치 아이스크림하고 먹을 거란다.”
“아싸! 하하하! 내가 이겼다! 내가 이긴 거나 마찬가지다!”
종수가 펀치 아이스크림의 버튼을 누르자 퉁 하고 아이스크림 부분이 튕겨 나왔다.
다시 콘 부분을 장착시켜서 다시 한번 버튼을 누른다.
세레모니 하나 기가 막힌다.
과연. 이대로면 종수의 우승이 확정이다. 1등이 나오지 않으면 다들 종수의 부하가 되겠지.
은우랑 윤동도 5등으로 종이 뽑기에 농락을 당한 후.
대망의 시하의 차례가 왔다.
“야. 이시하. 너 1등 못 뽑으면 시혁이 형아가 내 부하가 된다~ 알고 있지?”
“!!!”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입을 살며시 벌렸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정신을 차린다.
“안 대. 형아 시하 꺼야.”
“하하하. 1등 뽑아야 이기지. 시혁이 형아에게 엉덩이로 이름 쓰기 시킬 거다~”
정말로?
종수는 시하를 이길 거라는 기대감에 도발을 했다.
그 말에 시하가 비장한 표정이 되었다.
“시하 1등 뽀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전에 방구방구 문방구에서 시하의 운은 굉장히 좋았던 거로 기억하고 있다.
과연 이번에도 그 운이 따라줄 것인가.
“우웅.”
“이거? 이거 고른 거야?”
“아냐. 이거 아냐. 반짝 아니래.”
“???”
“이거? 이거야? 아냐? 아라써. 이거? 이거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종이 뽑기랑 대화를 하나 보다.
그러면 진짜 1등을 가르쳐주니?
“이거! 이거야! 아찌. 이거 할래여!”
“하하하! 과연 이게 1등일까요?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줄게!”
“아냐. 이거!”
“알았다. 후회하지 말도록! 여러분 이게 만약 1등이면 여기 있는 어린이가 다른 모두를 부하로 만들고요. 만약 2등이라면 다시 한번 뽑게 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 2등보다 아래라면!”
분위기를 띄울 줄 아는 아저씨다.
다른 손님들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손으로 종수를 가리킨다.
“여기 이 아이 밑으로 전부 부하가 되겠죠. 과연 이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아저씨가 뽑기를 펼쳤다.
눈이 살며시 커진다.
“와…. 미쳤다…….”
종이를 돌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1등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승준이 ‘와아아아!’ 하고 외치며 시하를 끌어안았다.
하나도 방방 뛰면서 기뻐했고 연주도 살며시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재휘는 종수의 눈치를 보며 애매하게 손만 들고 있다.
종수는 충격을 받은 채로 입을 쩌억 벌렸다.
“말, 말도 안 돼…….”
어쩔 수 없다. 시하는 운이 좋으니까. 아니, 종이 뽑기가 알려준 덕분인가?
시하가 종수 앞에 섰다.
“종수 이제 시하 부하야.”
“크흑.”
“엉덩이로 이룸 쑤기 해! 어서!”
“크으윽.”
종수가 굴욕적이라는 표정으로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했다.
승부는 마지막까지 봐야 하는 법이다.
앞으로 입을 조심하자 종수야.
“형아. 시하 잘해찌?”
시하가 허리에 손을 얹고 배를 쭈욱 내밀었다.
“그래. 형아 지켜줘서 고맙다.”
덕분에 형아가 엉덩이로 이름 쓰기 안 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