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2화 (282/500)

282화

이 드라마의 결과는 전부 감옥에 갇히는 거로 끝이 났다.

다음 코스가 감옥이었으니까.

목에 나무로 된 가쇄를 보며 한 번씩 차고 싶어 했다.

“형아. 시하 갇혀써. 구해져!”

“시하야. 형아도 감옥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구해 주니?”

“형아랑 가치?!”

시하가 내 다리에 찰싹 붙었다.

감옥이라도 나랑 같이 있는 게 중요하니? 여기서 안 빠져나가면 죽을지도 몰라?!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시하는 내 손을 꼬옥 잡고 감옥 안을 만끽하고 있다.

“이제 갈까?”

“아아!”

시하가 내 손을 끌었다.

앞서 나가는 모습에 가방이 보인다.

펭귄탈이 장착되어 있고 안에는 단소가 삐죽 튀어나와 있다.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새 추억이 쌓이는 것 같다.

“형아. 다음에 어디가?”

“으음. 민속촌에 이벤트를 참가할 거야. 아마 저기부터 준비된 프로그램이 있대.”

“모야?”

“글쎄? 같이 가보자.”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체험할 수 있게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다.

이번 달에는 정월 대보름에 맞춰서 준비했는데 그게 또 신기한 점이다.

이렇게 2월이 다 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

시하와 함께 둥근 달을 보면 좋을 것 같다.

“형아. 저기 우물이야. 우물!”

“으응?”

시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들도 그걸 봤는지 난리가 났다.

“형아. 우물신 이써?”

“글쎄?”

“시하 몽실이랑 비실이 만나고 시퍼.”

“근데 저기 우물은 몽실이랑 비실이 없는 것 같아. 대신 용알이 있대.”

“용알?”

“응. 티라노사우루스 말고 이렇게 뱀처럼 생긴 동양용을 말하는 거야.”

“아? 아아! 시하 아라. 드래건… 우웁.”

나는 손으로 시하의 입을 막았다.

“흠흠. 설마 드래땡볼 말하는 거 아니지?”

“아냐. 신용. 신용.”

“그거 맞잖아. 그렇게 생긴 거 맞긴 한데…….”

“소언 세 개 들어져.”

승준도 아는지 흥분했다.

“용알이면 역시 7개의 구… 우웁.”

“승준아. 그 드래곤처럼 생긴 건 맞지만 좀 달라.”

만화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우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먼저 용알을 뜨고 나면 다음 사람은 용알을 뜰 수 없다고 믿었대. 그래서 용알은 먼저 뜨면 지푸라기를 잘라서 놓거나 여기 있는 것처럼 꽈리를 놓았대.”

“형아. 알 마나!”

“그래. 알 많은 게 너희들에게는 중요하지?”

“용이 알 나아써?”

“응.”

“용 언제 태어나?”

“글쎄? 일단 우물에 있는 박으로 떠볼까?”

“아아.”

시하가 바가지를 하나 잡더니 물에 푹 넣었다.

하지만 조금 깊은지 알에까지 닿지 않았다.

“아?”

“형아가 떠줄게.”

나는 팔을 걷고 푹 담가서 용알을 건졌다.

“나와라. 신용. 신용.”

“시하야. 그거 아니야.”

8명의 아이가 내 곁에 모여들었다.

다들 용알 하나씩 소중히 손에 쥐었다.

승준이 말했다.

“하나야. 우리 이걸로 계란후라이 하자. 용알이니까 더 맛있을 거야.”

하나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승준을 바라보았다.

“오빠. 너무해! 어떠케 그럴 수 이써!”

“왜? 하나 니 꺼도 줘봐. 두 개 만들 수 있겠다.”

“안 돼!”

하나가 알을 뒤로 숨겼다.

승준이 장난기 어린 눈으로 하나의 등 뒤로 가려고 했다.

하나는 그걸 막기 위해 몸을 빙그르르 돌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연주가 수도로 승준의 머리를 툭 하고 때렸다.

“하나 괴롭히면 혼나.”

“앗!”

“연주야!”

하나가 연주 뒤로 숨었다.

참으로 재밌는 장면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종수는 일단 의심을 하고 있었다.

“용의 알치고는 너무 작지 않아? 공룡들 알 보면 이따만 하던데?”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재휘가 옆에서 말했다.

“나오면 거대화를 할지도 몰라.”

전대물에 자주 나오는 거대화 말이지?

종수도 그걸 생각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떨어뜨렸다가 용이 훅 나와서 커지는 거 아니지? 집이 부서질지도?”

“종수야. 왜 그래. 무서워.”

그때 은우가 웃으며 말했다.

“푸하하. 알 깨지면서 종수 머리도 깨지겠다. 푸하하.”

“야! 넌 내 머리가 깨졌으면 좋겠냐.”

“여친이랑 깨지는 저주받을지도. 푸하하!”

“이씨! 자꾸 불길한 소리 할래? 그리고 나 여친 없거든! 그래서 안 깨지거든!”

“여친 없대. 푸하하!”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윤동은 살짝 손에서 용알을 굴리다가 우물에 다시 툭 하고 던져 넣었다.

용알에 관심이 없는 걸까?

가만 보면 뭔가 멋진 느낌을 뿜어내는 것 같다.

다시 시하를 보는데 용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용식아. 언제 나올 거야? 시하가 나오면 어항에 너어주께. 밥도 주께.”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밥 혹시 물고기 먹는 밥 아니니? 아마 어항에 넣으면 물고기가 다 먹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름이 왜 용식이야? 용의 위엄은 없고 너무 친근하잖아.

“형아. 용식이 어떠케 태어나?”

“아마 어항에 넣어보면 되지 않을까?”

“아아.”

시하가 조심스럽게 펭귄 가방에 용알을 넣었다.

아무래도 저 용알의 운명은 어항의 장식품이 될 것이다.

불쌍한 녀석.

***

다음 체험은 매생이심기라는 거였다.

이걸 심으면 그 해는 병이 없어지고 아이들의 종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시하야. 이 매생이를 심으면서 올해 아플 거 전부 가져가라! 하면 된대.”

“그럼 형아 안 아파?”

시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크흑. 자기 몸 걱정보다 형아 몸을 더 걱정해주다니. 대체 누굴 보고 이리 배웠니?

아니, 뭐 당연히 날 보고 배웠지. 자랑스럽다. 이시혁의 동생 이시하!

적당히 뻘한 생각을 털어내고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올해 이거 심으면 안 아플 것 같아.”

“형아. 빨리 심자. 빨리.”

“이거 자기 나이대로 심는 거래.”

시하는 매생이 4개를 받았고 나도 24개를 받았다.

왜 이렇게 많아 보이지?

시하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옆에서 ‘형아. 마나. 마나.’ 하고 외치고 있다.

새삼 시하랑 나이 차이가 느껴진다.

나 사실 형아가 아니라 삼촌뻘인데…. 미안해. 형아가 나이 많아서 미안해.

뭔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형아래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것 같은데.”

“동생이 많이 막둥인가 보네.”

“제 친구도 칠 남매라서 첫째랑 막내 나이 차이가 엄청나거든요.”

“히익!”

“근데 애들이 8명이니 8남매인가.”

“에이! 다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나는 그냥 머리를 긁적였다.

옆에서 매생이를 손에 넣고 있는 유다희 선생님이 보였다.

어디 보자. 몇 개시지? 많은 거 같은데.

“까아아악!”

“아 깜짝이야. 까마귀세요?”

“이, 이, 이거 왜 봐요! 시혁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음흉한 구석이 있었네!”

“아니. 그냥 좀 볼 수도 있죠.”

“안 돼요. 나이는 안 돼요.”

선생님이 매생이를 품에 숨겼다.

그렇게 많지도 않으실 텐데 뭔가 민감하신가 보다.

“흠흠. 죄송합니다.”

“네. 안 봤으면 괜찮아요.”

“그래도 대충 대학 졸업했다고 치고 계산해 봤을 때.”

“까아아악! 뭘 계산하는 거예요?!”

유다희 선생님도 서수현처럼 놀리는 재미가 있네.

아무튼, 우리는 나무 호미를 받아서 근처에 있는 밭으로 갔다.

열심히 파서 매생이를 심었다.

이게 시하와 애들은 4개뿐이라 몇 번만 파면 되는데 나는 개수가 워낙 많아서 좀 나눠서 묻어야 했다.

“형아. 시하가 도와주까?”

“고마워.”

“하나도! 하나도!”

“나도! 나도!.”

“저도 도와줄게요.”

아니. 이렇게 많이 안 도와줘도 되는데?!

그렇게 많이 팔 만큼 손에 매생이가 많지 않아!

종수 패밀리들도 시하가 하는 것을 봤는지 선생님과 원장님을 도와 땅을 팠다.

“종수야. 설마 선생님 매생이 세고 있는 거 아니지?”

“…….”

“왜 답이 없어! 세면 안 돼요!”

재휘가 ‘종수야. 비밀 지켜주자.’ 해서 종수는 세는 걸 그만두었다.

은우와 윤동은 원장님을 도왔는데.

“원장 선생님은 왜 이렇게 나이가 많아요?”

“원장이라서 그래.”

“푸하하! 원장 선생님은 남바완이니까! 나이도 남바완!”

“전부터 궁금한 건데 은우야. 아버지나 어머니가 부산 사람이니? 아니면 경상도?”

“삼촌이 갱상도예요. 갱상도. 푸하하!”

“???”

“아빠가 가끔 사투리 쓰는데.”

매생이를 심으면 이런 정보도 알게 되는구나.

“형아. 다 해써. 주문 외어.”

“응? 주문?”

“아아.”

가만 보니 시하가 매생이와 함께 자기 손을 묻었다.

“매생아. 매생아. 헌집 주께. 새집 다오.”

그거 두껍아, 두껍아 부르는 거 아니니?

하여간 가끔 이렇게 엉뚱하다니까.

“매생아. 매생아. 병 주께. 건강 주세여.”

왠지 저런 주문을 들으니 매생이에게 뭔가 못된 짓을 하는 느낌이 든다.

***

다음 프로그램은 부럼 깨기.

딱딱한 견과류를 나무망치로 깨서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호두, 땅콩, 밤, 잣, 은행.

복주머니에 들어 있었고 가격은 2천 원이었다.

“이거 먹으면 올해가 건강해진대.”

“또 건강해져?”

“푸흡. 응. 옛날에는 이렇게 먹고 건강해지라고 소원을 빌었나 봐.”

“시하도 머글래.”

우리는 나무망치를 받아서 복주머니를 두드렸다.

땅. 땅.

호두가 깨지며 안에 알갱이가 나왔다.

나는 시하의 입에 쏘옥 넣어주었다.

“마시써.”

“그래? 땅콩도 먹어볼래?”

나는 손으로 부숴서 시하의 입에 넣어줬다.

“형아. 힘세. 손으로 부셔.”

“이거 너도 힘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우리는 견과류를 조금 먹고 민속촌 옆에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추억의 그 시절]이라는 테마가 있는 곳이다.

복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장소였다.

조선에서 80년대로 시간 슬립을 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형아. 여기 모야?”

“으음. 옛날옛날이 아니라 엄마, 아빠 시절에 다녔던 길거리 풍경이라고 할까?”

“정말? 엄마, 아빠 여기 다녀써?”

“이 비슷한 곳을 경험했겠지?”

“아아.”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는데 시하는 아무렇지 않은지 그저 이 풍경이 신기해 보이나 보다.

나는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직은 조심스러웠다.

이게 뭐라고 조심스러운 것인지.

누구나 다 겪는 이야기일 뿐인데 뭔가 하지 말아야 할 화제를 꺼내는 것처럼.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입 밖으로 꺼내게 되는 것을 보면 이제는 그만큼 괜찮아졌다는 거 아닐까.

슬프지 않고 그리워하는 감정으로.

“가자! 형아도 초등학교 다닐 때 저기 많이 갔거든.”

“형아도?”

시하가 더 관심이 생기는지 내 손을 잡아끌었다.

“형아. 빨리! 빨리!”

“시하야. 너 어딘지 알고 가는 거야?”

“아니!”

“아주 당당하구나.”

나는 시하의 옆에 서서 나란히 걸었다.

우리가 들른 곳은 바로 [추억의 달고나]라는 부스였다.

줄 서서 기다리는 곳으로 나뉘어 있었고 저기 앉아서 열심히 긁고 있는 곳도 있었다.

승준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와! 맛있는 냄새! 시하야. 저거 진짜 맛있겠다.”

“시하도 기대대! 형아랑 가타!”

먹는 게 기대되는 거니. 아니면 형아랑 같은 경험을 하는 게 기대되는 거니.

둘 다 해당이 될지도 모르겠다.

평일에 와서 그런지 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금방 달고나를 받을 수 있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물어보았다.

“자! 어떤 거 해줄까? 막 엄마, 아빠가 어릴 때처럼 긁는 거 해줄까? 아니면 여기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줄까? 원숭이, 부엉이, 토끼. 여러 동물도 만들어줄 수 있단다.”

난 시하가 뭘 만들어달라고 할지 알겠다.

당연히 페페 해달라고 하겠지.

앞에 있는 사람은 대체 페페가 뭐야? 하면서 쳐다볼 테고.

이제 이 패턴은 알지. 잘 알지.

“시하야. 뭘 할래?”

“형아랑 가튼거!”

아…. 이 패턴도 있었지…….

앞에 있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형아랑 같은 게 뭐죠?”

“물고기로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 자를 수 있거든요.”

“오! 초딩 때 좀 해보셨나 봐요?”

“하하. 십자가는 너무 쉽죠.”

“그렇죠. 그렇죠. 그럼 아기도 똑같이?”

“네네.”

옆에 있던 승준이 말했다.

“나는 사커공!”

그래. 승준이 넌 그랬지.

“하나는 아이돌로 해주세요.”

달고나로 아이돌을 만들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저는 바이올린으로요.”

뭔가 동물들을 예시로 들었는데 애들은 전부 자기 좋아하는 걸 말하고 있다.

“시하는 페페!”

시하야. 너 아까 형아랑 같은 거 한다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시하 두 개야. 두 개!”

둘 다 가지려고 하다니 만만치 않았다.

“페페는 펭귄을 말하는 거예요. 근데 애들 말하는 거 다 되는 거 아니죠? 하하.”

“하하하. 다 됩니다.”

“예?”

“페페라면 이모티콘 말하는 거죠? 저도 잘 압니다.”

“예?”

이 사람 뭐야.

사커공, 아이돌, 바이올린, 페페까지 다 된다고? 이게 무슨 능력자야.

그건 그렇고 페페 이모티콘을 알 줄은 몰라서 눈을 껌뻑였다.

“페페 이모티콘 아세요?”

“물론이죠. 최근에 움직이는 임티 냈잖아요. 너무 귀여워서 샀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예?”

크흠. 나도 모르게 그만.

“하하. 아닙니다.”

그때 시하가 배를 쭈욱 내밀며 말했다.

“또 살 때 싸게 해주께여!”

시하야…. 싸게 해주긴 뭘 싸게 해줘?

그리고 너무 티 내는 거 아니니? 물론 나도 티 좀 냈지만.

하지만 앞에 있는 사람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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