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어쩌다 보니 민속촌에 같이 왔다.
아이들은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이왕 온 거 나도 신나는 마음으로 즐겨야겠다.
꼬옥.
“형아!”
시하는 내 손을 꼬옥 잡고 있다.
사실 좀 의문이었다. 아이들이 여기를 재밌어할까 싶어서.
“옛날옛날이야.”
“그러네. 집도 다르다. 그치?”
“아아.”
아무래도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재밌어하고 있으니까.
이런 것도 좋아하는구나.
승준이 시하 옆에 딱 붙어서 말했다.
“시하야. 빨리 가자.”
“아아!”
초가집이 보이며 잘 닦인 흙길을 걸었다.
정말 옛날 시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렇게 길이 옛날에 잘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느낌이 그랬다.
“시하야. 부채 엄청 많다!”
“부채?”
아무래도 지나가면서 보이는 공방들이 있다.
부채를 만드는 곳에서 할아버지가 열심히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허허허. 혹시 부채에 관심 있니? 여러 문양이 있단다.”
“우와. 사커공 문양도 있어요?”
“아아. 페페 이써여?”
옛날에 축구공이랑 펭귄 문양이 있을 리가 없잖아.
할아버지도 대답을 못 하고 그냥 허허허 하고 계속 웃으셨다.
많이 당황하셨죠? 얘들이 원래 그래요.
“여기는 옛날 문양밖에 없단다. 아주 예쁘지?”
“아니요.”
“예뻐.”
서로 다른 대답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승준아. 아주 솔직하구나. 할아버지가 또 허허허 하고 웃기만 하시잖니.
“혹시 사겠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가지고 싶다고 하면 사주겠지만 아이들은 이미 부채에 관심이 떠났다.
시하가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할부지. 에어컨 시언해여. 부채 말고 에어컨 쓰세여.”
“허허허.”
“바이바이.”
시하야. 그건 말하면 안 되는 거야. 그냥 안 산다고 하면 되잖니!
곧바로 옆 공방으로 쪼르르 갔다.
다른 아이들도 제일 관심이 있어 오래 머무르고 있는 공방이었다.
바로 탈.
각시탈, 하회탈, 할미탈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건 부채랑 다르게 처음 보는 거라서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형아. 가면 마나.”
“저건 탈이라고 말하는 거야.”
“탈?”
“응. 저걸 쓰고 연극을 하는 거지.”
승준이 눈을 반짝이더니 말했다.
“나 이거 알아. 각시탈이야!”
“각시탈?”
“어? 잠깐 승준아.”
승준이 마음대로 각시탈을 쓰고 근처에 단소를 잡았다.
할아버지가 빙긋 웃으며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간다!”
구경하던 종수를 단소로 콕콕 찔렀다.
“앗! 뭐야?!”
“난 각시탈이다. 얍얍!”
승준아. 대체 뭘 본 거니? 단소는 무기가 아니야…….
“형아. 나무 무기야?”
“저건 단소라는 건데 무기가 아닌데…….”
종수가 뿔이 났는지 자기도 단소를 들었다.
“야! 오승준!”
“받아라.”
갑자기 시작된 단소 싸움. 탕탕 서로 부딪친다.
선생님은 하나와 연주를 보고 있다가 당황해서 말린다.
“다들 그거 그렇게 쓰는 거 아니에요.”
“형아! 시하도! 무기 가져써!”
시하야. 넌 대체 언제 단소를 잡은 거니?
나는 뭐 이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해서 할아버지에게 비용을 치렀다.
뭔가 진한 웃음을 흘리시는 모습에 낚였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애들 모습이 좋아서 놔둔 게 아니라 사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 같은데?!
“형아. 시하 탈도.”
“응? 탈도 가지고 싶어?”
할아버지가 말했다.
“여기 종류가 많단다. 하나 골라보렴.”
“할부지. 페페 업써여?”
“으응?”
“펭긴이여.”
“아…….”
“할부지 펭긴탈 몬 만드러여?”
시하야. 여기 펭귄탈이 있을 리가 없잖니.
“있단다.”
“있다고요?!”
너무 놀라서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대체 왜? 대체 왜 있는 건데?
“옛날에도 펭귄탈을 쓰고 놀았지.”
“정말여?”
“할아버지 되게 뻔뻔하시네요.”
할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양반탈을 잠시 손에서 놓더니 아래에 있는 플라스틱 박스를 뒤적거렸다.
“사실 여기에 애들이 많이 오거든. 그래서 우리도 뭔가 좀 잘 팔릴 수 있는 게 없나 고민했단다.”
“아주 상업적인 고민인데요?!”
“입을 제외한 얼굴 위로만 있는 가면을 개조하면 될 것 같더라고.”
“으음.”
할아버지가 하나의 탈을 꺼냈다.
사람 얼굴의 반쪽. 딱 코까지만 가릴 수 있는 탈이었다.
코 부분에 부착되는 건 툭 튀어나온 펭귄의 부리였다.
눈은 동그랗게 뚫려 있고 둥근 선을 파내서 펭귄의 털 부위를 나타내었다.
말 그대로 진짜 간단히 펭귄탈을 만든 거였다.
“아아! 형아! 페페탈!”
“허허허. 이거 완전 내 수제 작품이거든.”
“흐음. 이건 또 얼마인데요?”
“그냥 다른 탈이랑 가격은 비슷허지.”
“현금이 얼마 없는데…….”
다른 아이들도 사주기에는 지갑에 현금이 별로 없었다.
“괜찮아. 여기 페이 돼.”
“네?”
할아버지가 나무 기둥에 종이로 붙여진 QR코드를 툭툭 치신다.
뭔데. 민속촌인데 대체 결제는 왜 이렇게 최첨단인 건데?
나는 피식 웃으며 결제를 마쳤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손에 뭔가 쥐고 있었다.
이제 안에 들어왔을 뿐인데 뭔가 짐이 생겼다.
원장이 내 곁에 다가왔다.
“시혁 씨. 이렇게 돈 많이 써도 돼요?”
“괜찮아요. 제가 사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요.”
최근에 돈이 꽤 들어와서 이 정도 선물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한 번은 뭔가 선물하고 싶기도 했고.
“형아! 이거!”
“응. 우리 탈 써볼까?”
내가 시하의 얼굴에 펭귄탈을 씌우려고 하자 시하가 단소를 얼굴에 들고 땅 하고 막았다.
“왜?”
“페페탈 여기! 여기!”
시하가 단소로 페페 가방을 툭툭 두드렸다.
나는 살짝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펭귄이 펭귄탈을 쓰는 경우는 또 뭐냐고.
어쩔 수 없이 시하의 요구대로 가방에 씌워졌다.
시하도 마음에 드는지 펭귄 가방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까?”
“아아!”
시하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종수와 승준은 단소를 휘두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정말 별거 아닌 거 갖고 잘들 노는구나 싶다.
***
“옥수수!”
옥수수를 줄에 말려놓은 게 보였다.
아이들이 까치발을 들어 손을 뻗는다. 살며시 만져본다.
“형아. 옥수수 새까매.”
“응. 검정색이 되었네?”
“왜?”
“글쎄 왤까?”
시하가 고민하고 있자 옆에 승준이 말했다.
“옥수수로 사커 조아해서 검은색 있는 거 아니야?”
“글쎄.”
“사커팬이라서 검은색으로 되었을 거야.”
축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축구공의 검은색을 닮게 되었다는 건가.
뭔가 무섭다.
“하나는 다르게 생각해!”
“하나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옥수수가 혼자 맛있는 거 머거서 이빨이 썩어써.”
옥수수 알갱이가 이빨이니?
뭐, 생긴 게 비슷한 건 맞지만 말이야.
옆에 있던 연주가 말했다.
“속이 새까맣게 타서 그런 거 아닐까?”
이때 종수가 나섰다.
“저거 원래 검은 옥수수로 태어나서 그래.”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분명 맞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똑똑한 종수였다.
“형아. 시하 아라써.”
“오? 그래?”
시하의 대답이 궁금했다.
“콜라맛 옥수수야. 콜라맛.”
저기요? 색이 다르다고 맛이 다른 건 아닌데요?
아이들의 생각은 정말 다양하구나.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럼 여기서 사진 찍고 다른 곳으로 갈까?”
굳이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은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하면 좋을 것 같아서.
우리는 옥수수 앞에서 사진을 찰칵 찍었다.
다음으로 가면서 절구도 찍어보았고 옷도 다듬어보았다.
길거리를 걷자 알록달록한 천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이 그걸 보며 열심히 당겼다.
“형아! 시하 없다!”
“시하야. 천이 얇아서 다 보이는데?”
“아코!”
시하가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아무래도 자기가 보인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여간 귀여웠다.
“시하야. 이제 여기 쭈욱 지나면 관아라는 곳이 나와.”
“간아 모야?”
“으음. 옛날에 경찰서 같은 곳?”
시하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찰 아찌 이써?”
“옛날에는 경찰이 아니라 으음. 사또가 네 이놈 했대.”
“사또 아찌?”
“응.”
뭐 깊게 파고들면 관군이 있고 그 위에 계급들이 다 정해져 있을 것이다.
사또는 그 마을을 관리하며 판사 노릇도 하니 역할이 다양했다.
어느새 걷다 보니 우리는 관아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씨익 웃으며.
“여러분! 그냥 구경하면 재미없겠죠? 우리 역할 놀이를 해볼까요?”
아니요. 그냥 구경해도 충분히 재밌습니다만.
“다들 옛날 사람이 되어 보는 거예요. 으음. 여기서 제일 높은 사또는 누가 해볼래요?”
종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시하는 별로 사또가 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우리 시하는 권력욕이 별로 없지.
“푸하하.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이다! 다들 내 말을 들어야 해!”
다른 아이들도 하나씩 역할이 정해졌다.
종수가 시하를 보았다.
“이시하. 네가 네 죄를 알렷다!”
다들 사극을 본 적 있거나 동화책에서 보았는지 뭔가 그럴듯한 대사를 던졌다.
근데 시하는 아는 게 별로 없는데?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다.
“시하. 홍시 마시나서 홍시라고 해써. 홍시가 왜 홍시지? 해써. 홍시야.”
“뭔 소리야?”
나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시하야. 어디서 그 대사를 배웠어?
종수가 헛기침했다.
“크흠. 죄인을 잡아라.”
재휘와 은우가 시하의 팔을 잡았다.
“시하야. 미안해.”
“푸하하. 죄인이래! 죄인!”
“아?”
시하가 곤장에 눕혀졌다.
“형아! 시하 누어써!”
시하야. 너 죄인인데 왜 이렇게 해맑니? 손까지 흔드네?
아무래도 시하가 죄인 역할을 한 건 곤장에 누워보고 싶었나 보다.
윤동이 굵은 회초리를 들고 서 있다.
저걸 엉덩이에 때리는 거지.
“이시하. 다시 네 죄를 정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준다. 어서 말해!”
“종수! 시하 아라. 사랑은 용감함이야.”
“대체 뭔 소리야?!”
저거 발렌타인이 했던 대사 아니야?
시하가 계속 저런 대사를 하니까 종수가 오히려 악역처럼 보인다.
나쁜 사또 느낌이라고 할까?
“매우 쳐라!”
윤동이 숫자를 센다.
하나를 외치면서 회초리를 시하의 엉덩이에 살포시 띄웠다.
실제로 때리지 않는 건 시하에 대한 배려일까.
“아야!”
“응?”
시하야. 닿지도 않았어…….
윤동은 설마 닿았나?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는 둘을 외치면서 회초리를 까딱거렸다.
“아야!”
“야. 이시하. 닿지도 않았어! 엄살은!”
“아냐. 시하 엉덩이 호떡대써.”
“뭔 호떡까지야…….”
종수가 황당하게 보는 그때 한 사람이 등장했다.
각시탈을 쓴 승준이다.
“야이 나쁜 사또야. 시하를 놔 줘.”
하나가 옆에서 외쳤다.
“각시탈이다!”
갑자기 이런 장르로 변해도 되나 싶었다.
승준이 단소를 들고 종수를 두드렸다.
“야야! 나 사또야!”
“응. 나도 알아. 나쁜 사또야.”
“얘들아. 승준도 잡아!”
“난 각시탈이라니까. 승준 아니야.”
요리조리 피하는 승준을 재휘는 못 잡고 우물쭈물했다.
은우는 구경거리가 재밌는지 푸하하 웃기만 했다.
그나마 윤동이 회초리를 들고 승준 앞에 섰다.
“오! 나랑 싸우려고?”
“…….”
윤동은 가만히 회초리를 들어 보였다.
뭔가 둘이서 싸우는 연출이 만들어졌다.
딱. 딱.
회초리와 단소가 부딪쳤다.
뭔가 무기들이 참으로 볼품이 없긴 했다.
아이들이 하도 역할 놀이를 해서 그런지 합이 척척 맞다.
“잠깐만!”
하나가 단소 두 개를 들고 승준과 윤동을 향해 찔렀다.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다.
“연주 아씨가 여기 시끄럽다고 정리하래써.”
연주가 나무 아래 앉아서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흥미진진한데?
연주도 뭔가 있어 보였고 하나도 사실 무술의 고수였다는 설정인가 보다.
갑자기 삼파전이 되었다.
선생님이 내 곁에 서서 말했다.
“윤동은 사또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충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따르고 있어요. 대대로 저 집안 어르신을 모신 사람이죠.”
“???”
“승준은 나라님이 해결해 주지 않으니 백성들을 위한 의적으로 각시탈을 쓰고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시하를 구하러 온 거죠.”
“예?”
“마지막으로 연주는 높은 가문의 아씨예요. 사또인 가문의 적대세력이고 의적 역시 양반에게 반기를 들고 있으니 두 사람을 한 번에 정리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죠.”
뭔데 이 치밀한 설정은…. 무서워…….
시하가 곤장에서 벌떡 일어섰다.
“다들 홍시 때문에 싸우는 고야? 시하가 홍시 주께!”
응. 시하야. 그거 아니야…….
왜 시하만 다른 장르에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