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나는 시하랑 집에 돌아왔다.
앞에 앉혀놓고 설명을 계속했다.
“형아는 시하가 그리는 걸 녹화해서 너튜버에 올렸으면 해.”
“시하 얼굴 나와?”
“아니. 그게 아니라 으음. 시하가 패드에 그림을 그리잖아. 어떻게 그려지는지 그 과정이 녹화된다고 보면 돼. 아! 해볼래?”
나는 시하에게 패드를 주었다.
미리 녹화를 클릭한 다음 아무거나 그려보라고 했다.
시하는 간단하게 만두를 그렸다.
“자, 잘 봐. 이제 영상이 녹화되었거든.”
저장된 동영상을 켜자 새하얀 도화지가 나오면서 펜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아! 시하 그린 거 나와!”
“내가 말했지? 나온다고.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녹화를 해서 너튜브에 올리면 어떨까 싶어서.”
“시하 너튜버대?”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 인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하의 얼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림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느낌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시하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해줄 생각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요즘 댓글은 작성자가 허용을 눌러야만 공개가 된다고 한다.
시하의 얼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꽤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댓글이야 내가 관리하면 되니까.
“시하 할래. 하고 시퍼!”
“그래? 그럼 영상으로 올릴 그림을 생각해볼까? 시하는 어떤 거 그리고 싶어?”
“시하는 페페!”
그래.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데 대체 내가 뭘 물어본 걸까.
“헤드셋 끼고 이써. 초코도 바다.”
“그렇구나. 으음. 헤드셋?”
“아아. 안 들리는 페페야.”
“오오.”
“들리는 페페. 안 들리는 페페.”
시하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펜을 들었다.
“잠깐잠깐 녹화해야지.”
“아아.”
그렇게 녹화를 하고 시하가 그리는 걸 가만히 보았다.
나는 그려지는 걸 보고 영상에 대한 고민을 했다.
어떻게 구상하면 좋을지.
그냥 그림 그리는 모습만 떡하니 올릴 수 없으니까.
거기에 맞는 주제를 선정해 주고 노래를 틀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시하와 나의 합작으로 올릴 생각이다.
자막 역시 내가 붙일 생각이고.
“아?”
“응?”
“형아. 떡떡.”
“응? 떡?”
“문 두드려써.”
“정말?”
벨이 아니라 문을 두드려서 듣지 못했다.
문을 열자 택배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밸런타인데이가 되기 전에 백동환이 기프티콘을 보냈다.
초코 컵케이크.
지금 배송지 입력하면 날짜에 맞춰서 도착한다고 했다.
백동환이 챙겨주는 것에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가 아닌 시하에게 주는 거라고 한다.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었지.
“시하야. 너한테 초콜릿 왔다.”
“초코 와써? 왜?”
“동환이 형아가 보냈네.”
“백동 형아?!”
“그냥 초코가 아니라 컵케이크라는 거야.”
“케이쿠!”
케이크라는 말에 시하가 펜을 내팽개치고 도도도 달려왔다.
상자를 꺼냈는데 정말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 네 개가 있었다.
“진짜 맛있겠다. 그치?”
“형아. 시하 머글래!”
“그래. 그래. 잠시만.”
나는 접시 위에 컵케이크를 올렸다.
시하는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냠냠.
볼이 빵빵해지면서 열심히 턱을 움직였다.
맛있는지 다람쥐처럼 몇 번 베어 먹으며 입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형아. 마시써.”
“천천히 먹어. 여기 우유도 있으니까 같이 먹고. 촉촉해지면 더 맛있을걸?”
시하가 우유를 한 모금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역시 빵과 우유는 사기 조합이지.
“형아. 이거야. 이거!”
“푸흡.”
마치 시원한 국물을 먹고 ‘크으! 이거지!’ 하는 감탄사였다.
“이거도 그릴래.”
아무래도 시하는 다른 의미로 이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하가 뭘 그릴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네 컷 만화를 정리했다.
네가 뭘 그리든 형아가 스토리를 만들어줄게.
***
[채널명 : Sihapepe]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 : 다른 감각]
시작은 두 마리의 펭귄이 그려지는 것부터.
헤드셋이 그려지며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배경음악도 뭔가 달콤한 느낌으로 흘러나왔다.
영상 아래에 자막도 첨부해 있다.
[안녕하세요. 시하페페입니다. 이렇게 영상으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오늘은 하나의 주제로 네 컷 만화를 그려보았는데요.]
[바로 다른 감각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군가와 다른 감각을 가졌다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전 최근에서야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그림입니다.]
헤드셋을 끼고 몸을 흔드는 펭귄 두 마리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저는 이 페페(펭귄)를 참 좋아해서 이렇게 두 마리를 그렸습니다.]
[노래도 참 좋아합니다.]
두 번째 그림.
두 페페가 폰을 만지고 있다. 말풍선이 달렸는데 폰 화면을 보여준다.
하나는 초콜릿 기프티콘을 고르고 있다.
하나는 배송지를 입력하고 있다.
[밸런타인데이는 누군가에게 봄을 알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 그림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그림.
문 앞에 놓여있는 택배 상자.
[그래서 영상으로 배달을 해보았어요. 모두에게 주고 싶어서.]
네 번째 그림.
하트가 그려진 커다란 초콜릿을 두 페페가 들고 있다.
헤드셋은 둘 다 벗어서 목에 걸쳐있다.
오른쪽 페페의 헤드셋에는 음표를 그림으로써 음악이 흘러나오는 걸 표현.
왼쪽 페페의 헤드셋에는 음표가 존재하지 않았다.
[드디어 그림이 마무리되었네요.]
[여러분이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요소요소가 있습니다.]
[네. 왼쪽 페페는 헤드셋을 꼈지만,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농인과 청인을 보여준 겁니다.]
[어때요?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죠?]
[같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저 다른 감각을 가진.]
네 컷 만화가 이어서 전부 나온다.
[오늘은 이런 주제를 귀여운 네 컷 만화로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페페 캐릭터가 하트 초콜릿을 들고 나왔다.
전의 그림과 다르게 하트 초콜릿 안에는 글자가 쓰여 있다.
[구독!] [좋아요!]
10분짜리 영상이 끝이 났다.
영상 밑에는 음악을 제공해 주신 [슈] 너튜버가 표기되어 있고 시하페페의 픽시브도 링크가 걸려 있다.
픽시브에도 너튜브 링크를 걸어서 올려두었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물론 그 댓글은 채널 관리자가 승인해야만 영상에 올라갈 수 있다.
처음에 제일 난리 난 건 픽시브의 팔로워들이었다.
-아니! 시하페페 작가…. 한국인이었어?!
-근데 영어 자막도 제공이 되는데?
-아니. 잠깐만 ㅋㅋㅋ 이거 이상한데?
-뭐가?
-영어, 베트남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번역되어 있는데?
-아니ㅋㅋㅋ 첫 영상이고 처음 하는 너튜브 아님? 누가 번역 제공해 줬냐ㅋㅋㅋ
-제공자가 따로 안 쓰여 있는 거 보니 스스로 한 거 아닌가?
-번역기 돌린 건가?
-그것도 아닌 게 문장이 매끄러워. 내가 독일어를 할 줄 알거든.
다들 멘붕에 빠졌다.
아니, 시하페페의 작가가 한국인인 것도 놀라운데 스스로 번역한 언어 역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에이! 번역기 썼겠지!
-맞아! 설마…. 이 언어 다 쓸 줄 알겠어?
-오우쉣! 베트남어 번역 잘했는데? 방금 영어 자막 번역기 돌려보고 옴ㅇㅇ 직접 한 거 맞는 듯.
-뭔 능력자냐 대체….
-저 정도 언어 능력이면 통번역사뿐이잖아….
-본직이 통번역사임?
영상 하나로 다들 픽시브에 떠들썩했다.
그때 해석가가 등장했다.
-이제야 말이 좀 맞네! 지금까지 내가 해석한 걸 보면 폭넓은 시야가 있어야 하거든.
-와. 그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슈페리어 호부터 시작해서 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통역사면 말이 맞지. 세계를 상대로!
-?!?!
시하페페의 정체에 대해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다가 그림으로 넘어갔다.
-영상 보고 왔는데 숨겨진 요소요소를 발견했어. 역시 시하페페 작가. 일부러 자막으로 저걸 설명 안 했구나!
-???
-쯧쯧. 이래서 시야가 중요하지. 잘 들어. 저기 기프티콘과 배달서비스를 봐봐.
-저게 왜?
-저런 앱 사용에 제일 혜택 본 사람들이 누구겠어.
-!!!
-바로 농인이야!
해석가는 신나게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잘 들어. 농인은 뭔가 전화로 배달을 주문하기 힘들었지. 하지만 앱배달이 발달하면서 손쉽게 시켜먹을 수 있는 거라고!
-와! 그렇네!
-괜히 저 그림이 나온 게 아니야. 다 이유가 있어!
-스마트폰 발전이 청인의 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이 만들었구나!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편견 없는 같은 사람인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봐.
거기까지 생각 안 하고 그냥 기프티콘으로 선물을 받았기에 그렸을 뿐이다.
시혁도 생각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자막이 없었던 거고.
-마지막에 음악을 틀은 헤드셋과 아닌 게 나왔을 때 너무 소름이었어. 역시 시하페페 작가!
시하는 그저 어린이집에서 농인 체험을 그렸을 뿐이다.
물론 농인과 청인을 생각하고 그린 거지만 노렸던 연출은 아니었다.
-마지막 하트 초콜릿은 공평한 사랑인가. 크으.
-그냥 밸런타인 초콜릿을 주는 거 아니야?
-굳이 하트인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거 빼레레로땡
-조용히 해. 시하페페가 뒷광고할 리가 없잖아!
하트 초콜릿은 그냥 하나가 시혁에게 준 게 생각나서 그린 것뿐이다.
공평한 사랑 같은 건 생각도 안 했다.
어찌 되었든 영상의 조회 수는 오르고 있었고 댓글도 보이진 않지만 달리고 있었다.
***
나는 댓글을 찬찬히 보았다.
좋은 댓글들이 참 많았다.
“시하야. 댓글 읽어줄까?”
“아아!”
나는 하나씩 승인을 누르면서 읽어주었다.
“그림이 참 이뻐요! 귀여워요!”
“시하 그림 기여어?”
“귀엽지. 이런 것도 있네. 외쳐! 시하페페! 이 사람은 왜 맨날 외치는 거야?”
“왜 쳐? 시하페페!”
“그렇게 말하면 시하페페에게 왜 날 때리냐고 말하는 거 같잖아.”
“아?”
이 댓글들은 시하가 한글을 알아도 읽을 수 없다.
온통 영어니까 당연하지.
아무래도 픽시브에 있는 팔로워들이 와서 댓글을 단 모양이다.
“으음. 이건 어떡하지?”
아주 장문으로 달린 긴 영어 댓글.
일명 해석자가 이 영상에 단 댓글이었다.
이걸 승인해? 말아?
“형아. 이거 길어!”
“응. 시하 그림에 원래 댓글 많이 다는 사람이야.”
“왜?”
“시하 그림이 마음에 드나 봐.”
“정말?”
어? 그치. 마음에 드니까 이렇게 길게 적지.
근데 뭔가 심히… 심히… 오해가 깊거든?!
굳이 설명하려고 대댓글 다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알아서 놀라고 놔뒀는데 진짜 이렇게 되어버렸다.
이게 바로 스노우볼이라는 건가?
업보가 참 깊었다.
“형아. 한굴이야. 한굴.”
“한굴이 아니라 한글. 오!”
“모야?”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라는데? 아무래도 이모티콘으로 본 사람인가 봐.”
생각해 보니 시하페페로 활동을 꽤 많이 한 것 같았다.
이모티콘을 알아봐 주는 사람도 생기고.
물론 기억을 애매하게 하는 것 같지만.
“형아. 시하 임티 어케대써?”
“아. 그거? 아마 곧 런칭될 거 같은데? 심사는 다 통과되었다고 들었거든.”
“시하 돈 마니 버러?”
“그렇지. 시하 돈 많이 벌겠네. 형아 맛있는 거 사줄 거야?”
“아냐! 안 사져.”
그렇구나. 안 사줄 거구나. 그런데 그렇게 단호하게 말해야겠니?
“형아 다 줄래.”
“어?”
“형아 다 가져. 시하 돈 업써서 못 사져.”
“푸흡. 와. 시하 대단하네. 형아 다 가져? 진짜?”
시하가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다 주기는 아까운가 보다.
“시하 서이 마넌만 빼고. 초코 사머글래.”
“푸흡.”
다는 아니고 거기서 3만 원만 자기가 가지겠다는 게 너무 귀여웠다.
“그럼 3만 원 시하 지갑에 넣고 나머지는 진짜 다 가진다.”
“시하가 용돈 주는 거야. 알아찌?”
“이야. 용돈 액수가 다르네. 형아가 그 돈으로 엄청 맛있는 밥 해줄게.”
“아아. 고마어~”
“네가 왜 고맙다 하냐.”
“아?”
자기 돈을 나한테 주는데 내가 또 고마움을 받는 웃긴 상황이다.
하여간 그 돈은 시하 통장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시하의 미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