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7화 (277/500)

277화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한 새가 상대의 깃털을 다듬어준다. 서로가 꽁냥꽁냥하게 움직임을 보인다.

퍼드득.

다른 쪽에서는 먹이를 물어와 가져다 바친다.

구애의 행동이 퍽 귀엽기만 하다.

사람들 역시도 그런 연인들에게 고백하는 날이 온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마치 하나의 계기를 주는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다.

“엄마! 엄마!”

하나가 엄마를 찾았다.

“으응?”

“곧 밸런타인데이잖아. 하나도 초코 만들래.”

“흐음. 초콜릿 만들 거니? 누구에게 주게?”

“으응? 하나는 시혀기 오빠랑 시하에게 줄 거야.”

“어머. 둘한테만 주게?”

“아니.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다!”

“우리 하나 착하네. 근데 오빠는?”

“오빠?”

승준이 동화책을 거꾸로 집어 펼치며 귀를 쫑긋 세웠다.

하나는 그런 승준을 보다가 고민했다.

굳이 오빠에게 줄 필요가 있을까?

“우웅.”

“그게 그렇게 고민할 정도니?”

“하나는 오빠 불쌍하니까 줄게.”

“왜 불쌍하니. 하나에게 다 받는데 못 받아서?”

“아니. 오빠는 하나 빼고 못 받을 거니까. 그래서 하나가 줘야 해.”

승준이 반발했다.

“야! 나 인기 많거든!”

“응? 어린이집에 하나랑 연주바께 업는데 인기 마나? 연주가 오빠 조아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오빠 불쌍해.”

“야! 아니거든! 나 사커 잘해서 완전 인기 많아지거든!”

“불쌍한 오승준.”

승준 엄마가 쓴웃음을 지었다.

“왜 그래 하나야! 엄마 아들이야! 당연히 인기 많을 게 분명해!”

“오빠가?”

“넌 항상 오빠랑 붙어있어서 모르겠지만 오빠 정도면 잘생긴 편이지.”

“?”

“오빠가 아빠 닮았잖니. 당연히 잘생겼지.”

“시혀기 오빠가 더 잘생겼는데?”

“그렇게 비교하면 안 돼요. 오빠도 시혀기 오빠처럼 크면 그 정도 돼요.”

“흐음…….”

하나가 가는 눈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예상은 가지 않는다.

“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엄마도 사실 오랜만에 초콜릿 만들어보려고 했어.”

“정말?”

“응. 아빠한테 줄 거라서 말이야.”

승준 엄마가 초콜릿 만들기 세트를 꺼냈다.

마트에서 파는 것이 아닌 전문적으로 하는 사이트에서 산 것이다.

천연 재료들도 있어서 다양한 색으로 꾸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들이 재밌게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샀다.

“자. 이거 봐봐. 따뜻한 물에 담가서 기다리면 이걸 짤 수 있어.”

물감처럼 튜브에 들어있어서 아이들이 쉽게 다룰 수 있었다.

동물 모양의 판도 있어서 거기에 열심히 맞춰서 넣으면 되었다.

승준도 관심이 가는지 이미 상 근처에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오빠도 만들 거야?”

“응! 재밌잖아. 근데 사커공 모양은 없네?”

“오빠는 맨날 사커공이야. 이제 거기서 벗어나.”

“그럼 야구공?”

“어휴.”

하나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투덕거려도 막상 같이 놀면 잘 노는 둘이었다.

“자. 다 됐다. 시작하자.”

“응!”

“아싸!”

쌍둥이는 둘이서 열심히 초콜릿을 짰다.

승준이 장난으로 하나의 인중에 화이트 초콜릿을 묻혀서 콧물이 나왔다고 놀렸다.

하나는 열 받아서 빨간색 딸기 초콜릿으로 승준의 콧구멍에 두 손가락을 넣어서 코피를 만들어주었다.

“으아아악!”

승준이 거울을 보며 괴상한 표정을 짓는다.

일부러 저러면서 즐기는 모습이다.

승준 엄마는 그게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찰칵 찍었다.

하나는 하고 나서 더럽다는 듯이 화장실로 달려간다.

즐거운 쌍둥이들의 집안 풍경이었다.

***

2월 14일.

나는 오늘도 시하가 깨워 주어서 일어났다.

분명 알람도 맞춰 뒀지만 잘 쓰이지 않는다. 그냥 설정한 걸 다시 꺼두는 작업을 반복한다.

시하가 한발 먼저 깨우니 뭐 들을 수 있어야지.

“형아. 오늘 발렌티노 데이야.”

“밸런타인데이. 뭐, 틀렸다고는 못하는 말이긴 한데.”

“시하 오늘 초코 바다.”

“?”

줄 사람이 누가 있다고 초코를 받는다고 확신하는 거지?

“좋겠다. 시하는 초코 받고. 누가 주는지 알고?”

“몰라.”

“그런데도 초코 받는다고 확신한다는 말이지?”

“아아.”

이 무슨 엄청난 자신감이지?

하긴 지금까지 무슨 날이 있으면 다 받기는 했다.

“샘이 줘. 초코 줘.”

“오! 그래? 어떻게 알아?”

“빼빼로데이 때 빼빼로 져써.”

“그렇지. 아주 논리적이네.”

근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튼, 시하는 오늘 하나 받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하긴 선생님이 다 챙겨주겠지.

“선생님이 시하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어떡하지?”

“아? 시하도 조아.”

“아니. 네가 생각하는 좋아, 라는 말이 아니야.”

“아?”

“사랑해~ 하면 어떡해? 막 사귀어 달라고 하고.”

물론 그럴 일은 없다.

하지만 시하의 반응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냐. 시하 아라. 샘 안 해.”

“만약 하면?”

“하면 사랑해 해주께.”

아직 남녀 간의 사랑 같은 건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

역시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어.

시하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샘 고백하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 고백하는 날이야. 샘 고백하까?”

“선생님이 누구 좋아해?”

“아아. 샘 조아해.”

“???”

“문도 삼춘 샘 조아해.”

“도환이형이 유다희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니, 잠시 잠시만. 내가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닌데 이걸 몰랐다고?!

그러고 보니 시하를 데리러 갈 때 문도환이 흔쾌히 받아준 적이 있었다. 설마?!

그때는 온통 시하를 생각하느라 지나쳐버린 건데 이런 쪽으로 생각해 보니 뭔가 퍼즐이 척척 들어맞는다.

근데 시하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시하야. 문도 삼촌이 유다희 선생님을 좋아한 건 어떻게 알았어?”

“!!!”

시하가 놀랐는지 입을 손으로 막았다.

“비밀이야. 비밀.”

“그래?”

“이거 비밀이야.”

시하가 손가락으로 전화 받는 시늉을 했다.

훌륭한 수어구나.

“비밀이래써. 비밀.”

“흐음.”

대충 유추해 보면 선생님의 번호를 교환한 걸 시하에게 비밀로 해달라 한 건가?

“도환이 형이 유다희 선생님 번호를 얻은 걸 비밀로 하라고 했나 보네.”

“형아 바써?”

순진하게 낚인 시하 물고기 하나요!

이리 비밀이 다 드러나서야. 대체 언제 이런 비밀이 있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형아. 비밀이야. 시하 말 안 해써.”

“응. 좋아하는 것도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

“아냐. 그냥 시하가 생각해써.”

“오오. 그럼 이 부분은 비밀이 아니니까 지켜진 거네. 그지?”

“아?”

시하가 그런 건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찌 됐든 시하는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리 순진한 시하에게 비밀이라고 꼭 지켜 달라고 하다니.

어른의 노련한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다.

이리저리 떠보면 금방 들통나고 말지.

“벌써 시간 다 됐네. 이제 어린이집 갈까?”

“아아!”

우리는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잡는데 뭔가 안이 시끌시끌했다.

궁금한 마음으로 열어보니 안에서 하나가 초콜릿을 전해 주고 있었다.

“연주야. 이거 초코야!”

“어?! 고마워. 흐음. 나도 사실 준비했어. 하나랑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와! 정말? 고마워!”

들어오자 보이는 훈훈한 광경이었다.

승준이 시하에게 빨리 달려와서 안긴다.

“시하야!”

“승준!”

“내가 초코 만들었거든! 너도 좋아할걸!”

“정말? 시하는 업는데?”

“괜찮아. 괜찮아. 난 그냥 하나가 만들 때 옆에 있어서 같이 만든 거야. 함께 먹자!”

“시하 초코 조아.”

“이건 그냥 초코가 아니야.”

승준이 등에 멘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비닐에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는데 펭귄 모양이었다.

시하가 눈을 반짝였다.

“펭긴!”

“헤헤. 시하가 펭귄 좋아하잖아. 그래서 이 동물로 다 만들었어! 맛있겠지?”

“아아. 가치 머거.”

그때 하나가 달려왔다.

“하나도 준비해써. 시혀기 오빠. 이거.”

“와. 고마워.”

하트로 된 초콜릿이었다.

맛별로 다른 건지 다양한 색깔이 있었다.

시하에게도 줬는데 역시 하나의 것도 펭귄이었다.

뭔가 공식인가?

“형아. 펭긴 두 배야! 시하 말 마찌? 초코 바다써.”

“그래. 네 말이 맞네. 우리 시하 천재네.”

초콜릿 주는 친구도 있고 참으로 즐거운 날인 것 같다.

“그럼 형아는 가도 되지?”

“아? 형아도 가치 머거.”

“형아도 초콜릿 받아서 괜찮아. 그럼 나중에 보자.”

“아아. 형아. 빨리 와야 해!”

“푸흡. 노력해 볼게.”

시하와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

어린이집은 여전히 서로 초콜릿을 나눠주고 있다.

시하랑 승준은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먹고 있었고.

“저, 저기. 연주야.”

“응?”

“이거.”

재휘가 빨개진 얼굴로 초콜릿을 연주에게 건넸다.

“어? 오늘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거 아니야?”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대.”

“그래?”

“응.”

“정말 고마워.”

연주가 머리를 한 번 넘기며 초콜릿을 받았다.

재휘가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우물쭈물했다.

“왜? 할 말 있어?”

“저, 저기. 있잖아. 나, 나 말이야.”

“응.”

재휘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너 좋아해.”

“…….”

“너는 나 어떻게 생각해?”

“나?”

“으응.”

연주가 씨익 웃으며 안에 있는 초콜릿을 꺼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맛있다. 다음에도 또 받고 싶어.”

“응?”

“난 재휘가 옷도 잘 입고 멋있다고 생각해.”

“정말?!”

“응!”

“헤헤헤.”

둘 사이에 왠지 모를 훈풍이 불었다.

시하와 승준은 눈을 깜빡거리며 초코를 먹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저걸 고백이라고 한데. 공개 고백.”

“시하 아라. 이제 히어로에게 말하면 대.”

“?”

“히어로가 둘이 추카해~ 해야 해.”

“히어로가 대체 왜?”

시하는 발렌티노의 이야기를 전해준 거지만 승준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결헌 금지해써. 히어로 나타나서 물리쳐써. 행복해져써.”

“하나 그거 아라. 부잣집 엄마가 돈 주고 헤어져! 해!”

“아! 시하야. 그거 나도 안다. 그런데 거기서 히어로가 물리치는 거야?”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막장드라마에서 히어로물로 변하는 이상한 대화였다.

“헐.”

종수가 충격받은 표정이 되었다.

설마 재휘가 연주를 좋아하는지 몰랐으니까.

그런 말이 없기도 했고 눈치를 채지 못하기도 했다.

하나가 말했다.

“앗! 혹시 종수도 연주를 좋아하는 거야?”

“아니거든!”

“그럼 재휘를 좋아하는 거야?”

“아니거든! 앗! 재휘를 좋아하는 거 맞는데 네가 말하는 그런 거 아니야.”

“종수도 초코 먹고 힘내.”

“대체 뭘?!”

시하가 손짓했다.

“종수. 여기 안 자. 가치 초코 머거.”

“지금 초코 먹을 기분이 아니야.”

“왜?”

“아니. 그냥. 뭔가. 좀.”

종수는 재휘에게 조금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이런 이야기는 친한 친구에게 좀 해줄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삐져써?”

“아니거든.”

“시하가 펭긴 초코 하나 더 주까? 시하 마나.”

“초코 하나 받아서 삐진 게 아니라고!”

“아아. 종수 히어로 불러주까? 결헌 모태?”

“대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열심히 종수의 복잡한 감정을 유추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뭔가 심한 말을 하는 시하였다.

종수는 씩씩대다가 허탈해졌는지 승준 옆에서 턱 하니 앉았다.

오도독. 오도독.

초콜릿 먹는 소리만 어린이집을 가득 채웠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다가 슬며시 등장했다.

“흠흠. 다들 맛있게 초콜릿을 먹고 있네요. 그럼 혹시 아세요? 초콜릿은 달기만 하지 않고 쓴 것도 있답니다!”

“???”

선생님이 비장하게 말했다.

“그 이름하여 다크 초콜릿!”

“!!!”

시하가 말했다.

“나쁜 초코야? 히어로 불러여?”

시하야. 뭘 그렇게 히어로를 부르니?

전화번호는 아니?

4살 이시하. 히어로에 진심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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