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5화 (275/500)

275화

2월이 되었다.

추위는 아직 계속되었다.

요즘에는 날씨 뉴스를 자주 보는데 시하가 빤히 쳐다보는 일이 잦았다.

아나운서가 예뻐서 그런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만화처럼 챙겨보기 시작했다.

“시하야. 오늘 날씨는 어떻다고 해?”

“형아. 오늘 따트한 바람 온대.”

“오! 그럼 오늘 따뜻하게 입고 가면 돼?”

“아냐. 춥대. 춥대. 칠도래. 칠도.”

“어디가?”

“서울. 서울.”

7도면 따뜻한 편 아닌가?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는데 볼 수가 있어야지. 근데 설마 영하 칠 도를 말하는 건가?

“영하 칠 도라고?”

“영하 모야?”

“어…. 0보다 낮은 숫자를 마이너스라고 하는데…….”

“마이너수?”

“으음.”

실제로 수학에서는 제로의 발견이 굉장하다고 말한다.

수의 마이너스가 시작되며  개념이 널리 확장됐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시하에게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거다.

사과가 하나면 1. 없으면 0. 근데 마이너스 1은 무엇이냐.

이걸 4살 어린이에게 이해시키는 건 참으로 어렵다.

“아! 물은 0도에서 얼거든.”

“정말?”

물론 순수 물이었을 경우였다.

“응. 물이 어는 지점을 0이라고 사람들이 한 거야. 근데 그 밑의 온도가 또 있네? 그래서 영하라고 말하는 거야. 여기 냉동실은 영하일까요? 아닐까요?”

“영하야!”

“맞아. 그래서 여기 넣으면 꽁꽁 얼지.”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 냉동실 안을 보았다.

“영하야. 여기 이써?”

“으응. 있지.”

안에 손을 탁탁 넣으며.

“차가. 형아. 냉동실 날씨 영하야. 영하. 바께 추어.”

“그래.”

“바께 냉동실이야.”

지구는 순식간에 냉동실이 되었다.

대충 알아들어서 다행이었다.

어린이들에게 설명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렇다고 대충 넘어가고 싶지도 않고.

“근데 시하야. 날씨 뉴스는 왜 보는 거야? 아나운서가 마음에 들어?”

“아나운서?”

“으음. 뉴스에 나오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아아. 아나운서 예뻐.”

“푸흡. 예뻐서 본다는 거지.”

“아냐.”

시하가 갑자기 두 손으로 뭔가 착착 따라 했다.

“이케이케.”

왠지 멍하니 보게 된다.

갑자기 저게 무슨 의미지?

“이케이케?”

“형아. 날씨 나와. 이케이케. 재미써.”

나는 골똘히 고민하다가 시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설마 수어를 말하는 거야?”

“수어?”

“응. 손동작으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거야.”

“암호 아냐?”

“으음. 암호라면 암호겠지. 이건 수어라고 하는데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위해서 날씨가 이렇습니다. 하고 전해주는 거거든.”

“귀가 왜 안 들려?”

“귀가 많이 아파서 안 들리게 돼서 그래.”

시하가 눈을 깜빡거렸다.

“병언 가서 주사 마자.”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병원에 가도 못 고치는 병이 있는 법이다.

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못하는 것도 많으니.

“주사가 안 통해서 그래.”

“시하가 호 해 주까?”

“아하하. 그렇게 안 해 줘도 돼. 다들 씩씩하게 잘살고 있으니까.”

“정말?”

“응. 정말.”

사실은 정말 어떤 생활을 하는지 모른다.

아마도 세상을 살아가기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귀가 안 들리는 것도 불편한데 누군가에게 다름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고,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르면 품는 것보다는 배척하기 시작하니까.

어쩌면 상대에 대한 무지로 상처를 주기도 할 것이다.

알지만 배려하는 방법을 모를 수도 있다.

“나중에 간단한 수어도 형아랑 배워보자.”

“형아랑 가치?!”

“푸흡. 그래. 형아랑 같이.”

나는 식사 준비를 마무리하며 시하랑 밥을 먹었다.

이제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다.

***

시하는 오늘 날씨 뉴스를 아이들에게 말해 주었다.

형아가 해준 이야기도 쫑알쫑알 떠들었다.

“수어. 암호야. 귀 안 들려 사람에게 암호로 해 준대.”

“와아. 신기하네.”

승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암호가 있는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그 대화를 듣고 있다가 스르륵 나타났다.

“네. 맞아요. 우리 주위에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있어요. 그럼 오늘은 선생님이랑 그 사람들을 이해해 볼까요?”

“?”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종의 게임이에요. 여기 두 개의 귀마개를 할 거예요. 알았죠?”

귀속으로 넣는 이어플러그. 소음을 차단하는 헤드셋.

어린이집에 갖춰져 있는 거였다.

“자. 여기 귀에 꽂아요.”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시하도 이어플러그를 손으로 꼭꼭 눌러서 귀에 쏙 넣었다.

“샘. 간질간질해. 커져. 커져.”

“응. 원래 귀 안에서 커지는 거야.”

승준이 시하의 어깨를 톡톡 쳤다.

“아?”

“푸하하!”

이어플러그를 코에 낀 승준이 흥 하며 힘을 주자 발사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승준아, 그거 네 귀에 꽂아야 하는 거 알지?

“오빠. 더러워!”

“웃기지?”

“으응. 웃기기는 한데…….”

하나는 승준의 해괴한 작태가 웃겼다는 사실을 왠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연주는 정말 더럽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우리의 베스트 프랜드 시하만이 승준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귀에 있는 걸 쏙 빼서 머리 위에 얹었다.

“승준. 뿔이야. 작은 뿔.”

“오! 시하 너도 좀 하는데? 그럼 나는 엉덩이에 뿔 났다! 푸하하!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대.”

“이거 방구야. 방구. 뽕뽕. 나가.”

시하가 엉덩이에서 이어플러그가 뽕 하고 날아가는 걸 표현했다.

그대로 승준 얼굴에 콕 하고 찍었다.

“으악! 빵구가 내 얼굴을 공격했다!”

하나는 시하의 행동이 웃긴지 키득키득 웃었다.

연주는 살며시 웃음을 참는다.

선생님이 다시 상황을 정리했다.

“자자. 이제 장난 그만하고 제대로 해요.”

충분히 장난칠 시간도 주는 게 좋다.

아직 4살이니까.

물론 이렇게 하는 게 시간이 아주 잘 간다는 점에서도 좋지만.

“자, 이제 이 헤드셋을 끼면 놀랍게도 소리가 안 들립니다.”

아이들이 헤드셋을 꼈다.

놀랍게도 정말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시하는 승준을 불렀다.

“승준!”

“응? 뭐라고?”

“승준!”

“시하야. 안 들려!”

하나도 연주를 보았다.

“연주! 연주야!”

“하나야. 뭐라고?”

“오빠. 바보! 오승준 바보!”

“오승준 바보!”

입 모양을 보고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려고 한다.

거기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말하려면 상대의 눈에 들어와야 한다.

입 모양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또박또박 발음해야 한다.

듣게 하기 위해서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시끌시끌.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이 공간은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아 답답해!”

승준이 안 들리니 헤드셋을 벗어버렸다.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벗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스케치북을 들고 말했다.

“자자. 다시 쓰고 선생님이 오늘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맞추세요.”

“네에!”

“잘 맞추면 상품도 있답니다.”

상품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다시 헤드셋을 썼다.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입 모양을 크게 한다.

“시작합니다!”

스케치북을 넘기자 그림이 나왔다.

아래에 사는 사람. 위에 사는 사람.

위층은 점프하며 쿵쾅쿵쾅 뛰며 신나 하고 있다. 음표들도 있어서 노래를 듣고 춤추는 거로 보인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잔다.

선생님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인자한 모습을 보였다.

“자장자장.”

“응. 시하야. 그거 아니야.”

물론 선생님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스케치북이 다음으로 넘어갔다.

위층 사람과 아래층 사람이 만났다.

위층은 머리가 샛노랗고 코가 오뚝 솟은 외국인이다.

아래층은 검은 머리인 한국인이다.

서로 무언가 손짓하는 그림이었다.

“한쿠말 모태여! 아냐. 한국말 쉬어!”

“시하야. 그거 아니야.”

다음 그림은 두 사람이 한 집에서 환한 표정으로 치킨을 각자 들고 있다.

“하나, 둘, 서이.”

시하는 치킨을 세고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

“마씨는 여섯 개 치킨! 육…….”

“어허. 그건 말하면 안 돼! 뒷광고 아니야.”

선생님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스케치북을 닫았다.

이제 끝났다고 했지만 누구 하나 헤드셋을 벗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시하 헤드셋을 벗겨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벗기 시작했다.

“자. 자. 다들 잘 봤죠. 어떤 이야기인지 저에게 들려주세요.”

“시하 아라!”

“응. 선생님은 안 들어도 시하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어.”

“아?”

시하가 놀란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이었다.

“외국인이 자장자장 했는데 사실 한국말 못 하고 어쩔 수 없이 치킨으로 친해졌다. 뭐 그런 거 말하려고 했지?”

“어떠케 아라써?”

“흠흠. 선생님은 다 알지.”

사실 시하가 입으로 다 말한 거긴 하지만 말이다.

“자, 다음은 누가 해볼래?”

“하나가!”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래. 하나야.”

“노래 틀고 신나게 춤췄는데 나중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그 노래 뭐야? 해써여.”

“오오!”

생각보다 그럴듯했다.

“그래서 무슨 노래인지 말해줬는데 이렇게 말해써. 잔지현 씨 BH…….”

“아악! 땡! 땡! 땡!”

“하나 틀려써?”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에요. 흠흠. 아무튼, 선생님이 치킨을 마지막에 넣은 게 뇌리에 박혔나 보네요. 치킨이 중요한 게 아닌데…….”

옆에서 승준이 말했다.

“혹시 야구 이야기한 거 아니야? 치킨 닭다리로 홈런 날리는 거야!”

“응. 아니야.”

옆에 있던 종수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쯧쯧. 이게 치킨 노래겠어? 당연히 이 노래겠지. 도치피치피보족! 도치피치피보족! 365일 누구나 배달음식 할인. 요기…….”

“아악! 아악! 모두 음식에서 생각을 벗어나 주세요!”

다른 아이들도 열심히 대답을 내놓았다.

연주는 선생님의 반응을 보고 모르겠다고 했고, 재휘는 그런 연주를 따라 했다.

은우는 너 랩 좀 한다? 라며 친해져서 치킨을 같이 먹은 이야기.

윤동은 너 춤 좀 추냐? 하면서 같이 열심히 춰서 배고파서 치킨을 시켜 먹었다는 이야기.

아무튼, 다들 개성이 넘치는 대답이었다.

“흠흠. 선생님이 정답을 말해 주겠어요. 다들 어째서인지 음식에 빠졌지만.”

선생님이 다시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은 농인이라고 해요. 그 농인의 장점을 선생님이 그린 거랍니다.”

첫 번째 그림은 층간소음에 피해가 없다.

두 번째 그림은 다른 나라의 사람 둘이 서로 농인인 걸 알아서 수어로 대화를 한다. 국제 수어의 장점이다.

세 번째 그림은 환한 표정에 주목해야 한다. 농인은 표정이 풍부하다는 게 장점이다. 그 어떤 감정이든 얼굴에 잘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선생님은 이렇게 들어서 알고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잘 알게 되었죠?”

“네!”

“이 농인과 우리는 그저 ‘다른 감각’이 있을 뿐이랍니다.”

오늘 아이들은 느꼈을 것이다.

안 들린다면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해야 한다.

손동작으로 마임을 해서 의미를 전달한다.

입 모양을 본다.

마지막으로 글을 알고 있다면 필담으로 주고받았을 것이다.

다른 감각의 세상은 이토록 다양한 행동 양식을 나타낸다.

선생님은 그저 아이들이 알아주었으면 싶었다.

“시하. 형아랑 가치 수어 배우기로 해써.”

“수어는 왜 배우는데?”

“암호야. 암호. 형아에게 암호 보낼래.”

선생님은 살며시 웃었다.

아직은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그저 놀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나중에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선생님이 몇 개 아는데. 어떤 암호 보내고 싶은데?”

“사랑해!”

선생님이 그 말에 바로 오른손으로 보여주었다.

중지와 검지를 접는다.

흔히 하는 손 모양인 피스를 닮아있었다.

“이렇게 손바닥 쪽을 보여주면 I Love you!가 돼. 사랑합니다.”

“정말!”

“응.”

“알러뷰!”

시하가 웃으며 따라 했다.

다른 아이들도 다 같이 선생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도 사랑이 넘치는 어린이집이었다.

아마 다들 집에 가면 알러뷰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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