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1월 25일.
여전히 나는 경트리오와 함께 일하는 곳으로 출근했다.
현재 데모 게임 중에 상위 작품을 찍고 있고 이제 런칭 제안이 와서 정식으로 출시할 일만 남았다.
경트리오가 안에서 만세를 외쳤다.
“아싸! 이제 돈 좀 많이 벌어보자!”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근데 그것도 매출을 봐야 알지.”
안경호가 입을 삐죽였다.
“경환아. 넌 그렇게 해맑은 미소로 펙트를 꽂아 넣어야겠냐?”
“응! 사실인걸. 근데 진짜 기분 좋아. 이제 정식 런칭을 할 수 있는 게 말이야.”
“그건 그래.”
신경환도 말은 현실을 입에 담지만,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멘토인 안현태가 그 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꽤 빡시게 해야 런칭을 빨리할 수 있어요. 알죠?”
“당연하죠.”
“전에 스토리 부분을 봤는데 거기까지 다 못 갈 것도 알죠?”
“아…. 그건 그렇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그 스토리의 큰 줄기가 세 개잖아요. 두 번 자르지 말고 세 번 자르는 게 어때요?”
“흐음.”
“시리즈를 세 개 만들면 사람들도 막 기다리게 되는 거죠.”
실제로 스토리는 주인공이 왕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조직을 만들어 왕도를 치는 게 주이다.
그렇게 왕의 목을 떨어뜨려 성석의 반쪽을 얻어 불사자가 된다.
시리즈 제1의 제목은 찬탈이다.
안현태가 말했다.
“하지만 왕이 되는 거로 끝이 아닌 게 흥미롭죠.”
실제로 죽은 줄 알았던 친구들은 살아있었고 각자가 성석을 품고 있다.
그래서 [coming soon]과 함께 다음 시즌의 제목을 넣었다.
[광기]
“스토리는 조금 추가해 이렇게 넣는 거죠.”
“어떻게요?”
“성석이 완성되었을 때 들리는 목소리를 뒤로 빼는 겁니다. 회상하는 것으로 끝내는 거죠.”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체스를 하고 있을 때 회상하는 거로 하죠. 왕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체스판을 두는 거로. 마지막에 킹을 놓으면서.”
[7개의 성석은 태초부터 하나였다. 구원의 빛은 언제나 땅을 적셨다.]
“그리고 찬탈을 도왔던 불사자 친구가 말하는 거지. 네가 성석이 완성되었을 때 나도 들었다고. 어쩌면 불사자들은 모두 그 목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안경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목소리 배치만 따로 두는 거네. 마지막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면서 끝나잖아.”
“하늘 보며 말하지.”
“잿가루가 가득하다. 크으.”
어쩌면 앞으로 불더미가 될 것을 암시하는 이야기였다.
안경호가 말했다.
“좋아. 잠깐 수정 들어가고 마무리하자. 아니지. 런칭 확정되었으니까 우리끼리 일단 축하파티라도 할까?”
“축하파티까지 하려고?”
“아, 왜! 이게 런칭이 쉬운 일만은 아니거든. 매출이야 어떻게든 나오는 거고.”
“쩝.”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박경준이 없어져 있었다.
“얘는 언제 사라졌어?”
벌컥!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시혁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박경준이 케이크를 들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들어온다.
다른 친구들도 갑자기 따라서 노래 불러 깜짝 놀랐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우리의 런칭도 축하합니다! 빠바바바빰!”
나는 살며시 웃음이 나왔다.
설마 이런 걸 준비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내 생일이구나?
정신없이 일하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하다 보니 몰랐다.
내 생일이 다가왔는지도 몰랐다.
그저 그렇게 지나갈 수도 있는 날이었는데 이렇게 챙겨줘서 고마웠다.
안경호가 빨리 초를 끄라고 재촉했다.
“후우!”
“와아아아-”
24살이 되었다.
내 생활은 참으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여기 생일 선물!”
“나도! 나도!”
“뭘 들고 가기 귀찮을 것 같아서 기프티콘으로 보낼게.”
“시혁 씨. 저는 지금 치킨 보냈습니다. 동생이랑 같이 드세요.”
나는 선물을 받고 네 사람을 보았다.
“다들 고맙습니다. 이렇게 선물이랑 생일 챙겨줘서. 사실 오늘 생일인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막상 받으니까 좋네.”
안경호가 외투를 입었다.
“가자! 오늘 파티다. 파티. 오늘 하루는 좀 쉬어 줘야지. 맨날 주말 없이 일하는데.”
우리는 밖으로 나섰다.
맛있는 걸 먹으러.
***
오랜만에 낮술을 했다.
대학교 1학년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다들 더 놀고 싶어서 날뛰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살짝 빠졌다.
야유를 보냈지만 어쩔 수 없다.
전화도 오고 여기저기서 기프티콘으로 선물을 보낸다.
그리고 동기들이 챙겨준다고 학교 근처 ‘포차떼고’로 오라고 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
“어! 시혁아!”
동기들이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나는 이미 손에 케이크가 있는데 상 위에 역시나 케이크가 있었다.
“오빠 왔어요? 전에 말했죠? 술자리 있으면 또 불러 달라고.”
서수현이 씨익 웃었다.
나는 어이없어서 괜히 머리를 콩 하고 때렸다.
“앗! 뭐예요. 이 오빠 내가 시하처럼 어린애인 줄 알아요?”
“시하한테는 안 때리는데?”
“전 왜 때린 건데요.”
“개구리는 역시 때려잡아야 제맛이지.”
“이 오빠가 진짜!”
그렇게 농담하며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알리사도 손을 흔들며 자리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축하해줄 사람들을 다 부른 모양이었다.
“아놔. 다들 학기 시작하기 전에 괜히 술자리 만들 핑계로 내 생일에 모인 거 아니야?”
“야야! 들켰다. 시혁이 술잔 들고 와.”
“아, 뭔 오후부터 술이야.”
“킁킁. 오빠. 술 냄새나는데요?”
“개구리가 아니라 개였어?”
맥주 몇 잔 마신 걸 바로 들킨다고?
“사실 삼겹살 냄새나요. 삼겹살에는 소주 한잔 딱 아니에요?”
“응. 아니야. 맥주 마셨어.”
“칫!”
다들 맥주 마셨다는 말에 내로남불이라면서 야유를 보냈다.
“야! 야! 소맥 뭔데. 미역국은 없어? 왜 불건전하게 술이야.”
“지랄. 너 술 잘 마시는 거 우리가 모르냐.”
1, 2학년 때 그랬지.
다들 잘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야야. 초에 불 켜. 불 켜.”
나는 이미 하고 왔다고 하지 말자고 했지만 친구들이 우리랑은 안 했다고 굳이 꼭 불을 켰다.
또 축하를 받고 케이크 하나를 더 얻었다.
어떡하지? 이 케이크? 시하랑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야. 이 케이크 그냥 지금 너희들이랑 다 먹으면 안 되냐? 나는 이거 다 못 먹어.”
“술에 무슨 케이크. 얼굴에 박아도 되냐?”
“반격당하기 싫으면 그러지 마라.”
찰싹.
서수현이 크림만 손으로 떠서 내 얼굴에 묻혔다.
방심한 나는 멍해졌다.
“푸하하. 얼굴에 제대로 묻었어.”
“반격도 못 하는데?”
“깔깔깔.”
옆에서 친구가 휴지를 몇 장 뽑아서 주었다.
나는 받지 않고 술잔을 들어 원샷을 했다.
서수현은 내 옆에서 빠져나와 맞은편에 앉았다.
“야! 서수현 잡아!”
“아악! 오빠! 잠깐만! 아니, 다들 시혁 오빠 말을 왜 이렇게 잘 들어요! 야! 너 놔라!”
“어허. 시혁이 형 말인데 잘 들어야지. 전에 축구에서 얼마나 빚졌는데.”
나는 얼굴에 있는 생크림을 손으로 닦았다.
“이익! 아! 오빠. 얼굴에 생크림 재활용하기 있냐고!”
“어허! 재활용이라니. 난 네가 오늘따라 화장이 별로길래 고쳐 주려고 하는 것뿐이야.”
“그게 무슨 화장품이냐고!”
“기초화장부터 하자. 알았지?”
“아, 오빠. 미안! 미안! 미안해요!”
“괜찮아. 오빠 믿지?”
나는 장난기 어린 마음으로 서수현 얼굴에 치덕치덕 발라줬다.
“야! 리필!”
“오케이!”
“아악! 왜 이렇게 된 건데! 내 편 들어줘야 할 거 아니야! 다들!”
서수현의 최후는 실패한 화장이 되었다.
얼굴이 허옇게 떴으니까.
결국, 휴지로 조금 닦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나는 그저 물티슈로 처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는 친구는 칼로 장난친 부분을 드러내고 케이크를 잘라 나눠주고 있었다.
알리사가 하나를 받아서 내 옆으로 왔다.
“시혁 씨. 이거 선물이에요.”
“어? 알리사. 고마워요.”
“뭘요. 옷이에요.”
“…….”
나는 알리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이상한 거 아니죠?”
“아하하. 정상적인 옷이에요. 제가 고심해서 골랐어요.”
“고마워요. 잘 입을게요.”
“이제 봄이 오니까 봄옷으로 골랐어요.”
“봄에 꼭 입을게요.”
“파랑몰에서 나온 S/S 제품이에요. 미니미 패션 알죠? 엄마랑 딸. 아들과 아빠.”
“여기서 파랑몰 제품을 준다고?”
“왜요! 이거 사려면 돈 드는데!”
“그건 그런데. 뭐 잘 입을게요. 그럼 시하 옷도 들어있겠네요?”
“시하 봄옷도 공짜죠. 어때요? 괜찮지 않나요?”
“네. 좋죠. 근데 이거 돈 한 푼 안 들은 거 아니에요?”
“어머. 무슨 그런 소릴 해요. 엄밀히 제 돈 주고 산 거예요. 제가 대표지만.”
“판매가보다 싸게?”
“이거 제가 디자인했는데 인건비까지 내면 이상한 거 아니에요?”
“푸흡. 그렇네요.”
오늘 시하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될까 싶었다.
옷에 술 냄새날 거 같은데.
옆에 있는 친구가 말했다.
“야야. 적당히 많이 마셔.”
“적당히 많이 마시는 건 또 뭔데.”
그래도 지금은 이 분위기에 취해서 오랜만에 조금 마시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입술을 적시는 것 같았다.
달콤했다. 분위기 때문인지 즐거운 마음 때문인지.
모든 게 전부.
***
술을 해서 차는 끌고 가지 못했다.
숙취해소제를 마시고 몸에 술 냄새가 가시길 바라면서 밖에서 잠깐 벤치에 앉았다.
옆에는 케이크와 종이 가방들을 놓았다.
선물들이 참으로 많다.
그래도 요즘 기프티콘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손에 짐이 한가득했을지 모를 일이다.
바람이 뺨을 쓸고 정신을 일깨운다.
알딸딸한 느낌이 쓸려나가는 것 같다.
시하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술 냄새가 심할 것 같아서 발걸음이 떼지 않는다.
그래도 대충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시간에 들어가야겠다.
오늘 시하는 아쉽게도 마지막으로 어린이집을 나서게 될 것 같다.
“킁킁. 냄새 많이 나나? 후우. 킁킁.”
코가 마비되었는지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음식 냄새도 풀풀 나지 않을까.
“이제 가야겠다.”
시간이 되었다.
혹시 모를 냄새가 날아갔으면 해서 옷을 탈탈 털었다.
짐을 챙겨 어린이집을 들어갔다.
“형아!”
“시혁이 형아!”
“시혀기 오빠!”
“어?”
쌍둥이들은 안 가고 있었다.
엄마가 안 왔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뒤에서 승준 엄마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나도 받아주었다.
아 혹시 옷에 냄새나는 것 아니겠지?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은데 굉장히 신경 쓰인다.
승준이 도도도 달려와 선물을 내밀었다.
“시혁이 형아. 이거 선물이야. 내가 만든 사커공.”
“와아.”
“전에 시혁이 형아가 만들어줬잖아. 이번에 나도 만들었어. 이거 특별해. 브라주카로 그렸어.”
“진짜네. 완전 똑같네.”
사실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 모양인 줄 몰랐다.
뭐지? 사커공에 왕지렁이 젤리를 그렸나?
이런 생각이었다.
“시혀기 오빠.”
“응. 하나야.”
“하나도 선물 준비해써. 노래 선물이야.”
“정말?”
“응! 진짜 재밌게 준비해써!”
“기대된다.”
하나가 노래를 불렀다.
“열 손가락 다 써도. 세지를 못하고. 그 사실이 난. 참 축복인 거 같아.”
“오!”
“B로 시작한 당신의 생일을 난 정말 축하해주고 싶어.”
B라면 Birth를 말하는 거 같다.
언제 저런 노래를 배웠을까?
“D가 되기 전에! C라는데! Choice 아닌! celebrity야.”
D는 Death를 말하는 거겠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는 셀럽이야. 사랑스러운 당신이 있어 주어서. 언제나 고마워. 또 고마워~”
하나의 노래가 끝났다.
나는 손뼉을 쳐주었다. 부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하나는 갑자기 부끄러웠는지 엄마 옆에 붙어서 얼굴을 묻는다.
“와아. 하나야. 정말 고마워.”
“으응.”
쌍둥이들이 이렇게 선물을 주기 위해 나를 기다려줬나 보다.
나는 시하를 보았다.
아마 시하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 쌍둥이들도 이렇게 알지.
“시하야. 오늘은 안 달려와?”
“형아.”
시하가 페페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있었다.
뭔가 예상이 된다.
저 가방에 선물이 있는 거겠지.
“시하가 선물 준비해써.”
“그래? 정말 기대되는걸?”
“바로바로. 이거!”
시하가 페페 가방을 열더니 포장된 선물을 꺼낸다.
나는 그걸 받아서 시하를 보았다.
“이거 열어봐도 돼?”
“아아.”
선물을 뜯었다.
안에는 텀블러 상자가 있었다.
돈이 어딨다고 이걸 사 왔지?
“이거 시하가 샀어?”
“아아. 시하가 대지저굼통에 마넌 꺼내서 사써.”
“와아. 정말 고마워. 진짜 잘 쓸게.”
“안에 바. 안에.”
“뭐야. 안에 편지라도 있는 거야?”
나는 상자를 열어서 텀블러를 꺼냈다.
그 안에 그림이 있었다.
[ㅇㅅㅎ]
나와 시하의 초성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고 거기에 페페가 셋이 있었다.
‘o’에는 페페의 얼굴이 옆으로 빼꼼 나와 있고, ‘ㅅ’에는 미끄럼틀처럼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으며, ‘ㅎ’에는 ‘ㅇ’ 부분을 페페가 밀고 있었다.
나는 선물을 많이 받았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텀블러가 너무나 소중해졌다.
어쩜 이런 생각을 했는지.
그 어떤 것보다 시하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이뻐서… 좋아서… 감동이었다.
“진짜 고마워.”
나는 시하를 끌어안았다.
“정말. 정말. 고마워.”
“형아!”
“응?”
시하가 손가락으로 1과 2와 5를 만들었다.
“이게 머선 125~!”
“?”
나는 뭔지 몰라서 멍하니 있다가.
“형아랑 가타!”
그 말에 풉 하고 웃어버렸다.
12월 5일. 1월 25일.
정말 행복한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