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어린이집 아이들은 생각보다 인지도가 꽤 높았다.
축제 때 귀여운 모습이 나온 이후로 다들 꽤 알고 있었다.
축제 영상을 흐뭇하게 본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물론 이 인지도는 강인대학교 한정이지만.
특히 박경준이 친구들을 많이 끌고 오고, 쓸데없이 홍보를 많이 해준 덕분에 더더욱 유명해졌다.
“와. 진짜 애들이 있네?”
“큭큭. 귀엽다. 알바도 하고.”
편의점은 때아닌 사람들로 꽤 바글거렸다.
대부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걸 손에 쥐고 있었다.
시하와 승준은 갑자기 바빠졌다.
띡!
“포인투 카드 이써여?”
“아니. 없어.”
“카드 주세여.”
“큭큭. 그래.”
계산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왠지 흐뭇한 표정이었다.
“다 해따!”
“계산 다 했어?”
“안녕히 가세여~”
“너 나 빨리 보내고 싶구나?”
“아?”
“알겠어. 근데 이거 여기서 먹고 갈 건데?”
남자가 삼각김밥을 시하 눈앞에서 흔들었다.
“마시게따!”
“큭큭. 열심히 해. 갈게~”
재밌게 장난친 그가 떠났다.
뒤에서 가만히 기다리던 서수현이 음료를 놓았다.
“개굴 누나!”
“응. 시하야. 너 여기 알바한다고 소문 다 났어.”
“시하 바빠.”
띡. 띡.
시하는 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어? 미안해. 바쁜데 말 시켰지?”
“시하 다 하면 놀자.”
“어?”
서수현은 굉장히 당황했다.
이 계산이 끝나면 시하 알바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었으니까.
“알바는 언제 끝나?”
“몰라.”
아주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계산이 끝나고 시하가 손을 흔들었다.
“바이바이.”
“응. 바이바이. 알바 힘내!”
서수현은 안심하고 이제야 가도 되나 싶어서 길을 나섰다.
“사람 너모 마나.”
“시하야. 엄청 많다. 진짜.”
“알바 재미써. 자꾸 찌거.”
띡. 띡. 띡.
단순한 노동을 시하는 재밌게 했다.
옆에 있던 승준도 POS 기기를 열심히 눌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이다.
서 있는 의자 아래에는 과자가 꽤 쌓여 있었는데 학생들이 사면서 하나둘씩 줘서 그렇다.
그렇게 한바탕 사람들이 지나가고 손님 한 사람이 왔다.
시하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거렸다.
“으음.”
“아?”
갈 곳 잃은 눈동자로 방황하다가 사장의 얼굴을 본다.
“저어. 디플 하나요.”
담배를 사러 온 손님이었다.
시하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디풀 모예여? 딱풀 말하는 거예여?”
“어? 아, 아니. 그게…….”
뭐라 설명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답을 내놓는다.
“구름 과자야.”
“구룸! 구루미 까자 머거여?”
“아니. 구름이 과자를 먹는다는 게 아니라. 으음. 어른들만 먹는 과자가 있어요.”
“맛있어요?”
“아니…….”
“?”
남자는 솔직히 맛있어서 담배를 하는 거지만 시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맛있다고 하면 너무 관심을 가질까 봐 걱정이 들었으니까.
사장에게 눈짓으로 빨리 계산해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맛없는데 왜 먹어여?”
“어른들은 맛없어도 먹어.”
“!!!”
시하는 형아가 반찬으로 쓴 나물을 가끔 먹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아아! 쑨 나물. 쑨 나물! 형아. 쑨 나물 머거여. 시하 형아.”
“어어! 그런 거야. 그런 거.”
“몸에 조아여? 쑨 나물 몸에 조아.”
“아니. 이건 안 좋은데?”
“?”
그때 사장이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다 됐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남자가 애가 볼 수 없게 후다닥 담배를 낚아채고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
그런 그의 등 뒤에 시하가 소리쳤다.
“또 오세여~! 싸게 해주께여!”
“아니야! 안 그래도 돼!”
친절하게 대답하는 대학생이었다.
사장은 피식 웃으며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긴 마음대로 싸게 해주면 안 돼.”
“왜여?”
“싸게 해주는 상품은 딱 정해져 있어서 그래. 그걸 할인이라고 해.”
“할인. 할인.”
“투 플러스 원도 있어.”
“투 풀러스 원? 시하 알아. 투! 둘! 원! 하나!”
“응. 두 개 사면 하나 공짜로 준다는 거야.”
“!!!”
시하가 눈을 껌뻑였다.
“투 풀 원 사야 해!”
“푸흡.”
시하가 공짜에 눈을 떴다.
물론 이미 의자 밑에 수많은 공짜 과자를 얻었다는 건 생각지 못하고 있었지만.
***
시하와 승준이 바빠진 것처럼 종수와 재휘 역시 빈자리를 채워 넣느라 바빴다.
쓰레기통도 꽉 차 있어서 묶어서 버리기도 했다.
물론 선생님이 묶어줬지만.
“자. 오늘 알바를 경험해 봤는데요. 어땠어요?”
“아아. 재미써.”
“조금 힘들었는데요.”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른 것 같아요.”
“나는 엄마 보고 싶어.”
다들 흥미로워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계속되니 힘들었나 보다.
아직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밀도는 꽤 높았다.
“네. 이렇게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요. 다른 친척 어른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니 세뱃돈을 받으면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네!”
“그럼 이제 갈까요?”
정말 알바하는 것처럼 8시간을 일할 수 없다.
사장님에게도 민폐고.
“하나랑 연주는?”
시하가 의문 어린 눈으로 선생님을 보았다.
“아마 아직 하고 있을 건데 이제 끝나지 않았을까?”
“보고 시퍼!”
“카페 알바가 궁금해?”
“아아!”
다른 아이들도 눈을 빛냈다.
그렇게 고생하고 또 다른 호기심이 불쑥 솟는 모양이다.
카페에서 하는 알바는 어떤 일일까?
이런 눈빛이다.
“다들 알겠지만, 별거 없어요. 커피 만들고 디저트도 팔고.”
계산에 POS 기기를 사용하는 건 편의점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조금 다르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 때는 비슷한 양상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궁금한가 보다.
“갈래! 갈래!”
“그래요. 다들 가봐요.”
어차피 같이 돌아갈 것이기에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편의점을 나와서 카페에 도착했다.
짝짝짝.
안으로 들어가자 박수 소리부터 들렸다.
“모야?”
“앗! 하나다!”
하나가 카페에 있는 피아노 의자 위에 서 있었다.
“앵콜. 앵콜.”
“헤헤헤. 하나만 더 부를게요!”
애들이 처음 왔을 때 카페에서 시킬 일이 거의 없었고 청소나 음료 배달 또는 계산을 부탁했다.
원래라면 셀프지만 아이들이 와서 특별히 가져다주는 거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하나둘씩 카페에 몰려들기 시작.
누군가 축제 때 잘 봤다면서 춤 한번 또 보고 싶다고 해서 일이 이렇게 커졌다.
“나 머릴 베베 꼬아~ 베베베베! 베베베베베베!”
하나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 옆에 앉아있는 연주가 애교 머리를 베베 꼰다.
은우와 윤동은 뭔가 하고 싶은지 입맛을 쩝 다신다.
시하와 애들은 하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아이들이 다 모였기 때문이다.
“하나!”
“어? 시하야. 오빠!”
“하나 노래 잘해!”
“헤헤헤.”
노래 교실을 다닌 보람이 있는 솜씨였다.
그때 은우가 못 참겠는지 신발을 벗고 피아노 의자 위로 올라왔다.
“나도 랩 잘하는데!”
“오오오!”
사람들이 기대된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카페 직원들은 딱히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사실상 여기 있는 손님 전부 아이들을 보러 왔으니까.
애들이 오기 전까지는 겨우 몇 잔만 팔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문나면서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디저트도 많이 팔게 됐다.
“그럼 합니다. 윤동아. 가자.”
“어.”
“Ah. Ah. 커피를 탔어. 리듬을 탔어. 지금 여기 분위기 다 탔어.”
윤동이 음에 맞춰 비보잉 셔플 스텝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걸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애 한 명이 비보잉을 하려고 냄새를 풍길 줄 몰랐으니까.
그저 처음의 기본 동작이었지만 확실히 느낌이 있었다.
“ash(재). ash. 아쉬움만 남아. 컵 바닥에 남은.”
윤동이 천천히 바닥을 여섯 동작으로 끊어서 돈다. 비보잉의 식스 스텝.
빠르게 해야 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연습 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랩의 속도에 맞춰서 추니 뭔가 그럴듯해 보였다.
박자를 맞추고 있는 거였다.
은우가 훅을 발사했다.
“프림! 프림! 프리마! 프림. 프림. 프리마! Hey! 프리즌!”
윤동이 어깨에 땅을 대더니 그대로 다리를 들어 올렸다.
프리즌 자세!
“와아아아-”
다시 한번 훅을 부르고 마무리.
“프림! 프림! 프리마! 프림. 프림. 프리마! Hey! 프리즌! one more time!”
은우와 윤동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짧지만 강렬한 랩과 춤이었다.
“와. 요즘 저 나이 때 저런 랩을 해?”
“저기 춤추는 친구도 장난 아니다.”
“앵콜! 앵콜! 앵콜!”
시하가 앞에서 보고 있다가 피아노 의자 위에 올라갔다.
사람들이 뭔가 하는가 싶어서 눈을 반짝였다.
“아아.”
“응?”
“투 플러스 원 안 대. 투 플러스 원 안 써져 이써여.”
앵콜이 뭔지 아까 하나가 할 때 파악했고 이번에 두 번 했으니 더는 안된다는 말이었다.
편의점에서 배운 걸 그대로 써먹는 시하였다.
사람들은 그게 귀여워 큭큭 웃음소리가 주변에서 퍼졌다.
시하는 대체 왜 웃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덕분에 짧은 공연은 끝을 맞이했다.
***
시하를 데리러 왔다.
“시하야. 형아 왔어.”
“형아!”
도도도 달려오면서 나에게 안긴다.
오늘 어린이집이 재밌었는지 기운이 넘친다.
“이제 집으로 갈까?”
“아아.”
다시 방으로 들어가 펭귄 가방을 들고나온다.
집으로 가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이리저리 이야기하는데.
“진짜? 알바를 했어? 그것도 편의점?”
“띡. 찌거서. 띡. 띡.”
“그것만 했어?”
“아냐. 카드 바다써. 또 오라고 인사해써.”
“대단하네.”
설마 시하가 알바를 할 줄이야.
지금까지 돈 번 일을 해봤어도 알바는 처음일 것이다.
뭐 엄청난 걸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배운 게 있었을까?
“사람 마니 와써. 경투리오 형아도 와써.”
“엥? 경트리오… 가 아니라 세 명 다 왔어?”
“아냐. 한 명. 우웅…….”
시하가 뭔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한 명의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듯했다.
하긴 세 명을 덩어리로 기억하는데 이름을 기억할 리가 없나?
“혹시 경준이야? 박경준.”
“차자따!”
“하하하. 그렇구나. 어쩐지.”
“경투리오 형아 가서 사람 마니 와써.”
“으응? 얼마나 많이 왔는데?”
“열!”
“열 명이나?”
이거 참. 의심스러운데.
오랜만에 쌓여있는 대학생 톡을 봤다.
쭉 내려보니 어린이집 아이들이 알바한다고 난리가 났다.
카페에서도 알바를 했는지 거기 작은 공연을 봤다고 자랑한 글도 보였다.
“시하는 카페에서 알바 안 했어?”
“거기 하나, 연주, 은우, 윤동이 가써.”
“오홍.”
“시하도 마지막에 가써. 투 플러스 원 안 대 해써.”
“?”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하랑 떨어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말을 못 알아듣는 지점이 발생한다.
이 부분이 약간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이리 쫑알쫑알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것 같다.
말도 제법 늘었다.
아마 나와 같은 시간을 계속 공유만 했으면 이런 식으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고 했을까?
말도 분명 더디게 늘었을 것이다.
시하를 어린이집에 보내길 잘한 것 같다.
물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느린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거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상적으로 맞춰질 것이다.
“나중에 어른 되면 편의점 알바를 할 거야?”
“아냐.”
“응? 왜? 꽤 재밌었지 않아?”
“재미써.”
“그럼 또 해보고 싶은 거 아니야?”
“시하 카페 알바 할래.”
“엥? 왜?”
“거기가 더 재미써. 노래도 해. 프라마. 프라마.”
“프라마는 또 어디서 들었어?”
“은우가 랩 해써.”
“흐음. 그렇구나. 은우가 단어를 많이 아네.”
“떡떡해.”
“똑똑해, 겠지….”
“똑똑. 누구세여? 시하예여.”
“푸흡.”
나는 시하가 커서 카페 알바를 하는 것을 상상해 봤다.
커피 위에 재밌는 그림을 그려줄지도 모르겠다.
“다 왔다.”
집에 도착하자 가방을 벗고 저녁을 먹었다.
약간 피곤함이 몰려와서 커피를 꺼냈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잘 생각이다.
그걸 본 시하가 말했다.
“형아!”
“응?”
“시하가 코피 타 주까?”
시하야. 코피가 아니라 커피야…….
오늘은 집에서 못해본 카페 알바를 해보고 싶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