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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화 (270/500)

270화

집으로 돌아와 어항을 거실에 놓았다.

물고기 세 마리가 열심히 헤엄을 치고 있고 새우는 돌 위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서로 잘 어울리고 있었다.

시하는 어항에 딱 붙어서 관찰한다.

“형아! 물고기 노라.”

“응. 놀고 있네.”

“일피가 말해. 날 따르라!”

“아, 일피가 그렇게 말하는구나. 근데 일피가 누군지 알고 말하는 거야?”

“얘!”

시하가 자신 있게 수컷 한 마리를 가리켰다.

저게 구분되나? 너무 궁금해서 시하의 눈을 한 번 가렸다.

“아?”

“짜잔. 일피는 누굴까요?”

“얘!”

응.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걔는 이피야.

시하야 너도 구분 못 하는구나?

둘이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군지 알기 어려웠다.

“시하야. 물고기 밥 줘볼래?”

“줄래!”

나는 오늘 산 먹이를 꺼냈다.

안을 열어보니 손톱만 한 스푼이 나왔다.

“엄청 작네. 한 번 하고 조금 더 주면 되겠다.”

“머거!”

시하가 조그마한 스푼을 푹 떠서 어항 위에 뿌렸다.

물고기들이 아주 난리가 났다.

먹이를 먹으러 뻐끔뻐끔 입을 열심히 움직인다.

“마시써? 마니 머거. 마니 해써.”

하긴 뭘 했니?

누가 보면 시하가 음식을 해서 준 줄 알겠다.

“형아. 엄청 빨라. 물고기 배고파 해써.”

“그러네. 허겁지겁 먹네?”

“하나 더 주까?”

“아니. 더 먹으면 배가 터져서 위험해.”

“왜? 배불러 하면 조아.”

“물고기들은 배불러도 터질 때까지 먹어서 그래.”

“왜? 안 머그면 대.”

“여기 물고기는 먹는 것에 진심이거든. 도저히 안 먹을 수 없는 거지.”

“마녀에게 저주 걸려써?”

“그렇지. 저주지. 저주.”

“형아. 마녀 자바서 물고기 저주 푸러져.”

“문제는 마녀가 어딨는지 몰라서 어쩔 수가 없어. 그러니 많이 주면 안 돼. 알았지?”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고기를 보았다.

열심히 말을 건다.

“티김도 밥 머거. 마시써?”

새우는 아무 말 안 하고 열심히 가루가 된 먹이를 먹고 있다.

구피들도 자기 밥을 다 먹었는지 관심을 보인다.

“일피, 이피, 피피. 그거 티김 밥이야. 셋이 밥 머겄잔아. 밥. 그거 티김 밥인데?”

아무래도 새우 밥에도 관심을 보이며 먹는 중인가 보다.

멍청한 구피 녀석. 먹을 욕심이 너무 많다.

“형아. 티김 밥 다 머거.”

“그래. 우리도 튀김 밥 먹을까?”

“아?”

시하가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얼굴로 나를 계속 보았다.

저기요. 시하야. 농담이야. 그리고 너는 새우 이름을 튀김으로 정했잖아!

나만 나쁜 게 아닐 것이다.

“여기 할아버지가 주신 튀김이랑 밥이랑 저녁에 먹자는 거지.”

“시하 새우티김 머글래!”

“그래. 새우튀김.”

알고 보니 시하 네가 제일 나쁜 거 아닐까?

아무튼, 맛있게 먹으면 된 거지.

***

설이 끝나고 어린이집 아이들이 모였다.

다들 맛있는 걸 먹었다고 자랑하는데 거기서 거기였다.

설음식이 집마다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용돈 많이 받았어?”

“마니 바다써.”

“와! 대박! 나도 많이 받았거든. 그래서 새로운 사커공 사주기로 엄마가 약속했어.”

“정말?”

“응!”

옆에 있던 하나가 말했다.

“하나도 노래교실에 쓰기로 해써. 엄마가 착하다고 해써.”

“하나 착해!”

“헤헤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무도 남은 돈이 어떻게 되는지 관심이 없나 보다. 결국, 어머니의 주머니에 들어갔단다. 물론 빠져나온 돈도 많겠지만.

친척이 많다는 건 딱히 좋은 것이 아니었다.

매년 아이들이 얻는 돈이 있지만 빠져나가는 돈을 생각해 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말씀.

혹은 이미 빠져나간 돈을 수거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시하는 물고기 사써. 예뻐.”

“와! 시하 물고기 샀어?”

“아아. 새우도 사써.”

“하나도 보고 시푼데!”

“집에 놀러 와.”

시하야. 너 또 형아 허락 없이 애들을 초대하는 거니?

“물고기 이름은 일피, 이피, 피피야. 피피는 여자야.”

“그럼 새우는?”

“티김이야. 티김.”

선생님은 침을 삼키다가 목에 걸려서 콜록 되었다.

시하가 선생님을 보았다.

“샘. 갠차나?”

“으응. 콜록콜록. 괜찮아. 콜록. 새우 이름이 티김이라고?”

“아아. 새우 티김.”

“엄, 엄청난 이름이구나. 시하야.”

“새우 티김 마시써.”

“나중에 새우 잡아먹을 거 아니지?”

“아냐. 키어.”

“그, 그래. 콜록.”

그때 옆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종수가 나왔다.

대충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뱃돈 견적을 낸 것이다.

이제는 정보전을 잘하게 되었다. 가슴을 활짝 폈다.

“하하하. 나 세뱃돈 엄청 받았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이 줬거든.”

“아아. 축하해~”

시하가 손을 흔들고 뒤를 돌아섰다.

이제 이야기를 다 해서 관심이 없어진 것이다.

종수가 깜짝 놀라더니 시하의 어깨를 잡았다.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아?”

“내가 얼마 받았는지 궁금하지 않아?”

“시하 아라. 마니 바다써.”

“그건 아까 내가 말한 거잖아!”

“시하 다 들어써.”

“아니. 듣긴 들은 게 맞는데!”

오늘도 뭔가 시하에게 말리는 종수였다.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탕탕 친다.

시하는 어쩔 수 없이 종수에게 물어주었다.

“얼마 바다써? 서이 마넌?”

“아니! 엄청 많아. 무려 서이 십 마넌! 아니! 이게 아니지! 삼십만 원! 삼십만 원이야. 너 때문에 자꾸 내 발음도 이상하게 되잖아.”

“서이 십 마넌? 할무니 몇 개야?”

“할머니 6개지! 아니! 5만 원권 6개! 너 자꾸 할머니라고 할래?”

“할무니 그려져 이써.”

“어? 그건 그렇긴 하지.”

시하는 틀린 말은 안 한다. 틀린 말은.

종수는 뭔가 이게 아닌데? 하면서 대체 내가 뭘 하러 왔더라? 하고 헷갈리는 중이다.

분명 자랑하려고 왔는데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다들 오오오! 하면서 대단해! 이런 느낌으로 상상했는데 시하의 말에 ‘으응? 그렇지. 맞는 말이지.’라며 이런 느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엄청 부럽지?!”

“시하 새우 티김 머거써! 부러어?”

“아니. 지금 새우튀김이 중요해?”

구피가 먹이에 진심인 물고기였다면 시하는 새우튀김에 진심이 되었다.

배를 쭈욱 내밀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아. 됐다. 됐어.”

이제는 포기하고 종수가 물러났다.

재휘가 뒤에 붙으며.

“종수야. 엄청 많이 받았네. 좋겠다. 삼십만 원이면 예쁜 옷도 살 수 있어. 어디다 쓸 거야.”

“재휘야…….”

역시 재휘라면 알아 줄 거라 생각했다.

“크흑.”

“으응?”

왠지 모르게 재휘를 꼬옥 안고 싶은 종수였다.

재휘는 뭐가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종수는 현명한 판단을 한 거였다.

실제로 시하가 받은 돈은 50만 원이었으니까.

물론 사실 할아버지가 시혁에게 주신 돈이기는 했지만.

진실은 땅속으로 묻혔다.

“자. 자. 다들 세뱃돈을 많이 받았나 보네요. 하지만 얼마 받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주신 어른들의 마음을 잘 기억해야 해요. 맛있는 거 먹고 건강하게 자라라. 이런 마음으로 주신 거니까 다치지 말고 오늘 하루 신나게 놀아요!”

“네에!”

다들 설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오늘은 뭐 하고 놀지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는 연주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받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연주는 얼마 받아써?”

“그냥 많이 받았는데?”

“정말? 그럼 뭐 살 거야?”

“나도 엄마 줬어.”

공주님 같은 연주도 용돈이 엄마에게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말을 들은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신의 오른손을 보았다.

분홍색 빛무리가 시하의 소매에서 빼꼼 나와서 팔을 휘감았다.

“엄마. 용돈 주까?”

분홍색 빛무리는 거절이라는 듯이 좌우로 움직이며 시하의 팔에 쏙 들어갔다.

시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시하야.”

선생님은 시하를 보았다.

아까 시하가 중얼거린 말을 들어서 쓴웃음을 짓는다.

어쩌면 다들 엄마에게 용돈을 주니 시하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걸지 모른단 생각을 했다.

사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프로 선생님들도 난감하기만 하다.

뭔가 위로의 말을 해도 아이에게는 와닿지 않을 테니까.

할 수 있는 건 그저 평소처럼 대하는 것뿐이다.

“오늘은 재밌는 놀이가 있어요!”

“아? 모야?”

선생님의 목소리가 컸는지 다들 바라보았다.

“여러분이 오늘 받은 세뱃돈은 사실 엄청 일해서 번 거잖아요. 그렇죠?”

받아서 좋았던 것만 생각했지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다는 듯이 아이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서 우리가 돈을 한번 벌어볼까 해요. 정말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요. 어때요? 재밌겠죠?”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떠케요? 지금 나가요?”

“시하 신발 신어?”

다들 나갈 태세가 만만했다.

“아니…. 그냥 알바 놀이를 할 건데요?”

아이들이 실망했다는 얼굴을 했다.

진짜 어른들처럼 돈도 척척 벌며 일하는 줄 알았다.

“흠흠. 다들 실망이 크겠지만 그렇게 알바를 쉽게 할 수 없답니다.”

그때 원장이 말했다.

“할 수 있기는 한데?”

“네?”

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장이 살며시 웃었다.

***

강인대학교에는 편의시설이 제법 있다.

일단 먼저 대학생들이 드나들 수 있는 카페부터 시작해서 당구장, 탁구장 그리고 편의점까지.

다른 곳들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특히 편의점은 북적거렸다.

종강 뒤에는 사람이 없어서 파리만 날리지만 나름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원장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연락받으셨겠지만 애들이 알바를 조금 경험해보고 싶어 해서요.”

“하하하. 어린데 대단하네요.”

“네. 그래서 아주 잠깐만 경험을 하게 하려고요.”

“아하.”

비교적 구하기 쉬한 알바가 바로 편의점 알바였다.

물론 여기 편의점은 밤에만 알바를 쓰고 있다.

기숙사에 있는 사람들이 배고플 때 근처에 있는 여기 편의점으로 오기 때문이었다.

원장이 말했다.

“그럼 이 푯말 좀 걸어둘게요.”

[4살 알바생이 일하고 있어요! 이해해 주세요!]

사장님이 말했다.

“그런데 알바생이 8명이나 되요? 인건비 엄청 들겠네.”

“호호호. 다 여기서 알바를 할 건 아니고요. 반은 다른 곳으로 갈 거예요.”

“어디요?”

“근처에 카페요.”

“아, 거기. 응? 거기 애들이 잘할 수 있으려나?”

“지켜봐야죠.”

편의점에서 알바할 애들은 총 넷.

시하, 승준, 종수, 재휘였다.

원래라면 하나, 연주가 끼어있어야 하겠지만 이미 둘은 카페에 빠져서 그쪽으로 붙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다희쌤.”

“네! 원장님. 맡겨만 주세요! 알바 경험 다수인 제가!”

“안 해본 일이 있어요?”

“물론 많죠!”

원장은 피식 웃으며 애들을 데리고 떠났다.

이제 남은 네 명의 아이들은 편의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하야. 이거 맛있겠다.”

“아아. 초코. 마시써.”

“흠흠. 야. 이시하. 내가 좀 사줄까? 세뱃돈 많이 받아서 돈이 많거든.”

“종수야. 그럼 난 이거 먹고 싶은데.”

이미 알바생이 아니라 손님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헛기침하며 애들을 주목시켰다.

“흠흠. 여러분. 지금은 손님이 아니라 알바생이에요. 다들 열심히 배워야죠.”

“네!”

“여기서 뭘 하는지 아세요?”

종수가 손을 들어 말했다.

“계산해 줘요!”

“네! 맞아요. 계산해 줍니다.”

물론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해야 하는 일이 많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보이는 게 계산이다.

“저기 기계에 띡 하고 찍어서 돈 받고 계산해 주면 돼요. 알겠죠?”

“네!”

아이들이 쉽다면서 서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했다.

후후후. 과연 이게 쉬워 보이나요?

“먼저 시하랑 승준이 계산대 앞에 서볼래요? 종수랑 재휘는 선생님하고 같이 물건을 놓자.”

“네!”

사장이 일부러 물품을 채워 넣지 않고 비어있는 부분을 그대로 두었다.

아이들이 해볼 수 있게 말이다.

시하와 승준은 계산대에 섰다.

사장이 말했다.

“여기 의자에 있으렴. 손님 오면 계산해 주면 돼. 알았지?”

“네!”

“아아!”

발을 동동 구르던 중 드디어 손님이 왔다.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박경준이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나왔다.

“어? 시하?”

“아아! 경투리오!”

“그거 세 명 있을 때 써야 하는데? 근데 지금 뭐 해?”

“시하 알바해여.”

“정말?”

“아아!”

“이야. 개강하기 전까지 알바 자리 구하기 진짜 힘든데 대단하네!”

박경준이 호들갑을 떨었다.

“모 사여?”

“응? 아! 우유 하나 사려고.”

박경준이 제일 큰 우유를 하나와 초코 우유 네 개를 들고 왔다.

“계산해 주세요.”

“아아!”

시하가 바코드에 물품을 띡 하고 찍었다.

승준은 POS 기기를 보고 있었는데 사장이 옆에서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제 카드 받고 여기다 꼽으면 돼.”

“카드!”

박경준이 두 손으로 시하에게 카드를 바쳤다.

띠딕.

계산이 끝나고 시하가 다시 카드를 돌려주었다.

“이거!”

“그래. 고맙다. 초코 우유는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

“정말?”

“그럼 정말이지.”

“아아. 고마어여! 경투리오!”

“이왕이면 경준이 삼촌이라고 해주라. 그럼 많이 팔아.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왜?”

“으음. 지금 다들 쉬는 날이거든. 아!”

박경준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알바 열심히 해.”

시하가 손을 흔들었다.

“바이바이.”

알바로서 바이바이란 인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귀엽기는 했다.

박경준은 시하의 인사를 받고 편의점을 나섰다.

그제야 푯말을 보았다.

찰칵.

사진을 찍은 뒤에 단톡방에 올렸다.

-박경준 : 대박! 어린이집 아이들이 알바 함. 지금 아니면 못 봄. 어서 응원해 주러 오라고!

박경준의 한마디로 알바생에게 최악의 상황이 닥쳐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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