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GCP 사무실.
어디에서나 사람이 모이면 파벌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좋은 의도로 창설을 했든 아니든.
이 지원 사업에 사무실들도 각자 팀마다 배정받았는데 휴게실을 갈 때나 화장실에 갈 때 자주 마주친다.
뭔가 친해지지는 않고 묘한 기류가 발생하며 고개를 까딱 숙이는 거로 인사를 대신한다.
“멘토들끼리는 친해요?”
나는 안현태를 보았다.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친하긴 하죠. 비록 모두가 경쟁사이기는 한데 공통적인 주제들도 많고요.”
“흐음.”
“근데 은근 그런 건 있어요.”
“뭐가요?”
“시혁 씨가 느끼는 미묘한 분위기 말이죠.”
“각자 다른 경쟁사인데 파벌이 있나요?”
“파벌은 없는데 자기가 맡은 팀에 대한 경쟁 심리가 있죠.”
“아, 하긴.”
“이거 은근 중요한 거예요.”
“그래요?”
나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현태는 손에 있는 종이컵을 입에 대었다.
“내가 맡은 멘티들의 매출이 더 잘 나온다. 뭐 이런 거요.”
“그 사람들이 잘한 거지 멘토가 잘했다고 할 수 있나요?”
“하하하. 그건 그렇죠. 그런데 사람이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을 안 하거든요. 아, 이 멘토는 이렇게까지 해주더라. 근데 성적이 더 잘 나와. 매출이 꽤 돼.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겠냐고요.”
“부러워하겠죠.”
“부러워만 할까요? 아, 나도 저 멘토에게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뭐 이런 게 신경을 긁는 거죠.”
“헐.”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을 들으면 짜증 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게 한다면 확실히 앞의 말을 들을 경우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요. 우리 회사로 오라고 제안을 할지.”
“흐음. 회사 이미지도 달려있겠네요.”
“오히려 회사에 입사하는 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그건 그렇겠네요.”
“그럼 들어갈까요? 이제 우리도 빨리 성과를 보여줘야 하니까.”
“네.”
다들 이런저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잘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남과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감정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응원해 주는 마음도 가지면 어떨까 싶다.
“아. 떨려.”
안으로 들어가자 안경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그걸 보며 신경환이 타박을 한다.
“아, 가만히 좀 있어. 정신 사나워.”
“지금 가만히 있을 때야? 앞으로 결과가 이 모든 것에 달렸는데?”
“대박 아니면 쪽박이겠지.”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야. 중박도 있잖아. 쪽박이면 너무 가슴 아플 것 같은데.”
박경준도 안경호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쪽박이면 진짜 눈물 날 것 같아.”
“경준이 너까지…….”
나는 안경호의 뒤로 와서 모니터를 보았다.
현재 에스텀 게임즈의 스타테스터에 참가한 상태다.
정식 버전이 아닌 데모 버전을 올려두었다.
사람들이 플레이를 해보고 별점과 입소문이 중요한 이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나. 모든 기업에 문이 열려있다는 점.
둘. 그에 따른 참가하는 게임의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
“이거 묻혀있는 거 아니야?”
“좋은 게임은 언제나 발굴되는 법이야!”
“흐음. 지금 인기 게임들 노출이 제일 심하네.”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가 보이는 배너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운로드 수 + 리뷰 + 별점의 지수를 만들어서 순위로 매겨진다.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들은 정식 출시가 인정되는 것이다.
“엄청 인디 게임도 순위에 들어있네. [좀비의 섬]? 재밌나?”
“안 해 봐서 모르겠는데?”
“왜? 해 보지?”
“다운로드 수 1이라도 올려줄 수 없지!”
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안경호를 보았다.
아무래도 경쟁 심리는 이 방의 사람들도 있나 보다.
“겨우 1인데.”
“겨우 1이라니! 너 지금 민주주의 사회에 소중한 한 표를 무시하냐!”
“알았다고. 나는 한번 해봐야겠다.”
“와…. 야이. 배신자야!”
“아, 티도 안 난다고.”
예전에 시하가 좀비 캐릭터를 그렸는데 그게 마침 생각났다.
물론 탈락했지만 다른 앱 게임 쪽으로 갔으니.
그건 정식 출시 잘되었나?
그 이후로 따로 찾아보지는 않았다.
“어디 보자.”
자리에서 게임을 내려받자 다운로드 수가 1이 늘어났다.
뒤에서 안경호가 눈을 부릅뜨고 배신자를 속삭인다.
아, 거참. 게임 하나 다운받은 거 가지고.
“해볼게.”
그렇게 좀비 게임을 하고 30분이 지났다.
“으음.”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떼자 안경호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어때? 재밌어?”
“나보다 네가 더 신경 쓰네?”
“아니. 어떻냐니까.”
“재미없는데? 이게 왜 순위에 있지?”
“엥? 진짜?”
“어. 진짜. 이거 참. 의심되는데. 조작 아니야?”
“헐?”
나는 손가락을 따닥따닥 책상을 치다가 지원하는 언어를 쭈욱 봤다.
영어, 한국어, 일어.
일단 한국어로 검색어에 [좀비의 섬]을 쳤다.
영화 빼고는 별다른 건 나오지 않았다.
“흐음. 그렇다면.”
일어로 [좀비의 섬]을 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뒤적거린 결과 무언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하하. 미쳤네.”
“왜? 왜?”
“여기 봐봐.”
“응? 뭐라 적혀 있는데?”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 이 사이트에서 인기게임으로 주목받는다고 다운로드 한 번씩 해달라고 하고 있어.”
“이게 통한다고?”
“어. 통하네.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네.”
나는 캡처해서 따로 번역을 적은 다음에 붙였다.
안경호가 물었다.
“뭐 하려고?”
“신고해야지. 다운로드 수와 별점 조작. 이대로 출시하면 에스텀에게 많은 피해가 갈 거라는 걸.”
“거기까지 하게?”
“당연하지. 생각해봐. 어떤 게임이 편법으로 순위에 들었어. 내가 모르는 재미가 있어서 나보다 순위가 높은가보다 생각했지만 사기였던 거지. 열 받아? 안 받아?”
“받지. 나쁜 새끼네. 이 새끼 하나 때문에 누군가가 노출이 안 되는 거잖아.”
“그렇지. 이건 열심히 게임 만드는 사람들의 기만이야.”
영어로 글을 적은 다음에 첨부 파일을 붙여서 보내려다가 조금 생각을 바꿨다.
“흐음…….”
“왜?”
“아니. 잠깐만.”
나는 살며시 고민에 빠졌다.
“이거 차라리 판을 키워볼까?”
“응?”
안경호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
아무리 게임을 등록해도 인기가 생기지 않고 묻히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의 시간은 유한하다.
올라오는 게임들을 다 할 수 있지는 않고 100개의 순위가 있다고 한들 그걸 다 하지는 않는다.
물론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굉장히 좋은 게임들이 묻히는 경우가 있기에 이것 역시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건 이거야. 화제를 키우는 데 우리가 고발하는 거지. 억울함을 내비친다. 어때?”
내 설명을 들은 아이들이 눈을 껌뻑거렸다.
설마 그런 식으로 선두에 서서 화제를 키우자고 생각 못 했다는 듯이.
뒤에 있던 안현태도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따로 조언은 없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신경환이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타당한 의문이었다. 굳이? 이렇게? 관심을 모아서 우리 게임을 알릴 필요가 있나?
“있지. 어떤 방법을 쓰든 사람들이 노출에 목숨을 거는 건 아니야. 자, 여기 너튜버들이 있지? 게임을 소개해 주고 있어. 돈 받은 거 아니다. 그냥 너무 힘들게 산 친구들 도와주고 싶어서 소개한다. 그런데 재미는 그렇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평범하다.”
“엄청 솔직한 평가네.”
“그래. 이렇게라도 노출되길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많아.”
실제로 TV 프로그램을 봐도 그렇다.
식당 중에 장사가 잘 안 되는 식당이 있다.
맛, 분위기, 위생 등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실제로 모든 게 완벽한데 안 팔리는 음식점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 가게는 TV에 나오고 날아다니는 중이고.
그만큼 노출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평가도 사람들이 많이 해봐야 유의미한 지표를 얻는 거지 저 땅굴 속에 묻혀 있으면 누가 평가를 해줄 것인가.
땅 파는 사람도 없다면? 그냥 평생 묻혀있는 보물 되는 거다.
내 말에 다들 고민에 빠진 표정이다.
“결정은 경호가 해. 난 그냥 이렇게 하면 어떤지 제안을 하는 거니까.”
“흐음.”
사실 이것도 여기를 이끄는 안경호가 결정할 일이다.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올 테니까.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안경호가 신경환과 박경준을 보았다.
신경환이 머리를 긁적였다.
“쓰읍. 난 좀 찝찝해.”
박경준은 찬성하는 의견이었다.
“난 괜찮을 것 같은데? 사실 이런저런 화제를 모아서 플레이어들이 한다고 해도 별점이 안 좋으면 출시는 말짱 꽝이지. 그렇잖아. 리뷰도 많아질 거고. 평가가 안 좋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어차피 화제가 되든 안 되든 차이가 있다면 평가가 많아지냐 안 많아지냐인데 우리 게임이 평가가 안 좋을 거라고 1도 생각 안 한다고. 그치? 시혁아?”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자기가 잘 팔 자신도 없으면 어떡하냐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안경호가 말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하긴. 어차피 대중들의 평가는 냉정하니까. 물론 별로라는 리뷰가 많이 달린다고 해서 거기에 혹하면 안 되긴 하지만.”
실제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 게임도 있었지만, 매출은 상당했다.
그냥 말 안 하고 묵묵히 재밌게 하는 사람도 많다는 말이다.
다운로드 수는 그런 지표를 나타낸다.
“좋아. 그렇게 하자. 잘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욕먹을 일은 없을 거야. 어차피 욕은 저 게임이 다 먹을 테니까. 화제도 사실…….”
앞의 삼인방을 쳐다보았다.
“게임이 재미없으면 편승이 되지 않을 거라서. 하지만 난 너희들의 게임이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말이야.”
마지막으로 한마디.
“어차피 이건 결과를 빨리 받냐 안 받냐의 차이일 뿐이야. 정식 출시도 아니고 매출에 곧바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
그렇다. 어차피 무료로 평가받는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정식 출시가 되든 안 되든 말이다.
***
나는 집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릴 것이고, 경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선봉에 설 생각이다.
[제목 : 더더욱 조작이 교묘해지는 에스텀의 스타테스터 시스템 근황!]
[내용 : 안녕하십니까! 전 소기업 게임개발회사인 ‘경트리오’입니다!
요즘 게임을 올리고 있는 같은 개발자로서 너무 화가 나서 울분을 풀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다가 올립니다.
정직한 평가로 게임 경쟁을 해야지 주작으로 순위에 들고 게임을 출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왜 제가 이 말을 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좀비의 섬’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순위가 높은 쪽에 있어서 한번 해보자고 내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죠.
아, 우리가 모르는 재미가 있었나 봐! 하면서 깨닫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겁니다.
혹시 조작이 아닐까?
그래서 우연히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런.
(사이트 링크)
(캡쳐)
한국어로 번역한 것까지 같이 올립니다.
현재 별점과 다운로드 수는 부풀려진 거였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조작이었으며, 모든 개발자에 대한 기만입니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개발자로서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제발 주작 게임에 속지 마시고 정당하게 개발되고 있는 재밌는 게임을 발굴해 주시길.
응원해 주시길.
그리고 주작해서까지 이득을 취하려는 그 사람들이 벌을 받기를.
여기까지 개발진 경트리오였습니다.]
작성을 끝내고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다.
‘흠. 아직 하나 더.’
나는 다른 것을 준비하기 위해 손을 올렸다.
에스텀에게 신고할 자료는 좀 더 보완하고 또 다른 추가사항을 적을 생각이다.
그쪽에서 번역할 필요 없이 영문으로 말이다.
“형아.”
“응?”
“모해?”
“좀비를 때려잡고 있어. 히어로가 되는 과정이지.”
“!!!”
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아. 점비 때찌때찌 해?”
“어? 음. 그렇지.”
“형아. 히어로. 히어로야.”
“하하. 그렇지.”
“시하도 점비 잡을래. 형아. 시하랑 가치.”
“그럴래?”
“아아. 형아. 점비 어디써?”
“요기 있는데?”
나는 눈을 희번덕하니 떴다.
크아아아.
입을 벌리며 시하를 무섭게 바라보았다.
이러면 시하가 무서워서 도망치겠지?
“형아 점비!”
시하가 놀랐다는 듯이 뒷걸음질 쳤다.
“크아아아.”
“시하도 점비 할래. 시하 점비야. 끄앙!”
어라? 내가 원했던 반응이 아닌데?
이렇게 술래잡기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말이지.
시하는 귀엽게 두 손을 할퀴듯이 세운 다음에.
“끄앙. 시하 점비야. 점비. 끄앙! 형아랑 가치야. 가치. 끄앙.”
뭔데. 시하 좀비에게 물리고 싶네.
이걸 어떻게 때려잡아. 암. 못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