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어린이집.
서로의 파벌이 떨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째져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회사가 좋은 식으로 분리된 관계라고 할까.
서로 잘 아는 관계.
하나와 승준 역시도 그랬다.
남매였으니 같이 놀게 된다. 하지만 연주가 오면서 벌어지게 되었으니 갈등을 빚게 되는 것도 당연지사.
사실은 연주 때문이 아니라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 나오는 갈등이다.
막상 보면 별거 아닌 거로 싸우는 게 다 이것 때문이다.
“하나는 오늘 아이돌 놀이 할 거야.”
“아니야. 밖에서 노는 게 최고야.”
서로의 엇갈린 주장.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하나는 승준을 향해 눈을 찌릿 보냈다.
“오빠는 맨날 밖에서 놀잖아.”
“넌 맨날 연극만 하잖아. 아이돌은 무슨. 맨날 보면서.”
“언니들 많이 보는 거 좋은 거래써. 조회수도 올려주고.”
“그거 네가 안 올려도 올라가거든. 티도 안 나거든.”
“오빠는 몰라. 다들 이렇게 올려!”
하나가 다른 주제로 넘어간 걸 깨달았는지 다시 주제를 돌렸다.
“아무튼 나는 오늘 아이돌 놀이 할 거야.”
“아니거든. 오늘 밖에서 공 찰 거거든. 추울 때는 방에만 있는 거 안 좋거든.”
“어~엄청 추울 때는 방에 있는 게 좋다고 해써!”
둘 다 그럴싸한 주장을 하다가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었다.
여기는 민주주의 사회.
숫자가 힘이 된다는 걸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하나가 시하를 휙 보았다.
“시하야. 하나랑 같이 놀 거지?”
“아?”
“야! 오하나! 치사하게! 시하야. 나랑 공 찰 거지?”
“아?”
시하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친한 친구들의 의견이 달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뒤에 있는 연주는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자신과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승준이 연주를 끌어들이기에는 별 메리트가 없어서 시하를 뺏기면 안 되는 입장이다.
하나는 시하만 이쪽으로 오면 놀이의 결정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결정적인 키는 시하가 들고 있었다.
“시하는.”
“응!”
“응!”
“생각해 보께~”
일단 뒤로 미루었다.
진지하게 두 사람을 지켜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형아라면 어떻게 했을지.
멋지게 해결하는 자신만 상상이 되지 그 과정은 잘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시하는 그거 할래.”
“뭐?”
“뭘?”
손을 꼼지락대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밝은 얼굴로 소리를 높였다.
“아이돌 공 차기!”
“응?”
“엥?”
시하가 손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시하 바써. 아이돌 공 차. 운동해. 운동.”
그 말에 하나가 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돌 체육대회!”
“아아!”
아이돌 체육대회!
굳이 말하자면 재밌다고 말할 수 없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니 좋아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보여주는 분량이 적으면 방송국 피디를 씹고 뜯고 맛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시하가 도달한 결론에는 두 놀이를 합치는 것이었다.
왠지 형아처럼 엄청난 의견을 낸 것 같아서 자랑스러워졌다.
손은 허리에 대고 배는 쭈욱 내밀었다.
“시하 이거 할래. 아니면 안 할래.”
거기에 자기주장까지 확실히 챙기니 4살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다툼을 지켜보다가 스르륵 나섰다.
“후후후. 아이돌 체육대회라.”
이런 다툼이 있었을 때 선생님은 뭔가 바로 판결해 주면 안 된다.
판사도 아닐뿐더러 누구의 편이 되어준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이것도 교육 중 하나로 서로 조율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선생님은 말이지. 이걸 엄청 좋아한단다. 옛날 한때 아이돌에 미쳐있을 때부터 말이지. 노래가 아닌 색다른 모습! 출발 드림팀을 보는 것도 꽤 재밌…. 흠흠.”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이 계속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해서 당황한 모습이다.
하나는 머리카락을 빙빙 꼬꼬 있고, 연주는 관심 없는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
승준은 깍지를 끼고 머리 뒤로 놓았으며 시하는 쭈욱 내민 배를 손으로 긁었다.
긁적긁적.
“흠흠. 나 때는 이거 재밌었다고! 엑스맨이랑!”
“???”
“내,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원장 선생님만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토닥일 뿐이다.
“하나는 아이돌 체육대회 조아해. 오빠 할 거야?”
“으음. 뭐 그 정도면…….”
승준 역시도 절충안이 괜찮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가 해맑게 말했다.
“그럼 수고해~”
쌍둥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시하의 뒷덜미를 잡았다.
“시하야 어디가!”
“말하고 가는 게 어딨어!”
“아?”
해결하고 멋있게 사라지고 싶었지만 그 계획은 저지되었다.
시하가 말했다.
“이러문 안 대~”
***
어쩌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같이 밖으로 나갔다.
이름하여 강인 아이돌 체육대회.
작년에 따뜻한 봄날에 체육대회를 한 것이 생각난다.
다른 아이들도 그때를 떠올리는지 열심히 화살 쏘기를 흉내 낸다.
“자, 여러분. 그럼 선생님이 해설하며 역할을 정해 줄게요. 이제 대회를 시작하겠어요.”
“네!”
“팀을 나눌게요.”
1팀. 승준, 하나, 연주, 시하.
2팀. 종수, 재휘, 윤동, 은우.
“먼저 승부차기가 있겠습니다! 다들 한 번씩 차세요. 만약에 점수가 똑같으면 대표자 한 명이 나서서 대결하겠습니다!”
먼저 승준이 나섰다.
선생님은 마치 방송을 하는 것처럼 소개했다.
“네! 강인 아이돌의 멤버 중 한 명이죠. 오승준! 체육돌이라고 불리며 매년 금메달을 따는데요. 오늘도 굉장한 활약을 보여줄 거로 기대됩니다.”
“헤헤헤!”
승준이 기분 좋은지 콧김을 뿜었다.
앞에 있는 골키퍼는 종수였다. 눈을 부릅뜨며 반드시 막겠다는 얼굴이었다.
“간다!”
“와라!”
승준이 발로 공을 뻥 하고 찼다.
시혁이에게 잘 배워서 그런지 제대로 힘이 실려 골망을 흔들었다.
“악!”
종수가 허망하게 들어가는 공을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승준을 따라가는 아이는 없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재휘가 그런 종수의 어깨를 토닥인다.
“승준이 썬더사커동호회라 엄청 잘해.”
“칫.”
“종수! 갠차나. 갠차나. 종수 원래 모태.”
“야! 이시하!”
선생님은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위로하는 건 좋은데 펙트는 날리지 말자.
“자, 다음.”
하나가 나왔다.
“강인 아이돌의 초기 멤버 오하나! 노래와 춤을 엄청 잘 추고 오빠인 승준과 쌍둥이라서 그런지 운동신경도 좋습니다!”
“헤헤헤!”
하나도 소개가 마음에 들었는지 두 볼을 감쌌다.
통통 뛰어서 공 앞에 섰다. 그리고 찼다.
골키퍼는 은우였는데 공을 막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푸하하! 골이다. 골! 골 때린다! 푸하하!”
다음은 연주.
“강인돌의 새로운 멤버! 연주입니다. 공주님 같은 외모죠. 여왕님 포스가 철철 넘칩니다.”
골키퍼는 재휘였다.
연주가 뻥 하고 차자 곧바로 잡혔다.
“앗!”
“아앗!”
“흐응~ 공이 잡혔네?”
“으응. 연주야. 내가 공을 잡았어.”
“그래? 재휘 골키퍼 잘하는구나?”
“응? 아, 아니. 그냥 연주 공 꼭 잡고 싶어서…….”
재휘가 얼굴을 붉혔다.
연주가 살며시 치켜뜬 눈으로 재휘에게 가까이 갔다.
“영광으로 알아.”
“어?! 응! 영광이야.”
선생님은 빨리 다음으로 진행했다.
저 둘은 전에부터 뭔가 묘한 기류가 있었다.
재휘가 좋아하는 건 알아차렸지만 연주의 마음은 조금 아리송했다.
“자, 다음!”
“아아! 시하!”
“네. 강인돌 황금 막내죠! 뭐든지 잘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과연 체육도 그럴까요?”
“시하 잘해. 형아 담아써!”
“담으면 어떡하니. 닮았다, 겠지.”
“아아. 형아 담아써.”
계속 형아를 어딘가 담아두는 이시하였다.
골키퍼는 윤동이었다.
승준 다음으로 운동신경이 좋은 친구다.
“시하 간다!”
“응. 그래.”
“시하 간다~”
“응. 빨리 해.”
“시하 진짜 간다!”
“아, 언제 할 건데.”
같은 반복된 말에 윤동이 지쳤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시하가 공을 찼다.
혼란을 틈탄 기습.
그 때문에 윤동의 반응이 한 발짝 늦었다.
“으악!”
“시하 이겨따.”
시하가 만세를 했다.
“으아아아! 시하야!”
승준이 달려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하나와 연주도 따라서 손을 짝 마주쳤다.
하지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대 팀이 공을 찰 기회가 남았으니까.
“다음은 바꿔서 할게요. 강인돌 종수! 공부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똑똑한 친구죠. 학생회장 출신으로도 유명하구요.”
“선생님. 저 학생회장 안 했는데요?”
“그런 역할이란다!”
정말 그럴듯한 역할 분배였다.
종수도 사실이 아닐지라도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휙 불안한 얼굴을 했다.
어린이집 아이들을 보았다.
“아, 힘들 거 같은데.”
선생님은 쿡 웃었다.
저 아이들과의 학창 생활을 잠깐 상상한 거 아닐까.
학생회장으로서 끌고 가기 힘들 것 같다는 미래를 순식간에 봤는지도 모른다.
이미 경험으로 꽤 학습했기에.
“흠흠. 종수야. 역할이라니까. 역할.”
“네…….”
종수가 힘을 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승준이 히죽 웃으며 도발을 한다.
“야! 나 넣는다.”
“해보든지.”
포부는 좋았지만 공이 막히고 말았다.
종수도 예상은 했는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누가 할래? 재휘?”
“네!”
“강인돌 패션 인플루언서! 공항에 나가도 화제, 외국에서도 더 화제인 재휘입니다.”
재휘가 어깨를 펴고 자신 있게 등장했다.
볼은 홍조가 있었다.
쑥스러워하는 게 티가 났다.
“연주야.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해. 알았지?”
“응!”
매너 있게 걱정을 해준 뒤에 공을 찼다.
연주가 공을 막을 생각은 안 하고 살짝 피했다.
철렁.
승준이 눈을 부릅떴다.
“연주! 너 피하면 어떡해.”
“왜? 뭐.”
“어?”
오히려 당당한 연주에게 당황하는 승준이었다.
“아, 아니. 막아야지!”
“골키퍼 해본 적 없어. 네가 이해해.”
“어휴. 됐다! 하나야! 잘 막아!”
“응.”
승준은 연주를 내버려 두고 하나를 응원했다.
쌍둥이는 언제 싸웠냐는 듯이 이미 원래 관계로 돌아와 있었다.
응원도 해주고 말이다.
선생님이 이걸 위해 한 팀으로 묶었다.
“다음은 강인돌 최고 래퍼! 은우!”
“내 골은 골 때리지~”
결과적으로 하나는 은우의 슛을 막지 못했다.
시무룩한 하나가 돌아오자 승준이 잘했다면서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오빠?”
“뭐, 힘냈다.”
“응.”
사이좋은 우애로 돌아와서 선생님이 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강인돌 최고의 퍼포먼스! 윤동!”
윤동이 골대 앞에 있는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이제 안 당한다?”
“아아. 시하 잘해.”
시하가 손을 탁탁 부딪쳤다.
윤동이 공을 힘껏 찼다. 철렁. 공이 들어갔다.
“간다~”
시하가 뒤늦게 움직였다.
데굴데굴 나오는 공을 잡고 뻔뻔하게 들었다.
“막아따~”
“시하야. 선생님이 봤는데 이미 골이야.”
“아냐. 골 한 거 도깨비 슛이야. 도깨비 슛. 가짜야. 가짜. 이거 진짜야.”
한마디로 골대로 들어간 건 환영이었고 실제 공은 자기 손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무슨 엄청난 상상력인가.
선생님은 그런 시하에게 팩트를 꽂았다.
“응. 아니야. 골이야. 선생님이 다 봤어.”
“샘. 바써?”
“당연하지.”
“아코!”
시하가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쳤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흠흠. 어쩔 수 없이 대표 한 사람이 와서 차야겠네요.”
마지막 대결은 승준과 윤동으로 좁혀졌다.
“자, 시작!”
승준이 가볍게 한 골을 넣었고, 윤동은 힘이 많이 실렸는지 골대를 맞으며 빗나갔다.
그렇게 시하팀이 승리를 거뒀다.
“와아아!”
거의 우승할 듯한 외침에 방방 뛰는 아이들이었다.
“자자. 아직 안 끝났어요. 이제 한 경기 끝났을 뿐이에요.”
하지만 시하팀에게는 그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그저 승리를 만끽할 뿐이었다.
***
-그리고 다시 현재.
나는 시하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잘했는데?”
시하가 입을 열었다.
“시하 형아 대써! 파바박 해써!”
“???”
그래. 말은 늘었는데 대체 왜 설명이 아직도 그 모양이니?
어쨌든 시하는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