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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화 (262/500)

262화

“괜찮으십니까?”

옆에 있던 안현태가 나를 보았다.

손을 살짝 들며 괜찮다는 표시를 보냈다.

자기들 소개를 경트리오라고 할 줄 누가 알았겠나.

설마 개발진 이름을 경트리오로 하는 건 아니겠지?

팀장들이 서류를 보더니 피식피식 웃고 있다.

아무래도 세 명의 이름에 ‘경’이 들어가는 걸 발견했나 보다.

이게 먹힌다고?

“이걸로 피식하다니. 조금 자존심 상하는군요.”

안현태는 여기에 웃고 있는 자신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것 같다.

나름 이름이 재밌지 않나?

그렇게 삼인방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PPT 역시도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앞에 있던 팀들의 단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원래 만들었던 게임은 명확하게 노리고 있는 타깃층이 있었으니까.

“저희는 이렇게 피씨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미 초기 버전은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입니다. 플레이 버전을 보시죠.”

잠깐의 플레이 영상.

앞의 팀들이 앱 게임에 신경 썼다면 삼인방은 솔로 플레이 게임이었다.

한국에서는 요즘 드문 형태의 게임인 건 맞다.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침묵이 이어졌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쭈욱 들었다.

다들 살며시 고민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한국의 수입 모델과 조금 다른 형태였고, 또 이게 잘나간다고 보장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또 잘 만든 게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토리, 조작, 게임 플레이까지.

기본을 확실히 알고 들어갔고 꽤 흥미가 돋우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흠.”

나를 처음에 못마땅하게 본 구현조 팀장이 입을 열었다.

“저부터 발언하겠습니다.”

다른 팀장들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의 열정을 잘 봤습니다. 굉장히 잘 만든 게임이네요. 확실히 이런 게임은 스토리적인 부분이 중요하죠. 스토리텔링도 잘 엮어서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솔직히 모르겠는데 해외에서 출시할 만하지 않나 싶군요.”

다들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작화도 좋고요. 하지만 한국에서 팔아볼 생각은 없는 겁니까? 꼭 피씨 게임이어야 했나요? 유저들이 함께 즐길 만한 요소를 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앱 게임에 관심없냐는 이야기입니까?”

“말하자면 그렇죠.”

“저희는 저희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한 것뿐입니다. 세 명이 팀을 만들고 우리가 좋아했던 게임을 만든 겁니다.”

“요즘 트랜드가 아닌 거 아시죠?”

“트랜드는 어차피 누가 주도해서 퍼지는 거 아닙니까. 저희 게임은 확실히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저희 독선으로 만든 게 아닌 확실히 유저를 생각하며 타협하고 만들었습니다.”

“정말 타협한 거 맞습니까?”

“네! 왜냐면 저희가 제1의 플레이어니까요.”

그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펜을 들었다.

아무래도 나름의 고집이 마음에 든 것 같은 느낌이다.

안현태가 손을 들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게임을 만드는 청년이 있다는 게 참으로 귀하네요. 확실히 색깔도 있고요. 뭔가 조언을 해주고 싶은데 딱히 확연히 없네요. 다만 만약에…….”

살짝 말을 멈추고.

“이게 인기가 생겨서 앱 게임으로도 만들고 싶다면 제가 좋은 멘토가 될 것 같은데…….”

앞에 있던 구현조 팀장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아, 이런. 꽤 뛰어난 팀을 만나서 그런지 경쟁이 시작되려는 느낌이다.

아까는 팀이 지원받으려고 한 경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팀을 가지려는 경쟁의 불씨를 틔운 것 같다.

구현조가 말했다.

“하하. 피씨 게임이면 저도 일가견이 있죠.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확실히 문제가 있지만 그건 차차 해결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노력이 정말 많이 들어갔군요.”

“감사합니다.”

다른 팀장들도 여기저기서 칭찬을 늘어놓으며 은근한 어필을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총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 부분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스토리는 누가 짠 겁니까? 굉장히 흥미롭게 잘 구성했던데.”

“아, 그거는…….”

안경호가 나를 힐끗 봤다.

“흠흠. 여기 계신 이시혁 통역사분께서 스토리를 써주셨습니다.”

구현조 팀장은 나를 큰 눈으로 보더니 인상을 팍 구겼다.

다른 팀장들도 대체 내 정체가 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옆에 있던 안현태는 땡 잡았다는 듯이 밝게 웃고 있었다.

‘어? 왜 갑자기 나한테 포커스가 맞춰진 거지?’

이거 참. 곤란한 일이다.

발표는 삼인방이 했는데 마지막 씬스틸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별말이 없이 하하하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뭘 더 말해.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뭔가 그냥 넘어가기에는 분위기가 이상하긴 한데…….

***

삼인방은 당연히 합격했다.

지원 사업의 취지에도 잘 맞기도 했고 이렇게 준비한 친구들이 거의 없기도 했다.

이미 만들어진 게임이 상당하다는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이대로 지원만 된다면 앞부분뿐만 아니라 그 뒤도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멘토 선정 부분이었는데.

“역시 시혁이 네가 있는 NM이 좋겠지?”

안경호가 씨익 웃으며 내 옆구리를 톡톡 쳤다.

“원하시는 곳으로 가. 조언 더 잘해 주고 맞는 곳에.”

“어차피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건데 조언이 그렇게 필요할까? 아까도 말했잖아. 이거 해외에 먹힐 것 같다고. 그럼 번역이 중요한 거 아니야.”

“번역 다 되어 있는데 뭘.”

“그건 그렇지. 그래도 혹시 보완할 점이 있을 수도 있고.”

“으음. 뭐 마음대로 해.”

이미 마음으로 결정한 듯한데 말해 뭐 하겠는가.

그래도 확실히 기대되기는 한다.

이 게임이 완성되어 런칭이 되는 날을 말이다.

“그럼 나는 멘토로 제출한다?”

“멘토도 받아줘야 한다는 거 알지?”

“그렇게 우리에게 어필했는데 설마 안 받아주겠어?”

“그건 그렇지.”

안현태 역시도 이 삼인방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근데 어떻게 팔 생각이지?

대부분 앱 게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앱 게임이 확실히 쉬운 난이도고 비용이 적게 드니까.

그렇지만 이 삼인방은 실력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거다.

그렇다면…….

“와, 근데 이런 지원 사업에 걸리니까 기분 좋네.”

“원하는 형태가 다른데도?”

“뭐, 어때. 경험이지. 이렇게 돈 벌면 다시 다른 게임 만들 때 투자할 수 있는 거고.”

“그건 그렇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그걸 가지고 새 게임을 만드는 데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꽤 험난한 과정인 것 같다.

저런 소수 개발자가 쉽지는 않구나.

앱으로 가는 것도 예상이 된다. 그것도 쉬운 장벽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안경호가 밝은 안색으로 들어왔다.

“짜잔!”

“안녕하십니까. 멘토 안현태입니다.”

“와아아!”

벌써 결정 났어? 빠르네?

“여러분은 사업 지원에 혜택을 받으셨고 여기 있는 사무실도 제공됩니다. 컴퓨터도 다들 있죠?”

“넵!”

“그럼 사업 수익 모델에 대해서 조금 다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이를테면 비디오게임 형식 같은 느낌이던데…….”

“네. 맞습니다.”

“그걸 좀 손보면 안 됩니까?”

“어떻게요?”

“게임 판매로 하는 것도 좋은데 플레이 안의 수익 모델도 함께 넣었으면 합니다. 난이도 조절을 돈으로 매수하는 거죠.”

“난이도 조절을요?”

“네.”

다들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해 안 가십니까?”

“그게. 말은 이해가 가는데요.”

“아! 제가 말 안 한 게 있네요. 이 게임 완성하고 나서 에스텀 게임즈에 출시해 보는 건 어떻게 습니까.”

“어?”

에스텀 게임즈.

PC 게임의 플랫폼이자 많은 사람이 게임을 구매해서 매출이 상당한 곳이다.

앱 게임을 내려받을 곳에 구글플레이가 있다면 PC 게임에는 에스텀 게임즈가 있다.

“중소 규모 회사 등용문인 에스텀 게임즈가 있단 건 아시죠?”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 프로젝트중에 스타테스터 시스템이 있습니다.”

스타테스터.

유저들이 플레이를 해보고 별점을 준다.

감평도 들어가고 인기가 생기면 정식 출시와 프로모션을 빵빵하게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다.

안현태는 거길 노리자고 하고 있다.

안경호가 말했다.

“확실히 그러면 해외 진출은 별로 어렵지 않겠네요. 자막만 지원 가능하면 되니까요.”

“그렇죠. 아마 생각은 해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으음. 그렇죠.”

“문제는 할인할 때 정말 많이 산다는 거죠. 그것만으로 매출을 끌어올릴 수는 없습니다. 만약 정식으로 출시된다면 난이도를 낮출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겠죠.”

“하긴. 다들 컨트롤 실력은 제각각일 테니까요. 거기에 대한 유료 결제를 더 넣는다고 말씀이시죠?”

안현태가 웃었다.

“역시 예리하시네요.”

굳이 현금으로 장비를 업그레이드하지 않는 유저들도 깰 수 있고, 컨트롤이 안 좋은 유저들은 장비를 업그레이드해서 깰 수 있게 만든다.

확실히 이러면 밸런스를 잘 갖춰야 했다.

“그 밸런스를 제가 잡아주려고 합니다. 그런 수치적 밸런스의 적당함은 잘 알거든요.”

시작부터 안현태의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진다.

멘토로서도 훌륭할 것 같았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영어, 중국어 그리고…. 일본어도 되어 있으면 좋겠는데. 시혁 씨.”

“네?”

“가능하시겠습니까?”

“으음. 영어, 중국어, 독일어, 베트남어도 가능한데 일본어는 잘 모르겠네요.”

“아, 그렇습니까. 괜찮습니다. 어차피 일본어 번역이야 쉽게 될 거니까.”

“아, 제가 한번 해보기는 할게요. 아는 것도 있으니.”

“으음. 일단 맡겨 보겠습니다.”

안경호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시혁이는 일본어도 잘할 겁니다.”

나는 어이없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게 뭐 쉽나. 고등학교 때 잠깐 일본어도 조금 배운 기억밖에 없긴 하다.

“뭐. 해봐야지.”

일단 한국어, 영어로 기본적으로 번역해 두었으니 일본어로 변환하여 그거에 비교하면서 조금 아날로그식으로 어떻게든 하면 될 것 같다.

안경호가 물었다.

“그런데 일본어로 번역하는 이유가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2014년 말부터 에스텀 게임즈에 일본산 게임이 출시되고 있죠. 2015년도부터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하.”

“일본에 역수출도 가능하고 일본 게이머들도 굉장히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번역을 내는 게 맞죠. 이 수입도 포기 못 합니다.”

“와아. 그렇네.”

나도 그 말에 공감이 되었다.

앱 게임 같은 경우도 일본어로 수출을 많이 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게임 플레이를 봤을 때 번역이 더 중요해진다.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먹는 거지. 

뭔가 이 부분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겨 찾아보고 싶다.

주머니에 있는 폰을 꺼냈다.

“그럼 일단 저도 그렇게 준비를…. 앗!”

따끔.

다들 무슨 일이냐는 듯이 쳐다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나는 건 일어의 세상.

단어들이 부웅 떠오르며 여기저기 붙어져 있다가 희미하게 사라졌다.

「아, 어지러워.」

눈가를 살짝 누르며.

「아무튼, 합격한 거 축하하고. 제대로 한번 게임 개발해 보자… 어?」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입으로 나오는 건 일본어였으니까.

이제 익숙한 감각에 나는 하핫 웃음을 뱉었다.

안경호가 그런 나를 보며 말한다.

“뭐야? 일본어 아니야?”

박경준이 말을 받았다.

“그거네! 그런 사람 있잖아. 사실 조금 할 줄 안다면서 겁나 잘하는 사람.”

신경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넌 그만 좀 겸손해. 할 줄 아는 게 뭐 대수라고. 실제로 잘하지? 그치?”

안현태가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아직도 깜짝 놀랄 게 남았습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입을 꾸욱 다물었다.

침묵을 긍정이라고 생각했는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다들 짓는다.

아,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입 열면 일본어만 튀어나온다고.

진짜 억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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