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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화 (261/500)

261화

시하팀의 숙제는 연주팀과 같이 노래 만들기로 정해졌다.

같은 걸 해야 대결이 성사된다고 종수가 주장했으니까.

원하는 대로 된 건 좋지만 문제가 있었다.

재휘를 제외한, 음악성이 뛰어난 셋이 붙어 있다는 것.

승부는 아주 불리해 보였다.

“할 수 이써.”

시하는 주먹을 꼭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승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나 아빠에게 재밌는 노래를 많이 들어서 자신 있어.”

“오오오!”

종수가 승준을 믿음직하게 보았다.

가만히 지켜보던 윤동이 춤을 출 거라는 말에 조금은 희망이 생겨났다.

선생님은 꽤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특이한 조합이니까.

의외성의 오승준, 묵묵한 댄서인 윤동, 똑똑한 리더인 종수, 귀여운 이시하.

응? 아니지. 창의력의 이시하.

미술 쪽에 특화되어 있으니 엄청난 역할을 할지도 몰랐다.

종수가 말했다.

“그럼 노래 제목은…….”

“사커!”

“야. 뭔 사커야. 딴 거 해. 딴 거.”

다시 노래 소재로 부딪치는 팀.

무난하게 흘러가는 다른 팀이랑 비교가 될 정도지만 에너지만큼은 흘러넘치고 있다.

“시하. 떡국!”

“넌 떡국 좀 그만 찾아. 아, 힘들어!”

원래 팀플에서는 팀장이 제일 힘든 법이다.

팀을 주도하려면 팀원을 화합하게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다하게 해야 하며, 조율을 잘해야 했다.

승준이 또 엉뚱한 제안을 했다.

“그럼 바퀴벌레 할래?”

“으악!”

“바퀴벌레가 끈질기고 오래 살아남는데. 우리도 오래 살아남는다는 거지.”

“으응?”

의외로 그럴듯한 제안에 종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문제가 있다면 소재가 조금 그렇다는 것.

윤동이 손을 들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엑!”

“시하 떡꾹!”

“넌 대체 떡국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종수 생각에는 차라리 떡국 소재가 더 괜찮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대로 가면 이상한 소재로 노래가 탄생할 것 같았다.

“그럼 떡국으로 하자. 내가 멜로디를 만들게. 가사는 승준이 하고…. 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당연하지!”

“윤동은 춤추고.”

“어.”

“시하는.”

“아?”

“그냥 열심히 불러줘.”

“아아!”

그렇게 마음대로 노래 만들기가 시작됐다.

시간이 흘러 다 완성됐는지 검사를 맡았다.

바로 선생님에게.

오늘은 교수 역할이다.

“허허허. 자, 여러분. 과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부터 할까요?”

“하나!”

“그럼 연주팀부터.”

연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는 예쁜 옷을 만들고 노래도 만들었어요. 제가 바이올린을 켜고 하나와 은우가 노래를 해요.”

“기대되는구먼. 허허허.”

“들려드릴게요.”

연주가 바이올린을 켰다.

하나가 먼저 노래를 부른다.

“반짝반짝 작은 눈! (사람) 아름답게 내려와! 동쪽 집도 눈사람. 서쪽 집도 눈사람.”

재휘가 (사람) 부분의 코러스를 넣었다.

선생님은 어디서 많이 듣던 멜로디라고 생각했다.

설마 상업코드라고 그냥 가져온 건 아니지?

“너도나도 눈 모아. 열심히이 만들어.”

굉장히 뻔뻔했지만 어차피 노래를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는 은우가 나왔다.

[반짝반짝 작은 눈! 사람. 이지만. 세상은 크게 봐.]

눈사람과 작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연결.

눈은 작지만, 세상은 크게 본다는 말.

선생님은 가사에 눈을 껌뻑 떴다.

[서쪽 동쪽 하. 늘. 보던 작은 눈. 사람이야. 눈, 눈 사랑이야.]

은우가 두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키며.

[반짝이는 건 같아. 나는 꿀리지 않아. Ha!]

다시 하나가 노래를 부른다.

“반짝반짝 작은 눈! (사람) 아름답게 비치네!”

다 같이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은 손뼉을 쳤다.

은우가 한 랩 때문에 전체적인 가사가 조금 색다르게 들렸다.

예전부터 천재적인 느낌이 많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놀라운 랩 실력과 발상이었다.

사실 이 어린이집은 천재들만 있는 거 아닐까?

선생님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샘~”

“어? 시하야.”

“시하 할래.”

“그래. 시하팀 차례지?”

“아아.”

시하가 노래를 불렀다.

“떡떡 떡을 썰어서. 물물. 물을 너어써.”

여기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였다.

“하룻밤. 서이밤. 푹푹푹. 끌여요. 끌여요. 끌여요.”

떡국을 그렇게 끓이다가는 떡이 아주 흐물흐물해지지 않을까?

“싹이 나써여!”

선생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지어 싹이 났다고?

“싹싹 싹이 나써여. 통통 통통 썰어여. 대파야. 대파야. 통통통. 끌여요. 끌여요. 끌어요.”

싹은 아무래도 대파가 되었나 보다.

“떡꾹 대써여~”

드디어 떡국이 되었다.

누가 지었는지 뻔하면서도 이상한 가사였다.

하지만 나름 재밌기도 했다.

옆에 있던 윤동은 무표정으로 아주 일차원적인 춤을 추었다.

떡 썰고, 싹 나고, 파 송송 썰고.

이 노래에 어울리는 춤이 없긴 하지.

두 팀이 아주 열심히 만들었다는 건 알겠다.

“흠흠흠. 다들 엄청나구나. 점수를 줘야겠는데.”

두 팀이 눈을 반짝였다.

“둘 다 A+란다. ‘참 잘했어요!’를 주마.”

연주가 말했다.

“누가 이겨써요?”

“허허허. 대학교는 누가 이기고 말고가 아니라 교수가 점수를 주는 거예요.”

실제로 모두 A+를 받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그 사실까지는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구나.”

아이들이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가 손을 내밀었다.

“샘 참 잘해써여~”

“응?”

“도장!”

시하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나도! 나도!’를 외쳤다.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도장을 들고 왔다.

근데 얘들아. 대학교에서 도장 찍어주는 교수님은 없어.

아무리 대학교 놀이를 해도 애들은 애들이었다.

***

GCP 신청자들을 강당 한곳에 모았다.

관계자들도 많았고 참여하는 팀과 개인도 매우 많았다.

대부분 여기에 지원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그럴 수 없었다.

취업 경쟁에 뛰어드는 것처럼 지원 경쟁이 쟁쟁했으니까.

관계자가 나와서 말한다.

“많은 분이 신청해 주신 거로 압니다. 자격 조건이 안 되는 분들만 서류에서 다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 역시도 모든 분을 지원해 줄 수 없습니다.”

PPT를 띄웠다.

“프로그램 최종 면접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얻어가는 게 없지 않을 겁니다.”

[게임 계획과 발표]

“각자 팀들이 있고 원하는 게임을 만들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 멘토들을 설득할 계획서를 만들어 주십시오. 합격하시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고 불합격한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을 멘토들이 이야기해줄 겁니다.”

나는 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향성, 기본. 그걸 보는 것이다. 기본도 되지 않고 이곳에 있으려고 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그걸 말하는 거다.

창업이 쉬운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뭣도 모르는 초보지만 기초적인 부분은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그런 의미로 저 기획서를 PPT로 만들어 현직 개발자들에게 조언을 얻는 것도 굉장히 뜻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도움이 되겠지.

멘토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혁 씨.”

“네.”

나는 옆을 보았다.

NM 회사에 팀장 직급을 가진 안현태가 있었다.

“시혁 씨가 NM 회사 소속으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계약직이기는 해도.”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PPT 평가하는 곳에 같이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제가요?”

“네. 아무래도 통번역사 시점에서 뭔가 조언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사실 전…….”

“저도 알고 있는데 저쪽에서는 모르지 않습니까.”

“으음. 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할게요.”

“감사합니다.”

“근데 팀장님도 팀장이 처음 아니에요?”

“뭐, 이번에는 멘토로 왔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보니까 다들 팀장급이네요. 하하하. 명함이라도 달아서 다행입니다.”

“아마도 일부러 달고 보낸 거 같은데요.”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군인이 특별 파견으로 나가는데 계급이 너무 낮으면 좀 그러니 한 단계 진급시켜 주는 거.

그런 느낌이다.

안현태가 물었다.

“게임 개발에는 참여하신 적이 있습니까?”

“네. 동아리지만요.”

“동아리 수준이면 으음.”

“왜요? 도움이 안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언할 정도인지는 제가 파악이 안 되네요.”

“그럼 이야기 좀 나눠볼까요?”

나는 게임이 말하는 ‘이야기’의 원리에 대해서 말했다.

기획 쪽인 이야기도 다수 섞여 있었지만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하려면 필수적이었다.

안현태는 그런 내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저보다 더 잘 아는 느낌인데요?”

“푸흡.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확실히 맥을 정확히 짚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통번역보다 시나리오 작가인데요?”

“뭐, 사실 그쪽으로 지원하기는 했으니까요.”

“오히려 저런 조언을 해 주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괜찮나요?”

“무척요.”

그 말에 좀 안심이 되었다.

***

-기획 발표 당일.

이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인 것 같다.

팀장급 현장 직원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거니까.

누구나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좋았다.

“발표하겠습니다.”

PPT가 시작되자 팀장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발표를 멈추었다.

“잠시만요. 그래서 조금 개발해둔 게 있습니까. 간단한 거라도요.”

“아니요. 계획입니다.”

“이런 걸 만들 거라는 예정이라는 말씀이시죠? 시작도 안 했다는.”

“…예.”

발표자가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간단히 뭐라도 보여줬으면 좋았겠네요.”

슥슥.

다들 뭔가를 프린트에 쓰기 시작한다.

발표자가 식은땀을 흘리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뭔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느낌?

너무 긴장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흥미롭네요. 발표 잘 들었습니다. 괜찮다면 우리 찌뿌둥한 몸을 좀 풀어볼까요? 팀장님들도요. 자, 다들 손 머리 위로!”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날 따라 기지개를 켰다.

왼쪽, 오른쪽.

이게 뭐 하는 거지? 하면서 헛웃음을 삼키기도 했다.

분위기가 일변하고 발표자 역시도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너무 딱딱하게 그러지 맙시다. 다들 처음 아닙니까. 청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가끔 보자고요. 어차피 냉정한 사회인 걸 이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른다고 더 냉정하다고 다그치지 말아 주세요.

다들 압니다. 바보도 아니고 요새 애들은 똑똑하니까요.

물론 내 행동에 여기가 장난이냐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거참. 너무하네.

“진정됐어요?”

“네? 네!”

“발표하면서 봤는데 스토리에 지나치게 신경 썼네요.”

“아, 네! 이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서요.”

“저도 시나리오에 참가해 봤는데 별로 안 중요해요.”

“네?”

“앱 게임이죠? 그런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면 바로 고꾸라질 거예요. 게임을 해 봤으니 알 텐데 스토리를 읽기보다는 보상이 뭔지, 얼마나 스킵 가능한지, 어떻게 더 강해질지. 그런 걸 먼저 생각하게 되죠.”

앞의 발표자가 뭔가를 알아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전 여기 NM회사 통역사로 왔습니다. 앞에 보이시죠?”

내 앞에 붙여진 글자를 툭툭 건드렸다.

“네!”

“실제 번역이 많으면 견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매출에 크게 영향을 준다고 하면 글쎄요? 최대한 적게 쓰는 게 좋죠. 그리고 중복된 단어가 많으면 돈이 더 적게 듭니다. 중복된 건 견적에서 빼주거든요.”

“정말이니까?”

“업체마다 다른 데 보통은 그래요. 이거 지원받고 하나만 만들 거 아니잖아요. 떨어져도 개인적으로 만들 거고. 최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여야죠. 특히 이런 번역이 필요한 스토리 부분은요.”

앞서 못마땅해하던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설마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다.

조금은 인정한다는 듯이 팔짱을 풀며 흥미로워한다.

딱히 저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옆에 있는 안현태만 알아주면 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같이 활동을 할 거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스토리텔링은 게임 플레이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

“…게임 플레이…….”

나는 여기까지라는 듯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뉘었다.

PPT 발표는 끝나지 않았지만 더는 들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조언을 건넸다.

아무래도 이 팀은 떨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몇 팀을 거치면서 피곤이 쌓여 마른 목을 축일 때쯤.

“안녕하십니까! 경트리오입니다!”

“푸흡! 컥. 콜록. 콜록.”

게임 개발 동아리 삼인방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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