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며칠 전. 미국.
경 트리오 멤버들은 시간 끌어모아 게임 개발에 모든 것을 쏟았다.
시간을 쓰면 쓸수록 완성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동아리 멤버들도 간단한 건 도와주었기에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또 미리 몇몇 초창기에 프로그래밍한 것도 있었기에 시간은 더더욱 단축되었다.
그리고 원하던 미국 게임사. PEF 게임즈.
거기에 면접을 보러 갔다.
서류는 의외로 손쉽게 통과했지만, 면접으로 온 사람들은 굉장히 쟁쟁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셋이서 이걸 만들었다고요?」
면접관이 턱을 쓰다듬으며 셋을 바라보았다.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은 마치 누군가를 꿰뚫을 듯했다.
안경호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시나리오는 다른 친구의 힘을 빌렸습니다.」
「그렇군요. 굉장히 좋은 실력입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이걸 이어서 만들 생각입니까?」
「네! 되도록 이 뒤의 서비스를 이어가고 싶네요.」
면접관이 그 대답에 옆의 개발자와 상의를 했다.
「재밌네요. 한 명은 원화까지 그리고 한 명은 서버 쪽을 맡았고. 하지만 저희 쪽에서 원하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세 분 다 매우 훌륭하지만요.」
「이 게임은 출시 못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건가요?」
「저희 쪽으로 넘기면 할 수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아, 말이 오해가 있었네요. 게임을 꿀꺽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셋 중 한 명만 여기 입사하는 게 어떻겠냐는 뜻이지요.」
안경호가 두 사람을 봤다.
굳게 입을 다물고 앞을 바라본다.
「안경호 씨. 당신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게임 쪽은 저희랑 계약하면 더 좋고요.」
신경환과 박경준은 예상했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안경호를 바라보는 눈에는 원망은 없다.
다만 그렇게 하라는 듯이 압박만 있을 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저는…….」
안경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다.
「거절하겠습니다.」
「그건 참 안타깝네요. 정말 바라던 인재인데. 보기 드물게 굉장히 프로그래밍 실력이 깔끔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이 친구들과 셋이서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제안은 받을 수 없네요.」
「낭만. 의리. 우정. 굉장히 멋진 말이죠. 어릴 때 지킬 수 있는.」
면접관이 살며시 조소한다.
마치 아직 어리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듯이.
「기회는 언제든지 있으니 또 지원해 주시죠.」
면접관이 등을 돌리려다가 멈춘다.
「아. 꼭 지금 함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고요한 호수 속에 돌 하나를 던지며 그는 떠났다.
안경호의 눈은 확고한 고집이 있었지만 두 친구의 눈동자는 살며시 파문이 인다.
***
나는 세 사람의 말을 듣고 놀랐다.
설마 벌써 완성이 되었을 줄은 몰랐고, 면접을 봤을 줄은 몰랐다.
또 안경호의 결단에 대해서는 조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네.”
“하하하. 뭘.”
신경환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미친놈아. 좋아할 때야? 야, 솔직히 지금 같이 안 있어도 되는 거 맞잖아. 나중에 우리 경력 쌓고 다시 모이면 되는 거고. 뭐가 문제야.”
“지금 아니면 함께 못 해. 나중에? 나중에 우리가 만나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못 만날 것 같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잖아. 경험 더 쌓고 모여서 개발하고.”
“아니야. 절대 못 해.”
박경준도 한마디 보탰다.
“절대까지라고 할 이유가 있나? 그냥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우리만 생각할 수 없잖아. 누군가는 결혼하고 애를 가지고 어딘가에 집을 구해 자리를 잡고. 그러면 대체 언제 우리가 모여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세 사람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이 좋은 기회를 안경호가 놓친 게 답답하고 안타까운 두 친구.
하지만 안경호는 친구들과 이때밖에 할 수 없을 거라고 직감하고 있다.
쉽게 미래를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럼 이건 어때?”
세 사람이 나를 휙 돌아보았다.
“우리 이제 4학년이잖아. 취업하려면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어.”
신경환이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물론 그 게임사가 좋은 기회인 건 인정해. 사실 잘 모르지만 유명한 곳이니까 가려고 했겠지. 인텔이나 구글에 가서 경험 쌓는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
“그러니까 내가 답답한 거 아니야.”
“하지만 지금 꼭 거기에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아직 시간 많아. 많다고 퍼질러지면 안 되지만.”
“으음.”
내 말에 다들 생각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뭘 준비할지 알 수 없는 거겠지.
“거기 가서도 게임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계약한다고 해서 출시될지는 알 수 없는 거고.”
“그렇지.”
“그래도 나름 신사적이라고 생각해. 그냥 게임 계약만 덜렁해서 프로그래머 세 명만 쏙 빼먹을 수도 있는 거니까.”
“어? 그렇네?”
“그치? 요즘 그런 거로도 신입 개발자들은 등쳐먹는 기업이 존재하거든.”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면접관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조금 싹수없긴 했지만 등쳐먹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 이거 제대로 개발해서 출시까지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
“그럴 시간과 돈이…….”
“있지.”
“으응?”
나는 폰을 꺼내서 세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GCP.
“게임 크리에이터 프로젝트. GCP. 창업에 가깝게 지원해 주는 사업이야. 여기 정부 지원금을 타 먹으면서 출시하자. 너희들도 여기 신청해.”
“!!!”
다들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됐냐는 얼굴이었다.
“푸흡. 상황이 좋게 됐거든. 나 NM 게임사에 계약직으로 취직됐어. 너희가 NM 게임사 팀장님을 멘토로 뽑으면 나도 같이 일한다는 거지. 통번역사로.”
“와. 미쳤다.”
“아, 물론 멘토인 팀장님도 너희들을 마음에 들어야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잖아. 여기 신청하고 또 떨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
“진짜네. 아무나 지원금 주는 게 아니네.”
신경환이 내가 준 자료를 꼼꼼히 읽었다.
“야. 네 폰으로 봐. 내가 파일 보내줄 테니까.”
“어? 어.”
“싸우지 말고 여기 한번 나가봐. 어때? 괜찮지 않아? 혹시 모르지. 지금 개발한 게임 매출이 잘 나올지.”
안경호가 그 말에 어이없는지 헛웃음 뱉으며 말했다.
“에이. 대박 나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대박 난다고 한마디도 안 했는데?”
“매출 잘 나오는 거나 대박 나는 거나.”
“같은 말 아니야. 먹고살 만큼 나온다는 거지.”
“그래도 스토리 담당이 너무하네.”
“넌 첫 타에 너무 거저먹으려고 하네.”
“그래서 요즘 매주 복권을 사고 있어.”
따로 대박 노리는 건 여기 있었네.
좋은 취업 기회는 뻥 하고 차버렸으면 인생 한 방을 노리고 있는 안경호였다.
뭐, 로또 1등 되도 인생 한 방은 되지는 않겠지만 꽤 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안경호가 나를 보았다.
“아무튼, 고맙다. 나중에 잘되면 꼭 NM 회사랑 일하자.”
“어. 꼭 같이 일했으면 싶네. 그래야 내가 번역할 때 편하거든. 푸하하!”
옆에서 듣고 있던 박경준이 말했다.
“날로 먹으려고 하네.”
이걸 재주는 곰이 부리고…. 아니지. 나도 여기에 일 엄청나게 했으니 곰이지.
“야. 날로 먹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세계관을 내가 짰기 때문에 번역하기 편한 것도 있긴 했다.
뭐, 날로 먹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진짜 날로 먹는 건 아니라는 말씀.
“근데 너희들 서로 사과해야 하지 않냐. 서로 악수하고 미안하다고 해. 세 명이 얼싸안고 토닥이기도 하고.”
물론 서로를 생각해서 화낸 거니 그냥 단순히 싸웠다고 말하기에는 뭐 한 구석이 있다.
“아무리 우리가 친해도 포옹 같은 건 안 한다.”
“이건 아니다. 진짜. 시혁이 네가 더 사과해야 해.”
“어린애도 아니고…. 우릴 시하로 보네.”
어, 그래? 그건 내가 미안하다.
***
-어린이집.
새로운 친구가 왔으니 선생님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그룹이 생겨버렸다.
연주는 시하 그룹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같은 여자인 하나가 있었으니까.
이로써 4 대 4로 짝지어진 알맞은 상황이 나와야 하지만 초창기는 그게 쉽지 않다.
시하 그룹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 존재했으니까.
바로 재휘였다.
“연주야. 너 오늘 뭐 하고 놀 거야?”
“나? 으음.”
연주가 새침한 표정으로 고민을 했다.
재휘는 그 모습도 예뻐 보였는지 얼굴이 살며시 붉어져 있었다.
종수가 말했다.
“재휘야. 거기서 뭐 해?”
“으응? 나 연주랑 뭐 하고 놀지 이야기 중이었어.”
“뭐?!”
종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충격이 시하에게 졌을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았다.
연주는 이런 구도를 몰라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나야. 뭐 할까?”
“대학생 놀이 할까?”
“어? 대학생 놀이?”
연주가 신기한지 눈을 말똥말똥 떴다.
설마 소꿉놀이도 아니고 대학생 놀이를 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시하 역시 귀를 쫑긋 세우며 하나에게 다가갔다.
“시하 형아 해.”
“그래. 시하 시혀기 오빠 해.”
“아아.”
미리 역할 선점에 아주 적극적이다.
연주는 시하의 형아를 알고 있어서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수혀니 언니 할 거야. 노래도 잘 부르는 학생이야.”
“와. 그럼 나는 바이올린 잘 켜는 음대생 할래.”
승준이 말했다.
“아, 그럼 나는 국가대표 사커 선수.”
“오빠. 대학생이 국가대표가 어디써. 바보야? 바보 오승준.”
“야! 있을 수도 있잖아. 대학교 다니는 국가대표.”
“사커하느라 대학교 안 가거든.”
“그런가? 체육학과로.”
“알게써.”
재휘는 우물쭈물하더니 패션디자인학과를 선택했다.
종수가 덩그러니 남아서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저기에 끼어 달라고 하기에는 뭔가 지는 느낌이다.
시하가 그런 종수를 보았다.
“종수.”
“왜?”
“종수는 모야?”
“으응?”
“종수 떡떡해. 떡떡학가해.”
졸지에 종수를 떡 만드는 학과로 보내버렸다. 있지도 않은 학과.
이게 무슨 말인지 고민하다가.
“야. 이시하. 똑똑해겠지.”
“아아. 떡떡.”
“아니. 떡떡학과 뭐냐고.”
“떡떡학가.”
종수는 자연스럽게 시하에게 말려서 참가하게 되었다.
윤동과 은우도 애들이랑 같이 껴서 음악과로 편입했다.
어쩌다 보니 음악과 4명이 결정되었다.
하나, 연주, 윤동, 은우.
그룹이 또 한 번 나눠진 것이다.
나머지는 각자 과가 정해져 있었다.
하나가 말했다.
“대학생은 팀플한대써. 같이 숙제한대.”
“와아. 어떤 숙제를 해?”
“우웅. 그건 모르는데 우리는 음악 하니까 같이 음악 만들면 되지 않을까?”
연주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손뼉을 쳤다.
재휘도 끼고 싶어서 슬쩍 왔다.
“그럼 나는 음악 발표할 때 도움 되는 옷을 만들게. 그런 역할이야. 음.”
“어? 그럴래?”
종수가 부들부들 주먹을 쥐었다.
재휘가 저쪽으로 붙어버려서 뭘 어쩔 수 없었다.
승준은 재밌겠다는 듯이 말했다.
“대결하자. 대결.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숙제 대결?”
“응.”
윤동은 슬쩍 빠지더니 시하 쪽으로 왔다.
“아?”
“저기 사람 많아서.”
“아아.”
은우는 윤동이 가도 아무렇지 않은지 노래 만들 생각이 푹 빠져 있었다.
승준이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우리는 숙제 뭐 하지?”
넷이서 다른 학과라 공통점이 없었다.
종수가 나섰다.
“그럼 우리는 공부하는 거로 할래? 나 한글 쓸 줄 알아.”
“아, 재미없어.”
“야! 오승준!”
“왜!”
누가 여기에 리더인지 정해지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고스란히 발생했다.
윤동은 딱히 스스로 나설 생각은 없었고, 종수는 자기가 주도하고 싶어 했으며, 시하는 형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가를 주먹으로 가리며 생각에 잠긴다.
뭔가 멋진 척을 해보는 것이다.
형아는 멋있으니까.
“오오. 시하 고민한다.”
“진짜네. 이시하. 뭐 좋은 생각 있어?”
“시하가 저렇게 고민하는 거 처음 보네. 좋은 생각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승준, 종수, 윤동이 시하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오는 건 없다.
시하는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까.
“아아!”
시하가 뭔가 생각난 척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세 아이는 뭔가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시하 떡국 먹고 시퍼.”
형아가 전에 해준 떡국이 생각난 시하였다.
“하하하. 사커하자. 사커.”
“에라이. 내가 진짜 떡떡학과인 줄 알아. 떡국 만들게. 차라리 한글 쓰는 거로 해. 한글.”
“역시 전에 춤췄던 것처럼 춤이 낫지 않나?”
시작부터 파투나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