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9화 (259/500)

259화

NM 게임회사.

새해가 오면서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몇몇이 승진되고, 다들 연봉도 조금씩 올랐다.

작년 NM 게임회사의 매출 상승 폭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팀장으로 올리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흐음. 팀장을 만들었으면 팀을 꾸려줘야 하는데 골치 아프네.”

인사팀장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끙끙 앓았다.

실제 게임업체에서 팀장급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굉장히 이직이 잘된다.

왜냐면 값싸고 노동력이 제일 좋은 구간이기에.

하지만 팀장급으로 올라오는 순간 힘들어지는데 바로 이 같은 이유였다.

개발자들은 언제나 모자라고 그렇다고 누구 밑으로 보낼 수 없는 거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게임 개발하는 회사니 자유롭게 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직함도 보통 회사와 다른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쌓은 경력을 무시하며 팀장 밑에 팀장을 넣는 무식한 인사는 부리지 않는다.

아무리 자유로운 체계라고 해도 수직적인 구조로 되어 있기에.

“팀 하나 짜주시죠.”

“야! 사람이 있어야 짜주지. 넉넉지 못하다고.”

개발팀, 서버팀.

만들려면 두 개의 팀을 만들어야 하고 그 인원은 최소 10명이다.

프로그래머들은 언제나 모자라다.

“어디 좋은 아이디어 없나? 프로그래머들도 채워줄 수 있고 팀장급도 안 놀리고 잘 해결해줄 방법.”

“그런 편한 방법이 어딨습니까. 매년 이러시네.”

“야, 임마! 나가!”

“저도 여기 제자리 있습니다. 너무하시네.”

“알바라도 뛰어.”

“아, 투잡 못하는 거 아시면서.”

인사팀장은 볼을 씰룩였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얼굴을 했다.

“그래. 투잡을 하면 되지.”

“예? 팀장님을 투잡으로 시킨다고요?”

“아니. 잠시만.”

인사팀장이 달칵달칵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였다.

메일을 열어보니 정부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가 보였다.

[게임크리에이터 프로젝트]

소수로 개발자를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

NM에서도 참가할 수 있냐고 보내왔다.

강요는 아니고 권유였기에 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여기네. GCP.”

“어? 설마?”

“그래. 여기에 멘토로 보내면 되겠어. 정부에 기업이 참여했다는 티도 내고, 잘하면 소수 개발자가 우리 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거고.”

“근데 여긴 게임 만들어서 출시에 번역까지 지원해 주는 거 아니에요?”

“얌마. 게임 한 개 만들고 끝이게? 여기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을걸? 팀장 스스로 개발진 꾸려서 회사로 들어오는 거지.”

“헐?”

직원이 인사팀장을 대단하게 보았다.

역시 머리가 잘 굴러간다.

“아, 근데 통번역가는 외주로 맡길 겁니까?”

“그쪽 팀에게 여기로 한 명 보내라고 하면 분명 찾아와서 따지겠지?”

“엄청요.”

안 그래도 새로운 통번역자들을 뽑아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야구로 파견 나갈 사람까지 교육하려면 사람이 부족했다.

많이 뽑을 수 없는 게 또 회사 사정 아니겠나.

“아, 그렇다고 NM식이나 되는데 외주 맡기는 것도 소문 돌면 그렇잖아.”

“그렇긴 하네요.”

“쩝. 어디 NM이랑 관련 있으면서 외국어 많이 알고 번역도 수준 있는 사람 없나.”

“아까부터 편리한 것만 찾으시네. 그런 상황에 딱 맞는 사람이 어디서 나타납니까. 아! 있네! NM이랑 관련 있는 통번역가.”

“누구?”

“이시혁 씨.”

“아! 맞네! 내가 왜 잊었지?!”

“요새 바빴으니까요.”

“흐흐흐. 계약직 형태로 보내면 되겠네!”

인사팀장이 전화를 들었다.

저번에 교환한 시혁의 폰 번호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통화음이 몇 번 가고.

「여보세요.」

“오랜만입니다. 시혁 씨.”

「네. 안녕하세요.」

“혹시 말입니다. NM에 들어오실 생각 없습니까?”

「아, 안 산다니까요.」

살짝 찔러봤는데 소용없다.

하긴 그 경력이면 굳이 게임회사에 올 필요가 없긴 하니까.

그래도 너무하네. 우리 기업도 꿀리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계약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단타로 가는 건 좋아하니까 말이다.

***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들어온다면 어린이집에서는 새 친구가 들어온다.

“여러분. 오늘 놀랄 만한 소식이 있어요. 바로 새 친구가 들어오는 날이랍니다!”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년에는 이시하가 특이한 경우로 들어왔다.

재단에서 이시혁, 이시하 형제의 사정을 봐준 덕분이었다.

보통 강인 어린이집은 들어오기 힘들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가 오기도 쉽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끼리 똘똘 뭉치고 소중히 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말 친한 소꿉친구라는 거다.

하나가 말했다.

“선생님. 어디써요?”

“이제 소개해 줄게요. 들어오세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가 들어왔다.

하나의 눈이 빛났다. 하도 남자애들이랑 같이 노는 홍일점이었는데 새로운 동성 친구가 오니까 너무 기뻤다.

“우와. 예뿌다!”

잘 차려입은 아이였다.

“고마워. 너도 예뻐.”

“헤헤헤! 오랜만이야!”

하나가 애를 꼬옥 끌어안았다.

선생님은 둘을 보며 웃었다.

하나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았다.

남자아이들은 눈을 껌뻑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 번 본 적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휘의 표정은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입을 뻐끔뻐끔하며 심장을 부여잡는다.

“연, 연주야…….”

“안녕. 오랜만이지?”

첫사랑 연주가 같은 강인대학교에 다니다니!

재휘는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시하가 연주를 보았다.

“아? 연주!”

“오! 시하야. 안녕.”

새로 왔지만 새롭지 않은 상황이다.

친해지는 건 문제없을 것이다.

“연주 아빠 애국인이야. 애국인.”

“시하야. 외국인이겠지.”

갑자기 연주 아빠를 애국자로 만드는 이시하였다.

발음 조심하자.

선생님이 헛기침했다.

“네. 시하 말대로 외국인인 연주 아버님이 이번에 연극영화과 교수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연주가 여기로 올 수 있게 됐어요.”

“와아아-”

학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미 발령이 예정되어 있어서 연주가 올 수 있었다.

빨리빨리 친구들과 친해지면 더 좋으니까.

“다들 친하게 지내주세요.”

“네!”

완전 새롭지는 않더라도 아이들은 연주를 잘 몰랐으니 주위를 맴돌았다.

하나는 이미 단짝이라도 된 양 팔짱을 끼고 옆에 붙어서 헤헤헤 웃고 있다.

재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말도 못 꺼내고 우물쭈물하고 있었고.

“시하야.”

“아?”

“너 아직도 미술해? 전에 공룡 엄청 잘 만들었잖아.”

“페페사우루수.”

“응. 그거.”

“시하 매일 그림 그려. 재미써.”

“와. 대단하네. 나는 미술하다가 그만뒀어. 내 길은 아닌 거 같아서.”

“왜?”

“미술보다는 음악에 관심 있어.”

하나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하나도. 하나도. 노래 조아해.”

“하나 노래 잘해?”

“응! 하나 노래교실에서 칭찬 마니 받아.”

“와우! 굉장해!”

“헤헤. 연주는 노래 잘해?”

“나? 나는 그냥 하는데. 노래보다 바이올린에 관심이 있어.”

“바이올린?”

“응. 이렇게 켜는 거야.”

연주가 바이올린 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승준이 말했다.

“나 알아. 토끼는 춤추고! 여우는~! 바이올린~!”

갑작스러운 노래에 아이들이 하나같이 소리를 높였다.

“찐짠 찌가찌가 찐짠. 찐짠찐짠 하더라!”

자연스럽게 노래 부르는 흐름이 되어서 연주의 눈이 깜빡거렸다.

뭐지? 이 단결은?

“연주도 노래하자.”

다 같이 [산중호걸]을 부르며 신나게 춤을 췄다.

선생님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이들끼리 어울렸다.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넉살이 좋아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연주야. 바이올린은 어디서 배우니?”

“엄마한테 배워요!”

“와. 그래? 엄마가 바이올린 켤 줄 아셔?”

“네!”

“그렇구나.”

“바이올린 들려줄까요?”

“으응?”

연주가 바이올린 가방을 들고 왔다.

선생님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아이들 앞에서 꺼낼 줄은 몰랐다.

혹시 아이들이 망가뜨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으니.

“와! 연주 연주한다.”

이름을 왜 연주라고 지었을까.

그런 의문이 들면서 연주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올려서 바이올린을 켠다.

gavotte.

딴딴딴딴. 딴딴딴딴. 딴. 딴! 딴.

뭔가 통통 튀는 느낌을 주는지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시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엉덩이를 쭈욱 빼고 들썩들썩한다.

“우와 연주 잘한다.”

“대박!”

다들 바이올린이 신기한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본다.

시하는 듣다가 바이올린 케이스를 보았다.

“아아.”

잡아서 닫아놓은 것을 연주 앞에 펼친다.

“승준. 돈. 돈.”

“응? 아!”

갑자기 시작된 버스킹 현장.

연주는 그런 애들을 모습에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바이올린을 켰다.

어느새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는 부루마불 돈이 수북이 쌓여있다.

“여기까지!”

“와아아-”

연주는 아이들의 반응이 부끄러운지 수줍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바이올린 가방을 보았다.

“와! 바이올린으로 돈 많이 벌었어!”

시하가 그 돈 몇 개를 살짝 집었다.

“이거 시하 꺼.”

“으응?”

“시하가 바이올린 가방 열어써.”

“그래서 몇 개는 시하 니 꺼라고?”

“아아. 형아가 이거 잘해.”

“?”

시하는 시혁에게서 본 걸 따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모습을 보며 이마를 긁적였다.

이런 클래식 연주에 잘도 시하 몫을 챙기는구나. 어디 가서 우리 시하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

“시하야. 그걸 재주는 곰이 부리고…. 크흠.”

원장님이 지켜보고 있었다.

***

일거리가 들어왔다.

NM 회사랑 또 계약하게 되는데 이래도 되나 싶다.

정부에서 온 GCP 문서를 읽어보았다.

앱 게임부터 시작해서 피씨 게임까지.

여러 지원을 하는 거였고 청년 취업보다는 창업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아니, 어쩌면 여기에 참여하는 여러 협력업체를 통해 취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단하네.’

취업난이라고는 하지만 거기에 맞춰서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것 같았다.

의외로 게임의 대기업들도 멘토를 보내는 걸 보니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

나 역시 통번역 업무를 맡았으니 거기에 집중하면 될 것이다.

영어, 중국어, 독일어 등등을 할 수 있으니 크게 메리트가 있다.

게임 같은 경우 수출을 하는 데 번역이 중요하니까.

‘나야. 뭐. 경험이 있으니까.’

이미 영어 같은 경우는 게임 개발 동아리랑 일하면서 해뒀고 혹시 몰라 중국어로 번역까지 해두었다.

다들 감동 어린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난 그랬다.

경험 쌓는다고 열심히 한 느낌? 이미 스토리 부분은 다 써서 남는 시간에 서브 이야기 및 번역 작업을 거쳤다.

이게 이렇게 기회가 되어서 돌아올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근데 번역 지원하는 업체가 좋아 보이는데 상대가 될까?’

번역 업체 역시 참여를 한다.

엄정한 심사를 거치는 만큼 좋은 회사겠지?

정말 엄정한 심사를 거쳤을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NM의 이름을 달고 지원하는데 비교되는 건 당연한 일인 듯싶다.

적어도 이름에 먹칠은 안 되게 열심히 해야겠다.

[게임 개발 동아리]

오랜만에 동아리방 앞에 왔다.

요새 연락을 통 안 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개발은 잘되고 있는지 확인차 들렸다.

문을 두드리려는데 안에서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그걸 왜 거절해! 멍청이야?!”

신경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상당히 화가 나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랑은 톤이 조금 달랐다.

“그럼? 그 제안을 받아들여? 바보야. 내가 어떻게 그래!”

부장인 안경호도 한껏 소리를 높인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러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굳어 있었다.

“하! 당연히 그래야지. 그게 어떤 기회인데 거절을 해.”

“그게 기회라고?”

“기회지 그럼. 지금까지 한 노력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셈이야? 이거, 못 잡아서 안달인 사람도 많아.”

박경준이 말했다.

“둘 다 그만해. 서로 너무 화가 많아.”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경준아. 내가 틀린 말 했어?”

“으음. 사실 좋은 기회이기는 하잖아. 경호야, 우리는 둘째 치더라도.”

안경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라도. 난 아니야. 다 끝난 일 갖고 그만하자.”

“뭐가 끝나? 다시 가서 말해. 취업하겠다고. 생각해 보니 거절은 못 할 것 같다고.”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세 사람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취업이라니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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