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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화 (256/500)

256화

오늘 시하를 데리러 가는데 애들이 뭔가 종을 하나씩 들고 있다.

시하 역시 내 앞에서 딸랑딸랑 흔들며 자랑한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이걸 어디에 달아야 하나 싶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문에 붙일 고리를 하나 사야겠다.

방문에 달면 괜찮겠지?

“근데 시하야. 그거 신발이야?”

“형아. 아라써?”

“응. 딱 보니까 신발인데. 엄청 잘 그렸네.”

신발 끈으로 리본만 묶인 걸 그렸는데 확실히 구분된다.

굳이 그리지 않는 부분을 보니 뭔가 시하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언제나 창의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왜 신발을 그렸어? 혹시 산타할아버지가 신발 줘서?”

산타 할아버지 하면 빨간 옷이고 신발을 선물 받았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저 신발 끈도 레드니까. 연장선에 있는 거지.

“아냐.”

“아니라고?”

“아아. 이거 새해 목포야. 목포.”

“목포가 아니라 목표겠지.”

“아아. 그거.”

“신발 사는 게 목표야?”

“아냐. 신발 꾼 무꺼.”

“오! 혼자 묶는 게 목표구나?”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늘리는 게 목표인가 보다.

“아냐.”

“응?”

“시하가 형아 신발 무꺼져.”

“!!!”

설마 목표가 내 신발 묶어주는 거였어?!

엄청나게 감동인데?

이런 말을 들을 줄 정말 몰랐다.

아무래도 전에 내가 신발을 묶어준 걸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걸 보고 자기도 내 신발을 묶어주고 싶었나 보다.

“이거 문에 예쁘게 달자. 알았지?”

“아아.”

그때 승준과 하나가 튀어나왔다.

“시혁이 형아! 나도 종 만들었는데!”

“오! 라보나킥 하는 거네?”

“역시 시혁이 형아는 알아보네!”

“시혀기 오빠. 하나도. 하나도!”

“하나는 노래하는 거야?”

“응! 카페에서 알바해.”

“와. 대단하다. 돈도 벌겠네?”

“응! 이걸로 하나 노래 교실에 낼 거야.”

엄청 장한 이야기잖아?

하나가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컸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셋이서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하고 말한다.

한꺼번에 말하니까 누구의 말도 들려오지 않는다.

뭔가 에밀레종 이야기도 나온 거 같았는데?

쨍그랑 제야제야도 나오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말하고 있다.

“어머.”

승준 엄마가 도착했다. 살았다.

***

집.

오늘 종을 달기 위해 문걸이를 샀다. 아주 조그만 거. 그냥 스티커 딱 때서 붙이는 용도.

“시하야. 여기에 달까?”

나는 방문 앞에서 위치를 잡았다.

위쪽으로 붙여서 종이컵이 2/3 지점에 오도록.

“아냐.”

“응? 좀 더 올릴까?”

“아냐. 요기.”

시하가 자신의 눈높이를 콕 가리켰다.

아무래도 미관상 위에 다는 것보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게 중요한가 보다.

어쩔 수 없지. 누구 말인데 거부하겠어.

종이컵이 시하의 눈앞에 대롱대롱 달려있다.

시하가 툭툭 치면 딸랑딸랑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만족하나 보다.

보기는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이것 역시 꽤 재밌는 것 같다.

시하가 크면 클수록 종을 아래로 내려다보게 될 테니까.

“마음에 들어?”

“아냐. 시하 여기 하고 시퍼써.”

“응?”

시하가 제일 아래쪽을 톡톡 두드린다.

“거기?”

“아아. 신발이야. 신발.”

아, 신발은 바닥에 있어야지.

그렇다고 이게 진짜 신발은 아니잖아?

“열 때 불펀해. 그래서 요기 해써.”

“그렇구나. 그런데 불펀이 아니라 불편이야.”

나름 너도 절충안으로 정한 거라 이거지?

천장과 바닥인 의견이 나왔으니 그 가운데로 하자는 게 이 종의 결말이었다.

중간값인가.

“시하야. 내일 되면 한 살 먹겠네? 그럼 시하한테 어른들이 몇 살인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해요?”

“시하 아라. 네 살!”

“그래. 오늘까지 세 살이지.”

“아아. 서이 살.”

세 살은 대체 왜 서이 살인데? 너이는 포기해도 서이는 포기 못 하는 건가?

하여간 알 수 없는 시하의 마음이었다.

똑똑똑.

“응?”

띵-동-

똑똑똑.

“모야모야?”

“글쎄. 뭐지? 동환인가?”

“백동 형아야?”

시하가 문 앞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이런 시각에 문 두드리는 건 역시 백동환뿐이지.

“그렇습니다. 바로 접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있네요.”

“응? 다른 사람?”

“문 앞에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길래 뭐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아니! 언제 서성거렸다고 그래요! 웃겨 정말.”

“개굴 누나!”

서수현이 웬일인지 모르겠다.

백동환만 있으면 장난을 쳤겠지만 서수현이 있으니 그냥 열어줘야겠다.

라고 생각했으나 그냥 열어주면 좀 심심하잖아.

“암호를 대시오.”

“아니 형님! 다른 사람도 있는데 이 게임을 또 하는 겁니까.”

“백동 형아. 암호!”

“그래. 암호가 뭘까. 메리 크리스마스?”

“지나써. 힌투야. 힌투.”

“오! 오늘은 힌트도 줘?”

“아아.”

“제야씨 종소리 모야?”

“제야 씨가 누구지?”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제야의 종소리겠지. 제야 씨는 어떤 분이니?

옆에서 서수현이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제야의 종소리 아니에요?”

“아아! 그건 쨍그랑. 제야제야제야. 라고 해.”

백동환은 오승준과 같은 수준이었다.

서수현이 밖에서 한숨을 쉬는데 여기까지 한심하다는 표정이 느껴질 정도다.

사실 너도 만만치 않잖아?

“수혀니 누나 암호.”

“제야의 종소리는 말이지.”

“아아.”

“대앵. 대앵. 이야.”

“아냐. 딴 거.”

시하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오로지 시하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백동환은 합격이었나 보다.

“으응? 딴 거?”

“아아.”

“으음.”

고심하는 흔적이 문밖에서 느껴진다.

이 암호가 이렇게 고민할 정도인가.

서수현이 떠듬떠듬하게 조금씩 뭔가를 말했다.

정확히는 노래였다.

“제야~ 스치는 바람에~”

“아?”

“제야~ 그대 모습 보이면~”

그거 노래 J에게 아니야?

그 와중에 목소리가 정말 좋다.

시하도 만족스러웠는지 물개 박수를 친다.

나는 이쯤에서 문을 열었다.

곧바로 보이는 서수현의 붉어진 얼굴.

아무래도 밖이 쌀쌀해서 얼굴이 저런 거겠지?

“제야에게 잘 들었어.”

“하지 마요.”

“제야~ 암호를 말해줘!”

“하지 말라고요!”

“제야~ 꿈이라 말해줘~”

“이 오빠가 진짜! 건수 잡았다 이거지?”

“그래도 쨍그랑 제야제야보다는 낫던데?”

옆에 있던 백동환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형님. 이건 그래도 국민 종소리입니다. 제가 낫죠.”

그게 언제부터 국민 종소리가 된 거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 뻘하게 웃기네.

“그런데 둘이 어쩐 일이야?”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먼저 이야기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교통정리가 되었는지 서수현이 먼저 말했다.

“새해 보러 가실래요?”

“응?”

“과 애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오빠랑 시하도 참여하면 재밌을 것 같거든요. 사실 톡으로 이야기한 건데 오빠는 답이 없어서.”

“아, 톡. 사실 과톡은 잘 안 보게 되네. 요즘 너무 바빠서. 계속 300개가 넘거든.”

“그런 거 있으면 막 클릭하고 싶지 않나요? 없애고 싶고.”

“딱히? 어차피 300 이상 될 거 아니까.”

“으음.”

사라지게 하고 싶은 욕구가 없는 건 아닌데 어차피 다시 빠르게 채워지는 걸 보니 그냥 놔두는 것도 있다.

급한 볼일이 아니면야.

심지어 이제 강의도 끝났기에 딱히 볼 이유가 없다.

“그래서 어때요?”

“으음.”

옆에서 백동환이 말했다.

“형님. 저도 제안하고 싶은 게 그거였는데요.”

“어? 그래?”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 좀 고 해 뜨는 거 딱 보면. 캬아. 새사람이 된 거 같습니다.”

“그… 꼭 새벽에 운동하고 새해를 봐야겠냐?”

“하하하!”

아무튼, 두 사람이 말하는 건 같았다.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아. 새해?”

“응. 두 사람이 해 뜨는 모습을 보러 가자고 하는데?”

“시하 볼래!”

“으음. 너 못 일어날 것 같은데.”

“아냐. 시하 빨리 자.”

“알겠어. 그럼 해 보러 가자. 동환이 너도 우리 과 쪽으로 같이 갈래? 싫으면 난 너랑 가고.”

백동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좋죠.”

서수현이 응응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펜션 잡아뒀어요.”

“미리 잡았겠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런데 어디로 가는데?”

“부산!”

“응? 부산까지?!”

“이왕이면 멀리서 새해를 봐야죠.”

“굳이?”

사실 새해라고 해봤자 늘 뜨는 해를 보는 거 아니겠나.

그리고 부산이 무슨 옆 동네도 아니고.

“후후후. 사실 생각보다 축제 때 많이 벌었단 말이죠. 물론 자율참가. 어느 정도 경비도 지원해요.”

“진짜?”

“네. 당연하죠. 물론 합계를 내봐야 하는 건데 아무튼, 지원해요.”

더치페이 같은 느낌인가.

참가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돈이 더 많이 돌아가는.

아무튼, 경비를 지원하면 그냥 비행기 타고 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사실 돈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달에는 많이 들어오거든.

NH에게 월급과 타이론에게 받을 돈까지 합치면 500이 넘는 금액이다.

거기에 나는 번역까지 하고 있으니.

와 나 이번 달에 부자네?

“좋아. 근데 동환이는 돈 못 받잖아? 괜찮아?”

“아, 저요? 상관없습니다. 가끔 이럴 때도 있어야죠. 그리고 펜션비는 안 내잖아요.”

“그건 그렇지.”

“식비도 저기서 내줄 거 같고.”

“그것도 그렇지.”

“교통비만 내면 이득 아닙니까?”

맞는 말이네.

역시 생각하기 나름인 거다.

“그럼 가자.”

그때 시하가 말했다.

“형아. 부산 모야?”

“마! 거기서 당당하게 서이, 너이 하면 된다!”

“아?”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넌 여기서도 당당하게 서이, 너이 했지. 참.

***

비행기를 타려고 했지만 목적지가 생각보다 멀어서 KTX를 타기로 했다.

아마 시하는 처음일 것이다.

지하철도 간 적 없다.

매일 자차로 가거나 근처 어린이집에 가면 됐으니까.

아무튼, KTX는 처음이라는 거다.

부산도 처음이고.

그렇게 도착하기 5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백동환이 시하에게 장난을 친다.

“시하야. 기차에 타려면 신발을 벗고 타야 한대.”

“아?”

비행기에 신발 벗는 거 2탄이다.

나는 별말 안 했다. 이번에도 설마 속겠어?

사실 시하의 반응을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백동 형아. 거진말!”

“아니야. 진짠데?”

“아냐.”

시하가 고개를 휙 하고 돌린다.

역시 학습했는지 쉽게 속지 않는다.

“사실 농담이었어. 근데 그거 알아? 기차에 과자도 팔아.”

“정말?”

“정말이지. 그럼.”

시하가 정말이냐는 듯이 나를 보았다.

끄덕.

시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아. 기차에 까자 파라?”

“응. 근데 사람이 파는 게 아니라 자판기가 팔아.”

“자판기?”

“저기 음료수 뽑는 거 보이지?”

“아아.”

“저기 음료수 대신 과자를 뽑는 거야.”

“!!!”

자판기로 과자를 뽑는다고?!

뭐, 그런 충격적인 표정이었다.

“형아. 시하 살래.”

“일단 들어가서 한번 사보자.”

“아아.”

뭔가 엄청 기대하는 표정인데 별거 없다.

사실 나도 그런 게 나왔을 때는 뭔가 신기하기는 했다.

자판기는 음료수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 도착했다.”

“아아!”

KTX에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4인 석으로 묶여있어서 서로 마주 보는 자리였는데 이걸 예매하면 싸다.

“형아. 까자.”

“그래. 그래.”

도착하자마자 과자를 사러 갔다.

자판기 안을 보니 눈을 반짝거린다.

“형아 돈 너어?”

“응. 돈 넣으면 돼. 형아가 해줄까?”

“아냐. 시하가. 시하 돈.”

“응. 시하 돈은 통장에 있어서 지금 못 꺼내. 대신 형아가 사줄게.”

“아아. 고마어~”

시하에게 사주는 건 당연해서 고맙다는 소리가 귀엽게 들린다.

예의 바른 이시하다.

지폐를 넣고 시하가 버튼을 누르게 했다.

“시하 이거!”

초코파이를 띡 눌렀다.

나는 음료도 사람 수에 맞게 누르고 자리에 돌아왔다.

“초코파이라는 건데 엄청 맛있어.”

“초코?”

“응.”

시하가 초코파이를 입에 오물오물 먹었다.

맛있는지 볼이 빵빵하게 다시 베어 문다.

음료수를 따서 가져다주자 꼴깍꼴깍 잘도 마신다.

“오빠. 시하 정말 잘 먹네요.”

“너도 먹고 싶으면 먹어.”

“아, 전 됐어요. 다이어트 중이라.”

“제야 씨에게 잘 보여야 하니까?”

“이 오빠가 진짜! 아직도 안 끝났어요!”

“왜? 재밌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옆에 앉은 백동환을 보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표정이었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기차에서 시하 속일 수 있는 게 또 있나?

“시하야. 표 준비했어?”

“아?”

“나중에 기차 승무원이 아니라 기차 아저씨가 표 검사하는데 그거 없으면 큰일 나. 경찰서에 가.”

시하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시하 표 업써. 형아 이써?”

“아니. 없는데?”

“!!!”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형아도 잡혀가?”

“어…….”

사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승무원이 왔다.

시하랑 눈이 마주친다.

그가 살며시 미소를 보낸다.

“아, 아찌.”

“응? 왜 그러니?”

“시하 표 업써여. 시하 경찰서 안 가고 시퍼여.”

“푸흡.”

착한 시하는 순순히 자백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승무원이 말했다.

“다음에는 꼭 표 준비해야 해. 오늘 비밀로 해줄 테니까.”

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찌. 나중에 시하가 돈 주께여. 통장에 돈 이써여.”

“푸흐흡.”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시하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앞에 있는 백동환은 웃겨 죽는지 책상에 머리 박고 있다.

서수현은 시하를 위해 웃음을 꾸욱 참고 있지만 어깨가 들썩인다.

정말 즐거운 기차여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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