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승준이 소리쳤다.
“으아악! 시하 비만이야?!”
“말도 안 돼! 하나는 믿을 수 없어.”
쌍둥이가 경악하며 시하의 주위를 맴돌았다.
시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비만 모야?”
“뚱땡이라는 거야.”
“!!!”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배를 보았다.
통. 통.
정말 뚱땡이었어?! 선생님이 거짓말한 거야? 아닌데. 형아는 그런 이야기 없었는데?
아주 많은 상념이 시하의 머릿속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복잡함 감정에 단비가 내린다.
“흠흠. 시하야. 기계의 오류야.”
선생님이 시하를 안아 올렸다.
“다시 하면 정상입니다, 가 나올 거야.”
“아니면?”
“어?”
선생님은 조금 당황했다.
정말 아니면 어떡하지? 그래. 기계 탓으로 돌리자. 조금 오래된 제품이기도 하잖아. 요즘 나오는 인바디 같은 경우에는 아주아주 정확한 수치가 나온다고 한다.
저거 제조연도가 꽤 됐으니 부정확한 거야 당연하겠지.
“아니면 저 기계가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거야.”
“심술?”
“응. 시하가 너무 귀여워서 장난을 치고 있는 거지.”
“아아.”
선생님이 다시 시하를 내려놓았다.
-삐빅. 정상입니다.
이제야 옳은 말을 내뱉은 기계였다.
아까는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이것 봐! 시하야. 정상이라고 하잖아.”
“아아. 마자!”
“시하는 뚱땡이가 아니에요. 그렇죠?”
시하가 평소보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무한 긍정의 자세. 암튼, 나에게 좋은 결과가 있으니 무조건 맞는 거.
이런 느낌에 끄덕임이었다.
승준이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올라가 봐야지!”
-삐빅. 비만입니다.
“아악!”
다시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켰는지 그렇게 말했다.
승준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며 ‘절대 아니야!’를 외쳤다.
그걸 본 하나가.
“뚱땡이. 오승준!”
대체 언제부터 오빠란 말이 빠진 걸까?
예전의 하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승준의 장난기가 철없는 오빠로 보이게 되면서 그렇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남몰래 저렇게 부르는 게 묘한 재미를 주는 걸지도.
“나 뚱땡이 아니야.”
“아니야. 바바. 시하가 정상이라고 나왔잖아. 그럼 기계가 제대로 되는 거야. 오빠가 다시 올랐을 때 기계가 뚱땡이라고 했어. 이건 사실이야.”
저기 하나야. 기계가 비만이라고 했지 기분 나쁘게 ‘뚱땡입니다.’라고 하지 않았어.
뭐, 어느 걸 들으나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만.
“자자. 이제 의문은 다 풀렸죠? 종을 만듭시다.”
“선생님! 저 뚱땡이 아닌데요!”
“네. 승준이는 뚱땡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알아요. 기계가 이상하네. 고장 났나 봐.”
“에이! 왜 고장 나고 난리야.”
시하는 그런 기계에 때찌때찌를 하고 있었다.
“아아. 혼나. 혼나.”
그렇게 한바탕 몸무게 사건이 일어나고 종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다들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선생님은 팔레트에 물감을 색깔 별로 쭈욱 짠다.
아이들에게 물감 놀이를 시켜주는 건 처음이었다.
웬만하면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쓰게 하겠지만 이 종이컵에 칠하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또 아이들이 옷을 엉망으로 만들기에 너무 쉬운 물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단단히 준비했다.
금방 끝날 것 같지만 말이다.
“자. 물감 써보는 거 처음이시죠?”
“아냐.”
“응?”
“시하 이거 아라.”
“시하야. 써봤니? 형아랑 해봤어?”
시하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
“어?”
“시하 아가 때 엄마랑 해써.”
시하야. 너 지금도 아가야.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시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완전 의외였다.
대체 언제 물감을 가지고 어머니와 함께했던 걸까?
“정말 재밌었겠네!”
“아아. 재미써. 또 해. 또.”
“응. 또 해 하면서 했구나?”
“아?”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웃었다.
시하는 손에 분홍색 빛무리를 보면서 ‘또 해.’라고 하며 좋아했다.
이제는 머리가 조금 발달하여서 빛무리를 엄마라고 보기보다는 서로 소통을 해주는 ‘반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스마트폰처럼 말이다.
“그럼 물감을 사용해 볼까요? 여기 물통도 있어요. 혹시 실수로 넘어뜨리거나 하면 안 돼요. 알았죠?”
“네에!”
말은 저렇게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원래 사건·사고는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법이니.
그래서 작은 물통을 바가지 안에 넣었다.
안에 있는 물통을 넘어뜨린다고 해도 밖으로 쏟지는 않는다.
문제는 바가지를 전부 넘어뜨리는 건데 그 부분은 두 눈 뜨고 지켜볼 생각이다.
“선생님. 불편한데요. 바가지 치우고 그냥 물통만 여기 올리면 안 돼요?”
“그건 안 돼!”
때로는 불편함이 안전성을 보장해 준다.
아이들이 조심히 붓에 물을 톡톡 집어넣을 거니까.
“아아. 재미써.”
“저기 시하는 아주 잘하네.”
그래도 물이 그렇게 필요는 없다.
고작 종이컵에 색칠하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너무 물기가 많으면 종이컵이 흐물흐물해질 것이다.
“반짝. 반짝.”
시하는 오랜만에 붓을 잡았다.
분홍색 빛무리가 마치 손이 겹쳐지듯이 잡힌다.
함께 조금씩 붓 터치를 한다.
종이컵에 그려진 그림은 없다.
오로지 붓끝에서 피어나는 바람은 거침없이 내달렸고, 얽혔으며, 아주 자유로웠다.
물감은 붉은색.
하나의 선이 X자로 여러 개가 보였고 컵의 둥근 부부까지 그 선이 그어져 있었다.
물방울 모양 두 개와 두 개의 선이 그어지며 시하의 그림이 끝이 났다.
“다 해따!”
선생님은 시하의 그림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게 대체 무슨 그림일까?
내년에 시하의 목표가 저건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는 찰나에 다른 아이 이들이 자신들도 끝냈다며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여러분 다 했나요?”
“네에!”
“그럼 잘됐네요. 선생님이 종이컵 밑부분에 구멍을 뚫고 종을 달아줄게요. 그러고 나서 모두 발표를 해보아요.”
아마 이 발표를 통해서 시하가 그린 그림이 밝혀질 것이다.
얼른 아이들에게 종을 달고 완성을 시켰다.
선생님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먼저 손을 든 건 재휘였다.
“어머. 재휘야. 오늘은 먼저 나섰네?”
“네. 헤헤헤.”
재휘는 자신 있게 만들어진 종을 들었다.
딸랑딸랑.
종이컵의 작은 원 부분은 검은색으로 일정한 두께로 칠해져 있다.
약 1/5 정도.
그 밑에는 지그재그로 그려져 있으며, 아래는 갈색으로 전부 칠했다.
아주 단순한 그림이었다.
“이건 연필이야. 검은색 부분은 쓰는 데고 갈색 부분은 나무야. 나는 내년에 열심히 디자인 공부를 할 거야.”
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순하게 봤는데 저게 연필이었다니.
지그재그 한 부분은 연필을 깎은 부분을 나타내고 싶었나 보다.
“모두 박수!”
짝짝짝.
재휘는 쑥스러운지 얼굴이 살짝 빨개진 채로 앉았다.
저런 창의력이면 좋은 옷을 만들 것 같았다.
다음은 종수였다.
“나는 여기 책을 그렸어. 내년에 공부 많이 해서 똑똑해질 거야.”
벌써 아이들이 공부에 취미가 들다니.
선생님으로서 조금 슬펐다.
그때 승준이 말했다.
“앗! 종수 너는 바보잖아.”
“뭐?! 너한테는 듣고 싶지 않아.”
“사실 똑똑한 건 알고 있어.”
“으음. 알면 됐어. 참나.”
“근데 바보야.”
“야!”
승준의 말에 종수는 똑똑한 바보가 되어 버렸다.
옆에 있는 시하가 짝짝짝 손뼉을 쳤다.
“종수 잘해써.”
“야! 이시하! 너도 날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야?!”
시하는 그저 종수의 그림과 목표에 칭찬했을 뿐이지만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
선생님은 시하에게 묻고 싶었다.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아? 종수 바보야?”
“내가. 내가. 물었잖아. 바보라고 생각하냐고.”
“왜?”
“아니. 뭔! 에휴. 됐다.”
종수가 답답하게 가슴을 쳤다.
시하는 왜 그런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딴 생각하느라 종수랑 승준의 대화를 못 들은 탓이다.
“자자. 종수가 아주 멋진 목표를 정했네요. 모두 박수.”
짝짝짝.
뭔가 찜찜한 표정으로 들어가는 종수.
미안하다. 종수야. 여기는 마이웨이들밖에 없어.
그나마 재휘가 화합을 잘하는 편이다.
“다음은 나!”
승준이 일어섰다.
종수의 눈에 불이 켜졌다.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
“여기 다리가 꼬아져 있어. 날아가는 건 사커공!”
다리만 덜렁 꼬아져서 그려져 있는데 뭔가 잘린 듯이 섬뜩했다.
축구공도 휙 날아다닌다.
“이건 라보나킥이야. 내년에는 이런 킥을 획득할 거야.”
종수가 아까의 복수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 너 슛 잘하지.”
“헤헤.”
“근데 라보나킥은 못 할걸? 너 뚱땡이라 다리가 안 꼬아져.”
“야! 나 뚱땡이 아니거든?!”
“그래? 그럼 다리가 짧네.”
아직 아이니까 짧은 다리는 어쩔 수 없다.
승준이 다리를 엑스 자로 꼬았다.
“이렇게 하면 되거든!”
하지만 중심을 못 잡고 넘어졌다.
종수가 그걸 보며 푸하하 웃었다.
승준이 부들부들하면서 종수를 노려보았다.
시하가 그런 승준을 보며.
“승준.”
“어?”
“라보나킥 내일 해?”
“으응?”
“내일 내년이래.”
“아니. 연습해야지.”
“할 수 이써!”
“어? 고마워. 시하야. 할 수 있다!”
갑자기 훈훈한 공기가 흘렀다.
종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나한테는 저런 말 안 했으면서!”
“아?”
결국, 종수에게만 상처를 남긴 채 끝이 났다.
승준은 의기양양하게 시하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얄미운 웃음을 보냈다.
“아하하.”
선생님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어야지. 내년에도 너희들은 똑같이 투덕거리겠구나.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오빠. 비켜.”
“어? 으응.”
승준은 하나에게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하나는 무대 그려써. 노래하고 있는 모습이야. 새해에 카페에서 알바할래.”
갑자기? 네 마음대로?
아무래도 전에 서수현이 일했던 알바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참으로도 가상한 꿈이었다.
“돈 벌어서 음악 교실에 쓸 거야. 엄마가 안 내도 대.”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었다.
벌써 스스로 벌어서 내려고 하다니.
하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종을 흔들었다.
다음은 윤동이었다.
“으음. 난 프리즈 완벽하게 하는 거. 끝.”
간단했다.
그림은 뭔가 졸라맨이 물구나무를 서는 것이 되어 있었지만.
은우가 웃었다.
“푸하하. 졸라맨이다. 졸라맨. 못 그렸다!”
“너는?”
“나? 푸하하. 나도 못 그렸다!”
은우는 자기 종을 보고 껄껄 웃었다.
종수와 승준의 관계랑은 조금 달랐다.
원체 은우의 성격이 좋기도 했고, 윤동은 춤 빼면 별 신경도 안 쓰기도 했다.
둘은 언제나 붙어 다니며 친하게 지낸다.
“나는 피아노야. 열심히 랩을 만들 거야.”
은우가 종을 딸랑딸랑 흔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아. 다해따!”
“시하야. 너는 안 했는데.”
“시하 안 해써? 몰라써!”
시하가 정말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어디서 발표를 했니?
가끔 멍하니 있던데 설마 상상 속에서 벌써 한 거니?
선생님은 그런 시하가 상상되어서 웃음이 나왔다.
“자. 시하야. 발표해 주세요.”
“아아!”
시하가 자신의 종을 들었다.
그리고 배를 쭈욱 내밀었다.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저기. 시하야. 보여주는 거로 끝내지 말고 말을 해야지.
“시하야 그게 뭐니?”
“신발. 신발.”
“응?”
선생님은 다시 시하의 종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선은 신발 끈처럼 보였다.
앞뒤로 엑스 자의 선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몰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앞에는 리본이 그려져 있다는 점.
자세히 보면 붉은색 농도에 따라 교차하는 부분이 구분되어 있었다.
뭐가 위에 있고 아래에 있는지.
“그런데 왜 뒤에도 엑스 자가?”
“신발 안에 이써. 엑스.”
“아!”
흰색 빈 여백은 신발. 붉은색은 신발 끈.
그중에서도 흰 여백은 신발이 묶이는 면에만 집중한 걸 알 수 있었다.
저걸 종이컵이라는 둥근 공간적인 면으로 표현한 것이다.
선생님은 살짝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재휘가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시하는 더 했다.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은 시하의 말에 그저 ‘우와!’ 하면서 보았다.
“저기 시하야. 그럼 이거 뜻이 뭐니?”
“이거?”
“응.”
시하가 살며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