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시하의 팝업북을 판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판매한 시점에서 계산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인터넷 서점에서는 얼마나 홍보를 해주느냐가 중요했다.
또한, 입소문 역시도.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를 잘 노려서 이벤트가 들어갔고,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교육감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 그럭저럭 팔리지 않았을까?
두 권 세트에 10,000원.
한 권에 5,000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인세 계약을 한 상태라서 5%를 가진다.
세트가 하나 팔리면 500원의 수익이 나는 것이다.
“얼마나 팔렸는데요?”
「무려 천 개 정도 팔렸습니다!」
“오! 대박!”
사실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내 경우에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사줄 마음이 없었으니까.
아마 시하 생일이 12월이 아니었다면 뭔가 커다란 장난감 하나를 샀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에 천 개가 팔렸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세트 합쳐서 천 개 정도 팔렸다는 거죠?”
「그렇죠. 이 추세면 누적 판매량이 유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 지원금도 나왔거든요.」
“그럼 단순 계산으로 50만 원 정도 시하에게 떨어지겠네요.”
「그렇죠.」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밖에 안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저 개수를 파는 게 쉽지 않다.
예를 들면 너튜버가 천 명 구독자 모으기 쉽지 않지 않나.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아무리 광고를 해도 팔리지 않는 건 팔리지 않으니까.
앞으로 판매가 급감하겠지만 그래도 저게 어딘가.
‘생각해 보니 100만 부 팔리는 책들은 억 정도 벌겠네.’
단순 계산으로 그렇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원래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 아니겠나.
“그래도 어느 정도 판매량이 나와서 다행이네요. 근데 많이 팔린 정도는 아니죠?”
「하하. 이 정도면 훌륭하죠. 누구 팝업북인데요.」
계산해 보니 1만 부 판매해야 시하에게 500만 원이 떨어진다.
이걸 만드는 비용을 제외하고 이리저리 떼면 출판사에 남는 게 별로 없긴 하다.
아니지. 그래도 많이 찍으면 단가가 엄청 싸지는 걸 봤을 때…….
음. 계산이 복잡해지니 그만두자.
이 책으로 정부 지원 사업까지 참여하게 되었으니 충분한 것 같다.
“정부 지원 사업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것도 받은 출판사들끼리 경쟁입니다. 책은 심사를 들어갈 거고 거기에 번역 비용까지 지원해 주는 거죠.」
“해외 쪽으로요?”
「네. 물론 될 겁니다. 저희 KI의 이시혁, 이시하 아닙니까. 하하하!」
저기요. 맨날 왜 저희를 KI 식구로 포함하는 거죠?
“형아.”
“응?”
“누구야?”
“홍 아저씨야. 시하 책이 많이 팔렸다고 전화 왔어.”
“홍 아찌!”
시하가 손짓으로 자신도 전화 통화를 하고 싶다고 표현했다.
나는 스피커 모드로 해두며 시하의 손에 쥐여주었다.
“홍 아찌.”
「네. 시하 작가님. 제가 열심히 해서 책을 많이 팔았습니다. 어때요? 잘했죠? 칭찬해 주시죠. 하하하.」
아무래도 시하에게 ‘잘해써!’ 소리를 듣고 싶은가 보다.
저런 장난기를 발휘하는 사람이라서 웃음을 자아낸다.
뭔가 좀 과한 연극 같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홍 과장인가?
“홍 아찌!”
「네. 시하 작가님.」
“우리 똥강아지. 잘해써~”
「네?」
나는 옆에서 듣다가 침을 잘못 삼켰는지 콜록댔다.
아니, 배운 거 바로 써먹는 거 뭐냐고.
“흠흠. 오늘 우리 똥강아지라는 말을 배웠거든요.”
「푸하하. 역시 작가님이십니다! 단어 선택이 아주!」
시하는 그림 작가인데요?
“시하야. 그건 으음. 어린 사람에게 하는 표현이야.”
“왜?”
“강아지가 아기잖아. 그래서 그래.”
“아아!”
“홍 아찌 아가 아냐. 아찌야. 아찌.”
“응. 완전 아저씨지.”
홍진수가 말했다.
「이상하게 맞는 말인데 왜 이렇게 슬프지?」
본의 아니게 홍 과장을 슬프게 했나 보다.
***
강아지와의 산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하야. 집에 오면 뭐부터 해야지?”
“손 씨서.”
“마자. 손을 깨끗이 씻어야 걸릴 병도 안 걸려. 알았지?”
“형아. 요이요이도 씨서.”
“으응?”
주머니에서 요요가 튀어나온다.
오늘 하루 길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서 그런지 더럽기는 했다.
“요이요이야. 시하가 씨겨주께.”
네 손은 언제 씻으려고?
시하가 물을 틀어서 뽀득뽀득 씻겨준다.
“형아. 비누!”
“응. 여기.”
거품도 열심히 내서 묻혀 주는데 진짜 강아지를 씻기는 느낌이다.
물론 실제로 강아지를 저렇게 뽀득뽀득 소리 나게 하면 안 되지만.
이렇게 보고 있으니 대체 뭐 하는가 싶기도 하다.
“시하 다 해따!”
“시하 손은?”
“시하 요이요이 깨끄티하면서 해써.”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수건으로 열심히 요요를 닦은 뒤에 도도도 달려가더니 서랍에서 드라이기를 꺼낸다.
말려주기까지 하게? 완전 지극정성이네.
위이이잉.
더운 바람이 줄을 말린다.
저 놀이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그런데 시하야. 올해도 이제 끝나네.”
“아?”
“아, 올해라는 말을 모르나? 12월이 끝나면 새로운 1월이 시작되는 거야. 월요일이 매일 새로 시작되는 거 알지?”
“시하 아라.”
“그…. 지구도 나이가 있는데 12월이 끝나면 딱 1년이 돼.”
“지구 생일?”
“아, 그래. 지구 생일이지.”
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하 지구 선물 준비 안 해써. 케이쿠 해서 생일파티 해.”
“푸흡. 그래. 지구도 생일 파티 해야겠다.”
지구 생일 파티하자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걸까.
설명하다 보면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 말로 나온다.
“그럼 지구한테 어떤 선물을 줄 거야? 지구는 손 없는데?”
왠지 이 질문에 대답이 너무 궁금해졌다.
시하가 턱을 잡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아!”
“왜? 생각났어?”
“목도리!”
“목도리?”
“지구 추어 해. 바께 추어. 지구 추어 해. 목도리 해야 해.”
겨울이니 지구가 추워하는 줄 아는 우리 시하.
과연 목도리라는 좋은 초이스를 했다.
굉장한데?
“그러면 잠바를 선물하면 되지 않아?”
“아냐.”
“응? 왜?”
“지구 팔 업써.”
그렇지. 지구는 팔이 없지.
여기서 그런 사실을 들먹인다고?!
“지구 똥글똥글이야.”
똥강아지에 이어 똥글똥글인가보구나.
아, 오늘 이야기 때문에 똥이라는 단어에 꽂힌 것 같다.
“그럼 목도리 색깔은 역시 레드야?”
“아아. 레드.”
시하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요요를 사뿐히 놓고 패드를 들고 왔다.
아무래도 그림을 그릴 모양이다.
“지구 그리는 거야?”
“지구 목도리 선물해. 생일 선물.”
지구는 좋겠네.
시하에게 목도리도 생일 선물로 받고.
비록 그림일 뿐이지만 실제 지구가 보고 있다면 시하의 행동에 빙그레 웃음 짓지 않을까 싶다.
***
12월 31일.
티비에서 온갖 시상식이 끝나고 있다.
연예대상, 연기대상 등등.
한 해를 마무리하고 수고했다는 의미의 상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못 받은 배우나 개그맨들도 있겠지만 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훌륭하고 박수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1년을 재밌게 만들어줬으니까.
물론 저런 시상식은 재미가 없어서 잘 보지는 않았다.
시상식보다는 시하를 보는 게 훨씬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혁은 시하랑 헤어질 때가 왔다.
“시하야. 어린이집에서 잘 놀아. 형아 간다.”
“아아. 형아. 빨리 와.”
“푸흡. 빨리 올 수 있으면.”
시하가 열심히 손을 흔든다.
선생님이 시하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했다.
아이들이 다 도착해 있었다.
다들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선생님을 보았다.
뭔가 입술이 근질근질한 선생님을 볼 수 있었으니까.
“후후후. 여러분. 올해 마지막 날이네요. 새해인 딱 12시가 되면 어떤 걸 하는지 아시나요?”
“시하 아라. 생일 추카!”
“으응?”
너무나 뜬금없는 생일 축하 이야기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의문이 들었다.
혹, 혹시 어린이집 애들 생일이었나? 1월 1일인? 그건 아닌데?
“지구 생일 추카.”
“아! 지구 생일 말하는 거예요?”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생각지 못한 방향성에 그저 멍해질 뿐이었다.
승준이 말했다.
“아, 맞네! 지구 생일이네!”
“하나도 아는 거 이써. 내일 빨간 날이야. 어? 지구 생일 파티해 주려고 빨간 날인가?”
“오! 역시 내 동생이야. 똑똑해.”
선생님은 이마를 긁적였다.
설마 지구 생일 파티하려고 빨간 날이겠니?
어린이들의 순수한 발상은 따라가지 못하겠다.
“흠흠. 네. 내일은 빨간 날이죠? 새마음 새 뜻으로 시작되는 거기도 해요. 12시가 되면 다들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답니다.”
종소리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이 쑥덕거렸다.
“역시 지구를 축하하려고 종까지 치면서 노래 부르는 거야.”
“마자! 하나도 생일 추카 노래 부를래!”
“아아! 시하도!”
왜 이렇게 됐을까?
선생님은 아이들이 실컷 말하게 한 뒤에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제야의 종소리 들어본 적 있어요?”
승준이 손을 들었다.
“저 짱구에서 봤는데! 쨍그랑! 제야제야제야! 아하하!”
그편 끝까지 못 봤구나? 결국, 평범한 종소리란다.
오랜만에 추억 소환에 선생님은 흐뭇해졌다.
“하나 아라! 에밀레~ 하고 울어.”
그건 에밀레종 아니니?
시하가 한 손을 열심히 흔든다.
“딸랑딸랑이야. 딸랑딸랑.”
시하야. 그건 작은 종이 그렇단다.
유일하게 똑똑한 종수가 말했다.
“다들 안 들어봤어? 대앵- 대앵- 하거든.”
“정답! 종수가 아는구나.”
아이들이 실망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뭐야. 평범하네.”
“재미업써.”
“딸랑딸랑 아냐?”
선생님은 그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밋밋한 종이컵을 꺼냈다.
그리고 시하가 아까 말한 딸랑딸랑 종 역시도.
“오늘은 종을 만들어볼 거예요. 내년에는 어떤 걸 이루어낼지 그려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년에는 반드시 4살로서 더 많은 쓰레기를 주울 거야. 뭐 이런 느낌으로 깨끗한 산을 그린다든지?”
선생님의 예시를 듣고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 목표를 설정한다.
이건 사람에게 무척이나 중요하다.
자신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노력할지, 무엇을 할지 정하는 날.
방황하지 말고 목표한 바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 어때요? 재밌겠죠?”
아이들이 종이컵과 붓을 받았다.
오늘은 팔레트에 물감을 짜서 저기에 그리는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먼저 여기 있는 사인펜으로 색깔에 맞게 그려주세요. 그리고 색칠은 붓으로 할 생각이에요.”
선생님이 미리 그려온 종이컵을 보여주었다.
해는 빨간 사인펜으로 그려져 있고 아령은 회색 사인펜을 썼다.
운동하는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올해 목표가 다이어트예요. 3키로 정도 빼고 싶어요.”
하나가 말했다.
“선생님. 안 빼도 예뿐데?”
“호호호. 고마워. 하나야.”
“아아. 샘. 예뻐. 예뻐.”
“시하도 고마워.”
승준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살쪘어!”
“그래. 고마워.”
“엥?”
승준은 ‘이 반응이 아닌데?’ 하는 얼굴이었다.
뭔가 발끈하길 원했나 보지만 선생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왜냐면 실제로 최근에 조금 찐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말에 발끈한 건 하나였다.
“뚱땡이 오승준!”
승준이 억울하다는 얼굴을 했다.
“하나 너한테 안 했어.”
“여자한테 살쪘다고 말하는 거 아니랬어. 엄마가 그랬어.”
“살 좀 있으면 귀여운데?”
“뚱땡이 오승준!”
“야! 뚱뚱하면 사커 잘할 수 없어!”
승준이 자신의 배를 발라당 보여주었다.
실제로 활동량이 많아서 그런지 배가 많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복근이 튀어나오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자자. 둘 다 진정해요. 승준이 농담 좀 한 거야. 알잖아. 하나야. 그리고 선생님 대신 말해줘서 고마워.”
둘 다 진정이 됐지만 입을 삐죽이며 서로에게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뭐, 지금은 저러지만 나중에 잘도 어울려서 시시덕댄다.
둘은 불화설이 있어도 째질 수 없는 모그룹인 남매였다.
“아? 뚱땡이?”
시하가 자신의 볼록한 배를 보았다.
손으로 한번 쳐보기도 했다.
통통.
목표를 선생님처럼 운동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그런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야. 너 정도면 정상이야. 정상.”
“정말?”
“그럼. 선생님이 거짓말하겠니? 저기 체중계도 있는데 한번 써볼래? 재작년인가 들이긴 했는데 아직 쓸 만하거든. 목소리도 나온다? 삐빅. 정상입니다. 이렇게.”
“아아!”
어쩌다 보니 종 보다는 몸무게로 관심이 넘어갔다.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어디 보자. 전원코드에 꽂고. 됐다!”
이거 어른용이기는 한데 애들도 괜찮겠지?
“자. 여기 딱 서봐.”
시하가 기계에 올라갔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삐빅! 비만입니다.
“아?”
생각지 못한 대답에 선생님은 웃음이 터졌다.
원장님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