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1화 (251/500)

251화

보통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많은 것이 일어난다.

웹툰 작가들이 크리스마스 특별 그림을 그린다든지.

가게에서 여러 선물을 판다든지.

평소와 다르게 택배나 물류가 많다든지.

그리고 그날이 지나고 나면 특별히 무언가 바쁜 일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시하페페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 날에야 뒤늦게 업로드가 되고 있었다.

그것도 한국시각으로 밤에 말이다.

시차가 있는 외국은 조금 다를 것이다.

아무튼, 에프터 크리스마스라는 점은 확실하다.

-시하의 그림. 픽시브 업로드.

[제목 : Santa claus 's letter]

1. VR 틸트 브러쉬를 이용해서 그린 산타와 편지. (배경 지원 : 크리스 작가)

설명 : 아이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보내는 산타클로스입니다. 여러분 이미 지났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좋아요] [하트] [퍼가기] […]

[siha.pepe.] [작품 목록]

#Merry Christmas #Santa #gift #letter

[댓글]

-와. 저게 바로 VR 틸트 브러쉬를 이용한 그림인가.

-정말 따뜻한 이야기다. 산타가 어린이들을 위해 손수 벽난로 앞에서 편지도 쓰고.

-크리스 작가가 누구지? 배경 괜찮네.

-근데 시하페페 작가ㅋㅋㅋ 그림 설명한 거 처음 아니야?

그렇다. 시하페페 작가가 저렇게 그림 밑에 설명을 달아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편지에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느낌. 정성이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 많이 썼었는데 실제로 부모가 산타가 되어서 편지를 썼겠지.

-쉿! 그건 비밀이야! 동심을 파괴하지 말아줘.

-ㅋㅋㅋ난 이 작가 진짜 마음에 든다. 어떻게 된 게 그림들이 하나같이 따뜻한 마음을 품냐. 주제 선정도 그렇고.

그러나 이때 등장한 해석가가 존재했으니.

-쯧쯧쯧.

-왜? 설마 여기에서 뭔가 다른 점을 찾는 건 아니겠지?

-너희들은 산타 눈에 있는 불티의 이야기를 왜 안 하는 거지?

-그게 왜?

-그냥 뭔가를 이미 놓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오늘은 뭔가 특별히 해석할 건 없지. 작가가 말했으니까. 하지만 그거 알아?

-???

-실제로 미술 전시를 할 때 작가의 설명이 들어간 경우가 있어. 도슨트가 말하는 게 그 예중 하나지. 하지만!

-하지만?

-실제로 말하지 않은 ‘숨겨진’ 의미도 있다는 말씀!!

-!!!

해석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저 설명에서 자세히 봐야 할 건 어린아이들에게 일일이 답장하는 부분이 아니야. 그건 이미 그림에서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지. 굳이 설명을 적을 필요가 있었을까?

-!!!

-저 불티를 눈동자에 포함한 것처럼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거지.

-난 아직도 모르겠어.

-저기 설명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이미 지났지만’이라는 부분이야.

-저게 왜? 진짜 지나서 올라온 거 맞잖아.

-쯧. 이 정도도 눈치 못 채서야. 어쩔 수 없지.

-???

해석가는 자신이 발견한 모종의 장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작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각하기를 멈추는 걸 안타까워했다.

작품은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숨겨진 의미가 늘 있었다.

-지났다고 해서 정말로 지난 게 아니지. 산타는 ‘다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는 거야.

-그럼 답장이 되지 않잖아?

-아니지. 아니야. 저기 해시 태그를 봐봐. 선물이 적혀있지? 산타가 준비하는 건 다음의 선물이라는 뜻이지. 그걸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거고. 전 세계 아이들이 편지를 쓸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지.

-산타는 언제나 그 답을 선물로 주었어. 저 편지에 적힌 이니셜이 그 답이야. 답장이라고 해놓고 왜! 그 내용을 쓰지 않았지?

-!!!

-저건 아이들의 이름을 편지지에 썼다는 거야! 거의 도배로! 전 세계에서 저 이니셜을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런 뜻이었어?!

아니다. 그냥 이시하라는 이름의 이니셜일 뿐이다.

도배는 정말 시하가 아무 생각 없이 한 거다.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그림을 올렸고 설명에도 작가가 그렇게 말하고 있지. 마지막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이걸 뜻하는 게 이제 명백해지지.

-!!!

명백하지도 않고 그런 숨겨진 의도는 없었다.

-또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어.

-뭔데?

-이미 시하페페 작가는 우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어!

-엉? 그림은 오늘 올라온 거잖아?

-아니. 또 다른 그림이 있다!

다들 해석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 타이밍에 맞춰서 하나의 링크가 올라왔다.

-시하페페 작가는 하나의 의류업체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패드 가방을 줬다는 게 밝혀졌다! 그것도 ‘아동’ 의류업체에!

-아동 의류라면 과연 ‘어린이’네!

-맞아!

링크를 확인한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으악! 진짜 시하페페의 펭귄이잖아! 이걸 놓치다니!

-크으. 나도 나중에 알고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했는데. 물론 집에 아이가 없어서 서비스 신청은 못 했지만.

스티브 백이 시혁에게 보답하기 위해 준비한 이벤트가 시하의 해석에 포함되는 순간이었다.

***

업로드된 댓글을 읽는데 입이 살짝 벌어졌다.

스티브 백이 이런 이벤트를 언제 준비한 걸까?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 굿즈로 인한 선물에 대한 비용의 일부분이 내게 돌아올 테니까.

아무래도 전에 주기로 했던 스티브 백이 말한 저울이 이건가 보다.

이로써 균형을 맞추겠다는.

‘엄청난 굿즈 양이었을 것 같은데?’

하반기부터 장사를 시작했지만 지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굉장히 빨리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년이 더 기대되는 사업이다.

확실히 먼저 선점하고 치고 가는 모습에서 그의 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다들 시하페페가 어디 사람인지 유추하는 게 많네.’

유력 후보는 미국인 썰.

그리고 보통 일러 같은 경우는 외주가 많기 때문에 동양인 일본, 중국, 한국이라는 말도 나온다.

어차피 답을 알 수 없는 문제.

그렇다고 할지라도 과연 언제까지 모르고 있을 수 있을까.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이라면 언젠가 한국인이라는 걸 들킬 날도 올 것이다.

‘뭐, 3살이라는 건 모르겠지.’

그걸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일 뿐.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비밀은 지켜지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어리다는 건 너무나 큰 유명세로 번지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형태는 아니었다.

언제나 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니까.

“형아?”

“응. 시하야. 일어났어?”

“아아.”

“오늘도 반응이 엄청나. 하트가 많이 쌓여있어.”

그에 비례해서 DM도 많이 쌓여있지만.

단 한 번도 답을 해준 적이 없다.

“형아. 하트 마나!”

시하가 기쁘다는 듯이 폰을 보았다.

1천 개가 넘어가니 당연히 좋겠지. 1년 가까이 그림이 올리니 하트도 점점 불어나는 느낌이다.

특히 이번 VR 틸트 브러쉬로 그려진 건 신기한 모양인지 빨리 상승했다.

왜 그 있잖은가.

영상의 조회수가 고만고만하게 나오다가 갑자기 화제가 좀 되어서 평소와 달리 높은 조회수의 영상이 되는 느낌.

어제 올린 게 딱 그랬다.

“시하페페 작가님. 엄청 인기 있으신대요?”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사실 별생각이 없는 게 확실했다.

뭐, 아직은 이런 게 실감이 안 나겠지.

그냥 하트가 많은 게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형아. 준비해.”

“응?”

“어린이집.”

“아, 그렇지.”

시하가 화장실로 쏙 들어가서 작은 손으로 내게 손짓했다.

이제 여기에는 관심 없나 보다.

나만 신경 쓰는 거야. 나만?!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 재밌는 거라도 해?”

“매일 재미써.”

“아, 그래?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시하의 머리에 물을 뿌렸다.

어푸어푸하면서 엎드려서 세수한다.

너 지금 머리 감고 있어.

“친구 만나서 재미써.”

다행이다.

예전에는 어린이집 보내는 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도 많이 사귀고 재밌나 보다.

나를 엄청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하가 마음을 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심적으로 굉장히 안심을 준다.

따뜻한 물이 거품을 지운다.

어푸어푸.

머리를 감는지 세수를 하는지 모르겠다.

시하야. 그거 샴푸 물이야.

“그럼 친구들이 좋아? 아니면 형아가 좋아?”

“형아!”

고민도 없는 단호한 대답.

입술이 씰룩거리는 게 느껴진다.

언젠가 친구라도 하는 때가 찾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즐기고 싶다.

“자. 이제 진짜 세수도 하고.”

“세수!”

어푸어푸.

대체 얼굴을 얼마나 씻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때가 나올지도?

“다 해따!”

“그래. 이제 머리 말리고 어린이집 가자. 어제 안 갔으니까.”

“승준, 하나도 안 가써.”

“하하. 그랬지.”

생각해 보니 3명이 안 갔으니 어린이집이 텅텅 비어있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혹시 이 3명 말고 딴 아이들도 안 간 건 아니겠지?

“형아. 시하 산타 선물.”

“응. 그러네.”

오늘 시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치장되어 있었다.

신발은 나랑 맞췄고, 목도리는 백동환이 줬다.

“그럼. 출발.”

“아아!”

***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는 어린이집이 한가했다.

아니, 정확히는 못 열었다가 맞을 것이다.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종수는 오랜만에 실컷 놀았는지 좀 더 놀고 싶다고 칭얼거려서 다른 볼거리를 보러 갔다.

윤동은 크리스마스 특별 춤 공연을 보러 갔고, 은우는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서 하룻밤 자고 온다고 했다.

재휘만이 도착했는데 친구들이 안 오는 걸 알았는지 엄마 손을 꼬옥 잡고 올려다보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데리고 갔다.

그렇다. 다들 크리스마스 여파를 여실히 즐겼고 유다희 선생님은 아이들의 못 봐서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셨을 뿐이다.

“원장님. 오늘은 애들 볼 수 있어서 좋네요.”

“그렇게 좋아요? 일 안 하면 더 좋지 않나?”

“하하하. 그래도 일하는 게 낫죠.”

“그런데 다희쌤은 크리스마스에 뭐 했어요? 집에서 쉬었어요?”

유다희가 배시시 웃음을 보였다.

머리 한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꼬았다.

원장은 뭔가 좋은 일이 있었나 싶었다.

“그 핸드폰 스트랩은 뭐예요?”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어요.”

“예쁘네.”

“그쵸?”

“남자에게 받았어요? 데이트했겠네?”

“하하. 밥이랑 술 잠깐 마셨어요. 그러다 그냥 집에 들어왔고.”

“오호. 썸?”

“뭐, 그렇죠. 하하.”

유다희 선생님은 민망한지 안절부절못했다.

원장은 이런 반응이 너무 신선해서 좀 더 놀리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곧 애들이 올 시간 이내요.”

“그러네요.”

아이들이 제시간에 맞춰 우르르 도착했다.

한가했던 시간은 지나고 유다희 선생님과 원장은 어머니와 애들에게 인사를 하며 일을 시작했다.

다들 어제 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그런지 산타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했다.

먼저 종수.

“난 말이야. 새로운 장난감을 받았어. 이렇게 기찻길을 연결해서 가지고 노는 건데 엄청 재밌어! 여기 사진도 있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애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참고 참았다.

기차 장난감의 레일이 자유롭게 바닥에 깔려 있었고, 의자 사이를 지나가는 등 꽤 고심한 배치가 눈에 띄었다.

굉장히 비싸 보이는 장난감. 승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재밌겠다.”

그렇게 반응하니 종수의 어깨가 으쓱였다.

“하하하. 다음에 집에 놀러 오면 같이 갖고 놀게 해줄게.”

“아니야. 난 밖에서 노는 게 더 좋아.”

“아, 왜!”

자신도 모르게 밀당을 하는 승준이었다.

실제로 기운 넘치는 승준은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좋아했지만 밖에서 노는 경우가 많았다.

옆에서 재휘가.

“종수야. 난 갈게. 같이 놀자.”

“그래. 고마워. 재휘야.”

여전히 둘은 친한 사이였다.

승준이 그 둘을 보더니 시하와 어깨동무를 했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승준아. 뭐랑 또 경쟁하는 거니?’

승준이 말했다.

“나도 산타한테 엄청난 거 선물 받았어. 시하도 엄청 신기해할걸!”

“모야?”

승준이 가방에 손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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