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산타할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시하를 보았다.
참으로 예쁜 아이다.
“또라이버!”
발음만 조금 조심하면 더 좋을 텐데.
아는 아이지만 형아를 생각하는 마음에 애틋하다.
이렇게 구하려고 하는 모습이 말이다.
단숨에 무대 위에 올라오는 것도 그렇고 시하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허허허. 드라이버 대신 다른 방법을 알려주마. 이 지팡이가 형아를 다른 곳으로 보냈으니 다시 두드리면 나타나겠지?”
“형아. 여기 이써.”
시하가 상자를 탁탁 쳤다.
대체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럼. 거기 있지. 바로 이 지팡이를 사용하면 말이야.”
산타가 상자의 문을 닫았다.
시하에게 지팡이를 내밀며 소중한 형아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으라고 했다.
“아아. 형아. 빨리 와.”
탁탁.
두 번을 두드리고 할아버지에게 지팡이를 주었다.
“그럼 다들 숫자를 세 번 외쳐볼까요! 하나!”
산타가 손가락을 하나 치켜들었다.
두 개를 펴자 객석이 외쳤다.
“둘!”
시하도 말했다.
“서이!”
할아버지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입술을 오르려 닫았다.
무대에 흘러나온 노래가 바뀌면서 문이 열렸다.
안에는 시혁이 짜잔 하고 나왔다.
객석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와아아아-”
짝짝짝.
시하가 형아를 보더니 냅다 다리에 찰싹 붙었다.
드디어 찾았다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둘의 모습을 보다가 선물을 꺼냈다.
“네. 마술을 도와줘서 고마워요.”
“하하. 아니에요.”
“그럼 오늘 마술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은 선물도 받아가세요. 아! 사진 찍으실 분들은 줄 서서 올라오셔도 됩니다.”
시혁은 시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꼬옥 붙어있는 모습이 마치 코알라 같았다.
“시하야 사진 찍을래?”
“형아랑?”
“아니. 산타 마술사랑.”
“아냐.”
시하가 고개를 저었다.
형아랑이라고 말했을 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봤는데 산타 마술사라 하니까 참으로 단호했다.
“난 찍을래!”
“하나도!”
승준과 하나는 마술이 너무 재밌었는지 꼭 산타 마술사랑 찍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아도 여전히 마술은 신기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시하야. 정말 찍고 싶지 않아? 이런 건 기념으로 사진 딱 남겨야 하는데.”
“아냐. 사진 찰칵하면 없어져.”
“엥?”
“찰칵하면 사진 안에 들어가.”
그 정도면 마술사가 아니라 마법사일 것이다.
눈속임의 영역이 아니었다.
시하의 상상력은 형아가 없어지는 쪽으로 끝없이 뻗어 나갔다.
“그럼 여기서 형아랑 사진 찍을까?”
“사진 찍자.”
“형님. 제가 찍어드리겠습니다.”
백동환이 폰을 들어서 둘을 비췄다.
“자. 갑니다.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찰칵.
두 번을 찍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시하야. 어때?”
“아? 백동 형아. 큰일이야.”
“응?”
“산타 마술사 나와써.”
시혁과 시하의 뒤에는 산타가 승준과 하나랑 찍는 모습이 배경으로 나왔다.
시하는 대체 무슨 상상을 했을까?
***
마술을 보고 난 뒤에 우리는 잠시 헤어졌다.
승준과 하나는 VR 전시를 보러 갔고 시하와 나는 따로 부스가 마련되어 있는 VR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으로 갔다.
“어서 오세요. 혹시 사전예약 신청서를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나는 백동환이 보내준 사진을 보여주었다.
확인되었는지 직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특별히 테마를 준비했어요.”
VR 기기를 끼는데 거기서 선택할 수 있는 배경은 다섯 가지였다.
벽난로가 있는 오두막집.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산.
여러 장난감을 살 수 있는 선물 가게 앞 길거리.
데이트 코스인 영화관.
인테리어가 멋있는 레스토랑.
“시하야. 어떤 배경에서 그리고 싶어?”
“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이게 대체 뭐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히는가 보다.
막상 하면 잘 적응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이런 건 처음이라서 뭐라 설명을 못 하겠다.
“마음에 드는 배경을 정하면 돼.”
“시하는 집.”
“오. 벽난로가 있는 오두막집?”
“아아.”
의외였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곳을 선택할 줄 알았다.
엄청 화려하고 보기 좋으니까.
하지만 시하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좋아. 그럼 선택한다?”
“아아.”
우리는 VR 기기를 썼다.
손에는 컨트롤러를 쥐었다.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시하야. 보여? 오두막집이야.”
“아아! 집!”
현재 오두막집이 보였다.
따뜻한 벽난로에 불티가 타닥타닥 튀었고,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감돌며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옆에서 직원이 말한다.
“오른쪽 손에 있는 건 붓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왼손에 있는 건 팔레트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걸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한 번 해보실래요?”
“네.”
내가 버튼을 누르고 펜으로 그리자 허공에 형광의 선이 그려졌다.
“형아. 선 그려져써.”
“그러네. 시하도 뭔가 그려볼래?”
“아아.”
시하가 허공에 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평면과 다르게 3D 공간의 작업은 처음이라서 뭔가 평소와는 다른 실력으로 드러났다.
“어때?”
“이상해.”
“푸흡. 안 익숙해서 그런 걸 거야. 이것도 하다 보면 괜찮을걸.”
왼손에 있는 팔레트에 기능이 너무 다양했다.
어찌 된 게 포토샵만큼 기능이 많아 보였다.
브러쉬를 바꾸는 건 물론이고 제도적인 부분과 참고할 그림을 불러오기, 좌우대칭 선 만들기 등등.
‘이거 진짜 어린애들이 그림 그려서 전시해주는 건가? 기능이 뭐 있는지도 익숙해지기 힘든데?’
아무래도 여기 프로그램은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 같았다.
“아? 반짝반짝.”
“응. 그려진 게 반짝거리네.”
갑자기 시하의 손이 빠르게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입체적으로 1인용 소파를 그려 넣더니 그 위에 앉은 산타를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빠르게 그려서인지 퀄리티가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그 형상은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이렇게 빨리 적응한다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의자에 앉아있는 산타였다.
동그란 안경을 썼으며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연필을, 왼손에는 편지지를 들고 있었다.
“형아. 산타 편지 써.”
아무래도 오두막집을 고른 이유가 산타가 시하에게 전해준 편지 쓴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화려한 트리보다 산타가 시간 내서 편지를 쓰는 걸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경이 따뜻하듯이 시하의 생각도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애들과 다르다.
뭔가 특출남의 다름이 아니라 생각의 따뜻함과 우선순위가 다른 느낌이었다.
어쩜 이렇게 골라도 시하와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는지 신기했다.
“정말 잘 그리네.”
그때 뒤에서 직원이 탄성을 뱉으며 말했다.
“와. 진짜 잘 그려요. 어떻게 이런 걸 그리지? 엄청 어려 보이는데.”
“하하.”
“진짜 선이랑 그림은 SD 캐릭터처럼 단순해 보이는데 이게 3D로 그린 거잖아요. 공간에 대한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나는 VR 기기를 벗었다.
딱히 내가 할 일은 없었으니까.
뒤에 있는 직원의 호들갑 소리가 조금 그렇긴 했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원래 그림을 좀 잘 그리거든요. SD 캐릭터 같은 걸 특히 많이 그려요.”
“완전 재능있는데요. 혹시 괜찮으면 저희 미술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할 때 참여해 주실 수 있나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정말 많이 하거든요.”
“아, 그런가요?”
“네. 여기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고 전시를 할 수 있게 마련하는 공간이거든요. 물론 작가님들도 여기 전시를 하긴 하세요.”
“그건 그렇겠죠.”
어린이미술관이라고 해도 1년 내내 딱 어린이 작품만 전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원 면에서도 자금 면에서도 작가를 개입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뭐 시간 나고 시하가 원한다면 참여해 볼게요.”
“네네. 프로그램 정보는 저희 사이트에서 늘 올라오거든요. 가입하시면 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그럴까요?”
“네네.”
사실 이런 곳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꼭 미술 쪽으로 가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의 놀이로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가입했다.
메일 역시도 승인한 상태.
“이제 프로그램 정보가 있으면 메일로 날아오실 거예요.”
“그런가요.”
직원이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별 관심이 없으신가요? 여기 오신 어머니들은 엄청 관심 가지던데. 꼭 보내고 싶다고 난리라니까요.”
“하하. 전 시하가 원하면 가게 할 거라서. 일단 보고 판단할게요.”
“네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정말로 시하에게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다.
그 왜…. 솔직히 지금 3살 그림 실력이라기에는 뭐 하지 않은가.
다른 또래보다 실력 면에서 혼자 붕 떠 있으면 조금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
먼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형아. 다 해써.”
“어? 어, 그래. 다 했어?”
“아아.”
시하가 고글을 벗었다.
눈이 빼꼼 나오며 이마에 VR 기기가 얹혀 있다.
너무 귀엽다.
“그럼 갈까?”
“아아.”
뒤에 있던 직원이 말했다.
“이건 시하의 이름으로 전시될 거예요.”
“오!”
“이걸 저장하고 곧바로 전시실로 데이터를 보내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럼 바로 볼 수 있는 건가요?”
“한 30, 40분 정도 기다려주시면 아마도? 영상으로 녹화본을 따서 작업해야 해서요.”
“오! 여기 구경하고 있으면 금방 되겠네요.”
“네. 천천히 즐기다 가세요. 전시는 이번 연도 끝날 때까지 할 거니까요.”
“네.”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무사히 프로그램을 마쳤다.
***
한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어린이미술관을 방문했다.
정확히 크리스마스날에 한 번 방문해서 VR 그림을 그렸다.
전시되는 건 내일 보러 오기로 하며 기대를 품었다.
그만큼 아이는 자신이 있었다.
“아빠. 내가 애들 중에 제일 잘 그렸겠지?”
“당연하지. 선생님들도 우리 도하를 엄청 칭찬했잖아. 그치?”
“응.”
도하는 씨익 웃었다.
예전에 미술을 가르치러 오시는 분이 있었는데 재료를 그리라고 했다.
도하는 그걸 가지고 그대로 부쉈다.
그리고 이걸 그렸다.
그 후부터 선생님들은 입에 칭찬이 자자했다.
틀을 깨는 아이의 창의적인 발상이 정말 놀랍다고.
그 이후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말로 자신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부서진 눈사람을 VR로 그렸는데 정말 재밌던데. 아빠도 봤지? 사람들이 그거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럼. 그럼. 어제도 오늘도 눈사람을 부쉈잖아.”
“응. 하하. 재밌었어. 거기 가게 앞에 애들이 그냥 놓고 간 게 행운이야.”
“그러게. 아빠도 스트레스 확 풀었다니까.”
아빠와 아이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VR 전시관에 들어섰다.
안에는 공간이 두 부류로 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작가님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
다른 큰 대는 아이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들과 아빠는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도하는 주변의 작품들을 슬쩍슬쩍 바라보았다.
이름과 나이.
정확한 나이는 적혀있지 않고 유아, 초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다들 열심히 해야겠네.”
도하가 콧대를 높이며 다른 아이들의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이 나왔다.
[제목 : 부서진 눈사람.]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 눈사람의 머리는 반쯤 부서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래 동그란 눈덩이는 움푹 파여 있으며 앞뒤로 깎아 내려진 게 표현되었다.
배경의 화려함과 눈사람의 부서짐의 안타까움이 대비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디스플레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와. 이건 잘 그렸네.”
“뭔가 소름 돋는데?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도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였다. 자신이 바라는 사람들의 무서움.
아빠도 자랑스러운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충분히 자기 작품을 바라보고는.
“아빠. 다음으로 갈까요?”
“그래. 뭐 도하 작품을 봐서 볼 게 있나 싶네.”
“히히.”
그렇게 걷는데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래 멈춰있는 디스플레이 쪽이 있었다.
“어?”
도하랑 아빠는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색칠된 산타가 있었다.
시혁이 시하의 그림을 볼 때는 선화로만 표현된 것밖에 못 봤다.
시하는 형아가 직원과 대화하며 말하는 사이에 색을 빠르게 넣은 것이다.
비록 현실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색감은 너무나 따뜻하고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편지를 보는 산타의 눈동자에는 벽난로의 불빛이 살짝 붉게 어려 있었고, 앉은 1인용 소파는 무척이나 푹신해 보였다.
사람들이 말했다.
“와. 이거 진짜 대단하다.”
“엄청 따뜻한 그림인걸.”
“아니. 나이 봐. 유아가 그렸다던데?”
“대박! 천재네.”
도하는 떨리는 눈동자로 디스플레이를 쳐다보았다.
천천히 360도로 보여주기도 하고, 가까이 확대도 해 주는 영상.
선화는 몰라도 확연히 색감의 영역에서 엄청난 감각이 느껴졌다.
재능이 있는 자신이 보니 안다.
저 찬란한 재능이 얼마나 엄청난지.
솔직히 말해서 그 색감에 압도당했다.
“말도 안 돼.”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처음으로 절감했다.
천재는 자신뿐이 아니다.
그리고 심지어 자신보다 더 어렸다.
유아…….
사람들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편지에 도배된 글자는 대체 무슨 뜻이지?”
“글쎄? LSH? 영어이기는 한데 무슨 약자인지…….”
도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심지어 영어를 쓰는 유학파라니…….
이미 상상 속에서는 시하가 미국에 다녀와 미술도 배운 아이가 되었다.
전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