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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 (248/500)

248화

훌쩍훌쩍.

하나의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다.

승준은 입술을 말아쥐고 참고 있었고.

“남자는 세 번 운다고 아빠가 말했어.”

그거 다 거짓말이야. 울고 싶을 때 울어.

나는 둘도 걱정이 되었지만 시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우는 건 아니겠지?

“뽀둑이…. 어디써? 어디 가써…….”

털썩.

땅바닥에 손을 짚고 충격을 받고 있었다.

뭔가 귀엽다. 그런데 동시에 화가 난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잘 놀다가 패닉 상태로 변해버렸으니까.

그렇지만 때로는 이런 날도 있는 인생이기에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승준 엄마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식으로 위로를 하고자 한다.

“시하야.”

“아?”

나는 싱긋 웃으며 부서진 눈사람에게 다가갔다.

미술에 별로 소질은 없지만 간단한 거라면 만들 수 있다.

살며시 부스러기들을 꼭꼭 손에 쥐고 눈사람이 아닌 다른 것을 만들었다.

몸통과 머리를 연결.

“자. 봐봐.”

“오리?”

“응. 오리야. 오리. 뽀둑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

힘든 일이 왔을 때 울기보다는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가야 할 때가 있다.

그저 제자리에서 운다고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야 이 시련을 당당히 맞서 나가겠다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사라진 눈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다시 태어나게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한다.

언젠가 이보다 더한 사람도 만날 거기 때문에.

순간 화나고 울기도 하겠지만.

그다음에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한 거 아니겠나.

“뽀둑이는 다시 태어났어. 그렇지?”

“아아. 마자.”

시하가 오리를 손에 쥐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선망에 가득 차 있다.

“형아. 대단해.”

“큭큭. 그래.”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 모습이 과연 맞는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느새 승준과 하나도 내 모습을 봤는지 눈사람에게 다가갔다.

“나도 다시 만들래.”

“하나도. 다시.”

“시하도 도울래.”

우리는 가게 앞에서 쪼그려 앉아서 다시 눈사람을 만들었다.

뒤에 있던 백동환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눈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본 적이 있냐며 묻고 다녔다.

아무래도 백동환 역시도 화가 났나 보다.

“형님.”

“응. 동환아. 이제 괜찮아. 애들이 다시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만 묻고 다녀도 돼.”

“알아냈습니다.”

“그래. 알아냈…. 응? 알아냈다고?”

“네.”

“누가 그랬대?”

“어떤 아이랑 아빠가 그걸 보고 그냥 차버리며 파괴했다는데요?”

“뭐? 무슨 그런 돌아…….”

나는 시하를 힐끗 보았다.

빤-히-

손은 바삐 만들고 있고 시선을 나를 보고 있다.

말조심하자. 말조심.

“도라이버가 다 있어.”

“네? 도라이버요?”

갑자기 드라이버가 왜 나오냐는 표정이다.

사실 돌아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고.

전에 시하에게 드라이버 하나면 다 해결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서 빠르게 비슷한 말로 대체했을 뿐이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시하가 보고 있잖아.”

“아, 그렇네요. 지금은 가서 못 찾을 것 같네요.”

“찾으면 뭐 어쩌게. 싸움밖에 더 되겠어?”

“그건 그렇죠. 그래도 어떤 놈인지 얼굴은 보고 싶어서.”

“널 보면 오히려 그쪽이 기겁하지 않을까?”

“전 순진한 얼굴이라서 오히려 시비 털립니다.”

“거짓말하지 마. 몸이 안 순진하잖아. 몸이!”

“믿음이 부족하시네요.”

믿을 말을 해야 믿어주지.

아무튼, 아이들이 다시 웃음을 찾아서 다행이다.

“하하! 난 사커공으로 다시 만들었다! 역시 공으로 만들어야 했어. 눈사람으로 만드니까 차이는 거야.”

승준아. 축구공도 차라고 만든 거 아니니?

“하나는 이렇게 삼각형으로 치마를 만들어써. 공주님이야. 공주님. 이제 보호받아.”

과연 그럴싸한데?

하지만 그런 돌아이가 다시 파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다들 품에 얼싸안고 있다.

그리고 시하는.

“형아. 시하 빙수 만드러써. 뽀둑이 밥.”

“오! 그래? 잘 만들었네!”

백동환도 옆에서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호들갑을 떨었다.

“와. 진짜 빙수처럼 맛있게 생겼다. 츄릅. 침 넘어가네. 시하 진짜 대단하네. 천재야. 천재.”

시하가 순진한 눈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빙수를 푹 하고 펐다.

“백동 형아. 머글래? 마시써 보여?”

“어?”

나는 그 말에 푸흡 하고 웃음보가 터졌다.

아니, 말을 조심해야. 말을.

“이거 시하가 만드러써. 백동 형아 주께.”

“어. 정말 고마워.”

입으로 먹는 척을 하며 바닥에 버렸다.

그런데 그걸 시하가 봤다.

“백동 형아. 시하 준 거 버려써? 거지 말 해써?”

“흠흠. 아니야. 나 턱에 구멍이 뚫려서 그래.”

“!!!”

시하가 정말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옆에 있는 승준은 ‘역시 괴물이야.’라며 말했고, 하나는 ‘구멍 없는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동 형아.”

시하가 백동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옷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하하. 걱정해 주는 거야?”

“라면 어디써?”

아무래도 라면 흘린 자국을 찾나 보다.

“백동 형아. 거지 말 해써?”

“…쓰읍. 시하 똑똑한대요?”

“네가 멍청한 거 아닐까?”

“너무하십니다. 형님!”

어쨌든 백동환 덕분에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이렇게 웃음을 준 너에게 감사한다.

***

12월 26일.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다음 날이 되었다.

하지만 요새는 대부분 26일까지 3일간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들뜬 분위기가 여실히 남았다.

이른바 에프터 크리스마스.

뭐, 리마인드 크리스마스도 있다고 하는데 정말 별것이 다 있는 거 같다.

그냥 있는 말 없는 말 다 갖다 붙이는 거 아닌가 싶은데.

“시하야. 오늘 어린이미술관 가는 거 기억하지?”

“시하 아라.”

정말 알고 있는지 이미 시하는 등에 페페 가방을 메고 있다.

음. 준비를 잘 하긴 하는데 뭔가 어설프다.

“잠옷 말고 딴 걸 입어야 나가지.”

“아?”

시하가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아코!”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하고 쳤다.

마치 깜빡해서 실수했다는 듯이 말이다.

저건 또 어디서 배웠을까? 정말 귀엽단 말이지.

“옷 갈아입을까?”

“아아.”

우리는 집을 나섰다.

바로 앞에서 백동환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차를 타고 어린이미술관으로 출발.

거기서 승준과 하나랑 또 만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와. 재밌는 곳이네.”

“그렇죠?”

“어린이미술관이라서 좀 독특한 것도 있고.”

“네. 여기서 애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미술관 전시를 해주고 있어요. 거기에 미술관에 후원하시는 큰손분들도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렇죠. 혹시 알아요? 한국에서 세계 제일의 미술가가 탄생할지? 그게 아니더라도 창의력을 키워주는 데 좋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래.”

보통 한국은 입시 미술이 주이긴 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다양성의 면에서 좀 떨어지게 되는 건 사실이다.

획일적인 건 양면성을 띠는 법이니.

그리고 어릴 때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다.

정확히는 22살까지 경험하고 배웠던 거라고 했던가.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씨앗을 어떻게 만드는지가 중요하다고.

그 시기를 놓친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 거라는 것도.

어쩌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화가는 이름을 떨치는데 시간이 많이 드는 건가.’

어쩌면 그 이후부터는 씨앗을 틔우고 솜씨를 완숙하게 해나가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고 뭐가 맞는지 모를 길이다.

그렇다고 시하에게 미술을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지금은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직업과 일로 삼으면 순수한 재미는 퇴색되는 법이니.

“그런데 어디로 가면 돼?”

“아! 저기로 가면 됩니다. 근데 아직 시간이 있어서 다른 곳도 둘러보시죠.”

“뭐 재밌는 거라도 있어?”

“당연하죠. 어제 크리스마스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연히 오늘 볼거리는 산타 마술사!”

“어째 네가 더 신나 하는 거 같은데?”

우리는 다 같이 산타 마술 공연을 보러 갔다.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자 산타 모자와 옷을 입은 마술사가 보였다.

“허허허. 여러분. 산타 마술사예요. 전 마술을 여러분에게 선물하러 왔습니다.”

“어?”

진짜 할아버지인 모습이 보였는데 어디서 많이 낯이 익었다.

“형아. 차차 할부지.”

“어? 차차? 아!”

강아지 차차.

누군가 싶었는데 산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할아버지였다.

왕년에 마술사였던 그.

여기서 이런 이벤트성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가 싶었다.

사실 보면서 긴가민가 싶었는데 시하 역시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와. 할아버지 마술 잘하는데 그치?”

“아아. 우유 마시써.”

“푸하하. 와! 할아버지! 승준이 여기 있어요!”

“하나도 이써요!”

“아아. 시하도!”

아이들이 의자 위에 일어나서 손을 흔들자 할아버지도 눈치챘는지 팔로 크게 하트를 그리셨다.

눈웃음을 지으며 허허허 웃으셨다.

“아이들이 오늘 절 많이 좋아하네요. 자자. 진정하시고 거기 자리에 앉읍시다.”

“하하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웃음을 보냈다.

뭔가 시선이 주목되어서 부끄럽다.

너희 신나는 건 알겠는데 이제 좀 앉아줄래?

“허허허. 그럼 오늘은 여러분에게 신기한 마술 하나를 보여주겠어요. 여기 산타 선물을 담는 자루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선물 자루를 보여주었다.

뒤로 뒤집으며 탈탈 털었다.

“자, 여기 아무것도 없죠?”

“네!”

“큰일이네요. 오늘 분명 여러분에게 줄 선물을 들고 왔는데 말이죠. 하지만!”

자루를 쥐고 마술 지팡이로 톡톡 치더니.

“이러면 선물이! 어이쿠야!”

푸드덕.

“비둘기가 나왔네요. 왜 선물이 아니라 비둘기가 나왔지?”

“와하하.”

오히려 마술사의 당황스러운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마치 한 편의 콩트를 보는 것 같았다.

“허허허. 이 비둘기는 편지를 가져다주는 친구라서 여러분에게 선물을 드리지 못하겠네요. 어디 보자. 선물을 만들려면 여러분들 중 한 명의 도움이 필요하겠네요. 자. 도와주실 어린이 여러분 있나요?”

여기 있는 전원이 손을 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 정도만 손을 든다.

하긴 이런 무대에 서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런 게 성향 차이인가?

“그래. 거기 축구 잘하게 생긴 아이.”

“아싸!”

옆에서 승준이 기분 좋게 의자에서 내려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름이 뭐죠?”

“오승준이요!”

“그래요. 승준 어린이.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어떤 거요?”

“바로 이 자루에 선물이 나오도록 마법 지팡이에 기운을 보내주는 겁니다.”

“어떻게요?”

“승준 어린이는 제일 잘하는 게 뭐죠?”

“사커요!”

“그래요. 그럼 이 지팡이를 힘껏 차세요. 마법이 걸리라는 마음으로.”

“네!”

승준이 발로 지팡이를 뻥 하고 찼다.

할아버지는 손에 있는 지팡이를 능숙하게 돌리며 반동을 최소화했다.

이제는 손가락으로 휙휙 돌리는 모습을 보며 승준이 ‘우와!’ 하며 감탄을 뱉었다.

“자. 이제 승준 어린이의 파워가 지팡이에 들어갔네요. 그럼 마술 지팡이를 가지고 자루를 툭툭 치면!”

지팡이가 자루를 두드린다.

할아버지가 손을 넣어 뒤적이며 하나의 선물상자를 꺼냈다.

승준에게 건네준다.

“자, 이건 집에 가서 보세요.”

“하하! 네! 아싸. 자리 가서 봐야지.”

할아버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 웃는다.

아무래도 예상했나 보다.

하긴 마술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어린이를 봤을까.

다 하는 행동이 똑같지. 뭐.

“못 받은 어린이들은 걱정하지 말아요. 이 자루에 다 들어 있으니까. 여기 예쁜 언니가 끝날 때 다 줄 겁니다.”

할아버지가 여기 직원에게 자루를 건넸다.

그러고는 다른 마술을 하려고 했다.

“어린이 여러분.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들어와서 선물을 전해 주는지 궁금하죠? 사실 사라지는 마술을 할 수 있어서 선물이 뿅 하고 들어간답니다.”

어떤 아이가 ‘에이~! 거짓말!’ 하며 외쳤다.

할아버지는 허허허 하며 웃었고.

“그럼 보여주겠습니다. 혹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사람을 없애겠어요.”

할아버지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거기 잘생긴 청년이 도와줬으면 하는데.”

“형아. 파팅.”

나는 하하 웃으며 무대 위로 올랐다.

“자. 여기 상자에 들어갈 겁니다.”

“아, 네.”

나는 이 마술을 알고 있다.

뭐 사라지는 마술이겠지.

“자. 들어가세요.”

머리, 상체, 다리가 보이도록 세 부분으로 문이 나뉘는 상자.

거기에 들어갔다.

어두컴컴함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상자 뒤에서 직원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속삭여온다.

자리를 피하게 하는 장치가 있구나 싶었다.

“자. 그럼 여기 있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하나, 둘, 셋.”

똑똑.

지팡이로 치는 소리.

문이 열리며 아무도 없다는 게 드러나겠지.

“형아!”

“어? 시하야.”

시하와 백동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할부지. 형아는?”

“허허허. 다른 곳에 갔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냐. 여기.”

“허허허. 없다니까.”

“할부지.”

“응? 왜 그런 눈으로 보니? 설마 의심하는 거니?”

시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라이버 져. 도라이버.”

“네?”

“시하. 형아 꺼내.”

나는 뒤에서 웃음을 꾸욱 눌러 참았다.

아니. 내가 예전에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드라이버는 사실 만능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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