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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247/500)

247화

급하게 쌍둥이들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시하는 백동환에게 받은 목도리를 착용하고 포근한 눈을 밟았다.

밖은 어느새 눈이 그쳤다.

마치 나가서 놀라고 종용하듯이 말이다.

포옥.

“형아!”

시하가 눈을 밟는 느낌이 신기한지 나를 올려다보았다.

살짝 다리를 들어서 발자국이 없는 곳에 살며시 놓는다.

포옥.

“형아!”

형아가 감탄사니? 아니면 정말 나를 부르는 거니.

나는 거기에 대한 답을 해줬다.

“왜? 신기한 느낌이야?”

“아아. 뽀둑이야. 뽀둑이야.”

“푸흡. 아. 뽀둑이야? 이름 정말 잘 짓네. 어때? 눈 밟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재미써.”

뽀짝뽀짝 걸어나면서 자신이 새겨놓은 발자국을 휙 돌아보았다.

다리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마 신발 자국을 흐트러지게 만들고 싶지 않은 거겠지.

“형아. 빨리.”

“그래.”

살며시 장난기가 올라왔다.

앞으로 나아가며 시하가 남긴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올렸다.

푸욱.

점점 지워 나가며 어느새 시하의 발자국이 없어졌다.

시하가 돌아본다.

“아?”

“시하 발자국이 형아 발자국으로 바뀌었네?”

“!!!”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냐.”

“응?”

“형아 시하 따라 해.”

오호. 그렇게 생각하시겠다는 거지?

시하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그런 표정을 짓냐.

“형아. 잘 따라와.”

“알겠어.”

졸지에 시하를 계속 따라가게 되었다.

뒤에는 백동환이 나타났다.

“그럼 나도 해야지!”

푹! 푹! 푹!

확실히 몸이 커서 그런지 발도 엄청나게 크다.

저거 신발 치수가 몇이지? 천쯤 되나?

순식간에 내 발자국이 지워졌다.

“백동 형아. 아냐. 하지 마.”

“아니. 난 왜!”

백동환이 상처받았다는 표정으로 옆으로 비켜섰다.

저러면서 말은 잘도 듣는다.

“이거 형아 시하 꺼야. 백동 아냐.”

발자국에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어차피 없어질 흔적인데 말이다.

백동환이 팔짱을 꼈다.

“나도 끼워줘. 내가 목도리 선물도 줬는데.”

“아냐.”

아주 단호박이네.

나는 백동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포기해. 넌 이 놀이에 껴줄 수 없으니까.”

“형님. 왜 이렇게 기뻐 보이십니까.”

“내가?”

“그럼 아닙니까?”

“전혀 아닌데?”

“맞는 거 같은데요.”

“그건 그렇고 알고 있었지만 너 발 엄청 크네.”

“말 돌리시기는.”

“뭐라고?”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교를 향해 걸었다.

어린이집으로 모이기로 약속했다.

건물의 문은 열리지 않지만 그 앞의 공터는 열려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들락날락할 수 있다.

“어? 시하야. 승준이랑 하나다.”

“어디?”

“저기.”

“승준! 하나!”

시하가 뒤늦게 발견했는지 도도도 달려간다.

어제도 봤으면서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다.

쌍둥이들과 시하가 다시 한번 얼싸안는다.

저기요. 여기 가족 상봉입니까?

아무래도 새로운 세상이 보여서 기쁜 게 아닐까 싶다.

승준이 말했다.

“하하. 시하야. 우리 눈싸움하자.”

“아니야. 눈사람부터 만드러.”

나는 승준 엄마랑 인사를 나누고 세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그럼 이건 어때? 눈싸움 대결을 위해 먼저 눈사람 대장을 만드는 거야.”

“눈사람 대장?”

“응. 팀을 나눠서 대장을 지키는 게임이야. 어때? 재밌겠지?”

“아아! 시하 할래!”

시하는 내 말이라면 무조건 찬성이다.

승준도 흥미를 느꼈는지 눈을 반짝인다.

하나는 눈사람을 먼저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고.

이렇게 둘 다 하게 하면 되지.

“자, 그럼 아주 잘 지킬 수 있는 대장 눈사람 만들자!”

“와아!”

다들 쪼그려 앉아서 손에 눈을 뭉쳤다.

시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자그마한 손으로 꼭꼭 눌렀다.

“시하야. 어느 정도 만들었으면 이렇게 굴리면 되는 거야.”

“굴려?”

“응.”

시하가 조그만 눈을 살며시 굴렸다.

앞으로 한 발자국. 데구르르. 또 한 발자국. 데구르르.

“푸흡. 시하야. 여기 가만히 앉아서 원으로 굴리면 되잖아.”

“아?”

승준이 말을 받았다.

“알았다! 공처럼 굴리면 돼.”

“아, 잠깐만!”

승준이 만들어둔 눈덩이를 뻥 하고 찼다.

퍽.

흩날리는 눈덩이들.

“헉!”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조각나 버린 눈덩이를 보던 승준의 눈이 한 차례 떨린다.

“하. 하. 이게 바로 아이스슛이다! 전부 얼어버렸어!”

응. 아니야.

승준아. 현실을 직시해. 다시 만들자.

하나가 그런 승준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오빠 바보야?”

“아니거든! 다 알고 한 거거든!”

“대장 눈사람 오늘 안에 만들 수 이써?”

“있다고!”

나는 승준에게 다가가 눈덩이를 쥐여줬다.

“이걸로 만들자. 알았지?”

“응? 와! 시혀기 형아. 고마워.”

하나가 그걸 보더니 ‘앗!’ 하며 자기 눈덩이와 승준의 눈덩이를 바라보았다.

“하나도 가지고 시퍼.”

“응? 하나야. 똑같은데? 대신에 내가 좀 도와줄까? 여기 이렇게 빨리 굴리면 엄청 커질 거야.”

나는 하나 대신 빠르게 눈덩이를 키워줬다.

하나 역시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형아!”

시하가 내 등에 폭 안겼다.

“응?”

“시하도. 시하도.”

“하하. 알았어. 같이 눈사람 만들자.”

그렇게 우리는 눈사람을 만들었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꽂았고, 돌멩이로 눈코입도 만들었다.

“이제 두 개가 완성되었으니 눈싸움을 해볼까?”

“아아!”

눈덩이를 그렇게 크게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아직도 기운이 넘쳤다.

“그럼 팀을 정하자.”

형아팀. 이시혁, 이시하, 오하나.

운동팀. 백동환, 오승준, 승준 엄마.

“이 눈덩이로 눈사람을 공격하는 거야. 눈사람이 부서지면 끝나는 거지.”

그렇게 시작된 경기.

시하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눈덩이를 꼭꼭 눌러 담았다.

저 멀리 있는 눈사람을 맞추기 위해 도도도 달려갔다.

앞에는 커다란 백동환이라는 방패가 눈사람을 지키고 있었다.

“시하야. 눈사람을 맞출 수 없을걸.”

시하가 두리번거리다가 도도도 반원을 그리며 크게 돌았다.

백동환 역시 그런 시하를 따라 눈사람 주위를 돌았다.

“백동 형아. 가만히.”

“아니. 가만히 있으면 눈사람이 맞잖아. 그럼 안 되지.”

“시하 공 엄청나. 던지면 아파.”

“하하하!”

“시하 야구 배어써.”

“오! 그래?”

“아아.”

맞으면 아프다고 비키라는 말이다.

그런 귀여운 협박에 당해줄 백동환이 아니었다.

“던져.”

“아아!”

시하가 진짜로 던졌다.

눈덩이가 포물선을 그리더니 백동환의 옷에 맞았다.

“포크볼!”

“크흑. 굉장하다.”

더 재밌게 놀도록 장단을 맞춰 주었다.

시하가 자신의 손을 보더니 ‘엄청 세게 던졌나?’ 하는 착각을 했다.

그때 승준이 ‘아악!’ 하면서 외쳤다.

“거인 형아. 눈사람 맞고 있잖아!”

“응?”

백동환이 시하에게 정신이 팔려있을 때 하나가 눈덩이를 들고 쏙쏙 던지고 있었다.

이미 눈사람은 애꾸눈이 되었다.

“앗! 양동작전이구나!”

“백동 형아. 포크볼이야.”

“아니. 이건 포크볼이 아니야…….”

“아냐. 이케이케 가.”

손가락이 일직선을 그리다가 반원을 추가했다.

말 그대로 포크 모양.

저 그림대로라면 백동환은 뒤통수를 맞았을 것이다.

“아, 그런 모양으로 가면 맞지. 근데 진짜 포크 모양의 볼이라고 하는 거야?”

정확히는 포크볼이 아닌 포크 작전이었다.

백동환은 시하와 하나에게 완전히 당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승준이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시혁이 형아. 각오해.”

“응. 열심히 던져.”

“간다!”

승준이 발밑에 한가득 만들어둔 눈덩이를 던졌다.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던졌는데 눈사람은커녕 내 몸만 두드렸다.

“눈사람 못 맞추겠는데?”

“아니야. 엄마!”

이번에는 승준 엄마가 옆에서 튀어나와 눈사람을 향해 던졌다.

팍!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서 막았다.

그 타이밍에 맞춰 눈덩이를 던졌다.

역시 운동신경이 뛰어난 승준이었다.

하지만.

“악! 발로 막았어!”

나는 발을 쭉 뻗어서 그대로 차버렸다.

“형아! 머시써!”

시하야. 나한테 집중하지 말고 어서 눈사람을 쓰러뜨려.

“이익! 다시! 엄마!”

엄마를 부르는 승준의 뒤통수에 눈덩이가 꽂혔다.

“악!”

“헤헤! 오빠 맞았다!”

“야! 오하나!”

순식간에 쌍둥이들의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승준 엄마랑 그저 어색하게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살짝 눈을 돌려 시하를 보자 백동환의 마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아, 이러면 힘들겠네.’

아무래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뭐,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대결보다는 눈싸움이 주목적이었으니까.

“지금부터 눈덩이 맞으면 아웃이야!”

새롭게 추가된 룰.

그와 동시에 백동환이 퍽 하고 눈덩이를 맞았다.

“앗! 형님! 치사합니다!”

“하하하.”

다 노리고 있었다.

퍽.

“시혁 씨. 눈 맞았네요.”

“아…….”

나도 똑같이 당했다는 게 문제겠지만.

“형아. 탈락이야?”

저 멀리서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눈을 끔뻑댔다.

***

눈싸움은 어느새 운동팀의 승리로 끝났다.

내가 탈락하면서 시하가 전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뭐, 알다시피 하나는 승준과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눈사람 만들기.

아까 해서 끝난 줄 알았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한다.

그렇다고 대결했던 것처럼 크게 만들지는 않았다.

“형아. 시하 다 해써.”

“응. 다했어? 눈사람이 작아서 귀엽네.”

“뽀둑이야. 뽀둑이.”

“아침에 말한 뽀득이가 눈사람이 되었네?”

“이거 가져가.”

“응?”

“시하가 키울래.”

아무래도 눈사람을 가져갈 마음이 큰가 보다.

어쩔 수 없이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이 너무 예쁘잖아.

“그래. 집 갈 때 뽀득이 가져가자.”

“정말?”

“응. 정말이지.”

시하가 기쁜지 뽀득이를 번쩍 들었다.

쌍둥이들도 자기 눈사람을 옆으로 끼고 승준 엄마를 쳐다보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묻고 싶은 질문을 알 것 같았다.

승준 엄마도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이 더더욱 신이 났다.

나중에 사라질 눈사람이지만 지금은 저렇게 기뻐하게 내버려 두자.

“시하야. 그건 그렇고 좀 춥지?”

“아냐. 더어.”

“어? 그렇지. 그렇게 뛰어놀았으니 더울 만하지. 근데 땀나면 나중에 더 추워질 거거든.”

“왜?”

“바람이 막 식혀서 몸을 차갑게 해. 그러기 전에 엄청난 곳 가자.”

“엄청나?”

시하가 거기가 어디지?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쌍둥이들도 어디 갈지 궁금한 모양.

“응. 바로 라면집!”

“라면?!”

“응. 눈이랑 놀고 나서 먹는 라면이 그렇게 꿀맛이거든. 몰랐지?”

“아아.”

다른 아이들도 라면이 생각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는 눈사람을 가지고 근처 라면집으로 향했다.

가게 밖에 눈사람을 쪼르르 놓았다.

마치 사람들의 반기는 모양새라 너무 귀여웠다.

“들어가자.”

라면집에서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나왔다.

따끈따끈한 김이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군침이 돌았다.

분명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 이렇게 놀다 보면 배가 고프다.

바로 후루룩 먹고 싶지만 시하를 챙겨줘야지.

“시하야. 뜨거우니까 후후 불어줄게.”

나는 후우후우 불어준 뒤에 시하의 입에 넣어줬다.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마시써!”

“많이 먹어.”

“아아. 형아도.”

시하를 한 입 먹이고 나서야 이제 입에 넣는다.

그러던 와중 승준 엄마랑 눈이 마주쳤다.

서로 하는 행동이 똑같아서 괜히 머쓱한 웃음을 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백동환이 말했다.

“와. 형님. 면이 벌써 별로 없습니다.”

“넌 뜨거운 것도 엄청 잘 먹네.”

“제가 한 면치기 하죠. 하하.”

역시 저런 몸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았다.

후루룩.

입안에 라면의 풍미가 가득 들어찬다.

콧김으로 나오는 국물 맛과 꼬들꼬들한 면이 입에서 부서지며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국물 한 모금이 식었던 몸을 다시 데우며 속까지 가득 차게 한다.

크으. 이 맛이지.

“형님. 그래서 내일 가는 거 확실하죠?”

“아, 알았다니까. 간다니까.”

“다행이다.”

승준이 물었다.

“시하야. 내일 어디가?”

“시하 내일 그림 그리러 가.”

“정말? 나도 갈래.”

“가치 가. 가치.”

나는 ‘응?’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같이 약속을 잡냐.

승준 엄마가 궁금해하며 물어봐서 어린이미술관에 간다고 이야기해 줬다.

그 말에 옆에 있는 하나도 가고 싶다고 말했고.

이건 사전에 예약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는데 옆에 있는 백동환이 구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VR 그림을 그리는 것만 사전신청을 받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다들 같이 가게 되었다.

뭐 상관은 없겠지.

“다 먹었으면 이제 갈까?”

가게를 나와서 눈사람을 봤는데.

“어?”

눈사람이 전부 파괴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로 걷어찬 것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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