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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245/500)

245화

다들 이렇게 내 옷에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그냥 스리슬쩍 넘어가려고 하는데 소용이 없었다.

그래. 어차피 보여줄 것 보여주자.

그리 이상한 디자인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어디 가서 입고 다니기에는 조금 그렇긴 했다.

시하도 이 옷을 보며 참으로 좋아했다.

같은 루돌프가 아닌데도 말이다.

지이익.

롱패딩의 지퍼가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왕이 외투를 벗듯이 선생님이 스르륵 뒤쪽으로 오더니 시중을 들었다.

벗기가 편했다.

아니, 저기요. 선생님? 왜 뒤에서 그렇게 오시나요?

그렇게 어이가 없는 와중에 하나가 감탄을 터뜨렸다.

“와!”

뒤에 있는 선생님도 같은 감탄을 터뜨렸다.

무슨 말이냐면 앞뒤로 볼 수 있단 말이다.

옷에 관해 설명하자면 기본적으로 상의가 빨간색이다.

어깨에서부터 손목까지 옆으로 밧줄 하나가 수놓아 있다.

“썰매다!”

그렇다.

앞은 썰매의 앞 그림이. 뒤에는 썰매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지는 그냥 검은 슬랙스.

이로써 썰매가 완성되었다.

뭔가 빠진 것 같다고?

“푸흡. 아, 알겠다. 저 흰 털모자는 선물 보따리죠?”

“네. 맞아요.”

“형아!”

시하가 해맑게 모자를 주었다.

나는 그걸 받아서 그대로 썼다. 썰매 위에 선물 보따리가 얹어진 순간이었다.

루돌프와 단짝으로 연결된 썰매.

그래서 시하가 좋아했던 거다. 말 그대로 ‘시하랑 같이’니까.

조건은 성립되었다.

“형아. 합체!”

시하가 두 팔을 벌렸다.

“넌 참 해맑구나.”

“시혁 씨. 속마음이 흘러나왔어요.”

“앗!”

아무튼, 시하가 원하는 것을 해주자.

내가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렸다. 시하 루돌프에 썰매가 장착되었다.

우리는 기차놀이를 하듯이 앞으로 걸었다.

시하는 뭐가 그리 좋은지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쌍둥이가 그런 기차놀이를 보며 그대로 참가했다.

“시하야. 나도 하자.”

“아아. 승준!”

“하나두!”

“아아. 하나!”

그렇게 시하의 앞에 두 아이가 연결되었다.

그걸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기차에 합석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기차놀이가 참으로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자. 이제 끝!”

아이들도 아쉬워하지 않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다.

시하만이 ‘벌써?’ 하는 표정으로 미련이 남은 얼굴이다.

그럼 언제까지 하려고 했어?

“아무튼, 이런 옷이에요.”

“시혀기 형아. 머시써.”

거짓말하지 마. 승준아.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거 검은 포장지에 숨겨져 있던 거라고.

“시혀기 오빠. 머시써.”

하나까지 합세하자 이 옷이 정말 멋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진, 진짠가? 이게 바로 어린이들에게 통하는 힙한 패션인가?

“하나도 시혀기 오빠가 사준 산타 옷 입어써. 어때?”

“아주 예뻐. 공주님보다 산타가 더 예쁜걸.”

“헤헤.”

하나가 두 뺨을 붙잡고 부끄러워했다.

그때 시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형아. 시하는?”

“시하 엄청 귀엽지.”

“안 머시써?”

“아니. 엄청 멋있는데? 봐. 여기 늠름한 뿔 하며 튀어나온 말랑한 볼살. 거기에 빨간 코가 붙어 있는 망토까지.”

묘사하다 보니 멋있는 것보다는 귀여운 것에 가까운 찬양이다.

어쩔 수 없지. 멋있는 것보다는 너무 귀여우니까.

이런 거짓말 정도는 용서해 주라.

어차피 형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는 나이가 되어서 착한 거짓말 정도는 해도 된다.

“시혁이 형아. 나는? 나는?”

승준이 기대되는 눈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당연히 정말 멋있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못생긴 오승준!”

갑작스러운 하나의 반격에 입이 쏙 들어갔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아침부터 떠들썩하게 크리스마스이브를 시작했다.

시혁은 롱패딩을 입은 다음에 재빠르게 사라졌다.

시하는 그런 형아에게 손을 흔들었고.

아무튼,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만큼 마지막까지 중요한 걸 해야 했다.

바로 내일을 대비한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

사실 2주 전부터 만들어야 하지만 어린이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트리를 선물해 주고 싶었으니까.

보통 아이들이 사면 좋아하겠지만 부모님으로서는 이런 애물단지도 없다.

물론 사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위해 계획이 되어 있었다.

“자. 여러분. 선생님이 나무 7개를 가져왔어요. 여기에 트리를 꾸며요.”

거추장스럽지 않게 작은 나무를 꺼냈다.

크면 클수록 예쁘고 좋겠지만 부모님들이 좋아하지 않을 게 뻔하니 이렇게 아기자기한 나무를 준비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부모님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준비였다.

“이건 집에 들고 갈 거니까 예쁘게 꾸며야 해요. 알았죠?”

“네!”

다양한 재료들이 많았다.

하지만 작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열심히 꾸며도 다들 비슷비슷한 형상을 띠게 될 게 분명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하는 재료들을 쭉 둘러보았다.

“시하 이거.”

동그란 구슬 중에 빨간색만 쏙쏙 뽑아서 트리에 달았다.

그걸 본 종수가 말했다.

“앗! 이시하. 왜 너 빨간색만 혼자 다 가져가냐!”

“시하 레드 조아.”

“나도 빨간색 갖고 싶다고.”

“좀 주까?”

“어. 근데 이게 네 꺼는 아니지 않나?”

“아?”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빨간 구슬을 건넸다.

종수가 기분 좋아졌는지 흥흥거리며 트리에 달았다.

시하의 트리에 빈 부분이 생겼지만 굳이 다른 색깔의 구슬을 달지는 않았다.

금색과 은색 구슬이 영롱하게 빛나지만 시하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거 모야? 지팡이?”

빨간색 선과 흰색 선이 번갈아 있는 지팡이.

레드가 조금 있으니 합격 판정을 받아서 시하의 트리에 달렸다.

분명 주어진 재료들을 가지고 꾸미는데 확연히 시하 거라는 태가 났다.

그도 그럴 게 붉디붉은 트리니까.

승준이 그걸 보며 자기가 단 장식을 다 땠다.

“와. 시하는 온통 빨간 트리네. 나도 좀 멋지게 해야겠다. 으음.”

“하나는 리본만 할 거야.”

“그럼 나는 으음. 동그란 것만 달아야겠다.”

선생님이 승준을 보았다.

아까 달았던 거 다시 다는 거니?

다들 비슷하지만 그래도 개성이 들어간 트리가 나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위에 별을 달고 완성을 시켰다.

“그럼 선생님이 전구를 달아줄게요.”

휙. 휙.

전구들을 칭칭 감아서 마무리한 뒤에 불을 켰다.

“우와!”

아이들의 눈이 전구의 불빛으로 물들었다.

선생님이 조용히 어린이집 형광등을 껐다. 밤처럼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구의 불빛은 아까보다 더더욱 밝게 보였다.

“아아. 예뻐!”

“진짜 예쁘다!”

“예뿌다.”

모두가 한동안 트리를 앉아서 감상했다.

이제는 조금 지루해질 때쯤에 선생님이 형광등을 켰다.

“자. 여러분. 이제 50퍼센트는 다 준비되었어요. 그럼 뭐가 남았는지 아세요?”

“뭐가요?”

“바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빨간 양말을 다는 거예요. 다 같이 한번 만들어볼까요?”

선생님이 미리 만들어둔 펠트지 양말을 꺼냈다.

발에 신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 컸다.

빨간색이지만 겉에는 아무것도 꾸며져 있지 않았다.

이 부분이 아이들이 꾸밀 것이다.

“선생님이 양말모형은 이미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만들었답니다. 스위스 장인 못지않죠. 다들 여기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잘 넣어줄 수 있도록 예쁘게 꾸며요.”

종수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양말이 너무 작은데요?”

“응?”

“그거면 장난감 큰 상자도 안 들어갈 것 같은데요.”

설마 그런 현실적인 질문이 들어올지 몰랐지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사실 양말 안에 넣어두는 것이 맞지만 요즘에는 그냥 표식으로 써. 산타할아버지가 이 양말을 달았다는 신호를 삐빅 받아서 집을 찾아오거든.”

“거짓말.”

“진짜야.”

“산타도 네비게이션 쓸 거 아니에요?”

“응. 아니야.”

망할 과학의 발전.

여기서 네비게이션이 웬 말인가.

시하가 손을 들었다.

“응. 그래. 시하야. 궁금한 게 있니?”

“아아. 양말 커.”

이번에는 커서 문제인가.

“크면 좋지 않을까? 잘 보이잖아.”

“아냐. 시하 몬 신어. 발에 빠져나가.”

“으응?”

이 양말, 신을 생각이었니?

이거 장식하는 용도인데 진짜 신으면 어떡하니.

설마 실용성의 면에서 지적받을 줄 몰랐다.

옆에 있던 승준이 웃었다.

“아하하! 저렇게 크면 못 신지.”

선생님이 헛기침했다.

“흠흠. 이건 산타에게 잘 보이게 해두려고 크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혹시 모르죠. 양말에 편지도 같이 넣어둘지.”

“정말?”

“네. 정말이죠.”

사실 크게 만든 이유는 별거 없었다.

아이들이 많이 꾸밀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꾸밀 게 많아지면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니 일거양득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네!”

아이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걸 오려서 양말에 붙이는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

시하를 데리러 왔는데 뭔가 하나를 들고 있었다.

빨간 양말이 달린 크리스마스 트리.

사실 이걸 살까 말까 고민 중이었는데 이렇게 어린이집에서 챙겨준다고 해서 감사했다.

커다란 트리가 집에 있으면 그 순간 좋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치우기도 귀찮고 자리만 차지한다.

그래도 이렇게 작은 화분으로 된 트리가 있으면 굳이 치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형아. 트리!”

“오!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말도 배웠어? 대단한데?”

“시하 대단해?”

“응. 엄청.”

나는 코끝을 찡긋거렸다.

“형아. 양말 이써.”

“정말 그러네?”

양말에 시하의 그림이 붙여져 있었다.

선물상자 두 개.

하나는 작은 상자였는데 X 표시가 크게 되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큰 상자였는데 O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살며시 웃었다.

작은 선물 말고 큰 선물을 달라는 게 뻔히 보여서.

산타할아버지도 이거라면 어이쿠 선물을 교환해줘야겠네, 하며 커다란 선물을 안겨줄지 모르겠다.

양말도 되게 크네.

“저 시혁 씨.”

“네. 선생님.”

“제가 알림장에 중요한 걸 끼워 넣었거든요. 꼭 보세요.”

“뭔데요?”

“S 씨에게 온 답장이요.”

“아하.”

산타에게 답장이 왔나 보네.

“나중에 양말에 쏙 끼워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어차피 산타는 잘 때 선물을 가지고 오니까.”

“부탁드릴게요.”

과연 편지에 답을 뭐라고 썼을지 너무 궁금하기는 하다.

몰래 보고 싶지만 열어보면 티가 날 것 같아서 내일 아침까지 꾸욱 참아야겠다.

“시하야. 그럼 이제 갈까?”

“아아.”

“아, 그거 이리 줘. 형아가 들게.”

“아냐. 시하가.”

“그래, 그럼.”

우리는 선생님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겨울이라서 해가 빨리 떨어지고 추위가 덮쳤다.

일교차가 심한 걸 보니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시하야. 추우니까 빨리 집에 가자.”

“형아. 손 잡아주까?”

“네가 잡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고?”

“아냐. 형아 손 차가. 시하 잡아주께.”

“그래. 형아 손 좀 따뜻하게 해주라.”

“아아.”

시하의 손을 꼬옥 잡았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차를 향해 갔다.

사실 이렇게 잡아도 추운 건 추운 거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게 더 따뜻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러는 게 더 좋았다.

매서운 바람이 손을 얼게 해도 절대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걸어가면서 시하의 손이 추울까 봐 괜히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주물럭거렸다.

차에 타자 곧바로 온풍이 우리를 반긴다.

“형아. 따뜻해!”

나는 미소를 지었다.

시하를 데리러 가기 전에 히터를 열심히 틀어서 데워두었다.

“가면서 더 따뜻해질 거야.”

히터를 틀고 차를 출발시켰다.

어차피 집까지는 금방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런 사치 정도는 부려줘야 크리스마스지.

“근데 시하야. 갖고 싶은 거 없다더니 엄청 큰 선물을 바라던데?”

“아?”

시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트리의 그림에 턱짓을 했다.

“거기 큰 선물상자 그림말이야. 큰 거 바라는 거 아니야?”

“아냐.”

“응? 아니라고?”

“아아.”

아니, 그러면 무슨 뜻이지?

“그럼 무슨 그림인데?”

시하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양말 보고 산타 와. 시하 선물 말고 형아 선물 달라 해써.”

“어?”

큰 선물은 나를 나타내는 거였고 작은 선물은 시하를 뜻하는 거였다.

시하 선물 말고 형아 선물을 달라는 뜻.

나는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따뜻해서 눈앞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툭. 툭.

그걸 하늘도 알았는지.

따뜻하고 포근한 눈이 한 송이, 한 송이씩 내리고 있었다.

세상을 하얗게 물들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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