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본격적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서점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다들 배치되어있을 것이다.
물론 수많은 책 중의 하나일 테지만 잘 팔리면 좋을 것 같다.
인터넷서점 역시 여러 군데 돌아다녀 봤는데 정말로 있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니, 당연한 사실인데 신기한 감정이 생기니 어쩔 수 없잖아.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광고가 너무 많다는 것.
다른 책들이 배너를 빵빵하게 받아서 뭐 이건 시하 책이 눈에 띌지 모르겠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팝업북 광고를 본 적 없긴 하지만.
그래도 왜 있잖은가.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100만 부 팔리고 잘나간다고 글 한 줄 적히는 거.
뭐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꿈을 꿀 수 있는 거니까.
“시하야. 시하야. 봐봐. 네가 그린 팝업북이 나왔어.”
“정말?”
시하에게 폰을 넘겨서 인터넷서점에 있는 걸 보여주었다.
정말 신기한지 빤히 바라보았다.
“형아. 시하 책!”
“응. 시하 책이야. 그리고 아침에 보니까 진짜 시하 책도 택배에 왔더라. 좋지?”
“아아.”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마나 팔릴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듯했다.
이모티콘처럼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책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건 어렵다.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그치?”
“형아. 시하도 파라. 책 파라.”
“응?”
“전에 해써.”
“아…….”
아무래도 전에 팔았던 걸 기억하나 보다.
하지만 이건 그때와 다르게 부수도 많고 직접 발로 뛰어서 팔아도 새 발의 피일 수밖에 없다.
그걸 몰라서 지금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본다.
어? 이거 어떡하지?
“이건 알아서 팔리지 않을까?”
“아냐. 형아랑 가치.”
“응. 같이하는 게 중요하지.”
시하에게 얼마나 팔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또 같이 팔아보는 게 중요한가 보다. 그때 팔았던 10권의 책은 아마 소중한 경험이 되었겠지.
“그럼 어디 가서 팔까? 전처럼 팔 때가 마땅치 않아. 서점에는 이미 시하 책이 있을걸.”
“아?”
시하가 고민하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백동 형아, 문도 삼춘, 수혀니 누나. 리사 누나!”
“응. 그렇구나.”
어디서 들어본 멤버들인데? 아! 그때 판 10권 중 반은 지인 장사였나?
어이쿠. 이러면 안 좋은데. 이거 뭐 다단계 사업도 아니고 말이야.
“하하. 파는 건 아니고 시하 책 나왔다고 자랑이라도 할까?”
“아냐. 파라.”
“어? 그래. 열심히 하자.”
“아아!”
나는 폰을 들어서 단체로 문자를 보냈다.
시하가 열심히 뭔가 하려고 하니 잘 부탁드린다고.
아무튼, 그렇다.
“형아. 시하 준비 다 해써.”
시하가 펭귄 가방을 메고 나온다.
오늘은 먼저 어린이집부터 가는 루트인가 보다.
파는 건 파는 거고 갈 건 가야지.
“그래. 이제 나가자.”
“아아.”
“근데 진짜 팔 거야.”
“가치! 파라.”
“꼭 ‘같이’를 강조해야겠어?”
시하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선생님을 맞이했다.
“샘. 안녕하세여!”
“시하야. 안녕. 오늘은 평소보다 기운 넘치는 거 같네?”
유다희 선생님이 그걸 알아보시다니 이제 시하 좀 볼 줄 아는구나 싶었다.
하긴 여기 다닌 지 어언 10개월인가? 아니 9개월이었나?
“샘. 시하 책 나아써.”
“응? 책? 설마 그때 팝업북?”
“아냐. 몽실이, 비실이.”
“아! 몽실이랑 비실이?”
“아아.”
시하가 가방에서 팝업북을 꺼냈다.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선생님이 펼쳐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훑었다.
마치 무언가 감평하는 듯한 모습이다.
“재밌네요. 확실히 시혁 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니까. 몽실이와 비실이도 귀엽고. 왜 구름이 아니라 펭귄인지는 알 것 같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지 않겠어요.”
“하하.”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아니, 오히려 냉정하죠. 종이책 매출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
“아, 그건 됐어요.”
“흠흠. 제가 흥분했네요. 최연소 작가님을 봐서요. 그런데 시하야. 오늘 이거 자랑하려고 가지고 왔구나?”
“아냐.”
시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다리에 찰싹 붙었다.
“시하 책 파라.”
“응? 책 팔러 온 거야?”
“아아. 샘. 책 사. 책 사.”
“오오오. 선생님한테 책을 팔려고 하다니 아직 한참 멀었네요. 이래 봬도 업계 선배로서 못 사줄 것 없지만 그렇게 팔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왜?”
“이런 건 가치로 승부해야지 아는 사람에게 팔면 안 돼요.”
“가치?”
“어? 음. 멋진 거로 승부해야죠.”
“시하 책 안 멋져?”
“어? 음. 그건 아닌데.”
저런. 시하의 논리에 밀려버렸다.
할 말이 궁색한지 선생님이 우물쭈물 되다가 이렇게 말한다.
“그럼 하나 살까? 얼마예요?”
“샘. 이터네. 이터네에 이써. 그거 시하 꺼.”
“응? 아, 이걸 파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 주문하라고?”
“아아.”
“무슨 책을 이렇게 파니?”
“왜?”
“아니야. 그럴 수 있지.”
시하에게 책을 검색한 걸 보여주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어차피 선생님도 알았으면 샀을 거라고 했다.
‘얼마 하지도 않네요.’라고 말하며.
그때 원장님이 말했다.
“얼마 하지도 않으니까 영수증 첨부해서 보고서 쓸 때 같이 올려요. 비용 처리는 어린이집에서 하는 거로.”
“네?”
“어린이집에서 사서 두면 좋잖아요. 다희쌤은 돈 아껴요.”
“왜요?”
“왜긴. 결혼하려면 돈은 어느 정도 모아야지. 요즘 남자가 집 마련해 오는 시대는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에이 이 돈 가지고 뭘요.”
“아니야. 조금이라도 아껴서 모아야지. 어린이집 선생님이 얼마나 번다고.”
“괜찮아요. 저 동화책으로 떼돈 벌거라고요.”
“방금 시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악! 악! 아니거든요.”
원장이 그런 유다희 선생님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는 두 사람이 여전히 사이좋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시하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언장샘. 시하 책 사. 샘, 언장샘. 두 개.”
시하가 두 손가락을 쫙 폈다.
저기 시하야? 이때 책 하나 더 판다고?
“싸우지 마. 또 사면 대지!”
어? 그러게. 또 하나 사서 하나씩 가지면 되지. 근데 저 장면 꼭 부모님이 애들에게 하나씩 장난감 사주는 장면 아니야?
원장님과 다희쌤이 한 방 먹었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다희쌤이 말했다.
“어…. 그러면 제 소장용, 원장쌤용, 어린이집용으로 세 개를. 그리고 돈은 어린이집으로 첨부해서.”
원장이 유다희 선생님의 폰을 덥석 잡고 시하가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개수작 부리지 말아요.”
공금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였다.
아, 2개는 몰라도 3개는 선 넘었지.
***
시하는 오늘 책이 나온 걸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었다.
먼저 제일 친한 승준과 하나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짜잔!”
“와! 시하야. 이거 페페잖아!”
“아아. 페페야. 비실이와 몽실이야.”
“헐?! 그 비실이 하고 몽실이?”
“하늘 가써. 비실이, 몽실이.”
“오. 하늘 가서 이렇게 됐구나?”
하나도 신기한지 눈을 반짝였다.
“시하야. 대단해~ 책도 만들고. 하나는 아직 노래 못 만드는데.”
“하나도 할 수 이써.”
“정말?”
“아아. 이거 시하도 만드러써. 형아, 홍 아찌 도아져써. 하나도 도아서 만드러~”
“도와서 만드러?”
“아아.”
하나가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때 종수가 셋이서 뭔가 하는 게 궁금한지 기웃거렸다.
“너희 뭐 해?”
승준이 가슴을 쫙 펴고 손으로 시하의 팝업 북을 가리켰다.
“시하가 팝업북 또 만들었지요! 팝업북 투야. 팝업북 투!”
“팝업북 투라고?!”
“그래. 원보다는 투가 더 강한 거 알지?”
“뭐래.”
종수가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꼈다.
투나 쓰리나 그런 건 책에 붙여봤자 더 강해질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 안 믿네? 진짠데! 그치 시하야.”
“아아.”
“거짓말하지 마! 둘 다! 내가 바본 줄 알아?”
종수는 이 중에서 자기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지식이 많긴 했다.
어디서 들었던 것도 꼼꼼히 기억하는 종수였다.
물론 그걸 쓰는 지혜 면에서 굉장히 부족하고 아직 어린 티를 벗어 던지지 못했지만.
“아냐. 진짜야. 시하 책. 이터네에 파라.”
“이터네는 뭐야? 설마 인터넷?”
“아아. 마자.”
“뻥 치지 마!”
종수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시하의 책 제목을 하나, 하나 보고 따라서 글자를 쳤다.
[비실이와 몽실이]
검색해서 들어가니 정말로 떴다.
그거에 종수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진짜 투면 강해지는 거야?! 책도?!”
옆에서 승준이 보더니 ‘우와, 우와’를 남발했다.
하나는 ‘시하 이제 연예인이야. 연예인. 책도 나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린이집에 유명인사의 탄생을 알렸다.
재휘가 시하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고, 윤동은 슬쩍 보더니 뭐 저금통에 돈 있으면 사준다고 무뚝뚝하게 지나가듯이 말했다.
은우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대박대박, 하면서 손뼉을 쳤다.
선생님이 나서서 말했다.
“선생님도 인터넷에서 유명한데!”
“샘. 정말?”
“우와. 진짜요?”
“샘도 연예인처럼 유명해?”
“말도 안 돼. 선생님 투라니. 그럴 리 없잖아? 거짓말이야.”
“종수야. 선생님이 거짓말을 할까? 내 옷도 늘 멋있다고 하는걸.”
“진짠가?”
“푸하하! 쌤도 유명하대! 푸하하!”
선생님이 폰을 꺼내며 은우를 보았다.
저기 은우야? 악의 없는 건 알겠는데 그 대사는 굉장히 의미심장하구나.
“자! 보세요! 선생님 블로그예요!”
다들 우와우와 하는데 종수가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다른 사람도 다들 하는 거잖아. 투는 아니네. 다행이다.”
저기 종수야. 뭐가 다행이라는 거니?
“선, 선생님도 엄청난 파워 블로그거든!”
아이들이 이제는 흥미가 가셨는지 다른 소리로 쫑알쫑알 떠든다.
원장님이 선생님의 어깨를 토닥인다.
“진짜예요.”
“그래요. 다희쌤. 더 유명해지고 말합시다.”
“아, 억울해!”
실제로 다희쌤의 블로그와 책은 반전매력으로 인지도가 조금 있는 편이다.
물론 유명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흠흠. 다들 오늘 믿음이 부족하네요. 그렇다면 준비한 게 있습니다.”
선생님이 커다란 천을 감싼 박스를 들고 왔다.
“바로바로 퀴즈 시간!”
다들 뜬금없는 맥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선생님이 아이들의 흥미를 부추겼다.
“이걸 다 맞추면 상품도 나가요. 바로바로~ 맛있는 딸기찹쌀떡!”
“우와! 맛있겠다!”
“먹고 시퍼!”
“아아!”
다들 역시 좋아할 줄 알았다.
선생님이 천 안으로 손을 넣어서 장난감을 눌렀다.
끼오! 끼오!
“???”
아이들이 뭐가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준이 번쩍 손을 들었다.
“아! 닭! 닭! 꼬끼오예요!”
“정답!”
선생님 손에서 못생긴 닭 장난감이 나왔다.
승준에게 주자 고대로 내팽개쳤다.
끼엑오!
시하가 그걸 보며.
“개차나?”
“시하야. 그건 괜찮아.”
장난감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아냐. 안 개차나. 얼굴 안 개차나.”
선생님이 속으로 생각했다.
시하야. 네가 더 나빠. 원래 걔는 못생겼다고! 그렇게 확인사살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냐!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걔는 원래 못생겼어.”
“아? 왜?”
“왜냐고? 당연히 치킨이 안 됐으니까!”
“치킨 대면 잘생겨?”
“응. 엄청 잘생겼지! 맛도 있다고!”
옆에 있는 하나는 승준의 말에 치킨이 생각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초점을 다시 박스로 맞췄다.
“자자. 다들 집중해 주세요. 치킨보다 맛있는 딸기 찹쌀떡을 먹을 수 있는 기회! 자 이번에는 어떤 장난감이 있을까? 이걸 다 맞춰야 모두 먹을 수 있어요.”
장난감을 다시 눌렀다.
개굴! 개굴!
이번에는 시하가 번쩍 손을 들었다.
발언권이 넘어갔다.
자신 있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수혀니 누나!”
“땡!”
“아? 개굴 누나 노래 잘해.”
“땡!”
시하가 왜 아니지?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형아가 말했던 게 생각났다.
“아아! 자낫개굴!”
“으응?”
“자낫개굴!”
“자낳개구리? 땡! 그런 개구리는 없어요!”
“아?!”
시하가 충격받았는지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형아가 없는 걸 말했을 리가 없어! 딱 그런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당황해서.
“그…. 있을지도 몰라요…. 아마도…….”
그냥 모호하게 말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