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8화 (238/500)

238화

회장이 된 사람은 종수였다.

가위바위보에 이겨서 굉장히 기뻐했다.

“으하하. 내가 회장이다!”

“아, 안 돼!”

승준이 힝 하며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나는 ‘그럼 다음에는 뭐가 좋지?’ 하며 가위바위보를 준비했고, 시하는 ‘시하는 형아. 형아 할래.’라며 말했다.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하야. 형아라는 직책은 없어…….

그렇게 무사히 직책이 다들 정해졌다.

말하자면 이렇다.

사원 시하, 대리 재휘, 과장 하나, 차장 윤동, 부장 승준, 사장 은우.

“자! 여러분. 가슴에 스티커 달아줄 테니까 잊어먹지 마세요.”

“네!”

선생님은 어차피 놀이니까 한발 물러서서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운영하는 회사는 어떨까?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 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종수 회장님. 여기는 어떤 회사에요?”

종수가 미리 생각해둔 게 있는지 자신 있게 말했다.

“여긴 강인 전자예요. 스마트폰을 만들어요.”

“오! 스마트폰!”

“사실 다른 것도 있는데 여기 애들은 다 전자에 있어요.”

“그렇군요.”

“아빠가 전자 사놓았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전자가 최고죠.”

아무래도 종수 아버지는 주식을 전자에 넣으셨나 보다. 그랬구나.

쓸데없는 정보를 획득한 후에 일이 진행되었다.

“자, 다들 일해. 일.”

하나 과장이 드라마에서 뭔가 본 게 있는지 진두지휘를 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폰을 팔 거야. 다들 준비해. 알았지? 승준 부장아.”

“네!”

저기 하나야. 승준이 직급이 더 높아.

시작부터 하극상을 보여주고 있는 회사였다.

어? 여기 사실 직급은 상관없고 수평적인 구조였던가? 아닌데 수직적인 구조인데?

승준 부장이 말했다.

“그럼 폰을 아프리카에 어떻게 팔까?”

재휘 대리가 손을 살짝 들었다.

“스마트폰에 옷 입혀서 팔면 좋겠어.”

“어? 그거 이상하지 않아?”

“그, 그래? 황금색으로 옷 입히면 좋을 거 같았는데. 이상하면 안 되겠다.”

재휘야. 좀 더 자신 있게 주장하자!

대리가 아래에 있는 직급이라도 제일 열심히 해줘야지!

시하 사원이 재휘의 말을 받았다.

“아냐. 레드야. 레드. 레드 옷.”

시하의 레드 사랑은 여전했다.

승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골드보다는 레드가 더 세 보이지.”

“하나눈 핑쿠가 좋은데?”

“아, 역시! 하나 과장님 말이 최고지.”

아니야. 승준아. 네 직급이 더 높다니까? 대체 무슨 드라마를 보고 와서 알랑방귀를 뀌고 있는 거니?

이대로라면 아프리카에 핑쿠 스마트폰이 팔리기 시작할 것 같다.

잘 팔릴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동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은 윤동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 사태를 안정화할 수 있을 테니까.

“폰 팔려면 광고해야지.”

어? 그건 그렇지. 광고 마케팅을 해야 하는 거 맞지. 그런데 핑쿠 스마트폰으로 괜찮은 거니?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반박을 하지 않고 있다.

“광고는 음악이 나오고 춤추는 거로 좋겠어.”

윤동의 춤 사랑을 전파했다.

이 부분에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무언가가 엿보였다.

그 박력에 밀렸는지 아이들이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 주었다.

알아서 하라는 은우 사장이 ‘어? 그럼 노래는 랩으로 넣자!’ 하며 끼어들었다.

둘은 임무를 완수했는지 그 뒤로 별 참가가 없다.

만족했나 보다. 이래도 되나?

하나 과장이 말했다.

“그럼 사장님에게 이렇게 다 됐다고 하자.”

“내가 갈게!”

승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은우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는 대사가.

“여기 사장 나와! 여기 사장 어딨어? 사장 불러!”

저기 승준아. 너 컴플레인 걸로 온 손님이 아니라 이 회사 직원이야. 대체 뭔 드라마를 본 거니?

은우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하하! 내가 사장이다!”

“네가 사장이야?”

“그래!”

“여기 아프리카에 폰을 팔 준비를 했다.”

“아프리카보다는 룩셈부르크가 좋지 않아? 룩! 룩! 룩셈부르크! 아! 아! 아르헨티나!”

갑자기 훅 들어온 노래에 승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를 고민하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아! 아프리카! 아! 아! 아프니까!”

“오! 좀 하는데? 좋아. 아프리카 가자.”

“으응…….”

승준이 뭔가 이상한데?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이 빙긋 웃으며 지켜보았다.

괜찮아. 이미 너희 회사 다들 이상해…….

다 이상한 사람이면 그건 어떻게 보면 정상이라는 소리가 아닐까?

그때 종수가 답답했는지 말했다.

“언제 보고 하러 올 거야! 사장 빨리 와!”

“응!”

은우가 종수 회장에게 가다가.

“시하야. 잠깐 회장에게 이거 했다고 말해줄래? 난 래퍼 대회에 나가야 해서.”

“아아!”

갑자기 사장이 일하다 말고 래퍼 대회에 나간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원이 회장에게 최종 보고를 하러 간다.

“종수!”

“어허! 회장님에게 종수라니!”

시하는 하나가 승준에게 말했던 걸 기억했다.

“아아. 종수 회장아.”

“야이! 님을 붙여야지!”

“갠차나. 갠차나.”

“내가 안 괜찮다고! 내가!”

종수가 마음대로 안 돼서 답답한지 가슴을 탕탕 쳤다.

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고하기 시작했다.

“폰 마드러써. 핑쿠야. 핑쿠. 아프리카에 파라. 춤 광고해.”

“오. 그랬어? 어디 보자.”

종수가 허공에 서류를 펼쳐보는 시늉을 한다.

“이거 만드는 데 얼마 들지?”

“아?”

“뭐야! 그것도 몰라?”

종수가 잘됐다는 표정으로 꼬투리를 잡았다.

이걸로 이시하를 당황하게 했다는 마음에 기쁨으로 가득 찼다.

“아냐. 시하 아라.”

“그래서 얼만데?”

시하가 자신 있게 손가락 세 개를 쫘악 폈다.

“서이.”

“뭔 서이? 삼백만 원?”

“서이 천 언.”

“야! 스마트폰이 그렇게 싸면 어떻게.”

“또 오께~”

“아니. 또 오는 게 문제가 아니야. 네가 사는 게 아니라 네가 파는 거라고.”

“아? 아아!”

시하가 ‘그랬었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너이.”

“3천 원이나 4천 원이나…. 별 차이 없…. 하아 됐다. 사장 오라고 해. 사장.”

“너이 장.”

“아니. 너이 장에 판다는 게 아니라 사장 데리고 오라고. 은우 사장!”

“사장 바빠. 랩 해. 랩 해. 종수가 가.”

“아니. 회장인 내가 가야 해?”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풉 하고 웃었다.

이 회사는 회장이 경영하기 참 힘들겠다 싶었다.

아까 회장 된다고 좋아했던 종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해탈한 표정만 남아있었다.

“회장이 뭐 이래…. 안 좋아 회장.”

그 부분은 어린이집 역할 놀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다들 역할을 잘 몰랐을 뿐.

회사 경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

시하를 데리고 차에 태웠다.

늘 그랬듯이 오늘 있었던 일을 내게 말해준다.

“형아. 시하 해사 가써.”

“오! 그랬어?”

“아아. 시하 사언이야. 사언.”

“오 사원이라고?”

“아아. 폰 만드러써. 핑쿠야. 핑쿠.”

“그렇구나. 대단하네.”

대충 오늘 회사놀이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사회생활이라니. 형아는 슬프단다.

“그래서 많이 팔았어?”

“아?”

아무래도 많이 팔았는지는 모르나 보다.

근데 사원이면 신입인데 너무한 거 같다. 시하 정도면 회장을 해야지.

“시하는 사원이 마음에 들어?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없어?”

“시하 형아 대.”

“하하하. 그래? 그건 회사에서는 조금 힘들 건데?”

“아냐. 시하 해장에 다다다 해써. 이케이케.”

시하가 손으로 뻥긋뻥긋 말하는 시늉을 했다.

아무래도 회장에게 뭔가 다다다 말한 모양이다.

어? 사원이 회장에게 뭔가 다다다 말할 일이 있나?

“회장이 누구였는데?”

“종수야. 종수.”

“그래서 종수가 뭐라고 했는데?”

“사장 차자써.”

“오! 생각보다 정상적인데?”

“아아.”

알고 아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겠구나 싶었다.

역시 종수가 아는 게 많으니까.

“시하는 회장 하고 싶지 않아?”

“왜?”

“회장이 제일 높으니까?”

“안 해. 시하 안 해.”

“왜? 직원들에게 이리저리 시킬 수 있는데?”

“해장 바빠. 형아랑 못 노라.”

어, 그렇지. 바쁘니까 나랑 못 놀지.

이런 이유면 인정이지. 시하는 회장 하지 마라. 형아랑 못 노니까.

“종수 안 조태. 회장 안 조태.”

“그런 말도 했어?”

“아아.”

종수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알림장에 다 쓰여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디테일한 부분은 빠져있겠지?

갑자기 펭귄 가방 속 알림장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빨리 집에 가야겠다.

“그럼….…”

뭔가 물어보려고 했을 때 전화가 왔다.

나는 근처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 모드로 시하가 들을 수 있게 했다.

“네. 여보세요.”

「시혁 씨. 접니다.」

“네. 홍 과장님. 무슨 일입니까.”

「책 인쇄는 다 되었고 3일 뒤부터 서점에 쫙 깔릴 예정입니다. 책에 홍보 띠지도 있는데 교육감상 받은 게 표기될 예정이고요.」

“오! 대박!”

「인터넷서점에도 쳐보시면 바로 나올 겁니다.」

“몽실이와 비실이 치면 나와요?”

「물론이죠.」

책 출판은 처음이라서 정말 신기하긴 했다.

얼마나 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개를 세트로 묶어서 판매한다고 하니 꽤 재밌을 듯했다.

“저희한테 책 주셔야 하는 거 아시죠?”

「하하. 당연하죠. 넉넉하게 100만 부 보내드리겠습니다.」

“…….”

「농담입니다. 몇 권 드릴까요?」

그때 시하가 말했다.

“홍 아찌.”

「오. 그래. 시하야.」

“서이 건. 서이 건.”

「서이건은 누구지? 내가 요즘 티비를 잘 못 봐서. 신인 배우인가?」

“세 권의 서이 권이요.”

「아~ 그 서이 권. 난 또. 세 권 세트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 맞다! 첫 번째 팝업북 있지 않습니까. 그거 표시를 증쇄 2판으로 해놨습니다. 흐흐흐.」

나는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의미가 있나?

“엄밀히 말하면 2판이 맞는데 그게 의미가 있나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이게 1판이랑 2판이랑은 나중에 가격이 다릅니다. 가격이! 중고로 팔 때도 달라요.」

“그런가요?”

「물론이죠. 그리고 1판은 몇 개 안 찍었지 않습니까. 의미가 있죠. 500개였나요? 원래 한정판이 비싸죠.」

“팝업북이라 별 의미 없는 거 같은데…….”

「모르죠. 원래 유명해지면 의미가 생기는 법입니다. 혹시 압니까. 시하페페가 계속 이름을 알리다 보면 엄청 유명해질지.」

“하하. 글쎄요.”

당장 시하페페로 언제까지 활동할지도 모르는데 뭐.

임티도 이제 오래되어서 까먹은 사람들이 많을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팔게 되었습니다. 한 100만 부 팔리는 거 아닙니까! 하하!」

“진짜 100만 부 찍으신 거죠?”

「네? 아, 지금이라도 옆에 있는 대표님에게 말씀을…. 네? 나가라고? 아 왜요! 100만 부 해줘요! 네? 10년치 월급 안 줘도 되냐고요? 와. 우리 사이에 이러 깁니까.」

진짜 말한 건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알 수가 없다.

봐온 홍 과장이라면 진짜 할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무서운 점이랄까.

「안 된다고 하십니다. 에이! 내가 출판사 차려야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들켰습니까?」

“네.”

시하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기도 하고 싶은 말 있는지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콕콕 가리켰다.

“시하가 하고 싶은 말 있다네요.”

「오! 시하페페 작가님.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홍 아찌. 파라?”

「네. 드디어 팔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 파라?”

「네. 팔게 되…. 네? 아프리카요?」

“아아. 핑쿠로 파라. 핑쿠.”

「핑쿠…? 설마…….」

홍진수가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해외 진출 노리는 겁니까. 역시 시하페페 작가님. 스케일이 다르구나. 번역은 시혁 씨에게 맡기면 되겠네요. 근데 미국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니…. 역시 남다르십니다.」

나도 무슨 말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정말 해외 진출을 노리고 말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마 어린이집에서 나온 말이겠지? 핑쿠도 들어있으니까.

시하가 말했다.

“홍 아찌. 랩해. 랩해.”

「…갑자기요?」

“광고. 광고.”

「광고로 랩을??」

이해를 따라가지 못하는 홍 과장이 두 손을 들었다.

결국, 내게 해석을 부탁했다.

대체 뭘 말하는 거냐고.

어…. 글, 글쎄요. 오늘은 좀 어렵네요. 잠시 알림장 좀.

내게는 알림장 볼 시간이 필요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