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7화 (237/500)

237화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맞추는 작업은 인내심을 시험한다.

이 열쇠가 아닌가? 아니면 이 열쇠인가?

열쇠 꾸러미 속에서 미리 태그를 붙여뒀으면 좋았겠지만 괜히 하나씩 넣어보고 맞지 않음에 한숨을 내쉰다.

그만큼 열쇠를 꺼낼 일이 드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연봉 협상도 그렇다.

1년에 딱 한 번.

하지만 한 번이기에 맞는 열쇠를 찾는 데 머리를 아프게 한다.

잘되면 안에 있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얻게 될 거고 그렇지 못하면 열쇠를 땅에 버린 채 다른 곳으로 잠시 이동할 것이다.

“오늘은 누구랑 하죠?”

NM의 운영팀장이 직원에게 물었다.

“타이론입니다.”

“아. 그랬지. 고과 산정이 어떻게 되죠?”

“그저 그렇습니다. 물론 이번 시즌에 잘해줬지만 일단 이닝 수가 많지는 않아서. 좀 더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치진과의 소통도 평범하고요.”

“그래요? 흠. 그러면 이번 계약 그대로 가는 게 좋겠네요. 아니면 조금만 더 올려준다는 식으로요.”

“구단 사정을 들먹여도 괜찮지 않을까요?”

“글쎄요. 잘 통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봐야죠.”

감성팔이.

물론 선수 입장에서 나랑 그게 뭔 상관이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먹히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재정이 어려워서 더 해줄 수 없는 구단도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다.

운영하는 입장과 선수들의 입장 차가 좁혀지는 게 연봉 협상이었다.

“현재 통역사는 일단 단기 계약이라고 하던데. NM 직원은 구하고는 있나?”

“이번 달에 뽑는다고 공고를 하던데 뭐 봐야 알겠죠. 대충 소개로 몇몇도 한번 본다고 합니다.”

“근데 좀.”

“그렇죠?”

“아니. 야구도 잘 알고 게임도 잘 아는 건 무리한 거 아닌가? 여기가 장난도 아니고.”

“그만큼 자체 내에서 파견 형식으로 한다는 건 이해가 되긴 하는데…….”

“대체 왜 합치냐고…….”

운영팀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대충 자신도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해는 된다.

값싸게 좋은 인력을 쓴다. 그래. 말은 좋다.

대충 통역 부서의 정직원으로 뽑아서 익숙해진 통역사가 자주 바뀌지 않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게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점.

그 귀찮음과 수고스러운 점에서 잠깐 짜증이 날 뿐이다.

결국은 통역사 스스로 배우는 역량에 맡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타이론을 맡은 단기 통역사는 잘하나?”

“별로 이야기는 나눠보지 않았는데요.”

“왜? 고용했으면 이야기 나눠봐야지.”

“저희가 고용한 게 아니라 게임 회사 인사부장 측에서 고용해서 발령낸 형태지 않습니까.”

“아씨. 그래도 한 달은 우리 사람 아니야. 잘하면 대충 구슬려서 넘어오게 해야지.”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요?”

“뭐? 그럼 더 좋네. 뭣도 모를 때 계약 체결을 빨리하면 되지.”

“정직원 뽑을 건데 대학생은 좀.”

“그건 그렇지.”

적어도 통번역 대학원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했다.

아니면 적어도 졸업을 하던가.

“쩝. 타이론에게 말을 잘 전해줄 수 있을지나 모르겠네. 너 영어 좀 하냐?”

“하하. 저 토익이…….”

“아, 됐어! 자랑하려고 그러는 거지? 넣어둬. 넣어둬.”

“아니. 제 점수가…….”

“넣어두라고! 하지 마!”

결국, 자랑을 못 한 직원이 시무룩해졌다.

운영팀장은 대충 서류를 챙기고 일어섰다.

오늘 하루도 선수 한 명을 구워삶으려는 신경전을 펼쳐야 한다.

***

타이론과 회의실에 들어왔다.

앞에는 운영팀장이 앉아 있었는데 눈썹이 굵고 다부진 인상이다.

굳은 입매에서 쉽지 않겠다는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의문인 게 인사팀장은 왜 여기 있는 걸까?

NM회사에서 이렇게 나오셔도 됩니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묻지 않았다.

이미 들어오는 순간 협상은 시작된 게 다름이 없고 나 역시도 그에 맞는 자세를 갖춰야 했다.

앞에서 밝게 손을 흔드는데 나는 살며시 고개를 숙여 답해 주었다.

사실 너무 해맑아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숙인 거나 다름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타이론 통역사로 왔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자리에 앉아서 진행하죠. 타이론 씨가 잘 모를 것 같아서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내부적으로 선수들을 고과로 평가하는데 그에 따른 점수입니다.”

나와 타이론이 고과 점수가 산정된 데이터를 받았다.

자세히는 나와 있지 않고 점수만 반영되어 있어서 이게 과연 높은 점수인지 낮은 점수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렇게 함으로써 선수들이 질문을 던지면 거기에 대한 답변하게 되어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사실을 바탕으로 말이다.

흠. 이거 완전 주도권을 저쪽에서 쥐고 있겠다는 건데…….

「타이론. 전에 말했던 대로 연봉 인상을 원하죠?」

「네.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론이 원하는 건 연봉 100% 인상.

사실상 두 배. 하지만 이게 쉽지 않았다. 보통 탑급들이 300% 인상까지 올라가지만 타이론은 그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물론 타이론도 거기까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일단 질러보자는 거지.

“타이론은 연봉 두 배로 받고 싶어 하네요.”

“흐음. 그건 곤란합니다. 저희도 땅 파고 장사하는 건 아니라서. 인상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도 소폭입니다. 지금 떨어지는 선수들도 있죠.”

삭감되는 선수들이 있으니 이 정도면 굉장히 많이 해주는 거다.

뭐 그렇게 돌려 말하고 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다른 선수들 이야기는 하지 마시죠. 오로지 타이론과 구단에 대해섭니다.”

“하하.”

운영팀장이 한 방 먹었다는 듯이 웃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타이론을 만만하게 본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겠지.

타이론은 외국인이니 말이다.

“그래도 100%는 너무 큽니다.”

“아니요. 크지 않습니다.”

나는 준비했던 자료들을 운영팀장에게 건넸다.

엑셀로 정리한 타이론의 성적.

“이번 시즌에 타이론이 마무리로 올라와서 거뒀던 성적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색이 칠해진 건 타이론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실책별로 정리한 겁니다. 그리고…….”

설마 이런 자료까지 준비할 줄 몰랐다는 듯이 운영팀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타이론을 추켜세운다.

너희가 가진 고과점수가 얼마나 세밀할지 모르겠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

내가 그걸 채워주겠다. 타이론의 방어율? 이닝? 그게 뭐 어때서. 정말 타이론이 잘못한 거냐?

“타이론은 그런 압박 속에서도 다른 구단 투수의 방어율보다 뛰어났습니다. 그걸 정리한 표는 뒤쪽에.”

“하하하. 와…. 이걸 다 정리했다고요?”

“네. 내년 스프링 캠프에서 보여주겠지만 타이론은 주전으로 무조건 넣어도 그만큼 성적을 보여줄 겁니다. 근데 사실 140%는 부르고 싶었는데 2배면 오히려 ‘저희’ 쪽이 많이 양보한 게 아닐까요?”

운영팀장이 안 되겠는지 자세를 고쳤다.

“재밌네요. 이시혁 통역사가 준비한 겁니까?”

“함께 준비한 거죠.”

“아니요. 아니요.”

운영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보통 선수들은 이런 거 못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해 온 선수들은 본 적이 없고요.”

“보통 아닌 선수들은 해왔다는 거네요.”

“하하하.”

“아무튼 저는 올려달라고 생떼 부리는 게 아니라 명확한 데이터 기반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게 다음 시즌에 더 잘할 거라는 보장은 없죠. 아십니까? 데이터가 쌓이는 건 저희 구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데이터가 휴짓조각이 된다면요?”

“음?”

“먼저 이걸 보시죠.”

나는 폰을 꺼내서 타이론의 SNS 계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 계정도.

“이미 팀워크는 경기 내에서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선수들 간의 인간관계에도 대단히 영향을 미치죠. 그런 의미에서 타이론은 한국 선수들과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특히 투수가 아닌 타자와 포수랑 말이죠.”

“호오.”

“여기에 충분한 점수가 들어갈 겁니다. 좀 더 발전된 경기력을 보여주겠죠.”

“글쎄요. 그것만으로 휴짓조각이 된다고는.”

“설마요. 제가 이것만 가지고 말씀드리는 거겠습니까.”

나는 폰에 또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타이론이 투구 폼을 고치는 모습.

전에 내가 지적하는 걸 찍어둔 게 이렇게 요긴하게 써먹을지 나 역시도 생각 못 했다.

“투구 폼을 열심히 연구했는데 지금은 휴짓조각이 되었네요. 체인지업과 직구의 구별이 거의 없습니다.”

“으음.”

“비시즌 기간에 부족한 부분을 이렇게 빨리 고친 선수. 그 태도. 이래도 평가가 부족하십니까? 이거 구단 측에서도 못 찾았던 거 아닙니까. 만약 제대로 지원해 준다면. 글쎄요. 휴짓조각. 구단 쪽에서 자랑하며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인터뷰에서 말이죠.”

“하하하!”

스포츠계에 영향력을 준다는 말이 아니다.

그 구단의 팬이 타이론에 대해 빠져들 수 있는 인기로 될 수 있다.

이 말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서 운영팀장은 더 감탄을 내뱉었다.

“아! 혹시 구단 운영은 어렵다고 하지 마세요. 확인해 보니 이번 NM 게임회사에 매출이 많이 올랐던데요. 거의 호황이라고 불릴 정도로요.”

“준비가 부족하고 안일했네요. 오늘 한마디도 제대로 반박하기 힘드네요.”

“제대로 해주신다면 200퍼 인상 가치를 발휘할 겁니다. 운영 쪽에서도 그럼 좋잖아요.”

나는 이제 여유 있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도권은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왔다.

물론 운영팀장이 방심한 것도 있고 방대한 자료를 준비한 것도 있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단.”

“???”

“몇 가지 추가 옵션으로 채워주는 금액을 산정하죠.”

역시 운영팀장.

그냥 보장해 주는 연봉이 아니라 옵션을 걸자는 거지?

그래도 뭐. 목표는 채웠다.

타이론은 별 기대를 크게 안 하고 있다가 내 통역에 눈을 크게 떴다.

「사회기금은 나에게 해준 건 없는데 시혁은 내게 해준 게 크네!」

아직도 부루마불에 못 벗어났습니까?

그거랑 비교하는 거에 웃음이 빵 하고 터졌다.

그때 인사부장이 말했다.

“근데 잠깐 내가 물어봐도 될까?”

“네? 뭘요?”

“자네 야구 구단에서 통역하는 거 이번이 처음인데. 습득률이…. 이 정도면 게임도…….”

“아, 안 사요.”

“아니. 잠깐만. 이거 끝나고 우리도 연봉 협상 좀.”

“저 한 달 계약직입니다만.”

“그러니까 정직원으로.”

“아, 안 사요.”

운영팀장이 핀잔을 준다.

“가만히 보고만 있겠다면서요. 조용히 하시죠. 자, 세부적인 계약 이야기 좀 들어가 봅시다.”

우리는 계약의 이야기를 마저 했다.

인사부장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고.

거참. 안 산다니까…….

***

-어린이집.

오늘은 엄마, 아빠가 회사 다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둘 중 한 분은 여기 교수거나 교직원이지만.

아무튼, 아이들이 어디서 보고 온 게 있는지 오늘은 소꿉놀이가 아니라 회사놀이를 하기로 했다.

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 선생님도 모른다.

승준이 말했다.

“회사 드라마 봤는데 거기에는 소꿉놀이처럼 역할이 정해져 있대. 그, 그 뭐지?”

종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알아.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렇게 있어. 사장도 있고 회장도!”

“아, 맞아! 근데 누가 누가 더 높지?”

“응?”

종수가 순서대로 말했지만 누가 높은지 몰라서 고민을 했다.

시하가 안다고 손을 들었다.

“시하 아라.”

“정말 알아?”

“아아!”

종수가 의심스럽게 쳐다봤지만 시하는 당당했다.

“홍 아찌보다 커. 대표. 대표.”

“음. 홍 아찌는 또 뭐야?”

홍 과장보다 대표가 높은 게 맞지만 홍 아찌라고 해서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나가 말했다.

“하나도 아라. 회장이 최고래써.”

“그건 당연하지.”

일단 회장이 제일 위로 등극했다.

그다음은 사장인 것도 알았다.

문제는 그 밑의 배치였다.

“과장이 그 아래야. 과자랑 비슷해서 더 높을 거야.”

일단 과자는 아이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는 건 알겠다.

시하가 또 아는 것을 말했다.

“아아! 부장. 안경 형아야.”

안경호가 동아리 부장이 맞긴 하지만….

종수가 ‘대체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하가 뭔가 알긴 아는데 혼자만 안다.

은우가 말했다.

“대충하면 되지. 나 회장!”

승준과 종수가 발끈했다.

“안 돼! 내가 회장 할 거야!”

“종수가 하면 안 되지! 내가 해야지!”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손뼉을 쳤다.

“그럼 누가 회장 할지 가위바위보 하실래요?”

“네!”

다들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리고 회장이 금방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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